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ME. zero

태섭대만






한때 네가 사랑했던 어떤 것들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

네가 그것들을 떠나보낸다 해도

그것들은 원을 그리며

너에게 돌아온다.

그것들은 너 자신의 일부가 된다.

앨런 긴즈버그 <어떤 것들>









첫사랑의 꼬리표는 송태섭을 따라다닌다




“첫사랑을 만나러 갑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시원하게 웃는 태섭을 보는 기자와 팬들이 동시에 얼어붙었다. 태섭의 첫사랑은 NBA 선수와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태섭이 NBA 선수로서 두곽을 나타내고, 같은 팀의 앨런이 득점왕이 될 수 있도록 만든 일등 공신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어 몸값을 올리기 시작한 6년 전부터. 당신을 이렇게 만든 원동력, 장본인, 환경 등등, 이런 것들을 묻는 인터뷰를 할 때면 태섭은 물어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이 순간을 기다려왔음을, 이 순간을 위해, 죽도록 훈련을 하고 이를 꽉 깨물고 모든 것을 견뎠음을 태섭은 숨기지 않았다. 내가 미국에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부 다 제 첫사랑 때문입니다.

 한 두 명씩 정신을 차린 기자들은 정말이냐고 물으며, 첫사랑은 이런 당신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태섭은 아니라고 말했다.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웃어서, 기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태섭에게, 쿨해도 너무 쿨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태섭은 어깨를 으쓱이며 선글라스를 내렸다.



“말했잖아요. 첫사랑이랑 헤어졌다고.”

“그러니까요. 그런 사람을 만나러 간다면서요. 그것도, 당신 생일이 코 앞일 때.”



 태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태섭을 보는 기자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한국에서는 파파라치 같은 행동이 금지되어 있어요. 멍청한 짓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당신이 출국을 한 적은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기대가 되죠. 당신에게 있어서 첫사랑이 어떤 의미인지 아니까.”



 태섭은 피식 웃었다. 첫사랑의 의미라. 그걸 나보다 더 잘 알 수 있을까. 태섭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기자를 바라보았다.



“한국에 도착하게 되면 미국에도 소식이 전해질 겁니다.”

“정말 좋은 일 있어요?”

“첫사랑을 만나는 것보다 좋은 일이 어디있어요.”



 …형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태섭은 뒷말을 꾹 삼켰다. 



“행운을 빌어주세요.”



 태섭은 다시 선글라스를 꼈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등 뒤로 질문이 쏟아졌다. 미국에는 언제 와요, 이번 시즌에 출전하지 않는 겁니까, 시즌 준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정말 첫사랑을 만나러 한국에 간다고요, 아직 당신을 지배하고 있는 그 첫사랑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 겁니까.

 마지막 질문에 태섭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옆에 있던 에이전시 매니저가 태섭에게 한국에서 있을 일정을 말하는 동안, 태섭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만 쳐다보았다. 간간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매니저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첫사랑의 의미. 그러니까, 정대만이라는, 존재의 의미.

 탑승을 하고, 승무원에게 웰컴 드링크를 받았다. 와인잔을 손으로 굴리며 화면에서 비행 일정을 보았다. 넓게 펼쳐져 있는 파란색 그림 위의 Pacific Ocean 글자를 보았다. 대만이 한 번도 건너지 않은 바다를, 태섭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편안한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승무원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태섭은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천천히 와인을 마시며 태평양을 보았다. 

 너 자꾸 이럴 거면 헤어져

 아주 오래되어 기억나지 않을 법한데도 아직까지  그날의 대만과 대만의 목소리가 선명했다. 주먹을 쥔 손,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도리어 표정이 없어지는 얼굴, 그럼에도 떨리고 있던 입술. 

 …네가, …자꾸 이러면 너…, 너 자꾸…!

 태섭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태섭은 내가 기억하는 것만큼, 대만도 기억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아직, 헤어지자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음을.





첫사랑의 꼬리표는 정대만을 괴롭게 한다



“시발 진짜.”



 보닛이 열려 있는 차를 보며 대만은 허리에 손을 올렸다. 자동차 보험 회사에 전화를 해서 차가 터졌으니 긴급 출동을 요청한다고 말하는 얼굴에는 짜증이 한가득이었다. 조이지 않은 넥타이를 더 풀었다. 소매 단추를 풀며 대만은 땅을 보며 짜증 섞인 한숨을 뱉었다.

