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나 좀 좋아해줘요 02

태섭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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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만은 송태섭에게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초등학생이냐고 물으며 잠깐 했던 원온원을 했던 첫만남부터, 빛처럼 환하게 빛나던 사람이 어느 순간 깡패짓을 하는 것을 목도하고 주먹으로 치고박고 싸웠을 때도. ‘나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야’ 라는 개소리를 하며 모두에게 고개를 숙였을 때도. 주먹다짐 후 곁을 허락하며 강백호와 함께 바보 트리오라고 불렸을 때도.


 그리고 지금, 대놓고 저를 피하는 것도. 


 정대만은 한 번도 송태섭의 계획과 예상에 맞는 사람이 아니었다. 송태섭은 긴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머리를 거칠게 매만졌다. 포인트 가드 라는 포지션이 아예 디폴트로 모든 영역에 작용하는 느낌이었다. 너무 빨리 눈치를 채는 게 이럴 때는 좀, 열받았다. 정대만은 애꿎은 포지션 탓을 하며 송태섭을 열받게 하는 대단한 인간이었다.


 괜한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좋아해 달라고 했고 한 번 더 말한 것 뿐이니까. 변한 건 정대만이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장난하는 건줄 알았다. 말을 걸면 단답형으로 대답을 하는 게 처음도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보였다. 묘하게 대화를 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나니 황당했다. 이 선배 지금 나랑 뭐하자는 거지? 물론 아무렇지도 않게 왜 그러냐고 물을 수 있었다. 송태섭은 답답한 것과 구질구질한 것이 싫었다. 그런데 정대만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나를 너무도 쉽게 상처입혔다. 


 설마 처음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를 장난으로 생각했던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또 열이 났다. 아니, 정대만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니 진심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또 생각해보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아, 천하의 송태섭이 삽질을 하고 있네.

 송태섭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잠깐 휴식.”

“예? 아직 할당량이 남았습니다만”

“어, 휴식 후에 하자.”

“네!”



 손으로 대충 땀을 닦으며 돌아섰다. 길게 숨을 쉬어도 진정되지 않는 쿵쾅거림. 송태섭은 이 느낌이 진저리가 나면서도 알아주기를 바랐다. 농구공을 들고 얼빠진 얼굴로 저를 쳐다보고 있는 정대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정대만이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가와주기를 바랐다. 다가와서, 내 어깨에 팔을 걸치고, 야 송태섭 왜 이래? 라고 물어봐주기를 바랐다. 이렇게 생각하니 또 열이 나서, 송태섭은 다시 뒤로 돌아 정대만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 좀 봐요.”

“어? 이건 좀 놓고, 야, 야야야”



 정대만의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송태섭은 소름이 돋았다. 문득 송태섭은 무수한 밤을 떠올렸다. 제 온도보다 약간 높은 이 손을 잡기 위해 송태섭은 몇 백 번씩 머릿속에서 상황극을 했다. 밤잠을 설쳐가며 히죽거리며 웃었다. 정대만과 연애를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흥분이 됐다. 그것을 송태섭은 현실로 만들어야 했다. 이 손이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아주기를. 농구만 하던 손이 내 손을 잡고 사랑을 말해주기를. 그러려면 필요한 것이 있었다. 


 정대만의 한 마디. 

 그 한 마디를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는 것을 송태섭은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선배, 나 좀 좋아해줘요

02











8.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저를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는 송태섭을 쳐다보며 정대만은 여유를 가장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쳐다만 보고 말을 하지 않길래 할 말 없으면 들어간다고 했다가 또 손목을 잡혔다. 정대만은 송태섭이 왜 저런 눈을 하고 있는지 매우 잘 알았다. 그걸 먼저 말 할 자신이 없어서 그렇지. 정대만은 눈을 슬쩍 감으며 손가락으로 미간을 매만졌다. 



“내 얼굴 닳겠다, 주장아.”

“그동안 얼굴을 못 봐서 까먹어서요.”



 지금 나 까는 거지? 정대만은 송태섭을 살짝 노려봤다. 송태섭이 코웃음을 치며 팔짱을 꼈다.



“죽어도 먼저 말 안 하네요.”

“뭘.”

“선배가 더 잘 알 텐데요.”

“그니까 뭘.”

“계속 모르는 척 할 거에요?”

“네가 뭘 말하는지 모르겠어.”

“부끄러웠어요?”

“뭐, 뭐가.”

“내가 손등에 입맞춘,”



 정대만이 부랴부랴 송태섭의 입을 막았다. 송태섭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대만의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정대만의 얼굴이 보기좋게 구겨졌다. 송태섭은 그 얼굴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어쩐지 마음에 드는 얼굴이었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왜 내 입을 막아요? 진짜 부끄러웠어요?”

