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ow down, baby c

태섭대만

6




 태섭이 스위트룸의 문에 카드를 태그한 뒤, 문을 열었다. 대만은 먼저 들어가라는 듯이 문고리를 잡고 있는 태섭을 힐끔 쳐다본 뒤, 룸 안으로 들어갔다. 발소리조차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었다. 폭신한 카펫을 밟자마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닫힐 때까지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듯이 조용했지만, 룸이 조용해서인지 큰 소리로 느껴졌다. 점점 가까워지는 태섭 역시. 

 대만은 저를 지나쳐 거실 테이블에 제 가방과 키를 올려둔 뒤, 리모컨으로 커튼을 여는 태섭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천천히 열리는 커튼 사이로, 야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바(bar)에서 본 것과 비슷한 듯, 아닌 듯했다. 그것을 구분할 수 없었다. 야경을 등진 태섭과 눈이 마주치고 난 뒤부터 그랬다. 눈을 감은 건 그래서였다. 감은 눈을 한참 동안 뜨지 못한 것도.

 이 호텔에서 가장 반짝이는 건 저 야경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 야경을 통째로 담은 커다란 창 앞에 있는 태섭만 보였다. 말도, 표정도 없이, 그 자리 그대로 서서 저만 빤히 쳐다보고 있는 송태섭만 선명했다. 

 대만은 태섭과, 태섭의 어깨 너머를 쳐다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선이 움직여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태섭은 변함이 없었다. 시선의 변화도 없었다. 태섭은 기다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정대만의 말. 행동. 그것이 있어야만, 모든 것이 정당화되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생각은 이상한 것이었다. 송태섭이 정대만을 좋아한다고 해도, 송태섭의 의지는 송태섭의 것이지 정대만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만은 이 생각을 무너뜨릴 적당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여전히 저만 쳐다보고 있는 송태섭을 보고 있으면,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은 확실한 것 같았다. 

 대만은 주머니 안에 손을 넣은 뒤, 주먹을 쥐었다. 온도, 습도, 공기, 모든 것이 완벽하게 컨트롤되고 있는 호텔 룸 안에서 고작 저 하나를 컨트롤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마시고 싶은 게 없네.”


 미니바에 있는 술을 훑은 대만이 내뱉은 말은 드디어 태섭을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대만은 제 옆으로 오는 태섭을 쳐다보지 못했다. 옆에 오자마자 훅 끼치는 향수 냄새와 열기. 이런 것이 계속 턱을 문지르도록 만들었다.


“맥주 마실래요?”


 대만은 고개를 끄덕인 뒤, 냉장고를 열었다. 맥주 두 병으로는 어림도 없겠다고 생각했을 때, 편의점에 다녀 올게요. 안을 훑어보느라 허리를 숙이고 있어 가까이에서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똑바로 볼 수 없는 것이 분명한 시선도. 태섭의 얼굴은 아까 전과는 다르게 부드러웠다.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올라가지 않은 눈썹이나, 조금 올라간 입꼬리가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마주친 시선이 지나치게 가까웠다.


“…어.”

“다른 거 먹고 싶은 건 없어요?”

“어.”


 태섭이 허리를 폈다. 대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따라 올라갔다. 허리를 펴고 주머니에 손을 넣는 동안, 테이블에 있는 키를 챙겨 주머니에 넣는 태섭을 쳐다보았다. 다녀올게요. 이 인사가, 어떤 순간을 떠올리도록 했다.

 대만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짧은 인사를 하고 옆을 스치는 태섭의 뒷모습과, 문을 열고 나가면서 잠깐 마주친 시선. 그 시선이 사라진 뒤, 아까 전처럼 조용하게 닫히는 문 모두, 눈에 담았다.


“…….”


 태섭이 나간 룸은 조용했다. 온 사방이 조용한 곳에서 대만은 유일하게 시끄러운 사람이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젖혔다. 손을 내리고, 천장을 쳐다보면서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참았더니, 양쪽 어깨가 묵직한 게 느껴졌다.

 의식을 해도 너무, 의식하고 있다. 들키지 않았으면 다행이었다. 

 피곤함을 느낀 대만은 홀린 듯이 창문으로 걸어갔다. 밖을 마음 놓고 볼 수 있도록 설계한 것처럼 보이는 넓은 창틀에 앉아 모은 다리를 팔로 안았다. 무릎에 얼굴을 올려놓은 뒤, 모든 것이 제 아래에 있는 것들을 눈에 담았다. 

