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LOVES ME

태섭대만

2




 어떤 사랑은 긴 숫자도 기억하게 한다. 아주 진절머리가 나서 이게 뭐하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사랑이. 

 태섭은 익숙한 번호를 누르며 욕을 뱉었다. 이 번호를 누르기 전에 뭐라고 둘러댈 것인지를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랜만에 귀국을 했다는 말이 가장 덜 쪽팔려 보였다. 이미 전화를 할 생각을 했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 됐다는 건, 그냥 무시했다. 무슨 생각이든, 두 가지를 손에 올려두면 안 되는 인간이었다, 정대만은. 

 짐을 다 옮겼다는 기사의 말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신호음이 길게 울렸다. 태섭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밤 11시 43분이었다. 호텔로 바로 가면 되겠습니까? 기사가 물었다. 태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한 공항을 지나자 바로 어두워졌다. 고속도로에는 차도 몇 대 없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서 한 번 더 했다. 자고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자고 있어도, 깨워야했다. 당장 들어야 할 말이 있었다. 다정한 거? 배려하는 거? 그런 건, 헤어지기 전의 일이었다. 

 팔꿈치를 창에 기댄 채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훑듯이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누구야!



 태섭은 핸드폰을 귀에서 뗐다. 정대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주변이 매우 시끄러웠다. 태섭의 얼굴이 구겨졌다.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갖다댔다. 쿵쿵 거리는 음악 소리,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렸다. 아주 익숙한 소음이었다. 태섭은 다른 손으로 미간을 눌렀다.



“너는 누구야.”

-내가 먼저 물었는데 예의없게.

“정대만 바꿔.”

-누구냐니까요 이 새끼야~

“…당장 바꾸라고.”



 목소리가 낮아지는 건 당연했다. 화가 서서히 끓어 머리 끝까지 올라오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른 사람이 받는 것도 모자라서 술에 잔뜩 취했다는 목소리여서 더더욱. 부슬부슬한 제 머리카락을 손으로 움켜쥐던 태섭은 야, 야, 정감독 어디갔냐, 뭐?! 스탠드에 갔다고? 또 술 쳐마셔?!- 말에 눈이 확 도는 느낌이었다. 전화 받는 놈의 머리통을 제 머리카락처럼 쥐고 싶었다. 좀 더 세게. 



“야. 바꾸라고, 정대만.”

-하, 이 새끼 봐라. 내가 누군지 알고 반말 찍찍. 야, 잠깐만 놔봐, 이 새끼 이름이나 좀 보자 씨발, 뭐? 태섭이?



 그 말에 자동으로 웃음이 나왔다. 헤어지기 전에 저장되어 있는 이름이랑 똑같네. 2년 전, 헤어지기 전에는 분명히 전화번호 지우겠다고 했었다. 그 서늘한 목소리를 기억했다. 어찌나 서늘한지, 떨어진 심장을 주울 생각도 못하고 뒤돌아서는 정대만의 뒷모습을 그냥 쳐다만 봤었다. 전화번호를 왜 안 지웠냐고 물어봐야 하는 건지, 안 지웠다는 것에 기뻐해야 하는 건지, 두 가지를 놓고 또 생각하고 있을 때쯤, 핸드폰 너머로 욕이 들렸다. 야 잠깐만, 아오 씹.   



-내가 아는 태섭이, 아니지요? 송, 태섭, 씨??

“네, 그 송태섭 맞고요, 그러니까 당장. 정대만 바꿔. 달라고요.”

-진짜 송태섭이라고요??? 야야, 정대만 데리고 와, 야!!! 송태섭 국내 복귀 한다고 했었나?!??!!!

-예에??? 송태섭이요??????????



 지랄들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CLUB LOVE. 뭐 이런 구닥다리같은 이름인가 싶었다. 삐딱하게 서서 클럽 간판이나 쳐다봤다. 문 앞에 서 있는 가드 두 명이 그런 태섭을 쳐다봤다. 꼬불거리는 갈색 머리카락, 밤인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츄리닝 차림에 조리를 신고 서 있는 몸 좋은 단신의 남자가 영 심상치 않아보였다. 태섭은 미간을 찌푸리며 뒷머리를 매만졌다. 태섭은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 감도 안 잡혔다. 그런 기사가 났으면 곱게 집에나 갈 것이지 왜 이런 곳에서 술이나 쳐마시고 있는 건지, 그런 기사가 나서 술이나 쳐마시고 있는 건지. 왜 안 하던 짓을 해서 사람 골 때리게 만드는 건지. 시차 때문에 더 골이 울렸다. 정대만 때문에 더더욱 골이 울렸다. 일단 정대만을 찾자, 찾아서, 얼굴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으려나. 짜증나는 얼굴로 한숨을 뱉은 태섭이 클럽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태섭은 전화를 받으며 클럽으로 걸음을 옮겼다.



“네. 도착했어요, 했는데. 일이 있어서 바로 호텔로 못 갔어요.”



