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남자 관찰기 prologue

태섭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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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송태섭(28세). 선로커즈 소속. 포인트 가드, 6개월 전, NBA 은퇴 후 선로커즈로 이적-


“우승 소감 한 마디 하신다면요?”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멋진 경기였어요.”

“정대만 선수를 도와서 팀의 최다 득점을 어시스트 했고 결국, 승리로 견인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원래 잘 하는 거고, 정대만 선배는 제가 잘 아니까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에 아무래도, 어어, 정대만 선수 잠깐만요!”



“안녕하세요, 기자님.”

-정대만(29세). 선로커즈 소속. 슈팅 가드, 주장-


“여기저기 인터뷰 하시느라 바쁘시죠?”

“기자님 오신 줄 알았으면 먼저 했을 텐데 아쉽네요.”

“어유, 늘 좋은 말씀만 해주시니 제가 참. 아, 저희 협회 방송에도 우승 소감 한 말씀 해주세요!”

“우선, 멋진 경기를 펼칠 수 있었던 알바르크 팀에게 수고했다는 말 전하고 싶고요. 수고한 우리 팀, 감독님, 응원해주신 팬 모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우승했습니다.”

“오늘도 최다 득점을 하셨는데요. 팀의 포인트 가드인 송태섭 선수와의 호흡이 좋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네, 뭐. 호흡은 옛날부터 좋았으니까요. 오랜만인데도 좋을 줄은 몰랐지만요.”



“곧 크리스마스 인데요!”


“네.”

“와, 벌써요.”



“그거 아세요? 이번에 KBL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팬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

“그래요?”



“정대만 선수와 송태섭 선수가 1위를 한 부분이 있습니다.”


“…….”

“뭔데요?”



“크리스마스 날 데이트하고 싶은 남자 1위에 정대만 선수가 뽑혔구요. 송태섭 선수는… 오. 크리스마스 날 하룻밤 같이 있고 싶은 남자 1위에 뽑혔어요. 축하드립니다!”



“와우…”

“…두 개가 다른 거예요?”




“완전히 다르죠.”

“저게 어떻게, 뭐가 달라? 나한테는 다 똑같은 걸로 들리는 구만.”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으려던 태섭이 고개를 저었다. 땀에 젖은 머리를 대충 털고 있던 대만은 뭘 모른다는 얼굴로 쳐다보는 태섭을 노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뭘 보냐는 눈으로 쳐다보는데. 저 면상에는 정말 뭘 모른다는 한심함이 보였다. 그건, 태섭의 주변에서 옷을 갈아 입고 있던 동료들의 얼굴에도 보였다. 대만은 하던 걸 멈추고 저만 쳐다보고 있는 얼굴들을 보며 허리에 두 손을 올렸다.



“데이트를 하는 거나, 하룻밤 같이 있고 싶어 지는 거나 똑같은 거 아니냐?”

“정대만…. 너 두달 전까지 연애하던 놈 맞냐?”

“아서라. 저 새끼한테는 쉬워서 그럴 듯.”

“아 됐어. 뭘 그런 걸 이야기 해.”



 대만은 저도 모르게 태섭의 눈치를 보았다. 태섭은 어느새 후드티를 입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있었다. 떠드는 이야기는 관심 없다는 듯이 구는 태섭을 힐끔 보다가, 수건을 목에 걸고 락커문을 닫았다.



“근데 송태섭이 1위를 한 이유가 더 이상해.”

“뭐가. 다 맞던데.”



 대만의 오랜 팀메이트 세민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허. 대만은 어이 없는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뭐가. 송태섭이 다정할 것 같다는 거?”

“다정하잖아.”

“리드…를 잘 할 것 같다는 거?”

“잘 하잖아.”

“원하는대로 다 해줄 것 같다는 거?”

“해주잖아.”

“……섹시하다는 거?”

“하잖아.”

“누가? 송태섭이? 저, 송태섭이? 어디에서? 어떻게? 뭘?”

“선배….”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태섭이 말린 머리를 손으로 털며 몸을 돌렸다. 듣자듣자 하니까 아주 그냥, 가관이다. 저를 부르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쳐다보는 게, 여태 동료들이 한 말을 죄다 믿을 수 없어 하는 것 같다. 대체 언제적 나를 생각하고 이러는 건지. 팔짱을 끼고, 벽에 비스듬하게 기대서서 손에 미리 덜어 놓은 왁스로 머리를 만지는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대만을 쳐다보며 태섭은 속으로 한숨을 뱉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설렐 것 같다는 선배 이유는 안 이상해요?”

“그게 뭐가 이상해. 맞는 말이지.”

“나는 한 번도 설레본 적이 없는데.”

“네, 네가 설렐 이유가 뭐가 있냐!”

“있을 수 있죠.”

“하?”

“그리고 선배.”



 대만은 거울을 보지 않고도 대충 형태를 잡은 태섭의 머리를 쳐다보다, 물티슈로 꼼꼼히 닦는 손을 쳐다보았다. 천천히, 느리게 닦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던 반지를 손에 하나씩 꼈다. 대만은 이런 태섭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몇 년이지. 태섭이 미국에 간지가… 7년이 넘었나. 그 동안 거의 안 보다가 6개월 전, 같은 팀으로 이적을 하면서 나름 자주 봤다고는 하지만 얘가 원래 이렇게 덜 조급하게 굴고, 여유가 있었나. 후드티가 커서 그런지, 유난히 작아보이는 얼굴도. 미국에서 태닝을 해서 조금 검게 된 피부도 원래 이렇게, 반질반질 했던가. 그리고. 