 눈은 느리게 움직이는데, 시끄러운 것들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것들은, 무슨 생각으로 룸에서 술을 마시자고 한 걸까. 이것을 중심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제대로 생각하고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것도 아니었나. 그러면, 송태섭이 원하는 걸 본 건가. 태섭을 만나기 전, 저답지 않다고 생각하도록 만든 피곤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런 게 말이 되나. 송태섭을 상대로.

 송태섭은 특별하다. 하지만 이 특별함은 인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거칠었고 대책 없었으며 철이 없던, 어린 시절에 만나서다. 그 시절에 만든 강렬한 기억과 반짝이는 추억이 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만함과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취감을 처음 느꼈다. 그 시절에, 이것 모두를 나눈 송태섭이 있다. 그것뿐이고,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대만은 알고 있다. 당시에 만난 모든 사람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문제라고밖에 할 수 없는 건, 아직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동갑인 준호나 치수를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특별한 건 오로지, 송태섭. 단 하나였다. 왜? 죽도록 싸워서? 그것들의 흔적을 지금까지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아서 만나기만 하면 말싸움을 했음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너의 옆에는 내가, 나의 옆에는 네가 있어서? 

 그랬던 네가, 아주 먼 곳에 있어서? 가끔 그립다고 느낄 만큼 아니, 그립다고 느끼기 이전에, 어디 한 구석이 뻥. 뚫린 것 같아서? 아니면,


“왜 이렇게 늦게 왔냐.”


 너는 여전히, 가까우면서도 멀어서…?


“많이 덥냐? 얼굴 빨개, 너.”

“…….”

“……왜. 뭘 그렇게 보는데.”


 괜히 삐딱한 말을 했는데도, 태섭은 말이 없었다. 그저, 대만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뿐이었다. 대만은 그런 태섭을 보다 시선을 내린 뒤, 태섭이 쥐고 있는 봉지를 움켜쥐었다. 태섭의 손가락에 손끝이 닿았다.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태섭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열기가 느껴지는데, 정작 그 손은 차가웠다. 조금, 축축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이 아이러니에, 심장이 뛰었다. 이게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면서.


“내가 좋아하는 거 사 왔네.”

“…….”

“손 씻고 와.”


 태섭은 말이 없었다. 그런 태섭을 대만은, 모르는 척했다. 숨을 내쉬고 뱉을 때마다 비정상적으로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가슴이나, 빤히 보고 있는 눈이 조금 풀린 것 같다거나 하는 것 역시, 모르는 척했다. 그렇지 않으면 태섭의 눈이 말하는 걸 볼 것만 같았고 그러면, 그 말을 들어줄 생각 같은 건 없는데도, 그렇게 하고 싶을 것 같았다. 

 네가 원하는 건지, 내가 원하는 건지, 구분할 수 있는 경계선의 시작점을 찾을 수가 없다. 

 이 시작점을 찾기 위해서는, 바(bar)에서 하려다 못했던 말을 꺼내야만 한다. 

 좋아해요. 이 말을 한 송태섭에게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 

 대만은 이제는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어디로든 가고 싶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뒤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대만은 거실에 있는 소파에 깊게 몸을 기댔다. 주종이 달라져서인지, 둘만 있어서인지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늘 하던 것처럼 또 실없는 이야기, 농구 이야기, 사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태섭이 작정한 것처럼 이번 시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훈련 이야기는 덤이었다. 대만은 그런 태섭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이렇게 말이 많은 녀석이었나. 가끔 하던 생각이 자주 들었다. 태섭의 얼굴은 말을 하는 내내 다양하게 변했다. 미간을 찌푸렸다가, 눈을 조금 크게 떴다가. 팔짱을 꼈다가, 다리를 꼬았다가, 풀었다가. 창틀에 앉아 있던 태섭이 창문에 완전히 몸을 기댔다. 조금 전에 제가 그랬듯, 창틀에 올린 다리를 팔로 껴안기도 했다. 그 모양새가 조금 우스워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덩치가 커져도 한참 커진 놈이 저러고 있는 게 조금, ….