 너 지금 어디야?! 태섭의 전속 매니저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귓가에 때리는 음악 소리 때문에 그 소리는 개미 목소리처럼 작게 들렸다. 어어, 여기, 누구 찾으러. 그런 말을 하며 태섭은 선글라스를 벗었다. 춤을 추는 사람들, 술을 마시는 사람들, 헌팅하는 사람들, 키스를 하는 사람들. 온갖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건 뭐, 미국 클럽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이런 곳에 정대만이 있다니, 태섭은 슬슬 빡이 쳤다. 

 끊어 시발, 형 전화나 받고 있을 때가 아니야. 

 태섭아, 태섭, 야, 야!

 태섭은 곧바로 대만에게 전화를 걸었다. 또 신호음이 길게 울렸다. 일부러 몸을 부딪혀오는 사람들 때문에 성가셨다. 받아라, 좀. 태섭이 성질을 내며 중얼거릴 때 핸드폰으로 제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여기 7번 룸인데요!!!! 예, 지금 정감독 방금 일어났습니다!!!!

 룸을 잡고 놀고 있어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욕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며 태섭의 눈이 재빨리 룸을 찾기 시작했다. 룸은 2층에 있었고, 계단으로 올라가는 동안 또 추파를 받았다. 태섭은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며 숫자 7만 찾았다. 7번룸이 우연인지, 의도한 건지, 이런 게 왜 신경 쓰이는 건지 그것보다, 정대만이, 여자 끼고 있으면 어떡할지, 아니, 그런 사람은 아니니까 씨발, 근데 왜 욕이 나오고 지랄인지, 완전히 굳은 얼굴로 문을 열어 제꼈을 때, 몇 십개의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송태섭?”



 그 눈들이 사라지고 두 개의 눈만 남았다. 태섭은 제자리에 서서 정대만을 쳐다보았다. 반쯤 푼 넥타이, 셔츠 단추는 하나만 풀었고, 셔츠 소매는 접어 올린 상태. 다행히. 여자는 없, 후. 태섭은 길게 심호흡을 했다.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태섭은, 대만에게 손짓을 했다. 나와요. 

 정대만은 태섭을 환상인 것처럼 멍하게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깜찍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나오라고, 데리러 왔으니까.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정대만은 그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옆에 있는 사람의 어깨를 툭 치며 쟤 지금 뭐라고 그랬냐? 물었다. 어쭈. 태섭은 눈썹을 올렸다. 쟤 송태섭 맞지? 또 어깨를 툭 치고. 어쭈우. 태섭의 눈썹이 더 올라갔다. 쟤 지금 왜 여기 있냐?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데, 정감독…

 태섭은 발을 움직였다. 알아서 움직일 자리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을 지나쳐, 여전히 제 얼굴을 환상처럼 쳐다보는 얼굴을 한 번 쳐다본 뒤에, 손목을 잡았다. 손목이 뜨거웠다. 그 손목을 꽉 잡고 일으켜세웠다. 쑤욱, 일어나는 정대만이 휘청거리며 태섭의 어깨에 얼굴을 올렸다. 술냄새가 코로 확 들어왔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자기 관리를 못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게 뭐라고. 그게, 뭐라고. 

 태섭은 화를 삭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누구도, 태섭에게 말을 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바보처럼 꿈뻑이는 눈동자를 쳐다보던 태섭이 대만의 허리를 꽉 잡은 채 물었다.

 정대만 가방 어디 있어요.






 정대만의 서류 가방을 어깨에 메고 체크인을 하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감독이라고 이런 것도 메고 다니나. 태섭은 고객 정보를 쓰다말고 소파에 기댄 정대만을 쳐다보았다. 얼굴을 알아볼 까봐 손수건을 얼굴에 덮어줬더니 꼴이 이상했다. 늦은 시간이어서 다행이었다. 태섭은 호텔 직원에게 빙긋 웃었다. 잠이 온다고 그러는데, 어두운 걸 싫어해서요. 묻지도 않은 말에 변명이나 했다. 

 호텔 직원에게 키를 받아든 태섭은 재빨리 정대만에게 걸어갔다. 다시 정대만을 들쳐 업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가장 고층, 스위트룸으로 올라가는 동안 뻥뚫린 엘리베이터 창에 비친 풍경 대신 정대만을 보았다. 정대만은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 거 아니지? 태섭의 물음에 정대만은 대답이 없었다. 자면 안 돼. 태섭은 기억을 더듬어 정대만의 술버릇을 생각했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끊임없이 하다가 잤던 것 같은데. 그 마지막 단계여서는 안 됐다. 태섭은 일부러 정대만의 허리를 간지럽혔다. 꼼짝도 안 했다. 튀어나올 것 같은 욕을 삼켰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눈에 보이는 룸은 스위트룸 하나 밖에 없었다. 다행이었다. 이제는 소리를 지를 차례였다.



“정대만.”

“…….”

“야!”

“…안 잔다 새끼야. 말 까지 마.”



