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My Constant

태섭대만

15





  태섭과 함께 있을 때는 미국인지 잘 모르겠더니, 태섭과 인사를 하고 혼자 경기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미국이라는 것이 온몸으로 와 닿기 시작했다. 대만은 태섭이 목에 걸어준 구단 관계자 출입증을 쳐다본 뒤 자리에 앉았다. 코트와 가까이에 배치된 관객석에서 들리는 영어와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연신 귀를 때렸다. 태섭이 워낙 유명한 선수가 되어서 태섭을 응원하려고 온 동양인들도 꽤 많아 보였다. 옆에 있는 사람이 왜 관계자 출입증을 하고 여기에 앉아있느냐고, 여기 있을 거면 그 출입증을 달라고 하며 손을 내밀었다. 워낙 시끄러워서 다는 못 알아 들었지만 맥락이 그랬다. 대만은 웃으며 쏘리, 라고 중얼거렸다. 농담이었는지 더는 달라고 하지 않았지만 식은땀이 났다. 진짜 또라이같은 사람들 많아요. 언젠가 태섭이 스쳐지나가듯 말한 게 생각났다. 대만은 조용히 출입증을 니트 안에 집어 넣었다.

 대만은 시계를 쳐다보았다. 경기 시작 20분 전이었다. 곧 선수들이 나와 몸을 풀 것이다. 오늘 경기할 선수들이 전광판에서 하나둘 소개가 되었다. 대만은 전광판을 쳐다보며 태섭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BOSTON - No.7, SONG 

 함성소리가 커졌다. 대만은 깜짝놀랐다. NBA 관람을 하러 온 건 처음이 아니었지만, 태섭이 전광판에 나오는 순간 이렇게 큰소리를 듣는 건 처음이었다. 태섭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함성을 들으며 대만은 언젠가 태섭이 예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선배가 운이 얼마나 좋은지 알겠죠. 이런 내가 선배를 좋아하니까. 대만은 뜨거운 볼을 손가락으로 톡톡쳤다. 이 말을 거의 10년 만에 확실히 느끼게 될 줄은 몰랐지만. 확실히 송태섭은 허튼 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HEY! 선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대만은 마지막으로 나오는 태섭을 쳐다보았다. 태섭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대만은 그런 태섭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호텔에서 나오기 전, 대만을 껴안고 있던 태섭의 체온을 생각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체온을 느끼고 향기를 맡던 태섭의 숨과 손길을 생각했다. 한참동안 그러고 있던 태섭이 곧 대만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눈이 깜빡이는 시간도 아깝다는 사람 마냥 쳐다보는 태섭 때문에 대만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가 턱을 잡혔다. 



지금 중요한 거 하고 있으니까 시선 피하지 마요.

중요한 거?

나의 넘버원 슈팅가드 정대만 선수의 기운을 받고 있다고요.



 그 말에 대만이 웃었다. 대만의 웃음에 태섭이 픽 웃었다. 턱을 잡고 있는 손을 부드럽게 움직여 턱을 만지고, 얼굴을 만졌다.



왜 선수들이 빨리 결혼을 하는지 알 것 같아.

…….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이 나요.

그러냐.



 태섭이 대만의 목을 잡았다. 대만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닿을듯 말듯한 거리에서 대만이 태섭의 입술을, 눈을 쳐다봤다. 태섭이 혀로 입술을 축였다. 대만이 웃었다. 뭐가 좋아서 웃어요. 태섭이 속삭였다.



기운을 받으려면 이렇게는 해야하지 않겠어?



 대만이 먼저 입을 맞추었다. 태섭은 기다렸다는 듯이 오랫동안 입술을 물고 빨았다. 키스를 하며 대만은 태섭의 귀와 뺨, 목을 만졌다. 태섭이 가장 좋아하는 스킨쉽이었다. 대만의 손길이 좋은지 키스를 하는 내내 태섭이 웃었다. 이 웃음과 키스는 좋았지만 더는 하면 안 될 것 같아 대만은 태섭의 팔을 붙잡으며 입술을 살짝 떼고 마지막으로 태섭의 입꼬리에 입을 맞추었다.



이겨.

형이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요.