“그만해.”

“그러니까 왜 피하는데?”

“…피한 적 없거든.”

“아. 없으시다. 내가 착각을 했다.”

“그래.”

“선배 콕 찝어서 현수 연습 상대 해주라니까 대답 쌩까. 집에 같이 가자니까 도망가. 교실 찾아가서 체육복 빌려달라니까 준호선배한테 말하라고 턱짓해. 밥 같이 먹자고 찾아오니까 영걸선배한테 가버려,”

“그만.”

“이게 피한 게 아니다?”



 독한 새끼. 그걸 다 기억하고 있어? 정대만은 점점 무표정으로 변하는 송태섭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송태섭의 말이 맞았다. 정대만은 송태섭을 피하고 있었다. 안 그럴 것 같으면서 섬세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날, 송태섭과 처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 온 날, 정대만은 밤을 샜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는데 문득, 송태섭에게 잡힌 손이 뜨거운 것을 느꼈다. 이게 뭔가 했다. 앞, 뒤로 제 손을 쳐다보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세면대에 찬물을 받아 손을 넣었다. 손등을 보니 송태섭의 입술이 닿았던 게 생각이 나서 뒤집었더니 송태섭의 손바닥이 닿은 게 생각나서 뒤집었다. 정대만은 죽을 맛이었다. 송태섭의 입술, 손바닥이 계속 생각나서 결국에는 소리를 질러 부모님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죽을 죄를 지었다며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가는 와중에 내일 봐, 형! 목소리가 생각나서 베개로 두 귀를 막아야만 했다.


 이쯤 되면, 피할 수도 있지 않나?

 정대만은 조금 억울했다.



“너 진짜 나 좋아해?”

“내 말을 뭘로 알아 들었어요?”

“연애 감정이 맞냐고, 새끼야.”

“손등에 입 맞춘 것보다 더한 걸 할 수도 있어요.”

“야,”

“이런 걸 하고 싶은 건 선배 밖에 없어.”

“…….”

“이게 연애 감정이 아니면 뭔데. 다른 감정이 있으면 알려주던가.”



 정대만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송태섭은 그 한숨에 움찔했다가 바지 주머니 안에 있는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쫄지마. 쫄지마, 송태섭. 송태섭은 여유로운 척 정대만을 올려다봤다. 무슨 말을 할 듯 입술을 달싹이는 정대만을 보며 송태섭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피하지만 마요.”

“…….”

“선배가 아는 센 척 하는 나. 그거, 선배 앞에서도 그럴 수 있어요.”

“…….”

“나도 상처 받아.”

“…….”

“들어가요.”



 




9.


 송태섭의 말이 무색하게 정대만은 송태섭을 피했다. 연습이 끝나고 저를 붙잡으려는 송태섭에게 수고했다 주장, 하고 인사를 건넨 뒤 부리나케 코트를 빠져나갔다. 평소 같았으면 샤워를 하고 깔끔한 상태로 집에 갔겠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도 상처 받아.


 송태섭의 이 한 마디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내가 얘를 여전히, 상처입힐 수 있는 거구나. 상처는 기억하기도 싫은 과거에 준 걸로 끝난 줄 알았는데. 정대만은 땀에 젖어 축축한 머리를 매만졌다. 가방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연습이 힘들었다고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정대만은 잘 알았다.


 송태섭이, 나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농구 말고, 코트 위에서 말고,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이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일이었다.






10.


 연애라.


 정대만은 정처없이 걸으며 생각했다. 연애라는 것을 해본 적은 있었다. 오래 못 가서 그렇지. 정대만에게 연애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사랑이니 뭐니, 그런 건 좀 어려웠다. 농구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농구만으로도 모든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다른 것으로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엇나가던 시절에는 그래도 꽤 오래 만났던 연상이 있었다. 사랑이라기보다, 그나마 마음이 좀 편했다. 그랬던 것 같다. 웃을 일이 아예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그 사람 덕분에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송태섭.


 언제부터 좋아한 거야? 좋아할 만한 구석이… 있나? 언제, 어떤 계기로? 정대만은 우뚝 멈춰 서서 고개를 저었다. 송태섭은 동료다. 한 살 어린 후배. 동생. … 이라기에는 뭔가 좀… 살갑게 친했던가? 정대만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이건 송태섭에게 물어야하나. 근데 저걸 어떻게 물어봐. 내 입으로 어떻게 나를 좋아하냐고 물어.


 또 다른 곳으로 생각이 튄 것을 깨달았을 때는 어느새 집 근처였다. 어느새 마른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어느새 습관이 된 한숨을 뱉었을 때, 눈 앞에 송태섭이 보였다.



