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d On Tight

태섭대만

17







  몸이 무겁다. 

 끙소리를 내며 대만이 몸을 움직였다. 잠은 덜 깼고 눈은 안 떠졌다. 무언가 제 몸을 꾹 누르고 있어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대만은 있는 힘을 다해 팔을 들어 올려 천천히 제 가슴을 누르고 있는 무언가를 꽉 잡았다. 그 순간 대만의 눈이 번쩍 뜨였다. 느낌이 맞다면, 사람의 팔이었다. 뭐야, 나 어제 집에 안 들어갔나?! 몸을 일으키자마자 어제 마신 술 때문에 속이 울렁거려 헛구역질이 날 뻔 했다. 대만은 있는 힘껏 제 몸을 누르고 있는 것을 치워냈다. 우당탕, 구르는 소리가 났다. 재빨리 침대에서 빠져나간 대만은 손에 잡히는 물건을 꽉 잡았다. 손에 쥔 걸 확인하니 집에 있는 물건이 맞았다. 집이라니. 이게 더 문제였다. 대만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제 술을 같이 마신 이명헌이 있다면 그것도 나름 소름 돋는 일이었다. 이 침대에 누가 올라온 걸 송태섭이 알게 되면 당장 태평양 건넌다고 난리 치겠지. 어차피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이라도 해야했다. 식은땀이 흘렸다. 대만의 입에서 최근 잘 하지 않았던 욕이 튀어나왔다. 차마, 저 너머의 물건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발, 태섭아, 내가 다음에 또 술을 마시면 네가 그토록 원하는 미국에 가는 거 일정 짠다 진짜, 한 번만 나 좀 살려줘. 신에게 비는 대신 태섭을 속으로 부르고 있을 때, 아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만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목소리가 익숙했다. 대만이 천천히 침대 반대편 프레임으로 움직였다. 머리를 붙잡고 제 얼굴을 쳐다보는 태섭과 눈이 마주쳤다.



뭐에요, 진짜. 자는 사람 걷어 차기나 하고.

네가 여긴 어떻게, 

나 아파요.

태섭아, 야,

아프다고, 빨리 와서 안아줘요.



 손에 있는 걸 아무렇게나 집어 던진 대만이 태섭에게 달려들었다. 태섭은 제 품으로 뛰어들듯 안기는 대만의 목을 껴안았다. 한참동안 안고 있던 대만이 몸을 일으켜 불을 켰다. 빛 때문에 미간을 찌푸리는 태섭의 얼굴이 보였다. 대만은 태섭의 앞에 마주보고 앉았다. 떨어질 때 부딪힌 이마를 만지던 태섭이 엉망진창인 대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만은 당장 눈 앞에 있는 태섭이 좋으면서 연락도 없이 온 것때문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너 왜 여기 있어.

왜긴요, 미국에서 출국 했으니까 여기 있는 거지.

너 이런 적 한 번도 없잖아. 장난하지마, 진짜.

지금 시간이면 미국에서는 이미 뉴스에 나왔으려나.

너 사고 쳤어?!

…도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예요?

뉴스라고 하는데 안 놀라냐!



 미간을 찌푸린 태섭이 대만의 미간을 엄지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잔뜩 걱정하고 있는 얼굴로 제 말을 기다리며 빤히 쳐다보는 대만이 꽤 마음에 들었다. 뉴스로 소식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아서 무리해서 일정을 조율 했는데 이 얼굴이면 그만 놀려도 될 듯 싶었다가, 말하지 않으면 내 생각만 하겠지 싶어 이것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태섭은 헛웃음이 나왔다. 태섭이 웃어서 더 심각해진 대만이 무거운 목소리로 태섭을 불렀다.



나 진짜 형을 너무 좋아하나봐요. 어떻게 아직도 이렇게 좋을 수가 있지.

태섭아, 나 진짜 숨 넘어 간다.

손 잡아주면 말해 줄게요.

이 상황에서 장난이 나오냐?

어서.



 눈으로 욕을 내뱉는 대만이 태섭이 내민 손을 잡았다. 태섭이 웃음을 터트리며 대만의 어깨에 이마를 갖다댔다. 



재계약 했어요.

응?

지금 팀이랑. 

진짜?!

응. 맥스 계약 맺었어요. 5년. 형한테 직접 말하고 싶어서 왔,

야 송태섭!! 너 이 자식, 축하해 진짜!!



