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은 될 수 없어 2

태섭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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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눈을 뗄 수가 없는 건, 인정.

대만은 제 앞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태섭을 보면서, 팔짱을 낀 팔에 힘을 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있어서 더 그랬다. 햄버거를 먹다가도 알은체를 하면 고개를 까딱였고, 어린 아이들이 오면 물티슈로 손을 닦고 사인을 해주었다. 장시간 비행으로 몰골이 말이 아닐 테니 사진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때는 어이없게도 안도했다.

어디가 말이 아닌 몰골인지 알 수 없는 태섭의 반지르르한 얼굴을 보는 내내 대만은, 삐딱하게 앉은 자세를 고수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굴을 보자마자 오랜만이라며 고개를 까딱거리는 인사를 한 뒤에, 일단 밥이나 먹자는 태섭을 어떻게든 막았을 거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고 싶을 만큼 잘 먹었고,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모르고 안 보이는 듯이 이야기를 던졌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 가게 햄버거 맛은 똑같네요. 남은 조각을 먹은 뒤 콜라까지 마신 태섭이 한 말에는 기어이 웃음이 나오고야 말았다. 비행기에서 기내식 안 먹었냐는 질문에는 먹었다고 대답해서 더 그랬다.

그런데 이렇게 먹냐?

새 물티슈로 손과 입술 주변을 닦은 태섭은 대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형 얼굴 보니까 갑자기 배가 고픈 걸 어떡해요.

대만이 미간을 구겼다. 내 얼굴이랑 배고픈 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기에는, 저에게서 떼지 않는 시선이 묘하게 느껴졌다. 쓰레기를 정리하러 일어나는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할 만큼.

너 원래 식단 빡세게 하지 않았었나.

그랬죠.

이렇게 먹어도 괜찮냐? 휴가다, 이거야?

태섭은 대답하지 않고 빙긋 웃었다. 그런 태섭을 보면서 대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시선이 마주쳤는데도 태섭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태섭이 NBA에 진출한 그 다음 해 여름부터 휴가차 들어왔고, 그때마다 한 두 번씩 만나 음식과 약간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한 말이었다. 새로울 게 없는 건데 대답을 하지 않는 태섭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런 느낌을 떨칠 수가 없는 건, 태섭의 양 손에 든 캐리어와 짐이 한 몫 했다. 잠깐 왔다가 가는 거라고 하기에는 짐이 많았다. 이것이 오래 있는 다는 것처럼 느껴졌고, 이건, 태섭의 어깨를 손으로 건드리도록 만들었다. 그냥 툭 친 건데도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 어깨가 반 정도 움직이더니 대만의 쪽으로 완전히 돌아왔고, 대충 걸친 거나 다름 없는 선글라스가 콧대 아래로 스르륵, 내려왔다.

고민이 있어서요.

그럴 때마다 먹는 걸로 푸는 스타일 아니었지 않나?

그랬죠.

태섭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이게 계속 신경쓰였다.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내내, 고민이 있다는 사람치고 가벼운 얼굴을 하고 있는 태섭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심각한 거냐?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거야?

태섭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푸스스 웃는 소리가 거슬려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버튼을 누른 다음, 태섭에게 몸을 돌린 뒤 정강이를 살짝 찼다. 아야. 하나도 아프지 않은 얼굴로, 아파요. 엄살을 부렸다.

네가 이러는 거 좋아하는 건 네 팬이나 그럴 거고. 나는 징그러우니까 표정 바꿔.

말 한 번 솔직하게 하시네요.

늘 그렇거든? 몰라?

태섭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그러든 말든, 대만은 제 할 말을 했다. 제 성질이야 잘 알 거라고 생각하면서.

뭔데?

여기서 말해요?

못 말할 게 뭐야? 자리 갖춰야 되냐?

대만이 스마트키 버튼을 눌렀다. 수많은 차들 중 하나가 반짝거렸다. 그곳으로 가는 동안, 태섭의 오른손에 든 짐을 낚아챘다. 태섭은 그걸 순순히 내어주며, 대만을 쳐다보았다. 대만의 어깨와, 그 아래로 떨어지는 소매와, 아래로 내려온 긴 팔과, 커다란 손 그리고, 하얗고 긴 목덜미를 천천히 훑었다.

그렇지는 않은데, 들으면 운전할 수 있으려나 싶어서요. 내가 운전 해도 돼요?

뭔 소리야, 피곤할 텐데. 괜찮으니까 말해.

트렁크에 짐을 실은 뒤, 트렁크 문을 닫는 버튼을 누르기 위해 쭉 뻗은 손 때문에 드러난 허리 속살이 시선에서 사라질 때까지 태섭은, 호의 가득한 눈으로 제 얼굴을 쳐다보는 대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처럼. 아니, 아주 어린 날의, 송태섭처럼.

어떤 수식어는, 아이덴티티가 된다.

국내 최초로 팬덤을 가진 농구 선수. 25살의 나이에 프로 선수로 데뷔한 대만은 그 해의 신인 MVP를 거머쥐며 화려하게 농구계에 이름을 날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농구계의 원톱으로 자리잡고 있는 대만은 수많은 화보와 광고를 찍었다. 농구 선수로서는 최초였다. 경기에서 이기든 지든, 결과의 승패는 정대만이라는 이름에 흠집을 낼 수 없었다. 대만의 태도가 한 몫 했다. 이기면 이기는대로, 지면 지는대로 경기를 받아들였고, 제 기량을 판단했다. 잘한 건 잘했다고, 못한 건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대만은 어떤 아이콘이 되었고 이건, 대만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도록 만들었다.

구단 훈련이요. 매일 가요?

아니. 왜?

이 호불호를 송태섭은 모두 알고 있다. 처음 만났던 코트와, 차가운 옥상에서의 정대만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송태섭, 한 명 밖에 없으므로.

휴가 일정, 있어요?

아니. 왜? 뭔데?

이번에 휴가가 좀 길어요.

그러니 이 모든 것을 송태섭은,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랑 같이 휴가 보내지 않을래요?

No.14 is eternal. 이미 유명한 정대만의 수식어는 사실, 태섭의 심장에 새겨진 낙인이 된 채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