 머피의 법칙이 이런 건가 싶었다. 답지 않게 늦잠을 자고, 어떤 옷을 입고 나왔는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빨리 준비를 해서 출근을 하려고 운전을 하는 와중에 보닛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가까스로 갓길에 차를 세워 아침 회의에 참석을 못 한다고 통보를 하자 잔소리를 있는 대로 얻어먹고, 짜증을 내면서 전화를 끊었더니 핸드폰은 쉴 새 없이 울리고, 선수 놈들 중 한 명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고, 녀석은 전화를 안 받고. 



“너네 어제 술 마셨냐?”

-아닙니다, 진짜.

“그런데 왜 연락이 안 돼. 어제 같이 들어간 거 아니야?”

-맞습니다.

“그런데 왜 연락이 안 되냐고 묻잖아.”

-저도 잘….

“1422번 차주님!”

“예!”



 긴급 출동 기사가 도착했다. 대만은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차 견인 준비 하겠습니다. 기사의 말에 대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 지나가는 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해가 뜨거웠다. 어느새 이마에 땀이 흘렸다. 손등으로 땀을 닦으며 열심히 차를 연결하고 있는 기사에게 걸어갔다.



“부탁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제가 지금 일이 급해서 출근을 해야 해서요. 동행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아, 네, 그럼 어느 영업소로 들어가는지 알려드릴까요?”

“예.”

“잠깐만요….”



 기사는 대만을 힐끔거리며 핸드폰을 검색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제일 가까운 영업소가…. 대만은 햇빛 때문에 미간을 푸린 채로 주변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기사의 힐끔거림 반경이 넓어졌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대만은 그런 기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몸을 살짝 뒤로 물렸다. 기사는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매만졌다. 하하, 꼭 국대팀 감독님 같아서 그만.  

 대만은 기사에게 사인을 해주고 영업소 전화번호를 받았다. 제가 책임지고 감독님 차 단디 고쳐 놓겠습니다! 대만은 저 멀리 사라지는 차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한쪽 어깨에만 걸쳐 놓은 백팩을 제대로 메고 가까운 지하철역을 검색했다. 다행히 지하철역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환승역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이게 오늘의 가장 좋은 일이라니. 대만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실소를 뱉었다. 

 출근 시간이 꽤 지나 있었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계단을 다 내려온 대만은 잠시 멈추었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서, 경기장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 건지 검색이 필요했다. 지도 어플을 켜서 지하철 노선도를 검색하는 동안, 협회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아, 진짜. 대만이 욕을 뱉으며 전화를 받았다.



-어딥니까?

“지하철역입니다. 이제 가려고요.”

-최대한 빨리 오셔야겠습니다.

“예, 지금 가고 있는 중이고,”

-경기장 말고 협회로요.

“예?”



 대만은 가방을 뒤져 이어폰을 꺼냈다. 잭을 연결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지하철 노선도 검색을 다시 했다. 협회 건물이 어느 역에 있었더라. 짜증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짜증을 억누르며 협회가 있는 역을 검색했다. 지금부터 33분 걸립니다. 직원에게 대답을 한 대만은 고개를 들었다. 지하철이 오는 정보를 보여주는 전광판을 보았다. 다다음에 지하철이 올 예정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확인을 하려고 고개를 돌린 순간,


 HAPPY BIRTHDAY, SONG TAE SUB

 

 대만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멍한 눈으로 전광판을 보았다. 가까이에 있으면 자세히 보이지도 않을 만큼 큰 전광판 안에 태섭의 이름이 보였다. 대만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한참 동안 그 앞에 있다가, 전광판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백팩의 끈을 두 손으로 잡았다. 대만의 얼굴은 여전히 멍했다. 사고는 내 차가 났는데, 내 마음에도 사고가 난 느낌이었다. 대만은 여러 번 눈을 깜빡였다. 못 본 척, 그냥 가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확인을 하고 싶어서 전광판 반대편에 서있는 제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저건, 진짜 송태섭이 아니라고. 그저, 송태섭의 사진일 뿐이라고. 전광판을 보기 위해 수많은 합리화를 하며 고개를 돌렸다. 못 볼 걸 보는 것도 아닌데, 고개를 돌렸는데도 쉽게 볼 수가 없었다. 감독님. 이어폰 안으로 목소리가 흘려 나왔다. 네. 대만은 기계처럼 대답하며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처음 봤던 태섭의 이름을 지나, 농구공을 쥐고 있는 손을 지나, 곧,


송태섭 선수 귀국했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태섭의 얼굴을 본 순간,


감독님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대만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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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원 포인트 가드 송태섭의 생일을 축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