너를 위해서 이겨.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태섭과 눈이 마주쳤다. 대만이 엄지를 들어올렸다. 태섭은 그런 대만을 쳐다보기만 했다. 뭘 보냐는 듯이 어깨를 건드리는 동료를 모르는 척하던 태섭이 손키스를 날렸다. 대만의 얼굴이 빨개졌다. 미친놈, 이런데서 저러면 어쩌자는 거야! 대만의 속이 난리가 난 것과는 별개로 대만의 주변 관중들도 난리가 났다. 송 오늘 처음부터 팬서비스가 장난이 아닌데?! 마이 핫가이 송! 내 키스도 받아줘! 대만이 관중들을 힐끔거렸다. 다행인 건지 한 사람에게 특정된 손키스가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대만은 피식 웃으며 다시 경기장을 쳐다보았다.
 미안하지만, 저 핫가이는 내 애인이에요.


 휘슬이 울려퍼졌다. 태섭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집중 하라고. 대만의 입모양을 제대로 본 건지 태섭이 픽 웃었다. 대만은 자리를 잡는 태섭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막상 경기를 시작하면 누구보다 집중하고 잘할 거라는 걸 안다. 대만이 할 수 있는 건 다치지 않는 것을 기도하는 것, 농구를 할 때 가장 빛나는 태섭을 응원하는 것뿐이었다.



나를 위하는 모든 것에 형이 있어요.

…….

우리를 위해서 이길 거에요. 끝까지 봐줘요.



 그 어느때보다 뜨거운 분위기의 1쿼터가 방금, 시작되었다.








You're My Constant







 2쿼터까지 뒤지고 있던 보스턴은 하프타임 후 3쿼터부터 완전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보스턴의 스몰 포워드는 작년 득점왕이었고, 그의 득점이 3쿼터부터 살아나기 시작했다. 경기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대만은 시끄러운 아수라장에서 태섭을 보았다. 태섭의 얼굴이 점점 진지해졌다. 탑에서 판을 보는 태섭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태섭과 함께 농구를 한 대만이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저 시선이 있는 곳에 한때 내가 있었고, 내 시선이 있는 곳에 한때 네가 있었다. 대만이 주먹을 쥐었다. 태섭이 엘보로 들어와 패스를 할 때면 환호성이 더 커졌다. 골결정력도 높아져 빅맨들과의 호흡도 좋았다. 판이 점점 보스턴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경기는 보스턴의 승리로 끝났다. 티브이가 아닌 직관으로 태섭을 지켜보는 내내 대만은 보는 손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나중에 원온원 하자고 해볼까. 오늘 시합을 한 사람한테 할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출국이 당장 내일이고 경기에서 이겼으니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파티를 할 텐데. 얘네 에너지 장난 아니에요. 며칠 뒤에 또 경기 하면서 이기면 이겼다고, 졌으면 졌다고 뭐라도 해야 된대요. 전화로 툴툴거리던 태섭이 생각났다.
 게다가, 지고 있다가 이겼으니 분위기가 더 고조된 것 같았다. 보스턴의 팬들은 경기가 끝났어도 관객석을 떠나지 못했다. 그건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블럭마다 인사를 하고 팬서비스를 했다. 마침내 대만이 있는 블럭으로 왔다. 대만과 눈을 마주친 태섭이 브이자를 한 손으로 제 눈을 가리킨 뒤 대만에게 뻗었다. 주변 관객들이 또 난리가 났다. 대만은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똑같은 제스처를 태섭에게 돌려주었다. 관객들도 함께 하고 있던 터라 거리낌이 없었다. 태섭이 환하게 웃으며 손키스를 날렸다. 관객들이 난리가 났다. 아니, 정말 날 보고 하는데 이걸 모를 수가 있나? 대만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태섭과 선수들이 다른 블럭으로 갔다. 대만은 그런 태섭을 끝까지 지켜보다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으악, 추워! 주차장에서 태섭을 기다리고 있는 대만이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린 코를 손으로 만지고 주변을 왔다갔다했다. 목도리에 입을 가린 대만이 발 끝을 쳐다보았다. 태섭이 경기를 하던 모습이 계속 생각났다. 언젠가 태섭은 정대만처럼 아름답게 농구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대만이 코웃음을 쳤다. 태섭이 말한 것처럼 정말 그렇다면 그건 아마도, 그렇다고 말해주는 송태섭 때문일 것이라고, 대만은 생각했다. 태섭은 언제나 대만을 믿고 농구를 했으니까. 그 믿음이 어느 정도 대만에게 자신감을 주었으리라. 괜히 코를 훌쩍이게 됐다.