 대만이 태섭을 꽉 안았다. 순간 숨이 막힌 태섭이 헛기침을 뱉었다. 이 기특한 녀석, 야 송태섭 너 진짜, 태섭을 안았다가, 쳐다봤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안았다가, 대만 혼자 난리가 났다. 루키 계약이 끝날 때가 돼서 고민이 된다는 연락을 받은 게 한달 전이었다. NBA는 계약이 복잡하고 실력을 우선적으로 하니까,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잘 없는 것 같다고 말하던 태섭이 생각났다. 아마도 많이 복잡했을 것이다. 태섭이 이런 고민을 할 때 옆에 없었던 게 마음에 걸렸었다. 대만은 어쩐지 울컥해서, 말없이 태섭의 등을 토닥이기만 했다. 태섭이 웃으며 대만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넣어 등을 껴안았다. 대만의 어깨에 턱을 올린 태섭이 슬쩍 눈을 감았다.



나 미국행 결정 났을 때 생각나요.

그러냐.

그때도 형, 나보다 더 좋아했었는데.

그때보다 천 배는 더 기뻐.

그래서 날아왔어요. 나 때문에 환하게 웃는 형 보고 싶어서.



 이미 틈없이 안고 있는데 더욱 더 힘을 줘서 안았다. 태섭의 목에 얼굴을 묻은 대만이 말없이 얼굴을 부볐다. 어쩐지, 제가 해야 할 걸 대만이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러고 있는 대만을 알 것 같아서 태섭 역시 말없이 대만을 안고만 있었다. 



근데 형.

응.

보스턴에서 보고 처음 보는 거 알고 있어요?

그러네.

형.

응.



 내가 당신을 부를 때, 바로바로 대답을 할 수 있는 지금.



보고 싶었어요.

나도. 보고 싶었어.



 따뜻한 체온, 익숙한 체향, 속삭이는 목소리. 어떻게 해도 당신이 내 옆에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지금. 



재계약 한 것보다 형을 만나서 더 좋다고 하면 너무 철없어 보여요?

같이 철없는 걸로 하자.



 당신과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건 이렇게나 좋은 거였다. 








Hold On Tight

FINAL 1







 태섭은 보스턴과 맥스 계약을 체결하기 전 조건을 걸었다. 에이전시와 구단은 긴장한 눈치였다. 이번 시즌에서 빠진다는 말은 하지 말라는 에이전시 관계자의 말에 태섭은 어깨를 으쓱였다. 태섭의 제스처에 경악을 한 건 보스턴이었다. 4년 동안 본 태섭으로 판단을 했을 때, 태섭은 절대로 손해보는 행동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른 동양인들과는 좀 달랐다. 숙이고 들어오거나 타협을 할 줄 알았던 동양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태섭은 이런 면에서는 전혀 동양인답지 않았다. 도리어 싸움을 잘 거는 축에 속했다. 농구는, 특히 NBA는 이런 기질이 중요했다. 그래서, 이런 성질을 가지고 있는 태섭은 무엇보다 팀에 필요한 포인트 가드였다. 보스턴의 감독은 거래를 할 줄 아는 태섭에게 먼저 제안을 해야 하는 순간임을 깨달았다. 무엇을 원하냐고 물었고 태섭은 차분히 원하는 것을 말했다. 시즌에서 빠진다고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프리시즌 전까지 국내에 있고 싶다. 태섭의 말에 감독이 턱을 매만졌다. 프리시즌 전까지는 3주의 시간이 있었다. 태섭의 그간의 기록을 생각하던 감독이 쿨하게 오케이 했다. 

 그래서 지금, 태섭은 대만의 옆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형. 일어나요. 뉴스 좀 봐요. 나 나와.”

“어…”



 대만이 졸린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티브이에서 태섭의 NBA 맥스 계약이 속보로 나왔다. 동양인으로는 최초이고, 현재 NBA 구단 1위가 보스턴인만큼 그 팀의 승리를 이끈 주역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완전한 스타덤에 올랐다고 선언하는 것이라고 극찬을 했다. NBA에서는 워낙에 인터뷰가 많아서 이런 건 적응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국내에서 인터뷰를 하는 제 모습을 보는 건 좀 낯간지러운 느낌이었다. 대만과 같이 보고 있어서 그런가. 약간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매만지며 태섭은 대만을 힐끔 쳐다보았다. 제 속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 대만 때문에 태섭은 약간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나는 이걸 뉴스로 먼저 알려주고 싶지 않아서 무리해서 비행기 타고 왔는데…”

“응?”