“왜 이제 와요? 나보다 먼저 간 사람이.”

“너? 언제부터 와있었어?”

“몰라요.”



 송태섭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털었다. 정대만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서 송태섭을 쳐다보았다. 



“연락이라도 하지.”

“선배 집 전화번호를 모르는데요.”

“아.”



 바보같은 소리를 한다는 듯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던 송태섭이 한 걸음 가까이 와 섰다.



“왜 이제 오냐니까? 뭐하다가 왔어요? 안 씻고 그냥 갔잖아.”

“연락이 안 되면 뭐, 계속 기다리려고 했냐?”

“네.”

“왜?”

“보고 싶으니까?”

“…부끄러운 말을 잘도 하네.”

“사실이니까. 그나저나 뭐하다가 왔냐니까. 왜 자꾸 내 말을 씹어요.”




 투덜거리는 입술. 어느새 짝짝이가 된 눈썹. 이런 얼굴은, 뭔가 마음에 안 들때의 얼굴. 정대만은 가만히 송태섭을 쳐다보았다. 왜 이렇게 느끼하게봐요? 송태섭이 얼굴을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입술을 달싹이던 정대만이 주먹을 꽉 쥐었다.



“너 언제부터 나 좋아했어?”

“…….”

“…….”

“그게 왜 궁금해요. 중요해요?”

“어.”



 헙. 반사적으로 입을 꾹 다문 정대만의 눈이 토끼눈이 됐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진 송태섭이 그 얼굴에 살짝 긴장이 풀렸다. 송태섭은 혀로 입술을 축이다 손으로 뒤통수를 매만졌다. 한참을 그러고 있더니 손을 내민다. 



“손 잡아주면 말해줄게요.”

“야, 너는 뭐, 손 안 잡아주면 죽는 귀신이 붙었냐?”

“그런 것 같아요.”

“아오 진짜.”



 그런다고 또 잡아주는 정대만이 어이가 없고 귀여워서 송태섭은 웃었다.



“중요하다니까 대답하고 싶은데, 몰라요 나도.”

“어?”

“어느 순간 깨달았으니까.”

“그래서 그냥 질렀다?”

“…엄청 고민하고 지른 거거든요.”



 내가 뭐 돌격대장이라고 이런 때에도 돌격하는 줄 알아요? 송태섭이 툴툴거렸다. 어느새 빨개진 얼굴이었다. 정대만은 하, 헛웃음을 뱉었다. 맥없이 탁, 하고 터지는 웃음이 어느새 송태섭에게도 전해진 건지 같이 넋을 잃은 것처럼 웃었다. 손등을 매만지는 손가락. 정대만은 그 손을 쳐다보았다. 농구공을 만지는 손이라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까슬한 느낌이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같은 농구를 해서 그런 걸까. 송태섭도 그렇게 생각할까.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송태섭이 아- 하고 개운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희망이 있네.”

“뭐가.”

“언제부터 좋아하냐고 물어보는 거. 마음을 열고 있다는 거 아니에요?”

“아니거든!”

“응, 그렇구나.”

“아니라고 했다…”

“알았어요.”



 송태섭이 웃었다. 특유의 빙글빙글 웃음. 정대만은 그 얼굴을 바보처럼 멍하게 쳐다보았다. 


 역시, 상처는 주기 싫었다. 그게 무엇이든 녀석에게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하지만, 



“네가 분명히 그랬다. 내 속도에 맞춘다고.”

“그랬다고, 네?”



 송태섭이 얼빠진 얼굴을 했다. 그 얼굴이 꽤 볼만해서 정대만은 웃었다. 이런 얼굴은 처음봐. 송태섭은 그 말에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점점 빨개지는 얼굴을 들키기 싫어서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건들거렸다.



“…뭐야. 진짜야? 진짜 희망 있어요?”

“…내지른 이유가 뭐야?”

“미칠 것 같은데 어떡해요?”

“뭘 어떡해, 집에나 들어가.”

“원온원 할까요, 형?”

“나 힘들다고.”

“한 번만 하자. 어? 다 하고 밥도 같이 먹어요.”

“힘들다고, 야, 진짜, 야!”



  이 새끼 이거, 선배를 막 써먹네, 야 나 진짜 힘들다고! 알았어요 내가 져줄게. 대충 해줄게, 나 이겨요. 뭐 이 새끼야? 대충 하지마. 알겠어? 맞잡은 손을 풀려는 걸 송태섭이 더 꽉 잡았다. 놔라. 싫어. 놔라고. 싫다고요. 이게 진짜. 송태섭의 힘에 끌려가면서 웃고 있다는 걸, 정대만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