 불이 꺼진 경기장을 보고 있을 때 차 한대가 대만의 옆에 정차했다. 창문을 열고 얼른 타라고 말하는 태섭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대만은 재빨리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죠.”

“아니야. 괜찮아.”



 히터를 끝까지 올렸는지 차 안이 더웠다. 대만이 웃으며 목도리와 겉옷을 벗어 뒷좌석에 두었다. 대만이 벨트를 하려는 찰나 태섭이 손을 뻗어 대만을 끌어안았다. 컥. 대만이 기침을 내뱉었다. 태섭은 아무 말 없이 대만의 목덜미에 이마를 문질렀다. 대만이 웃으며 태섭을 안았다.



“오늘 이긴 거 축하해.”

“형이 있어서 이겼어요.”

“어. 우리가 이겼어.”



 태섭이 목덜미를 살짝 깨문 뒤 대만과 시선을 마주했다. 



“형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초반에 긴장이 좀 되더라고.”

“…또 센 척 열심히 하고 있었네.”

“그럼요. 이 악 물고 센 척 하는 건 여전히 잘 한다고요.”

“내 앞에서는 그러지 말고. 알지?”



 태섭이 다시 대만의 목을 안았다. 숨을 고르며 대만의 어깨에 턱을 올린 태섭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형이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형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더 잘하고 싶었어요.”

“그랬냐.”

“응. 경기마다 형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말 해도 안 넘어간다…”



 태섭이 웃었다. 



“형.”

“응.”

“나 부탁 있는데.”

“뭔데?”

“싫으면 싫다고 해도 돼요. 억지로 안 해도 돼.”

“뭔데 그래?”



 답지 않게 뜸을 들이는 태섭 때문에 대만이 태섭에게서 떨어졌다. 태섭이 다른 곳을 쳐다보며 뒷머리를 매만졌다. 뭐야, 진짜. 대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섭이 대만을 힐끔 쳐다보다 대만의 손을 잡고 대뜸 미안하다고 했다. 



“괜찮으면, 우리 팀 선수 한 명 같이 만나지 않을래요?”

“갑자기?”

“팀에 눈치 좋은 놈이 하나 있어요. 걔가… 오늘 하는 팬서비스가 다 형한테 하는 거라는 걸 눈치 챘어.”

“아…”

“같이 있으면 장난만 치는 놈이라 그런지 내 상태를 잘 알아요. 긴장은 했는데 안정되어 있는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 그거 다 형 때문이냐고 물었어요. 거짓말을 못 했어요.”



 제 손을 꾹꾹 누르는 태섭은 손만 쳐다보고 있었다. 할 말을 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태섭이 묘하게 차분해보였다. 무슨 생각을 또 저렇게 하고 있나… 대만은 태섭이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태섭의 얼굴을 만졌다. 태섭이 고개를 들었다. 호기롭게 말은 내뱉은 주제에 제 한 마디를 기다리던 어느 날의 태섭이 떠올랐다. 태섭이 제 얼굴에 있는 대만의 손을 잡고 그 손에 뺨을 살짝 부볐다.




“형이 싫어하면 안 가요. 내일 형 출국이고, 조금이라도 오래 둘이서만 있고 싶어 그런데.”

“…….”

“궁금하대요. 천하의 송태섭 긴장을 풀어버리게 한 사람이. 알아봐줘서 사실은 고마웠어요.”

“…….”

“믿을 만한 놈이에요. 비슷한 시기에 와서 같이 개고생하며 팀에 남아서 그런지, 다른 놈들이랑은 좀 달라요. 이건 확실해.”



 태섭의 말을 듣고 있던 대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요?”

“응. 같이 가자.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

“호텔 바(bar)에서. 근데 형.”

“응.”

“진짜 시끄러울 수 있어요.”

“응.”

“형한테 이상한 말 할 수도 있어.”

“네가 알아서 해주겠지.”



