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새끼.
정대만은 농구공을 튕기며 송태섭을 힐끗 쳐다보았다. 주장이라는 완장을 차고 난 뒤부터 귀여움의 ㄱ자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죽어라 연습을 시켜댔다. 원래 귀염성이 없기는 했지만 가끔 강백호와 같이 시시덕거리던 촐싹대는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채치수보다 더한 놈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후배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송태섭이 지시하는 연습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정대만은 고개를 저어댔다. 내가 중학생 때 주장이었을 때는 어땠더라. 내가 원톱이었으니까 받혀주는 정도로만 연습을 시켰던가. 공을 몇 번 튕기다 점프를 했다.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림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났다.
“왜 혼자서 폼 잡고 있어요. 이쪽으로 안 와요?”
“간다, 가.”
느긋하게 공을 튕기며 천천히 움직이는 정대만을 보는 송태섭의 눈썹이 짝짝이가 됐다. 눈썹으로 욕을 하는 것만 같았다. 정대만은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이 설마 꿈인가? 송태섭은 다시 박수를 치며 한 번씩만 더 하자고 했고, 그 소리에 부원들은 아 주자앙!!! 하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 와중에 정대만은 혼자 사색이 됐다.
진짜 나 혼자 꿈을 꾼 건가? 송태섭 저 자식, 일주일 전에 나한테 뭐라고 그랬더라. 그래, 분명히,
선배, 나 좀 좋아해줘요
1.
후배들이 하도 힘들어하길래 송태섭에게 호기롭게 어이 주장, 나랑 원온원 하자, 했다. 송태섭은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는 듯한 눈으로 쳐다봤다. 시합 끝난지도 얼마 안 됐고, 오늘 할 만큼 했다, 오늘 연습 할당량으로 내기하자. 후배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그들에게 정대만은 곧 신이 되었다.
정대만 선배님,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송태섭은 시끄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두 손을 허리에 얹은 뒤 대만을 삐딱하게 올려다봤다. 정대만은 그 눈에 지지 않았다. 이제 농구부에서 송태섭과 맞짱뜰 수 있는 인간은 강백호와 정대만, 둘 밖에는 없었다. 백호는 재활에 들어가 당분간 연습은 힘들 테니, 지금은 후배들의 총대가 될 사람은 저밖에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 선배 봐라. 왜 귀여운 짓을 하지. 지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라리는 정대만을 보며 송태섭이 피식 웃었다.
안 봐줍니다.
또 센 척 하네. 자신 없냐?
그럴리가. 그러면 선배도 내 조건 들어줘요.
뭔 조건? 오늘 연습 끝이 내기 조건인데.
그건 선배가 건 거고.
정대만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송태섭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누르기 위해 온갖 애를 써야만 했다.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다른 손으로 까딱했다. 뭐. 정대만이 턱짓을 했다. 얼굴 좀 내려보라고요. 송태섭이 다시 손짓을 했다. 정대만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송태섭이 가까워졌다. 정대만의 눈이 동그래졌다. 송태섭의 숨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이기면, 손 잡고 집에 같이 가요.
ㅁ, ㅁ, ㅁ, ㅁ ㅜ 뭐???!!
송태섭 이 미친 새끼야!!! 후련하다는 듯이 웃으며 뒤돌아서는 송태섭의 뒷모습을 보며 욕을 하는 정대만의 얼굴이 빨개졌다. 저렇게 소리를 질려대시니까 얼굴까지 빨개지시네. 다행히 눈치 없는 후배들은 목을 아끼시라며, 선배 몸은 선배만의 것이 아니라며 격려 아닌 격려를 해댔다. 송태섭은 마지막 말에서 화가 좀 났다. 늬들 것도 아니거든, 새끼들아.
2.
원온원이 다 끝나고, 숨이 차서 코트에 누워버렸다. 온 몸에 힘이 안 들어가. 정대만은 중얼거리며 천장을 쳐다봤다. 거친 숨이 진정되지 않는다.
죽자고 덤벼 선배를 이겨 먹은 송태섭 이 건방진 새끼, 진짜 죽여버릴까.
“이제 집에 가죠? 아직 진정이 안 됐어요?”
코트로 들어오는 송태섭의 발자국 소리가 났다. 정대만은 재빨리 눈을 감았다.
“갑자기 왜 자는 척을 해.”
“……”
“씻고 갈 거죠? 샤워실 앞에서 기다릴게요.”
시발. 정대만은 속으로 욕을 했다.
“뭣하러 따라와, 여기서 기다려.”
“도망갈까봐.”