“형 반응이 좀, 시원찮아요?”

“새벽에 격하게 축하해줬잖아. 나 허리 아파.”

“아파요? 잠깐만.”



 대만의 말에 쏜살같이 침대를 빠져나간 태섭은 뜨거운 물로 마른 수건을 적셨다. 침실로 돌아오니 대만이 채널을 돌려가며 태섭의 계약 소식을 챙겨보고 있었다. 태섭이 웃으며 대만의 옆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대만이 배를 깔고 누웠다. 태섭은 수건으로 대만의 허리를 감싼 뒤, 손으로 약하게 누르며 안마를 했다. 대만이 끙, 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태섭이 몸을 굽혀 대만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많이 아파요?”

“많이는 아니고. 오랜만이어서 그렇지 뭐.”

“미안. 오늘 훈련 하러 간다고 그랬었죠.”

“알고도 그랬냐? 와. 나는 네가 잊은 줄 알았네?”

“그래도 많이 안 깨물었, 아야…”

“맞을 짓을 하지. 응?”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이마를 문지르는 태섭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대만이 이리와봐, 하며 태섭의 이마를 제 손으로 문질렀다. 태섭이 웃었다. 병주고 약주네, 우리 형. 미간을 찌푸리는 대만을 보며 태섭은 재빨리 버드키스를 했다. 빙글빙글 웃는 태섭의 얼굴이 꽤 즐거워보였다. 대만은 졸린 눈을 깜빡이며 제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태섭을 쳐다보았다. 태섭은 손으로 대만의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어제 술 얼마나 마셨어요.”

“음… 몰라.”

“기억도 안날 만큼 마셨다고?”

“그건 아닌데. 야, 생각해보니, 너 술 마신 사람한테 잘도.”

“블랙 아웃은 아니었잖아요.”

“…그건 그래.”



 어쩐지 잘못한 사람 마냥 목소리가 줄어들게 된다. 태섭이 오는 줄 알았으면 당연히 술을 안 마셨을 거다.  그리고 굳이 따지면 내가 마시자고 한 게 아니고 이명헌이… 대만은 눈을 감고 머리를 저었다. 이런 이야기까지 했다가 태섭이 난리를 칠 수도 있다. 아침의 평화를 위해 대만은 잠시 할 말을 묻어두기로 했다.



“곧 시즌인데 왜 술을 마셨을까?”

“곧, 시즌이니까.”

“아직 시즌 아니다 이거예요?”

“응.”

“그래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나 있는 동안에는 마시지 마요. 알겠죠?”

“알겠어. 그나저나, 얼마나 있는 거야?”

“글쎄?”

“뭐야. 왜 안 알려줘?”

“글쎄?”

“시즌 오프는 아니지?”

“그건 아니에요.”

“근데 왜 안 알려줘?”

“글쎄?”



 대만이 표정을 굳혔다. 태섭이 짧게 버드키스를 한 뒤 몸을 일으켰다. 



“왜 안 가르쳐줘! 어디가!”

“배고파요. 밥 먹을 거야. 뭐 해놓은 건 있죠?”

“없는데.”

“없다고? 왜?”

“…밥을 안 했으니까.”

“왜?”

“그냥, 뭐…”

“형.”

“아니… 그냥…”



 대만의 시원찮은 대답에 태섭이 완전히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허리에 두 손을 올렸다. 와, 잘못 걸렸네. 대만은 태섭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일어났다. 이럴 때는 태섭을 건드리면 안 됐다. 다른 건 몰라도 밥 챙겨 먹는 거에는 예민하게 굴었다. 제 소식을 직접 전하려고 미국에서 날아온 태섭의 심기를 아침부터 건드리는 건 안될 일이었다. 대만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태섭을 향해 바보같이 웃으며 다가갔다. 태섭아- 하고 이름을 부르는 건 덤이었다. 태섭이 한 쪽 눈썹을 올렸다. 



“형 오늘 나한테 혼 좀 나보자. 훈련 언제 가서 언제 끝나요?”

