젠틀맨은 될 수 없어 (연재 중)
문서 16개
젠틀맨은 될 수 없어 1
태섭대만
1.어떤 수식어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국내 최초의 NBA 선수. 언론과 전문가들은 태섭의 성공에 이러한 뻔한 수식어를 걸고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았다. 20살이 되어 시작한 미국 유학부터 시작하여 태섭이 가진 신체적 조건, 장신의 외국 선수를 상대할 때 나오는 퍼포먼스, 배짱, 뻔뻔함과 더불어 무서워 할 줄 모르는 기량 같은 것들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
2026. 1. 11.
젠틀맨은 될 수 없어 2
태섭대만
2.눈을 뗄 수가 없는 건, 인정.대만은 제 앞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태섭을 보면서, 팔짱을 낀 팔에 힘을 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있어서 더 그랬다. 햄버거를 먹다가도 알은체를 하면 고개를 까딱였고, 어린 아이들이 오면 물티슈로 손을 닦고 사인을 해주었다. 장시간 비행으로 몰골이 말이 아닐 테니 사진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했을 ...
2026. 1. 11.
젠틀맨은 될 수 없어 3
태섭대만
3.집에 도착하자마자 신경질적으로 차 키를 던진 대만은 미간을 구기며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에어컨을 켜고, 파워 냉방 버튼을 눌렀다.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 앞에 서서 허리에 두 손을 올렸다. 생각을 안 하고 싶어도 어이가 없어서 자꾸 생각이 났고, 입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나랑 같이 휴가 보내지 않을래요? 않을래요오오오오오? 이 말을 할 때의...
2026. 1. 11.
젠틀맨은 될 수 없어 4
태섭대만
4.비밀번호는 정말, 123456 이었다.대만은 아라와 같이 구구절절 내뱉었던 너무 쉬운 비밀번호의 위험성에 대한 잔소리를 다시 하려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는 태섭 때문에 미국에서는 이런 문화 아니지 않냐는 질문을 했다. 미국 유학 시절까지 생각하면 20살 때부터 있었던 것이니 이제는 그 나라의 문화가 더 자연스러울 텐데, 그렇게 보이...
2026. 2. 21.
젠틀맨은 될 수 없어 5
태섭대만
5.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대만은 닥치는 대로 태섭에게 질문했다. 어쩐지 기뻐서 즐겁게 받아주던 태섭이 나중에는 형, 미국에서 이런 걸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사생활 침해라고 해요. 신나서 질문하던 대만이 일자 눈썹을 날카롭게 만들며 반박했다. 이런 걸 한국에서는 뭐라고 하는 줄 아냐? 호구조사라고 해. 친한 사이에서만...
2026. 1. 19.
젠틀맨은 될 수 없어 6
태섭대만
6.뭘 해보고 싶냐고?잘 잤냐는 인사 하기. 아침 운동 같이 하기. 구단에 데려다주기. 점심이나 저녁 같이 먹기.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기. 멋진 카페에 가서 맛있는 커피 마시기. 마트에서 장보기. 장 본 재료로 요리 하기. 가볍게 술 마시기. 잘 자라는 인사 하기.태섭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했다. 수많은 것들 중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2026. 1. 24.
젠틀맨은 될 수 없어 7
태섭대만
7.태섭이 무슨 소리를 한 건지는, 짐을 싸면서 알게 된다.아무 생각 없이 짐을 싸던 대만은 캐리어에 채워진 옷을 심각한 표정으로 보면서 허리에 두 손을 올렸다. 반바지가 많았다. 긴 바지도 있지만, 대충 훑어도 조금 더 많은 것 같다. 할 말은 있었다. 첫 번째, 지금은 여름이다. 두 번째, 몇 년 전에 촬영한 스포츠 의류 업체에서 덕분에 매출이 잘 나온...
2026. 1. 25.
젠틀맨은 될 수 없어 8
태섭대만
8.몸을 쓰면 어색하지 않을 거라는 대만의 생각은 어느 정도 통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나란히 맞춰 걷던 걸음만 달라졌을 뿐. 첫 비행기는 아니지만, 나름 빠른 비행기를 타고 와서 아침 일찍 도착했어도 날은 생각보다 더 빨리 더워졌고, 쉽게 지쳤을 뿐. 처음에는 괜찮았다. 조금 들뜨기도 했고.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나무와 이름 모를 식물들 뿐인 이 곳...