“내가 뭐하러.”
“나랑 손잡기 싫어서 도망갈 수도 있잖아요.”
“야, 그,”
정대만이 벌떡 일어났다. 어느새 가까이 와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추고 있는 송태섭의 얼굴과 마주쳤다. 정대만은 잠깐 숨을 멈췄다가 다시 호흡을 내뱉었다. 송태섭이 웃고 있었다. 것도 빙글빙글. 재미있다는 듯이. 이런 얼굴을 본 적이 있던가. 암만 생각해도 모르겠는데. 정대만의 머릿속에 어느새 다른 것이 가득 찼다. 이런 정대만은 하나도 모른 채 마냥 저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정대만 때문에 송태섭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그 얼굴 때문에 정대만이 또 놀랐다. 아. 이제 귀여움의 ㄱ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정대만은 헛기침을 했다. 송태섭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을 뻗었다. 아 얼른 일어나요, 배고파. 정대만은 그 손을 냅다 후려치며 가뿐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태섭이 입술을 삐죽였다.
“지금은 안 잡아도 되잖아.”
“이제보니 엄청 계산적인 사람이었네요.”
“그걸 이제 알았냐.”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하고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정대만의 뒷모습을 보다가, 송태섭은 고개를 푹 숙였다. 살랑거리는 머리카락을 제 손으로 헤집으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미친. 왜 땀냄새도 좋은 거야. 까매진 제 신발코를 쳐다보다 송태섭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정대만의 숨은 진정이 됐는데 제 숨은 다시 가빠졌다. 기분이 약간, 이상해졌다. 나는 선배를 보면 심장이 뛰는데 선배는 아니야? 어느새 기지개를 켜고 있는 정대만은 작아졌고 그것보다 더 멀어진 것처럼 보였다.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자 송태섭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정대만과 둘이 있을 때면 다른 사람들이 아는 내가 다른 사람이 되버리는 것 같다. 송태섭은 정대만이 사라진 문을 가만히 쳐다봤다.
어느새 지고 있는 노을, 그리고 사라진 햇빛 같은 것을 보았다. 조용한 코트. 하지만 뛰고 있는 심장. 땀이 살짝 묻어있는 손. 바싹 마르는 입술.
하.
송태섭은 결국 탄식했다.
많이 좋아하는 사람은 늘 약자인 법이었다.
3.
얘 갑자기 왜 이래?
입술을 꾹 다물고 걷는 송태섭을 힐끗 쳐다보며 정대만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 때문에 이렇게 저기압이 됐어? 내가 너무 늦게 씻고 나왔나? 배가 많이 고픈가? 송태섭이 배고프면 예민해지는 사람이었던가? 정대만은 별에 별 생각을 다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신경쓰이는 건,
왜 손을 안 잡아?
“야.”
“네.”
“너 그,”
송태섭이 정대만을 쳐다봤다. 정대만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이 눈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어디였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정대만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 송태섭이 걸음을 멈췄다.
“선배.”
“어.”
“배고파.”
“어?”
“밥 좀 사줘요.”
“어??”
그러고는 근처 라면집에 쏙 들어가는 송태섭 때문에 정대만이 입을 떡 벌렸다. 뭐지, 이 새끼?
4.
“밥을 사준다는 건 내기에 없었는데?”
“선배 노릇이라고 생각 하던가.”
라면을 다 먹고 어느새 밥까지 먹고 있는 송태섭이 우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정대만은 기가 차서 고개를 저었다. 송태섭은 정대만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라면 접시로 시선을 돌렸다.
“이거 다 먹으면 손 잡아줘야돼요.”
송태섭의 말이 기가 막혔다.
“네가 알아서 잡지 왜 나더러 잡으래?”
“내가 먼저 잡았다가 선배 호흡 또 가빠질 까봐.”
“내, 내가 왜! 내가 왜!!”
“아님 말고.”
그 말을 끝으로 송태섭은 그릇을 들고 국물을 끝까지 마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송태섭에게 말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정대만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은 라면을 마저 먹었다. 그 흔한 면치기도 하지 않고 먹는 정대만이 꽤 귀여워서 턱을 괴고 쳐다보니 시선을 느낀 정대만이 기겁을 한다. 송태섭은 어깨를 으쓱였다.
“예전부터 생각했는데요.”
“뭘.”
“선배는 참 놀릴 맛이 있는 사람이야.”
“새끼야, 네가 말하는대로 내가 네 선배다, 선배.”
“응, 대만아.”
“하?”
“사장님, 계산이요.”