 대만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인 뒤, 긴 숨을 뱉으며 고개를 비스듬하게 꺾었다. 소파 프레임에 팔을 올린 뒤, 턱을 괸 채로 태섭을 빤히 쳐다보았다. 자세 때문인지, 태섭을 조금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대만이 자세를 고치는 동안, 다른 자세를 취하던 태섭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입술이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움직이고, 대만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눈이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그런지, 훔쳐보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하면 대만은, 대놓고 쳐다보았다.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태섭의 말에 간간이 대답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섭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나른하게 보였다. 말 역시, 그랬다. 조금씩, 느려졌다. 그럼에도 거침없다. 알아 달라거나, 들어 달라거나,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인 대만은 태섭의 입술을 쳐다보다, 훈련 이야기를 하느라 봉긋 솟아오르기 시작한 볼을 쳐다보았다. 거기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봐요?”


 아까 전까지 거침없이 말하던 태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저, 이런 너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했다. 말도 안 되지만 동시에 말이 되는 궁금증이었다. 이런 건 아까 전, 태섭이 케이에게 느꼈던 질투의 일종이다. 다른 건, 독점욕이 없다는 거다. 하지만, 

 이게 맞을까?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걸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대만은 저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 태섭을 보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숨을 뱉고, 내쉬는 것에 의식했다. 어떤 부분에서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짧게 뱉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했다. 이런 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태도가 아니다.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복잡하고, 무례하다는 걸 안다.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너에게 나를 들키기 싫고.


“넌 어쩌자고 날 좋아한다고 했냐?”


 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싶으니까.

 태섭은 말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묻는 것조차 없었다. 그저, 대만을 빤히 쳐다만 볼 뿐이었다. 대만은 그걸 알면서도 자세를 고치지 않았다. 턱을 괸 손으로 아랫입술을 감추었을 뿐, 여전히 삐딱한 자세를 유지했다. 그러는 동안 태섭은 맥주캔을 손에 쥐었고, 한 모금 마셨고, 그 캔을 옆에 둔 뒤, 젖은 입술을 손등으로 닦았다. 대만은 그런 태섭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까 전처럼, 태섭의 뒤에 있는 야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오로지 송태섭만 보았다.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입술을 벌린 뒤, 긴 숨을 뱉어낸 태섭이, 


“말이 가장 느리게 나온 거예요.”


 긴장을 숨긴 평온을 부술 때까지.

 대만은 눈을 깜빡이는 걸 잊었다. 아니, 뜨고 있는 걸 잊었다. 몇 번이고 눈이 깜빡였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나중에는 아예 눈을 감았는데, 이마저도 길게 가지 못했다.


“그러니까 조금은 긴장해야 해요.”

“…뭘.”

“그 시간 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형은 상상도 못 할 걸.”


 픽, 웃나 싶더니 금세 무표정해진다. 대만은 창문에 비스듬하게 몸을 기대며 나른한 표정을 짓는 태섭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 입안에 있는 살을 물었다. 

 말이 가장 느리게 나왔다는 건, 예전부터 표현하고 있었다는 거다.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내가 멍청한 건지 아니면, 멍청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네가 잘한 건지 구분이 안 됐다.


“그래. 그렇다고 쳐.”

“응.”

“그 시간 동안 사귄 사람은 없냐?”


 태섭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대만은 자세를 고치며, 허리를 폈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내가 그동안 사귄 사람을 네가 알 수 있는 건, 너에게 말해줘서 그런 거잖아. 그러는 동안 너는 이런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한 적 없었어.”


 이건 사실이다. 사실인데, 가슴 어디를 칼로 후벼 파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는 정대만이 먼저 하면 했지, 송태섭이 먼저 물어본 적은 절대로 없는 것. 왜 먼저 했더라. 언제부터 했지.

 생각이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단번에 상처받은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송태섭을 모르는 척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을 상상할 수 있도록, 미끼라도 던져 주던가.”

“…이런 걸 물어볼 거라는 건 전혀, 상상 못 했는데.”


 그런데 왜, 내가 상처받는 것 같을까. 


“있어요.”

“…….”

“형을 잊어 보려고. 만나본 적 있어요.”


 태섭이 쳐다본다. 올곧은 눈동자다. 대만은 고개를 숙였다. 팔짱을 낀 손으로, 반대편 팔을 톡톡 두드렸다. 무엇인지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이 슬금슬금 느껴졌다.

 화? 실망? 죄책감? 아니면, 질투? 

 너에게 아니면, 나에게?  

 이걸, 왜? 

 무엇인지 모를 감정이 대만을 덮쳤고 이건, 어떤 것을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헤어진 연인을 말하던 순간. 다른 사람들도 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 그럼에도, 송태섭의 표정을 살폈던 순간. 말없이 듣던 송태섭이 정대만의 어깨를 두드린다거나, 같이 농구를 한다거나, 다음에는 헤어지지 말고 잘 좀 사귀어봐요. 지금 생각하면 억지로 쥐어짜듯이 하던 말.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지금의 송태섭이,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그럴싸한 변명을 준비하느라 말이 없다고 믿고 싶은 것처럼.