“어… 10시까지 가서 4시에 끝나…”

“데리러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응…”

“편의점 다녀올게요.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아니…”

“해장 될 만한 거 사줘?”

“응…”

“나 있는 동안 진짜 술금지에요. 알겠어요?”

“응…”



  옷을 껴입고 선글라스와 지갑을 챙긴 태섭이 나가자마자 대만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럴 때는 애인인지, 무서운 후배인지 알 수가 없다. 태섭이 오기 전 집이나 정리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대만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훈련을 하는 내내 태섭의 계약 이야기로 화제였다. 그렇게 성공할 줄 몰랐다는 둥, 진짜 대단하긴 하다는 둥, 훈련을 하러 온 건지 이야기를 하러 온 건지 알 수 없게 되버렸다. 주절거리는 선수들 사이에서 대만은 혼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입을 연 순간, 우리 태섭이가 하며 자랑을 할 것만 같았다. 괜히 농구공을 튕기고 얼른 훈련이나 하자고 했는데 아무도 훈련을 할 생각을 안 했다. 오히려 우리 말고도 다른 팀에서도 난리가 났을 거라고 했다. 대만은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NBA라면 모두의 꿈은 아니어도 한 번쯤은 동경할 수 있으니. 대만은 그렇게 납득했다. 이럴 줄 알고 집에서 나오기 전 태섭에게, 절대로 구단 안으로 들어올 생각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왜요? 천진난만하게 묻는 태섭이 좀 어이가 없어서 너 오늘 아침부터 속보에 뜬 사람이라고 말하자 그게 왜요? 하며 속 터지는 소리만 해댔다.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볼 거 뻔한데 너까지 나타나면 시끄러워져. 조용히 살고 싶다, 태섭아. 대만의 말에 태섭이 딴 곳을 보며 알겠다고 대답했는데, 그 얼굴이 영 불안했다. 그래서 대만은 혹시라도 태섭이 나타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훈련이 끝날 때까지 태섭은 나타나지는 않았다. 대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선수들과 인사를 하고 구단을 나와 주차장으로 갔다. 태섭이 미리 와 기다리고 있었다. 가방끈을 고쳐 멘 대만이 차로 가기도 전에 태섭이 운전을 시작했다. 대만이 웃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수고했어요.”

“오래 기다렸어?”

“방금 왔어요.”



 벨트를 하기 전 태섭과 짧게 입을 맞추었다. 벨트를 다 하고 난 뒤 아, 하더니 대만이 태섭의 팔을 톡톡 쳤다. 응? 네비게이션을 검색하던 태섭이 쳐다보았다.



“운전 내가 할게. 너 피곤하잖아.”

“괜찮아요. 여기까지도 하고 왔는데 뭐.”

“나 있으니까 굳이 할 필요 없잖아. 벨트 풀어. 자리 바꾸자.”

“괜찮다니까.”

“얼른.”



 대만이 먼저 내렸다. 태섭이 보닛 앞으로 걸어가는 대만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운전석으로 온 대만이 문을 열었고 태섭은 그런 대만을 쳐다보기만 했다. 



“말 듣자, 송태섭.”

“형.”

“응.”

“나 갑자기 행복해요.”

“…뭐야, 갑자기?”

“그냥. 형이랑 있으니까 이유 없이 그래요.”



 입술을 꾹 다물어 버리는 태섭을 보던 대만이 손으로 조수석을 가리켰다. 태섭이 벨트를 풀고 나와 조수석에 앉았고, 대만이 주변을 살펴보다 운전석에 앉아 다시 주차를 했다. 네비게이션을 검색하던 태섭이 의아한 얼굴로 대만을 쳐다보았다. 대만은 그런 태섭의 손을 붙잡아 끌어당겨 안았다. 잠시 놀란 태섭이 곧 대만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계약 기간 동안 힘들었어?”

“조금요.”

“전화로 말했던 일빼고 다른 건 없었어?”

“응. 없었어요.”

“그래. 고생했어. 잘 버텼어, 송태섭. 내 애인답다.”