나이스 디펜스죠? 송태섭이 정대만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웃었다. 송태섭의 웃는 얼굴을 또 본 순간, 정대만은 이제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됐다. 밥을 사달라더니 지가 돈을 내고 있네. 후배한테 얻어먹어도 되나.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송태섭의 옆모습을 쳐다보던 정대만의 얼굴이 별안간 빨개졌다.
응, 대만아.
미친 거 아니야? 목소리가 왜 그래? 아니, 왜 그러면서 웃어?
설마 내가 쟤한테 좋아해달라고 고백했나? 우승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나?
5.
정대만은 의외로 상상력이 풍부했다.
6.
정대만은 라면가게에서 나왔을 때부터 얼빠진 사람마냥 굴었다. 걸어가는 폼이 하도 희한해서 로봇이 걸어가는 줄 알겠다는 장난에도 정대만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송태섭은 정대만이 왜 그러는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그저, 언제나 잡고 싶었던 손을 이제는 잡아보려했다. 다시 심장이 뛰었다. 길게 숨을 내쉬고 손을 뻗어 정대만의 손가락을 살짝 잡았다. 그제야 정대만이 고개를 돌렸다. 송태섭은 정대만의 눈을 쳐다보며 손가락에서 손바닥으로, 손바닥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손깍지를 꼈다. 정대만의 손은 따뜻했다. 그에 반해 송태섭의 손은 약간 서늘했다. 정대만은 저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송태섭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느새 걸음도 멈춘 채였다. 송태섭은 짧게 숨을 뱉었다. 정대만은 송태섭의 눈을 쳐다보며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마주잡았다. 송태섭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정대만의 눈이 깜빡였다. 이제야 송태섭의 손 온도가 적당해졌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을 느낀 순간, 정대만이 고개를 돌렸다. 송태섭은 제 손 안에 있는 정대만의 손을 쳐다보며 빙글빙글 웃었다. 왠지, 심장이 간지러웠다. 그리고 정대만의 앞에서 먼저 걸었다가 곧, 따라오던 정대만의 옆에 섰다. 어느새 해가 다 지고,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 어둠이라면, 살짝 상기된 얼굴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정대만은 그제야 편안해졌다. 아직 여름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직 여름이라 다행이라고. 정대만은 손가락으로 제 손등을 간지럽히는 송태섭의 체온을 느끼며 슬쩍 웃었다.
7.
“선배 진짜 좋은 집에서 사는 구나?”
결국 송태섭이 집까지 데려다줬다. 정대만은 좋긴 뭐가 좋냐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잡은 손은 아직 놓지 않았다. 송태섭이 그 손을 쳐다봤다. 정대만이 괜히 툴툴거리며 손을 빼려고 했다. 송태섭은 반사적으로 정대만의 손을 다시 꽉 잡았다.
“이제 놔라. 엉?”
“선배.”
“나 이제 네가 부르면 무서워. 왜. 왜. 또 뭐. 왜.”
“내가 한 말, 기억하고 있죠.”
그 꿈 같았던 말? 이라고 물으려다 정대만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나 원래 성격이 좀 급한데, 알죠.”
“……”
“선배 속도에 맞출게요. 손 잡아 보니까 알겠어.”
왜 갑자기 여유로워진건데? 빙글빙글 웃고 있는 송태섭에게 묻고 싶었다.
“떨렸죠?”
“아니?”
“정말?”
“정말.”
“나는, 엄청 떨렸어요.”
시선이 마주쳤다. 잡은 손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다시 말할게요.”
“야, 송태,”
“좋아해요.”
“……”
“그러니까 나 좀, 좋아해줘요. 내가 잘할테니까. 응?”
정대만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송태섭이 웃었다. 저 얼굴이면 오늘은 충분했다. 그래도,
“욕심 하나만 더 내도 돼요?”
“뭐.”
송태섭이 깍지를 낀 손을 풀어 손바닥을 잡았다. 송태섭은 여전히 정대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대만은 송태섭이 무엇을 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저와 시선을 마주치는 송태섭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정대만의 손을 들어올린 송태섭이 그대로 정대만의 손등에 입을 살짝 맞췄다. 여전히 정대만을 보고 있는 채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짐작도 못하고 있던 정대만이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고 파드득 떨며 주먹을 꽉 쥐었다. 송태섭이 하하 웃으며 내일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야 송태섭 이 새끼야!!!”
“내일 봐, 형!”
정대만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제자리에 멈췄다.
혀엉???? 혀어어어어엉?????????!
왜 얼굴이 빨개지는지는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