2026. 1. 30.
젠틀맨은 될 수 없어 9
태섭대만
9.솔직히 말하면, 더블은 아니다.특급 호텔에서의 더블이란, 그러니까 침대란, 퀸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건, 아무리 관심사가 좁은 대만이라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경험이라는 건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알게 해주는 것이고, 아는 것이 되어, 지식으로 남게 된다. 그래서, 잘 교육 받은 프런트의 직원이 객실은 오션뷰의 더블룸을 예약하셨다는, 과할 정도로 친...
2026. 2. 8.
젠틀맨은 될 수 없어 10
태섭대만
10.대만이 쪼개질 것 같지만, 어쩐지 부드러워진 몸으로 태섭과 같이 간 곳은 호텔 로비에 있는 카페였다. 태섭이 끌고 갔다는 게 맞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이곳에서 시선을 받고, 수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 거다. “이 호텔 망고빙수가 유명하대요. 알아요?”천연덕스럽게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훑어보고, “괜찮아요?”의사를 묻는 송태섭은 이런 걸 하...
2026. 2. 21.
젠틀맨은 될 수 없어 11
태섭대만
11.내일이 오려면, 잠을 자야 한다.두 사람은 침대에 누웠다. 바스락 거리는 침구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눕기 전까지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는데, 들어가자마자 쏙 사라졌다.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건 침구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숨소리였다. 침구 소리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숨소리는, 이상했다. 서로를 알게 된 이후, 코트 빼고 이렇게 숨소리를 가...
2026. 2. 21.
젠틀맨은 될 수 없어 12
태섭대만
12.소리를 낼 수 없는 시간이었다.태섭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 든 대만을 내려다보며 마른세수를 했다. 이 사람은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싶었다. 고등학생 때도 그랬다. 문득 조용해서 쳐다보면, 이미 꿈나라에 가 있었다. 속이 편한 건지, 천성이 그런 건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성질이 났다. 18살의 송태섭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말이 없었고 감추는데...
2026. 2. 22.
젠틀맨은 될 수 없어 13
태섭대만
13.대만은 바다에 몇 번이고 들락날락거렸다. 태섭은 그런 대만을 모래사장에 앉아 지켜보기만 했다. 혼자서도 저렇게 잘 노는 구나 싶었다. 물을 좋아한다는 건 알았어도,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어렸을 때, 여름이면 가족과 함께 해수욕장에 다녔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힐끔 거리더니, 아버지한테 멀리 나가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얌전한 꼬마였으...
2026. 3. 1.
젠틀맨은 될 수 없어 14
태섭대만
14.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던 아침은,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진 대만이 알려주었다. “이제 좀 괜찮아요?”“…….”“아직 쪽팔려요?”“시끄러워.”호텔 바닥에 엎드리고 누운 상태로 태섭의 마사지를 받던 대만이 얼굴을 번쩍 들었다. 손바닥 전체로 어깨를 누르고 손가락으로 목을 일정한 간격으로 누르던 태섭이 빙긋 웃었다. “말도 하는 걸보니 이제 괜찮은가 봐요....
2026. 3. 5.
젠틀맨은 될 수 없어 15
태섭대만
15.사실 대만은, 태섭이 뭘 하고 싶어 ‘했는지’ 안다.매일 아침마다 칼같이 보내던 잘 잤냐는 인사. 일정이 없거나 피곤하지 않으면 매일 하는 아침 운동. 출근 같이 하기(그러고 송태섭은 제 할 일을 하러 떠났지만). 밥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하기. 가끔, 멋진 카페에 가서 맛있는 커피 마시기. 일주일에 두 세 번 장보기. 제 집에서 혹은 송태섭의...
2026. 3. 15.
젠틀맨은 될 수 없어 16
태섭대만
16.맥주, 마셨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일 대만의 팀이 제주에 오는 건 생각도 안 하는 것처럼 엄청 마셨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다소리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 않는 순간에는 서로를 힐끔 거렸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테라스 테이블을 정리하고 룸으로 들어가 각자 양치를 하고 침대에 반쯤 걸터 ...
2026.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