 정대만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술냄새가 났다. 이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태섭은 오랜만에 마주하는 이 눈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정대만의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그 눈이, 태섭을 쳐다보았다. 태섭은 그 눈에 홀린듯 고개를 뻗어 정대만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정대만의 눈이 한 번 깜빡였다. 태섭은 다시 입을 맞추었다. 정대만이 느리게 웃었다. 그 웃음 때문에 환장할 것 같았다. 

 헤어진 사람한테 잘도 입을 들이대네… 

 헤어진 사람 같은 소리 한다. 내가 그랬지, 그날 형만 헤어진다고 한 거라고. 

 정대만의 말에 정말로 환장한 태섭은 호텔 복도라는 것도 잊고, 분명히 카메라가 있을 것이라는 것도 잊고, 정대만을 벽으로 밀쳤다. 머리를 부딪힌 정대만이 미간을 찌푸렸다. 



“오랜만이에요.”

“인사 빠르네.”

“잘 지냈어요?”

“아니.”

“그래 보여.”

“너는. 잘 지냈냐.”

“어.”

“그런 사람 치고 엉망이네.”

“여기까지 형 데리고 왔는데 안 그러고 베겨요?”

“그래. 그런 걸로 쳐.”



 정대만이 웃었다. 태섭은 그런 정대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티브이나 신문에서 보는 것보다 얼굴이 좀 상해보였다. 하긴. 얼굴이 좋아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지만, 내심 얼굴이 좋았으면 했다. 못난 생각은 늘 정대만이 하게 만들었다. 유치하게 만드는 것도. 내가 아니게 만드는 것도. 멋대로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도.

 스위트룸은 더럽게 넓었다. 침대까지 멀어서 태섭은 짜증이 났다. 정대만이 술을 마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한 몫 했다. 야, 좀, 천천히. 말은 잘 해줘서 다행이었다. 몸이 느린 건, 지금으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침대에 정대만을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탄 태섭은 팔을 교차해 티셔츠를 벗었다. 정대만은 그런 태섭을 쳐다보며 뒤로 펼쳐진 야경을 쳐다보았다. 워낙 고층이어서 어두운 하늘이 보였다. 그 하늘에서 태섭이 옷을 벗은 것만 같았다. 풍경이 태섭을 품은 건지 태섭이 풍경을 품은 건지, 정대만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 종일 있었던 일과 겹쳐 정대만은 현실감각이 좀, 떨어졌다. 이게 환상이 아니라면 뭐지. 이런 생각이나하며 웃었다. 



“귀국 소식은 오늘 아침에 봤어. 왜 오는지는 말 안 했던데.”

“중요한 게 아니어서 말 안 했어요.”

“나한테도 말 안 할 거냐.”

“그 와중에 내 소식을 찾아 봤다니까 감동 받을 타이밍 맞지?”



 태섭의 손이 정대만의 넥타이를 풀었다. 셔츠 단추를 풀고 있을 때, 정대만이 태섭의 손목을 잡았다. 정대만이 웃어서, 태섭은 이이상 아무것도 못 했다. 일부러 이렇게 웃은 거지, 어? 태섭이 대만의 위에 엎드리며 중얼거렸다. 태섭의 귀에 정대만이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헤어졌는데 단추 풀게 두냐, 그럼. 정대만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이러고 있는 것도 웃기거든.”

“후배랑 호텔에 잠만 자러 왔다고 생각해요 그럼. …말하고 후회되네.”



 태섭의 말에 정대만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태섭의 몸이 같이 흔들렸다. 정대만은 진심으로 즐거워보였다. 태섭은 정대만의 휘어진 눈꼬리를 보았다. 이마에 올린 왼손을 보았다. 뭐 하나 없는, 깔끔한 손가락을 보았다. 태섭은 재빨리 대만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정대만이 주먹을 쥐었다. 저와 다르게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며 정대만은 한숨을 뱉었다.


 

“그럼 후배는 내 위에서 좀 내려가던가.”

“후회 한다니까요. 좀 봐줘라.”

“내려가. 얼른.”



 태섭이 고개를 들어 정대만을 쳐다보았다. 정대만은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 태섭은 대만의 옆에 누웠다. 태섭은 정대만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잡았다. 손가락을 엮는데도 정대만은 가만히 있었다. 태섭은 길게 한숨을 뱉으며 정대만처럼 천장을 쳐다보았다. 커다란 샹드리에가 반짝이고 있었다. 숨소리가 번갈아가며 들렸다. 짧은 숨이, 긴 숨이, 교차 하듯이 흩어졌다. 그 숨의 끝에, 정대만이 말했다. 안 물어보냐.



“성격차라며.”

“어.”

“다른 게 또 있어요?”

“…아니.”

“아니면, 알아야 할 게 있어요?”



 태섭이 몸을 일으켰다. 다시 대만의 위로 올라갔다. 두 팔을 대만의 얼굴 사이에 두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얼굴이 가까워졌다. 무표정한 얼굴의 정대만이 말했다. 

 도장 오늘 찍었다. 여기까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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