 저런 대화가 끝날 때쯤에 태섭은 대부분 대만을 잘 쳐다보지 못했고, 마른 얼굴을 쓸었다. 유난히 혀로 입술을 축이곤 했었다. 태섭이 그러면 대만은, 이렇게 말했다.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 그렇게 말했을 때의 태섭은, 아까처럼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만 말한다고요? 왜요?’

‘너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머니까.’


 대만은 태섭을 본다. 지금도 여전히,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송태섭을.


“못할 짓이라는 걸 깨닫고 난 뒤부터는 만난 적 없어요.”


 그런데 이건 누가 만든 거지? 여태까지는 너라고 생각했다. 네가 멀리 갔으니까. 네가 나를 두고, 가버렸으니까.


“진심인 적. 있었냐.”


 그랬는데 너는 나를 좋아했지. 얼마나 느리게 나온 말인 건지 모르는 날부터. 

 대만은 점점 표정이 바뀌는 태섭을 빤히 쳐다본다. 화를 내고 싶나? 변명을 하고 싶나? 알 수 없는 얼굴이다. 송태섭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은 어쩌면,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허세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뭔지도 모를 것을 잡아두려고 한 건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복잡하고 무례하게 굴었던 건 송태섭이 아니라, 정대만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대만은 태섭을 빤히 쳐다본다. 제 앞에 선 태섭이 익숙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본다. 그러면,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 속에 있는 송태섭이 떠오른다. 옥상. 

 그때의 송태섭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 긴장을 감추기 위해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태섭을 대만은,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한 손을 주머니에 넣는 태섭이 어떤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웃을 수 있다. 비뚤어진 거라도. 여유로울 수 있다. 그래야만 한다.


“…그게 중요해요?” 


 나는 모르는 날 내내 너를 짐작도 못 하게 만들었고 나를, 허전하게 만들었으니까. 


“왜 중요한데, 그게.”

“…….”

“진심인 적 있었다고 하면, 질투라도 해 줘요? 그럼 대답하고.”


 그렇다고 해서 네가 나를 잊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만났다는 거에 내가, 화를 낼 수 있을까?

 대만이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사이 태섭은 미간을 찌푸리고,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고, 한숨을 쉬었다. 퍽 괴로워 보이는 얼굴을 대만은 그저, 쳐다만 보았다. 


“그러는 형은, 왜 날 내치지 않아요?”


 대만은 여전히 침묵했다. 태섭의 얼굴은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너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머니까. 이 말을 했을 때의 송태섭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숙이고, 다른 곳을 보다가, 꽉 깨문 어금니 때문에 툭 튀어나온 볼 근육이 제자리를 찾을 때쯤, 새빨간 눈동자로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지금처럼.


‘나한테만 말한다는 거, 다른 뜻은. 없죠?’

‘다른 뜻?’

‘그런 사람들. 그러니까. 떠보려고 이야기한다거나.’


 그때는 왜 저런 걸 물어보는지 몰랐으면서 가슴 어느 한편이 꽉 막힌 것 같았다. 지금처럼.

 대만은 한숨을 뱉었다. 꽤 긴 숨에도, 태섭은 동요하지 않았다. 떠보려고 그런 거 아니야. 이 말에도, 태섭은 무표정이었다. 들어야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무너지지 않는 태섭 때문에 몇 번이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두 눈을 문질렀다. 흐릿한 시야가 걷힌 뒤에도 태섭은 여전히 그 자세, 그 표정 그대로였다. 

 

“확신이 있어서 말했다는 놈치고 소심한 질문이네.”


 수많은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인터하이. 윈터컵. 졸업. 대학 입학. 송태섭의 미국행. ’송태섭답게, 경험 많이 하고 돌아와라.’ …. …. …. …. 편지 [미국은 어떠냐? 여기는 하나도 재미없어. 같이 농구하는 사람들은 전부 실력이 좋지만, 어쩐지] …보내지 못한.


“왜, 말이 가장 느리게 나왔어?”


 너는 모를 거야. 네가 미국으로 간 뒤의 나를. 네가 나를 얼마나 한심한 놈으로 만들었는지도.