 대만을 안고 있는 태섭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대만은 말없이 태섭의 어깨를 토닥였다. 한참을 안겨 있던 태섭이 고개를 들어 대만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곧 축축하게 젖는 소리가 났다. 태섭의 혀가 대만의 입술을 핥고, 태섭의 손이 대만의 귓불을 만졌다. 대만과 숨을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불안정하게 뛰던 심장이 곧 진정이 됐다. 한참동안 키스를 하던 태섭이 대만의 입에 짧게 키스한 후 떨어졌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웃었고, 태섭은 대만의 코에 제 코를 갖다대 살짝 비볐다 떨어졌다.



“형 오늘 나한테 혼나야 하는데.”

“나 뭘로 혼나는데? 들어나 보자.”

“일단 장을 봐야하고.”

“에?”

“요리를 해야 해요.”

“야… 나도 요리할 줄 알아.”

“그렇겠죠. 혼자 지낸 시간이 있는데.”

“어… 근데 그거 굳이 오늘 해야 돼?”

“응.”

“사 먹으면 안 될까?”

“안 돼.”

“내가 요리를 잘 못해서가 아니고 너 오늘, 시차적응도 힘들고, 나 요리 하는 거 보다가 네가 답답하면 속도 상하고,”

“나 부엌에 한 발자국도 안 들어갈 거에요. 안 보면 답답한 것도 몰라요.”

“태섭아…”

“나 진짜 형이 해주는 대로 먹을 거에요. 불만 없이 먹을게. 걱정마요.”

“…너 진짜 독하다. 오랜만에 독한 송태섭 보네.”



 태섭이 웃으며 네비게이션 검색을 마저 했다. 근처에 있는 마트였다. 대만이 한숨을 푹 내쉬며 벨트를 했다. 태섭은 그 한숨을 못 들은 척하며 벨트를 하고, 음악을 재생했다.



“왠만하면 외식 안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나 국내 들어온 건 형만 알아요. 어디 돌아 다니지도 못해.”

“뭐? 가족한테도 말 안 했어?”

“혹시나 언론사에서 연락올 까봐요. 있는데 없다고 하면 곤란할 것 같아서.”

“음… 그래. 그래… 아! 그럼 마트에도 못 가는 거 아니냐?”

“평일이잖아요. 사람 별로 없지 않아요?”

“이거 궤변인 거 알지?”

“잘 모르겠는데.”



 점점 낯빛이 어두워지는 대만을 애써 모르는 척하며 태섭은 선글라스를 꼈다. 옆에서 구시렁거리는 대만의 목소리가 허밍처럼 들렸다. 날씨 좋다, 그쵸. 날씨 같은 소리 한다. 완전 흐린 거 안 보이냐? 선글라스 벗지? 대만의 투덜거림에 태섭이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태섭의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 매일 새벽에 함께 일어나 가벼운 운동을 함께 하고 밥을 먹었다. 곧 시즌이 시작되어서 대만의 훈련 시간이 길어졌다. 태섭은 아침 일찍 나가는 대만을 꼬박꼬박 데려다줬고, 데리러왔다. 차에 앉아 훈련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대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했다. 대만이 훈련에 간 시간에 태섭은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했다. 기계들이 완전히 갖춰져 있는 건 아니었지만 왠만한 건 있어서 근력 운동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부족하다 싶으면 밤 늦게라도 근처 공원에 갔다. 그럴 때마다 대만이 함께 했다. 밤에 운동을 하고 돌아가는 길, 사람의 인적이 드문 길에서 손을 잡고 조용한 거리를 걷는 그 순간이 꿈만 같았다. 그 어떤 좋은 환경도, 좋은 대우도, 대만이 있는 순간보다 못했다. 태섭의 인생에서 대만은 나아가야 할 길이자, 꿈이며, 사랑이었다. 


 다 씻은 후 스탠드 하나만 켜놓은 침대에 태섭과 대만이 누웠다. 태섭의 팔베개를 하고 누운 대만이 천장을 쳐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내일이 시작이야.”

“긴장 돼요?”

“조금. 긴장되지 않는 경기는 없잖아.”

“걱정 마요. 잘할 거야.”

“어. 이길 거야. 우리를 위해서.”



 태섭이 대만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나저나, 너 언제 가는지 말 안 해줄거야? 벌써 3주 째야. 며칠 있으면 4주차가 되어 간다고.”

“나 오래 있으니까 좋지 않아요?”

“좋지, 좋은데. 아무 말 없이 온 것처럼 그냥 갈 건 아니지? 그러기만 해봐, 가만 안 둬.”