 태섭이 대만을 껴안았다. 대만이 웃으며 내가 같이 안 가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랬냐고 물었다. 그럼 걔 혼자 마시라고 하고 나는 호텔에서 욕조 물 받아놓고 형이랑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안고 있으려고 했다는 태섭의 말에 대만이 웃으며 우리 착한 송태섭, 이라고 했다. 태섭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살면서 착하다는 소리 처음 들어봐요.”

“옛날에는 안 착했으니까 들어본 적 없겠지.”

“…나만 그런 게 아닐 텐데?”

“지금 해보자는 거냐?”

“아니, 아니지. 나 형의 착한 송태섭이잖아. 이 말이잖아. 맞죠?”

“응. 이제 가자.”


 

 태섭에게서 떨어져 벨트를 하는 대만의 뺨에 입을 맞춘 태섭이 씨익 웃었다. 대만이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벨트를 다시 풀어 몸을 기울여 태섭에게 입을 맞추었다. 








 호텔 18층에 있는 바는 룸도 있는 프라이빗한 곳이었다. 바텐더는 얼굴을 보자마자 NBA 선수 송태섭인 것을 알아보았다. 동료 M이 있는 룸으로 안내를 하는 동안 안에서 사인을 해줄 수 있냐고 물었고, 태섭은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아무도 모르게 해달라는 조건을 걸었다. 바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바텐더 중 행운아가 된 바텐더는 나갈 때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든든한 말로 태섭과의 거래를 받아들였고 동시에, 태섭과 M의 사인과 꽤 많은 팁을 받았다. 아마도 오늘 바텐더가 모든 사람들에게 받을 수 있는 팁을 합쳐도 많을 금액 이었을 것이다. 사인과 팁을 받는 내내 바텐어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바텐더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M이 헤이, 하며 인사를 했다. 서양식 인사에 익숙하지 않은 대만이 어색하게 손을 들었고, M이 숨 넘어갈 듯이 웃어댔다. 네 애인 귀엽잖아? 태섭이 닥치라고 중얼거리며 최대한 M에게서 떨어져 앉았다.



“왜 이렇게 떨어져 앉는 거야? 동양인들의 예절은 이런 거야?”

“시끄러워. 너 때문에 긴장했잖아.”

“왜 이렇게 싸고 도는 거야? 그럼 안 나오겠다고 하면 됐을 걸!”

“자랑은 하고 싶었다, 이 빌어먹을 놈아.”

“하하하!”



 M이 크게 웃었다. 그가 웃는 동안 태섭은 대만에게 정말 괜찮냐고 물었다. 대만은 고개를 끄덕였고, 태섭은 테이블 아래로 대만의 손을 잡았다. M이 삐딱한 표정으로 제 얼굴을 보고 있는 태섭을 보며 팔짱을 꼈다.



“인사할 기회 좀 주지 않을래?”

“해.”

“네가 그렇게 떡하니 째려보고 있는데 인사를 어떻게 하냐? 저 사람은 네 애인이지 내 애인이 아니야. 네 자식도 아니고. 지금 네 꼴이 어떤지 아냐? 나랑 네 애인이 결혼을 하겠다고 너한테 인사를 하러 온 거 같다고.”

“그런 걸 무슨 말이라고 하는지 아냐? 개소리라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왜 네가 더 긴장을 하고 있냐고!”



 대만이 태섭을 쳐다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다리를 떨고 있었다. 긴장을 할 때마다 나오는 태섭의 습관이었다. 이런 습관도 알고 있는 거라면, 제 앞에 있는 태섭의 동료는 태섭의 말처럼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아까 3쿼터에서 날아다닌 작년 득점왕 아닌가. 이런 선수를 만나는 건 영광이었다. 대만이 빙긋 웃으며 일어나서 악수를 청했다.



“만나서 반갑다. 정이라고 불러.”

“나야말로. 저 독한 새끼 누가 데리고 있나 궁금했다. 나와줘서 고맙다.”

“나야말로, 챙겨줘서 고맙다.”

“헤이. 들었냐? 네가 나를 형? 발음이 이게 맞나? 어쨌든 형으로 모셔야 한다고.”

“하, 새끼. 형. 쟤 띄워주면 안 돼요. 귀찮아진다고.”