“하룻밤에는 많은 의미가 있어요.”



 이렇게 느끼한 말을… 잘, 했던가.



“…너 대체 미국에서 뭘 배워온 거냐?”

“이것저것. 좋은 거?”

“그 좋은 거 너만 알아라.”

“아 왜. 나는 알고 싶어.”

“그래. 그럼 정대만 넌 빠져.”

“너네 미쳤냐? 미국물 먹고 싶어서 돌았냐?”

“어. 미국물 먹고 배워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혼자 안 있을 거다.”



 대만은 기가 찼다. 어디 가면 나 좀 데리고 가라며 태섭에게 붙는 동료들이 미친놈들처럼 보였다. 원래도 미쳤는데, 더 미쳤어. 도대체 크리스마스가 뭐라고. 아니, 연애가 뭐라고. 연애 그거, 아무것도 아니던데. 연애를 쉬지 않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잔잔하게 웃고 있는 태섭의 얼굴이 어이가 없었다. 이거 무슨, 새로운 카사노바의 등장 같네. 너네들이 쟤 연애의 흑역사를 아냐? 그때 얼마나 찌질했는지 알아? 지금은 뭐 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대만은 신경질적으로 락커룸 문을 열었다. 이야기를 하느라 씻을 틈이 없었다. 세면도구와 옷을 챙겨들고 몸에 돌렸을 때, 언제 왔는지 앞에 있는 태섭 때문에 깜짝 놀랐다. 짐짓 아닌 척을 하며 뭐, 왜, 하고 쏘아붙이자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태섭이 빙긋 웃었다. 빙-긋. 대만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이 새끼. 왜 이렇게 웃어?



“같이 저녁 먹고 가요.”

“내가 왜.”

“우승 했으니까.”

“그래, 같이 가자. 주장인 네가 빠지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아… 다 같이 가는 거야? 대만은 헛기침을 했다. 이렇게 머쓱할 수가 없었다.



“어디갈 건데.”

“세민 선배가 잘 아는 고깃집이 있대요.”

“거기 어딘지 알아. 먼저 가 있어라. 씻고 갈게.”

“꼭 와야 돼요.”

“갈 거거든?”

“거기서 알려줄게요.”

“뭘.”

“크리스마스에 혼자 안 있는 법?”

“아씨. 그런 거 안 궁금하다고!”



 태섭이 픽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왁자지껄 떠들던 녀석들 사이에 끼여 탈의실에서 나갔다. 대만은 혼자 멍하니 그들이 빠져나간 문을 쳐다보았다. 저도 모르게 태섭이 두드린 어깨를 손으로 매만졌다. 시끄러운 녀석들이 사라지자마자 조용한 탈의실이 이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대만은 어깨를 매만지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들이 지껄인 말들이 상투스처럼 메아리쳐 들리기 시작했다. 다정하다? 개풀. 리드를 잘 할 것 같다? 이건… 인정. 농구도 뭐, 리드잖아? 원하는대로 다 해줄 것 같다? 뭔 미친 소리야 이게. 송태섭은 한 번도 내가 원하는대로 해준 적이 없는데. ……섹시…하다?



“…….”



 대만은 고개를 저으며 샤워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깨를 매만진 손 끝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어우, 진짜. 괜히 어깨를 털어냈다. 혼자 구시렁거리다 샤워실 문고리를 잡았을 때, 다른 소리가 끼어 들어와 대만의 생각과 정신을 교란시켰다.

 송태섭 선수 너무 섹시해요- 가, 압도적인 이유로 뽑혔네요.

 미쳤나, 진짜. 고개를 젓고, 또 저었다. 하도 저어대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도대체 뭐가. 도대체 뭐가 섹시해, 짱돌같은 놈이. 도대체 어디가, 뭐가 섹시해. 대만은 긴 숨을 쉬며 고개를 젖혔다. 하얀 천장을 보고 있자니, 마음의 안정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후. 짧은 숨을 뱉으며 샤워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는 내내 어쩐지 전투적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섭이 그 질문에 1위를 했다는 걸 믿을 수 없는 것, 나는 이해가 안 가는 이유들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하다못해 인정을 하고 있다는 것은 대만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만들었다. 그래, 뭐. 백 번 양보해서 여자들은 느낄 수 있다 쳐. 그런데 남자들은. 우리 팀 녀석들은 왜 그걸 아는데? 대만은 귀국해서 태섭을 만났을 때도 저런 것들을 하나도 느낄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 좀 분했다. 나한테만 다르게 하나? 오랜 고등학교 선배한테?



“아오, 짜증나. 송태섭 아오, 진짜.”



 빙-긋 웃던 태섭의 얼굴이 떠오르자마자 샤워볼을 바닥에 던졌다. 씩씩거리다 바디워시를 씻어내고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머리를 감고 있자니, 머릿속에서 무성하던 물음표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대만은 눈을 질끈 감고 물로 샴푸 거품을 씻어냈다. 천천히 눈을 떠 쪼르륵—— 배수구로 흘려가는 거품과 물을 쳐다보았다. 잔여물들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대만의 머릿속에 느낌표가 생겼다.

 크리스마스에 혼자 안 있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송태섭을 관찰하자! 얼마나 잘났는지, 관찰이나 해 보자!



“…….”



 크리스마스에 데이트 하고 싶은 남자 1위로 뽑혔는데도 하나도 안 기쁜 데에는 송태섭 탓이 크니까.



“…….”



 …이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



 몰라, 나도………… 해, 그냥………………








크리스마스의 남자 관찰기


baby, just be mine

just say you’ll be my christmas valentine

I wanna make everyday a holiday with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