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너를 데려오는 방법 03

태섭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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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에 못 가게 됐다.


 태섭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수화기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태섭은 이번 주말만을 고대하며 지냈다. 좋은 일 있냐는 소리도 꽤 들었다. 아무래도, 티를 냈나 보다. 좋은 일은 무슨, 이라는 말을 사람들이 믿지 않았던 건, 웃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송태섭 징그럽게 웃냐? 백호가 장난을 쳤다. 그래, 이 새끼야. 태섭은 백호에게 헤드락을 걸며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만날 수 있다는 약속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구나. 시간이 미친듯이 더디게 가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힘이 났다. 그랬는데.


 대만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새겨 넣으며 태섭은 고개를 저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함과 동시에 곧 답답함 그리고, 화가 몰아쳤다. 이건. 태섭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건, 다시는 느끼면 안 되는 감정이었다. 

 그때. 준섭에게 했던 마지막 말.


 다시는 돌아오지 마!


 태섭은 급하게 수화기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허억-, 가쁜 숨이 터져나왔다. 하마터면 대만에게, 하마터면. 이럴 거면 오지 말라고- 소리를 칠 뻔 했다. 손이 축축했고,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태섭은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서 입을 막았다. 태섭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이 말을 하려고 대만 역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만이 오기 싫어서 안 오는 게 아니다. 정대만은 내게서 사라지려는 사람이 아니다. 정대만은, 내 손을 놓을 사람이 아니다.


 보고 싶어. 보고 싶다고!


 대만이 거의 소리치듯 내뱉은 말에 태섭은 모든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괜히 전화를 빨리 끊었다. 농구를 한 것처럼 온 몸이 기진맥진했다. 태섭은 다시 긴 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곧이어 헛웃음이 나왔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래. 내게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면 될 일이었다. 대만에게도 말했듯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대만은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다면 볼 수 있다.


 태섭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걸어갔다. 살짝 힘이 풀린 눈이 사진을 쳐다보았다. 그 사진을 한참동안 쳐다보다 방으로 들어갔다. 







일상에 너를 데려오는 방법

03









 아침 일찍부터 아라가 태섭을 깨웠다. 태섭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아라는 팔짱을 낀 채 담백하게 정대만이라는 이름을 말했다. 태섭의 눈이 단 번에 떠졌다. 몸을 일으키는 속도가 엄청났다. 이불을 박차고 튀어나가 전화를 받는 태섭을 아라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봤다. 이런 태섭이 낯설어 지켜보고 싶다가 태섭이 좋아하지 않을 게 뻔해서 아라는 곧장 큰방으로 들어갔다. 



“잘 잤어요?”

-어, 잘 잤고, 송태섭아.

“갈 거니까 가게 이름이랑 전화 번호 알죠? 알려줘요. 잠깐만, 볼펜이…”

-너 진짜 칼같이 자른다.

“이래야 선배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을 거니까.”



 대만이 한숨을 쉬는 게 들렸다. 태섭은 어깨에 수화기를 갖다대며 웃었다. 아직 눈도 잘 안 떠지는데, 대만의 목소리를 들으니까 힘이 나는 느낌이었다. 대만은 가게 이름을 말한 뒤에는 정말 이래야겠냐고, 전화 번호를 말한 뒤에는 넌 아직 고등학생인데 여기까지 온다는 게, 라는 말을 덧붙였다. 태섭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 말을 중간중간 할 거면 가게 이름이랑 전화 번호는 왜 알려줘요?”

-말 안 해도 무작정 찾아와서 온갖 술집 다 뒤질 까봐 말한다, 인마.

“그러니까. 날 이렇게 잘 알면서 왜 그래요.”

-걱정 되니까 그렇지.

“형.”

-왜.

“그냥, 조심히 오라고 해요. 보고 싶다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대만이 작게 앓는 소리를 흘렸다. 태섭이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보고싶다. 진짜.

“저도요.”

-오늘 봐.

“어.”

-어쭈.

“기다리고 있어요.”

-어.



 대만은 오늘은 하루 종일 농구부 사람들과 있어야 한다며, 빨리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태섭은 괜찮다는 말을 덧붙이며, 내가 간다고 했으니까 아무 것도 미안해하지 말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집이 조용했다. 태섭은 머리를 긁적이며 제 방 문을 열었다. 이불을 정리하고 창문을 열었다. 곧 쏟아지는 햇살에 태섭이 눈을 찌푸렸다. 날이 좋았다. 다행이었다.







 대만이 있는 대학 까지는 두 시간 정도가 걸렸다. 확실히 대학은 대학이었다. 건물이 많았고 매우 컸다. 대만이 길을 잃는다는 말이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태섭은 학교 내에 있는 시계탑을 보았다. 시간은 7시 50분. 태섭은 뒷머리를 매만지며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이미 농구부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한 정도면, 마주치게 되면 분명히 대만이 곤란할 것 같았다. 8시에 들어간다고 했으니까 그 뒤부터 가게 앞에서 기다리면 되려나. 태섭은 학교 앞 벤치 끝에 가방을 두고 가방을 베개 삼아 누웠다.