“맞는 말을 한 것 같은데?”

“아, 형.”



 마침 바텐더가 술을 가지고 왔다. M이 실랑이를 하는 태섭과 대만을 보며 웃었다. 바텐더가 나가고, 잔에 얼음을 채워 위스키를 부었다. 독한 위스키가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인상을 찌푸리는 태섭과 대만을 보며 M이 잔에 있는 나머지 위스키를 마셨다.



“네가 송의 슈팅가드, 맞지?”

“하하… 나를 그렇게 말했나?”

“정만큼 깔끔하고 아름다운 슈팅을 하는 가드는 본 적이 없다고 그랬어.”



 M의 말에 태섭이 딴 곳을 쳐다봤다. 그런 태섭을 보며 M이 야유를 했다. 너 그 표정 뭐냐, 재수 없다. M의 말에 태섭이 시끄럽다고 말했다. 대만이 위스키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나를 어디까지 알고 있나?”

“고등학생 때부터 함께 농구를 했다는 거, 송이 먼저 좋아했다는 거 정도?”

“음. 맞아.”

“하긴. 정이 송을 먼저 좋아할 일은 없었을 것 같다. 귀여움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하하, 어떻게 잘 아나? 정말 귀여움이라고는 없는 후배였어.”



 대만의 말에 태섭이 깜짝 놀라 대만을 쳐다보았다.



“형. 나 주장 되기 전에는 그래도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나?”



 대만이 웃었다. 태섭은 대만을 살짝 노려보며 말했다.



“…쟤랑 친해지지 마요.”

“뭐래?”

“이상해. 그냥 둘이 말을 더 하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재미있는데 왜.”

“형… 우리 그냥 갈까요?”

“술이 저렇게 많은데?”

“형이랑 둘이서만 있고 싶어졌어요.”

“나는 술을 좀 더 마시고 싶어졌어요.”

“정말 이럴 거에요?”

“너의 슈팅가드, 네 동료한테 점수 좀 따보자.”

“쟤한테 점수 따서 뭐 어쩌자고!”

“널 더 잘 챙겨줄 것 같아서?”



 대만의 말에 태섭이 입을 꾹 다물었다. 금세 얼굴이 빨개지는가 싶더니 대만의 시선을 피하며 손가락으로 소파를 톡톡쳤다. 이런 말을 하면 내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잖아요. 태섭은 제 걱정을 하는 대만이 어색하고 기분이 좋아서 아무 말이나 던지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이겼다는 사실을 잊을 것만 같았다. 태섭이 표정관리를 하지 못하고 대만의 손을 잡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걸 본 M이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 둘, 앞으로 영어만 써. 도대체 무슨 대화를 했길래 송 표정이… 나 토하고 싶어졌어.”

“꼬우면 너도 우리말 배우던가. 애인을 만들던가.”

“재수없는 새끼.”



 대만이 크게 웃었다. 태섭과 M이 그런 대만을 쳐다보았다. M은 대만에게서 태섭에게 시선을 올린 채로 어깨를 으쓱이며 빙긋 웃었다. 태섭 역시 어깨를 으쓱이며 손가락으로 fuck을 날렸다. 우리 형 정말 사람 잘 감는다. 어쩐지 속이 끓었다.

 팀 내에서 M은 소문난 주당이었다. 술 좋아하는 건 대만도 똑같아서 위스키를 마시며 M과 대만은 금세 친해졌다. 태섭이 위스키 한 잔을 마시는 동안 M과 대만은 두 잔 이상을 마셨다. 과일과 치즈 안주도 금세 다 먹어서 똑같은 것으로 주문했다. 시즌 중인 저녁에는 왠만하면 고칼로리를 먹지 않는 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놓고 가끔 송과 몰래 햄버거도 먹고 피자도 먹는다고 말하는 M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만은 꽤 많이 웃었다. 그런 대만을 보는 게 태섭은 행복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위스키도 다 마셨다. 한 병을 더 주문하려다 당장 내일 모레가 경기라고 말리는 태섭 때문에 M이 오케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만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대만의 손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태섭은 조용히 대만의 얼굴을 살폈다. 약간 눈이 풀렸지만,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완전히 과음은 한 것 같지 않았다. M은 그런 태섭을 보며 피식 웃었다.