“갈 때는 절대 안 그러지. 인사 다 받고 갈 거에요. 힘 받고 가야 된다고.”

“그래야지.”



 대만이 태섭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흐뭇하게 웃었다가 영 내키지 않는 얼굴로 태섭을 힐끔 쳐다보았다.



“진짜 이렇게 오래 쉬어도 되는 거야? 이걸 허락 했어?”

“진짜에요. 믿어라, 좀.”

“영 불안해서 말이지…”

“우리 형… 그냥 좋아만 해도 부족할 시간인데… 나는 1분 1초가 아까워 죽겠는데 우리 형은 다른 거나 생각하고 있고…”

“알았어, 알았다고…”



 태섭이 몸을 돌려 대만을 껴안았다. 대만도 몸을 돌려 태섭을 껴안았다. 제 가슴에 얼굴을 기댄 채 가만히 있는 대만을 내려다보며 태섭은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런데 형.”

“응?”

“나 내일 진짜 경기장 안 가도 괜찮아요? 나 그냥 집에서 기다려요?”

“당연하지. 어딜 오려고 그래. 네가 왔다간 경기 중단될 판이라고.”

“에이. 그렇게 까진 못하지.”

“그건 모르지. 여튼 올 생각 하지마. 너 온 거 아무도 모르는데 오잖아? 바로 속보 떠.”

“그럼 시끄러워 지겠네.”

“그렇겠지. 와. 상상만 해도 소름 돋아. 속보 입니다. NBA 송태섭 선수, 극비 귀국, 경기장에서 포착”



 대만이 흐흐 거렸다. 태섭이 그런 대만을 보며 웃었다. 고등학생 때, 혼자 상상하고 웃는 대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심장이 간지러웠다. 겉모습만 보면 그때랑 지금이랑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대만이 들었다면 길길이 날뛰겠지. 태섭은 조용히 웃으며 대만의 등을 토닥이며 눈을 감았다.



“얼른 자요. 내일 경기니까 빨리 자야지.”

“그래야지.”

“불 끌게요.”

“응.”



 불이 꺼졌다. 태섭이 덮고 있는 이불을 정리하며 대만을 좀 더 끌어당겼다. 대만이 긴 숨을 내쉬며 자세를 잡았다. 그런 대만의 어깨를 손으로 토닥였다. 토닥이기가 무섭게 대만이 움직이더니 고개를 들어 태섭을 쳐다보았다. 태섭이 웃으며 고개를 숙여 대만을 쳐다보았다. 



“할 말 있어요?”

“태섭아.”

“응.”

“솔직히 말해서,”

“응.”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좋다.”

“나 미국 가지 말까?”

“그런 말이 아니잖, 너는 애가 왜이렇게 극단적이냐?”

“이러고 있으니까 좋다는 게 저런 말 아니었어요?”

“너는 안 좋아?”

“좋죠.”

“나도 좋아. 그런데 나는 미국 갈까? 라고 안 물어보잖아.”

“방금 물어본 거 아니었어요?”

“…말을 말자. 나 잔다.”

“형.”

“아 왜. 잘 거라고.”

“키스 한 번만 하고 잘까요?”

“…키스로 끝낼 자신 있으면.”

“자신, 없지.”

“야, 진짜 안 돼, 안 된다고 송태, 야, 읍”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하는 일상이 얼마만인지 태섭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미국으로 가게 된 이후에는 이런 일상을 제대로 누려본 적이 없었다. 국내에 들어와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있어본 적이 없었다. NBA는 화려했지만 경쟁의 연속이었다. 경기 자체도 많았지만 계속 성장하지 않는다면 도태되기 쉬운 환경이었다. 모든 걸 평가하는 곳이었으니까. 팀의 계약도 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오래 쉬는 것을 꺼렸다. 피곤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대만을 생각했다. 미국 유학이 결정된 순간부터 NBA에 입성을 하겠다는 결정, 드래프트, 운이 좋아 G리그로 가지 않고 바로 NBA로 입성한 후 지금까지. 태섭은 오래 전 했던 다짐을 생각하며 버텼다. 

 새로운 다짐. 새로운 꿈. 거기에 모두 있을, 나의 형. 

 태섭의 모든 새로운 순간에 언제나 대만이 있었다. 그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사랑했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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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섭 28살, 대만 29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