 아직 19살 이니까 술은 안 마시겠지. 태섭은 선배들 사이에 끼여서 탄산음료나 마시고 있을 대만을 생각했다. 뭘 구체적으로 생각한 게 아닌데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아라가 자주 보는 드라마에서 술을 마실 때 잔을 부딪히며 마시던데, 선배도 그러려나. 예절 같은 거 다 따지면서 마시겠지. 태섭은 아- 하고 소리를 냈다. 대만을 보러 왔는데 당사자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고등학생과 대학생. 공부나 농구를 하는 건 똑같다고 했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다른 게 생길 수도 있구나. 태섭은 손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내년에는 술을 마실 수 있겠지. 그러면.



“송태섭. 너무 멀리 갔다.”



 태섭은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오지 않을 미래를 생각하고 있기에는 지금의 정대만이 그리웠다. 태섭은 다시 시계탑을 보았다. 8시. 


 이제, 대만을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술집들만 모여 있는 골목이어서 그런지 초입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태섭은 미간을 찌푸렸다. 시끄러운 소리, 음식 냄새,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 등등, 여러 소리가 났다. 태섭은 수많은 가게 중에서 대만이 있다는 가게를 찾았고, 곧, 골목 끝에서 가게를 발견했다. 굳게 닫힌 문을 쳐다보았다. 출입할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아 들어갈 수 없는 문이 마치, 무거운 철문처럼 느껴졌다. 태섭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 문 옆에 쭈그려앉았다. 


 사람들이 오고가며 문이 열릴 때마다 담배 연기가 새어나왔다. 시끄러운 이야기가 들렸고, 듣기 싫은 웃음 소리들이 섞여 나왔다. 태섭은 미간을 찌푸렸다. 당장이라도 대만을 끌어내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곤란해할 대만의 얼굴을 생각했다. 나 때문에 곤란해지면 안 된다고. 오겠다고 한 건 나였다고.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태섭은 스스로를 달랬다. 곧 만날 수 있다고. 우리는 지금, 가까이 있다고. 태섭은 두 무릎에 팔을 올린 채 고개를 숙였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만이 졸업한 이후에 얼굴을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까. 거의 한달 만이었다. 그 시간도 버텨냈는데 고작 몇 시간을 못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더 보고 싶었다. 보고 싶어서,



“…송태섭?”



 헛것이 들리는 줄 알았다. 태섭은 제 이름을 부르는 대만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못했다. 대만은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는 태섭의 뒤통수를 쳐다만보았다. 태섭이 밖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도무지 집중을 하지 못한 데다가, 누구라도 먼저 어느 순간 꽤 유명해진 이 가드를 알아본다면 골치가 아파질 것 같아 술을 마시느라 바쁜 선배들 몰래 빠져 나온 게 지금이었다. 일부러 문 가까이에 있는 제일 끝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은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태섭은, 제 부름에도 묵묵부답이었다. 문을 닫아도 이렇게 시끄러운데 자고 있는 건가? 대만이 주변을 살피며 태섭의 옆으로 가 앉았다. 미동도 없는 태섭이 현실 같지가 않아서 대만은 왼쪽 무릎을 세워 그 무릎을 끌어안았다. 어찌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지,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만이 웃으며 손으로 태섭의 팔을 툭툭 쳤다. 태섭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안녕.”


 

 대만이 인사를 했다. 태섭은 그런 대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래 기다렸지.”

“…….”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거 보니까 좀, 미안하네.”

“…며칠 전부터 선배가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있는지 알아요?”



 태섭이 대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몸을 돌려 앉았다. 태섭은 대만을 뚫어져라 쳐다만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대만은 태섭의 시선이 제 얼굴 여기저기로 옮겨지는 걸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태섭의 시선 때문에 심장이 뛰었다. 착각이 아니라면 태섭의 이 시선은 관찰이었고, 확인이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정대만이 맞는지. 내가 기억하는, 정대만이 맞는지. 시선에도 온도가 있다면 뜨거워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깨닫기 무섭게 태섭의 손이 제 뺨을 만졌다. 대만은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미안하다고 말 할 시간에 좋아한다고 말해줘요.”

“…….”

“시발, 미칠 것 같네 진짜. 선배한테 욕한 게 아니야.”


 

 대만이 웃었다. 태섭은 웃고 있는 저 다정한 얼굴을 당장이라도 씹어 먹고 싶었다. 



“송태섭.”

“왜.”

“보고싶었어.”

“…….”

“너는?”



 태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있는 대만에게 손을 내밀었고, 대만이 그 손을 잡고 일어섰다. 대만이 일어나기가 무섭게 어디론가 향한 태섭이 어딘가를 찾기 시작했다. 최대한 조용하고, 최대한,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그런 곳. 태섭이 그 장소를 발견했을 때 걸음이 빨라졌고, 대만은 그 뒤를 쫓아갔다. 태섭의 뒷모습이 어둠에 살짝 가려졌을 때, 태섭이 세게 대만을 잡아 당겼고, 벽으로 밀쳐 완전한 어둠으로 몰아냈다. 태섭이 가쁜 숨을 내쉬었다. 태섭은 손으로 대만의 턱을 매만지며 입술을 열었다.