“왜 웃어, 이 새끼야.”

“좋아 보이네.”

“당연히 좋지. 안 좋을 이유가 어디 있어.”

“힘든 순간은 없었어?”



 태섭이 M을 가만히 쳐다봤다. M은 어깨를 으쓱이며 팔짱을 꼈다. 늘 좋을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너희 둘은 오랫동안 떨어져 있지 않았나. 대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태섭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어. 미안하다고 할 거면 좋아한다는 말을 하라고 했지.”

“누가. 송 네가?”

“어.”

“…믿을 수가 없다.”

“뭐가, 새끼야. 말을 들을래, 싸울래.”

“미안. 계속해.”

“그랬는데. 내가 미국에 가고서는, NBA 입성 준비를 하기 전까지 2년 정도는 괜찮았어. 물론 힘들었지만.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죠?”

“어. 아니야.”



 대만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섭이 대만의 손을 다시 한 번 꽉 잡았다.



“NBA 입성 준비 시작하고 난 뒤부터는 미안하다는 말이 너무 많이 나와서, 좋아한다는 말로 커버가 안 될 지경이 되더라고.”

“아무래도 그랬겠지. 나도 그때 생각만 하면 아찔하다…”

“그렇지? 그래서 그냥. 지겨워서 다시는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미안하다고 했어. 연락을 안 해보기도 했고.”



 형을 만나면서 가장 후회를 했던 순간이 있다면 그때에요. 태섭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대만은 고개를 저었다. 대만을 애틋하게 보고 있는 태섭을 보며 M은 기지개를 켰다.



“그런 순간을 다시 이야기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냐. 여전히 함께 있는데.”

“…그러게.”

“그 순간이 있어서 지금의 너희 둘이 있는 거야.”

“이런 말을 너한테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좋은 말을 해줘도. 이 귀여움 없는 새끼야.”



 대만은 창 밖의 풍경을 쳐다보았다. 스위트룸에서 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다른 방향의 풍경이라 야경이 보기 좋았다. 태섭은 그 야경에 비친 대만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그 어떠한 풍경보다도 아름다운 우리 형. 형만 보면 다른 풍경은 필요 없어. 어느새 둘 만의 세계로 빠진 태섭과 대만을 보며 M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사랑하니까 보기 좋네. 원래, 힘든 순간을 거친 사랑이 오래 가는 법이야. 이런 생각이나 하며 M은 얼음이 녹아 물이 된 잔을 입에 가져갔다.








“데려다 준다니까 그러네.”

“됐어. 너 이제 공항에 오면 안 될 것 같아.”

“새삼스럽게 왜 그래요, 진짜.”

“안 돼.”

“거참…”



 짐을 꾸리는 대만을 보며 태섭이 팔짱을 꼈다. 공항에 데려다 준다는데도 안 된다고, 너 그렇게 인기 많은 선수인지 몰랐다며, 혹시라도 위험한 일 생길 수 있다고 우기는 대만 때문에 태섭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완고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한 두번 설득하면 될 줄 알았지. 태섭은 대만의 눈치를 보며 작전을 바꿨다.



“그럼 주차장 까지만. 거기서 세워줄게요. 나 안 내릴게. 그럼 됐죠.”

“그래도 안 돼.”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요.”



 대만이 순간 움찔했다. 이런 대만을 놓치지 않은 태섭이 곧바로 대만의 품으로 꼬물꼬물 들어가 허리를 껴안았다.



“주차장 까지만. 응? 거기까지만. 응? 나 거기 갔다가 연습하러 가면 시간 딱 맞는데. 응?”

“…….”

“형이랑 떨어지기 싫은 내 맘 좀 알아줘라…”

“…나도 너랑 떨어지기 싫거든…”



 대만이 자포자기하며 태섭을 끌어안았다. 태섭이 빙긋 웃었다. 이렇게 마음 약할 때 파고 드는 게 반칙인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한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걸. 

 트렁크에 캐리어를 넣고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벨트를 멨다. 엔진 예열을 기다리는 동안 손을 잡고,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이런 순간에 많은 말은 필요가 없었다. 온기를 전하는 것. 이거면 마음도 전달할 수 있었다. 