 태섭의 자세와 표정이 드디어, 무너지는 것을 본다. 대만은 사실은 그러고 싶은 건 나라고 떠들고 싶은 것을 참았다. 대신, 태섭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지고, 주머니에 있던 손을 빼내어, 볼을 감싸 쥐는 것을, 내버려두었다.


“말은 가장… 확실한 거라서.”

“왜 그걸 먼저 하지 않았어? 송태섭답지 않게.”

“몰라서 물어요…?”

“어.” 


 조그맣군. 눈이 마주치던 순간이 떠오른다. 저 녀석, 손 봐주자. 울컥, 치미는 치기. 옥상. 너의 농구화. 눈. 

 사실은 몸보다 더 아팠던 마음.  


“…정대만은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

“잊을 수도. 버릴 수도. 모르는 척을 할 수도. 싫어하는 것조차 할 수 없어서.”

“…….”

“잃기 싫었어요. 형을, 잃고 싶지 않았다고.”

“…….”

“이런 걸……, 형이 알아?”


 대만은 눈을 감았다. 억울하다고, 화가 난다고, 그럼에도, 마음 놓고 그럴 수 없다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태섭은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런 태섭을 보면서, 태섭의 손에 얼굴을 살짝 비볐다. 태섭의 눈썹이 단번에 내려갔다. 엄지손가락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원래 있던 곳에 자리 잡았다. 태섭은 힘들어 보였고, 무엇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만의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태섭은 그 깜빡임을 보는 것조차, 괴로워했다. 볼을 감싸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대만은 살짝 떨리고 있는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송태섭이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것. 이것들이 모두 손가락에 있었다.


“그럼 그 확신은, 이제는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거냐? 그래서 말했어?”


 태섭은 고개를 저었다. 느리다가, 빠르게. 점점 내려오는 시선이 조금 더, 내려간다. 대만은 태섭이 무릎을 꿇고, 제 손을 잡은 뒤, 제 무릎에 이마를 갖다 대는 것을 쳐다보았다. 


“태섭아.”


 태섭이 고개를 들었다. 촉촉한 두 눈이 새빨갰다. 대만은 그 눈을 오랫동안 쳐다보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송태섭답게, 경험 많이 하고 돌아와라.’ 그 말을 하고 돌아서서 집으로 가던 순간을 떠올렸다. 내 옆에 네가 없는 최초의 시간. 허전하다고 느낀 최초의 순간. 돌아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음에도. 단단한 시선으로 그러겠다고 말했음에도. 그 시간과 순간이 만들어낸 최초의 경험은, 처음으로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었다.


“나도 너를 잃기 싫어. 그런 건… 한 번으로 충분해.”

“……나를…, 잃어 봤다고요?”


 묘한 얼굴이 점점, 찌푸려진다. 대만은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 내가 느낀 건, 그거였어.”

“도대체 뭐가, 아니,”


 태섭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그저, 대만을 쳐다보았다. 덧붙일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걸 알면서도 대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태섭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얼굴이 구겨지고,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고,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하던 손이 결국, 제 손가락 사이로 들어와 단단하게 잡을 때까지.


“형, 나는.”


 태섭의 입술이 달싹인다. 대만은 이 입술을 알고 있다. 송태섭의 미국행. 모두가 돌아간 공항에 유일하게 남았을 때, 힘 때문에 가방끈을 잡은 손이 점점 하얗게 변하던 순간 역시. 몇 번이고 혀로 입술을 축이던 송태섭이 결국 내뱉은 말은, ‘다녀올게요.’ 


“…어디로 가지 않아요.”

“…….”

“절대로. 형의 옆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대만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긴 숨을 쏟아낸 뒤, 고개를 젖혔다. 아주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태섭의 손이 손등을 간질였다. 옆에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 안정감이 주는 묘한 고양감이 대만이 눈을 뜨도록 만들었다. 하얀 천장이 보였다. 태섭이 보이지는 않아도, 옆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도록 만드는 건 송태섭일까 아니면, 나일까. 둘 다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이 대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

“…….”


 입술이 닿았다. 짧게 부딪혔다가 떨어진 사이로, 시선이 오갔다. 태섭의 눈이 잔뜩 흔들렸다. 살짝 벌린 입술 사이의 숨이 뜨거웠다. 대만은 그 숨에서, 저와 같은 감정을 태섭 역시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욕망. 두려움. 그리고, …….

 다시 입을 맞춘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키스만큼, 옆에 있는 걸 확실히 느끼게 하는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