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수식어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국내 최초의 NBA 선수. 언론과 전문가들은 태섭의 성공에 이러한 뻔한 수식어를 걸고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았다. 20살이 되어 시작한 미국 유학부터 시작하여 태섭이 가진 신체적 조건, 장신의 외국 선수를 상대할 때 나오는 퍼포먼스, 배짱, 뻔뻔함과 더불어 무서워 할 줄 모르는 기량 같은 것들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화제성은 짧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농구는 국내에서 인기가 있는 스포츠가 아니니 사람들의 관심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만한 판단이었다. 그들이 잘못 판단한 것은 미국에서는 인기 있는 종목이며 NBA 선수는 특수하게, 셀럽들 못지 않은 인기를 얻지만, 송태섭은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것. 그들에게 있어 송태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송태섭이 제 아무리 날렵하고 대담해도 대다수의 NBA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조건과는 너무나 다르므로, 실패를 거듭하고 결국, 벤치로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다.
최초의 분석이라는 것이 태섭의 실패 보고서와 다름 없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되었을 때, 태섭은 이미 NBA에서 가장 잘 나가는 선수가 되어 있었다. 태섭의 뒤에는 수많은 팬이 있었다. 그들은 태섭을 응원했고, 다정한 인사를 건넸으며, 선물과 편지를 건냈다. 그런 만큼 태섭 역시 그들을 응원했고, 다정한 인사를 건넸으며, 선물과 편지를 감사하게 받았다. 태섭이 특별한 걸 했냐면, 그런 건 아니었다. 태섭은 태섭이 하고 싶은 것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하기 싫은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태섭은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것 역시 호의가 있어야 가능하며, 선물과 편지를 준비한다는 것 역시, 어떤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배운 건 죄다 그런 것이었다. 외국인으로서의 삶이 태섭을 조금 더 사려깊고, 아주 조금, 온순하게 만들었다. 팬들은 이걸 알아보는 사람이었고, 태섭으로서는 감사할 일이었다.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은 여전하다는 걸 알게 될 때마다 더더욱 그랬다.
No.7 is more intense than No.5.
이 수식어가 태섭에게 붙었을 때 31살의 정대만은, No.5 향수를 즐겨 썼던 연인과 헤어졌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No.5를 자주 썼다. 향수 냄새가 강해서 미간을 구겼다는 걸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알지 못했다. 저에게 안겨 들며 헤어지자는 말 같은 건 하지 말라고 말했을 때에도 향수 냄새가 났다. 그 향이 시간이 지나 제 옷에 옅게 남아있을 때, 여즉 연락하며 지내는 북산 녀석들이 있는 그룹 채팅방에서 태섭의 소식을 가장 자주 알려주는 준호에게 저 수식어가 타이틀인 기사 링크를 메시지로 받았다. 뭐라는 거야, 진짜.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 NBA 선수 중 거의 유일한 동양인이어서 그런지, 경기 뿐만이 아닌 기사들이 태섭에게는 유난히 많았다. 꼭 감시하는 것 같지 않냐? 언젠가 물었던 질문에 태섭은 늘 그랬듯, 무표정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 이런 거겠죠. 이 말을 자연스럽게 하기까지의 송태섭을 잘 모른다는 게 조금, 미안했다. 대만이 느낀 최초의 감정이었다. 너는 미국에 있어서 어쩔 수가 없다는 게 핑계처럼 느껴질 만큼.
번역 기능을 켜고 기사를 보는 동안, 향수 냄새 같은 건 하나도 나지 않았다. 그걸 보면서 지하철을 기다렸고, 탔고,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나이는 먹었어도 같이 있을 때만큼은 그런 티 같은 건 나오지 않는 녀석들이 기사 내용이 불쾌하다며 이모티콘을 남발했다. 대만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손등으로 땀을 닦고, 비스듬하게 서서 기사 내용을 반복해서 읽었다. 팬들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송태섭 같은 것.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가다가도 팬들이 인사를 하면 인사를 하고 특히 어린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송태섭 같은 것.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놀랍지 않은 기사 내용이었다. 다들 송섭섭에게 여전히 속고 있다는 백호의 메시지가 사라지지 않는 1을 의식하게 만들었다. 평소에 시차 같은 걸 생각하냐면 그렇지도 않은데. 방금 헤어졌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걸 미처 깨닫기도 전에,
형.
송태섭, 의 메시지가 왔다. 그룹 채팅방에서의 1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곧 한국에 들어가는데, 만날 수 있어요?
대만은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입술을 말아물었다.
좀 길게 있을 예정이에요. 상의할 것도 있고.
두 가지 문장이 영 다른 말이어서 이상하다는 걸 생각하기도 전에, 고민 있으면 연제든 연락하라고 그랬잖아요. 답지 않은 문자가 왔다. 이제는 미간이 구겨질 찰나, 괜찮아요? 더더욱, 답지 않은 문자가 왔다. 대만은 구겨진 미간을 손으로 간질였다. 아직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메시지 입력칸을 누르자마자 튀어나오는 키보드가 눈치없이 느껴졌다. 그러다 생각났다. 그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 보자마자 헛웃음이 튀어나오게 만들었지만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는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송태섭과 아주 조금, 닮아서, 일지도 모른다고.
동양인의 젠틀함이라는 건 군더더기가 없어서, 날 것의 느낌이 있다. 그래서 눈을 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