 태섭이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을 시작했다. 대만의 눈에 보스턴의 도심이 지나갔다. 며칠 동안 있었다고 익숙해진 거리가 내심 아쉽게 느껴졌다. 대만은 제 왼손을 잡고 있는 태섭의 오른손을 꽉 잡았다. 태섭 역시 그 손을 꽉 잡았다. 신호에 걸리는 동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태섭이 웃었고 대만도 웃었다. 공항으로 가는 하이웨이에서는 창문도 열었다. 추워!! 결국 창문을 닫아야 했지만 신나게 웃었다. 별 거 아닌 걸로 웃을 수 있다는 건 마치, 우리의 마음이 통하고 있다는 것만 같았다.

 공항 주차장에 도착했다. 최대한 돌고 돌아 주차장의 구석에 차를 세웠다. 시동이 멈췄고, 실내가 조용해졌다. 태섭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벨트를 먼저 풀었고, 뒤이어 대만이 벨트를 풀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았다. 똑같은 바디워시 냄새가 났다. 그 향을 깊게 들이마셨다. 




“조심히 가요.”

“응.”

“비행기 밥 잘 챙겨 먹고.”

“응.”

“잠도 좀 자고.”

“응.”

“도착하면 나한테 제일 먼저 연락하고.”

“응.”

“집에 도착하면 했다고 연락하고.”

“응.”


“오늘 연습 잘 하고.”

“응.”

“내일 경기도 잘 하고. 무리하지 말고, 다치지 말고.”

“응.”

“내가 언제나 같이 보고 있으니까, 관중석에 있다고 생각하고.”

“응.”

“힘들면 힘들다고 꼭 이야기 하고.”

“응.”


“시즌 준비한다고 너무 안 먹지 말고.”

“응.”

“무릎 검진 잘 받으러 다니고.”

“응.”

“술은, 몸 만들어야 되니까 적게 마시고.”

“하하, 응.”

“힘들면 힘들다고 꼭 이야기 하고.”

“응.”


“송태섭 네가 최고야. 그 누구도 너보다 잘할 수 없어.”

“응.”


“형이 최고에요. 그 누구도 형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응.”


“이제 갈게. 조심히 가.”

“응.”



 자동문이 열리고, 대만이 사라질 때까지 태섭은 그 자리에서 대만을 쳐다보았다. 대만이 완전히 사라진 후 태섭은 제 옆자리를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만이 앉아있던 자리. 태섭은 손으로 그 자리를 만져보았다. 어느새 차갑게 식어있었다. 태섭은 긴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침을 억지로 삼키고 정면을 쳐다보았다. 이런 순간은 언제든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섭은 알았다. 익숙하지 않다면 그것은 내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지금 다시, 자동문이 열리고 가까워지는 당신 역시, 그렇다는 것을.


 태섭이 문을 열고 나와 대만을 꼭 끌어안았다. 뛰어서 밭은 숨을 쉬는 대만의 머리를 쓰다듬고, 허리를 꽉 껴안았다. 태섭은 대만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내가, 대만이 중얼거렸다. 응? 태섭이 되물었다. 



“이 말을 안 한 것 같아서.”

“나도 안 한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럼 같이 말해볼래?”

“좋아요.”



 태섭이 대만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대만이 환하게 웃었다. 그 얼굴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태섭이 하나, 대만이 둘, 그리고 



사랑해요

사랑해



아 진짜 성격 급하네. 아직 셋 안 했는데 말하고 말이에요.

그건 너도 마찬가지거든? 따지고보면 네가 먼저 말한 거다.

아닌 것 같은데. 형이 먼저 말한 것 같은데?

와, 이걸 어떻게 다시 되감을 수도 없고.

그럼 또 말하던가.

이번엔 제대로 하자고. 셋 세면 말해.

알겠어요. 그렇게 해요, 하는데,


몇 번이고 말해줄게요


언제든, 어디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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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링크도 같이 걸어두는 건 글을 쓸 때 같이 들은 음악이어서 올리고 있는데요. 음악을 같이 들어주실 수 있다면 꼭 들어주시기를 청하고 싶은 게 이번 글입니다.


 태섭 28살, 대만 29살.

 로 생각하고 Be My Valentine을 썼으니 이번 글도 그렇습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