“키스.”

“…….”

“해도 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정대만 너, 여기 못 있어. 그러니까 선을 정해줘요. 폭발할 것 같으니까.”



 완전한 어둠이었지만 건물 위에 전광판이 있었다. 그닥 밝지는 않지만 얼굴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한 빛이었다. 대만은 등에서 짜릿한 전율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태섭의 눈이 완전히 흥분에 가득차 있었다. 이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대만은 터질 것 같은 심장 때문에 숨을 고르는 게 쉽지 않았다. 태섭의 눈은, 대만의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로지, 내 말만 기다리고 있는 너는 네 안에 내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거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대만이 천천히 고개를 숙여 살짝 입을 맞추었다. 하… 태섭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숨이 멈추었을 때, 태섭의 두 손이 대만의 얼굴을 붙잡아 내렸고, 깊게 입을 맞추었다.


 태섭의 가방이 떨어졌다. 대만의 손이 태섭의 목을 끌어 안았다. 태섭은 그 손을 양 손으로 붙잡고 벽에 고정시켰다. 태섭의 혀가, 입술이, 대만의 입술을 미친듯이 삼켰다. 배가 맞닿았고 곧, 살짝 선 성기가 맞닿았다. 시발. 태섭이 욕을 하며 대만의 손목을 제 손으로 꾹 눌렀다. 뇌가, 정대만 때문에 질식이라도 해버린 것만 같다.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고, 이 열기를 주체를 할 수가 없어. 코가 부딪히고, 이가 부딪혀도 멈추지 않는 마치, 짐승과도 같은 키스에 대만이 결국 숨이 막혀 억지로 태섭에게서 얼굴을 뗐다. 태섭은 헉헉대며 숨을 고르는 대만의 얼굴을 다시 붙잡았다.



“보고 싶었어요.”

“…어.”



 서로를 빤히 보고 있다가 결국에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태섭은 긴 한숨을 내쉬며 대만을 끌어안았다.



“형.”

“어.”

“안 들어가면 안 되나.”



 대만은 제 앞에서 절절히 끓고 있다는 걸 숨기지 않는 태섭의 얼굴을 잡고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좋아해.”

“…반칙인데.”

“네가 미안하다고 말할 거면 좋아한다고 말하라며.”

“그러니까 반칙이라고. 이럴 때 말하는 건 아니지. 보낼 수밖에 없잖아.”

“순 지멋대로네.”

“형 말은 잘 들어요.”



 그 말에 왜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은 건지, 대만은 가슴 한 구석에서 뭔가가 찌르르 하고 울리는 기분에 완전히 알 수 없었다. 태섭은 대만의 얼굴을 잡고 버드키스를 했다. 몇 번이고 쪽쪽 하고 떨어지는 입술 때문에 대만이 결국 웃었다.



“뽀뽀귀신 붙었냐.”

“매일 하다가 안 한 거 지금 다 할래요.”

“세 번만 더 해. 진짜 들어가봐야해.”



 쪽쪽쪽. 태섭은 빠르게 세 번 입을 맞추었다. 대만이 착하다는 듯 태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태섭이 다시 제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대만은 그런 태섭을 오래도록 담기 위해 눈을 떼지 않았다. 



“이제 가. 기다리지 말고.”

“알겠어요.”

“조만간 갈 거니까 기다려줘.”

“어.”

“내일 아침에 전화할 테니까 기다려줘.”

“기다리고 있을게.”

“좋아해.”

“…….”

“기다려달라는 말만 해서, 근데 이거 나한테 너무 불공평 한 거 아니냐? 너도 빨리 미안하다는 말대신 좋아한다고 해봐.”

“내가 형한테 미안할 일이 어디있어요?”

“그럼 다 내가 잘못하는 거다?”

“그건 아니고.”



 태섭이 빙글빙글 웃었다. 이런 웃음은 오랜만이었다. 좀 얄미워서 볼을 잡아 늘리려는 순간, 태섭에게 그 손을 잡혔다.



“좋아해요. 좋아해서.”

“…….”

“나 갈게. 걱정 말고 들어가요.”



 태섭이 손을 흔들었다. 대만이 손을 흔들려다 또 태섭에게 손을 잡혔다.



“근데 나, 다시 형 데려다 주면 안 되겠지? 마주치면 큰일나겠지?” 

“당연하지. 빨리 나온 것도 다른 사람들이 너 알아볼 까봐 나온 거야. 1학년이 어딜 자리 비워.”

“예쁜 짓만 골라 하네요.”

“예, 예, 예쁜, 뭐래 이 놈이!”

“네. 좋아해요.”



 대만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태섭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대만은 한 손으로 입을 막은 채로 태섭에게 인사를 했다. 마치, 송태섭이라는 폭탄을 맞은 것만 같다. 전의를 상실한 사람처럼 무기력해졌다. 빨리 들어가봐야 하는 걸 알면서 대만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래도,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할 다른 말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여전히 빨간 볼을 긁적이며 대만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