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지 않더라도, 04

태섭대만



4.

말로 할 수 없는 사랑도 있지만






미간이 구겨졌다가, 펴졌다가, 도르륵 굴러가는 눈이 오른쪽을 봤다가, 왼쪽을 봤다가, 손가락을 펼친 손으로 허리를 짚었다가, 뒷덜미를 잡았다가. 대만이 바르작 거리는 동안, 태섭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슴에 올린 손은 더 이상 대만이 보지 않아도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태섭이 그 손을 내릴 때까지, 대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확실하게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대답을 가지고 있는 질문을 질질 끌었다.

뭘 알고 물은 건가. 알아도, 아니어도 문제였다. 사실은, 안 괜찮았다.

대만은 방에서 나오기 전까지 침대 프레임에 비스듬하게 기댄 채, 태섭과 나눈 대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떠올릴 대화는 많았으나, 그냥이라는 말을 금지함으로서 따라온 태섭의 대답을 일시정지나 정지 버튼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재생하고 또 재생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느라 진을 뺀 대답이었다. 좋아서라는 대답을 듣고 싶나 봐요…. 좋아서라는 대답을…. 좋아서…. 좋아서…….

생각해 보면, 태섭은 예전에도 그냥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다른 거에는 확실하게 구는 놈이 제 앞에서는 애매하게 굴 때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그냥요’ 라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과 다른 게 있다면, 뚱한 얼굴 이었다는 것. ‘뭘 보냐?’ ‘그냥요.’ ‘왜 이렇게 빨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냐?’ ‘그냥요.’ 이 말을 할 때의 얼굴이 괜히 서운해서 툴툴거렸던 적도 있었고…….

앞으로 천장을 보면 다양한 송태섭이 떠오를 만큼 박터지게 떠올랐다. 그래서 잠이 안 왔다. 묘하게 답답해져서 한숨을 내쉬고, 마른세수를 하고,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툴툴거리느라 왜 그랬냐고 묻지 못하고 놓친 송태섭의 그냥이 얼마나 많은 건지 감도 안 잡혔다. 너무 괴로워서 합리화를 시작했다. 아닐 수도 있다고. 옛날에는 어려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이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고.


“…선배?”


이 생각을 안 했어야 했다. 그래야 하는 건 그때가 아니라, 지금이어야 했다.


“그렇게 묻는 너는 안 괜찮아 보이는데?”


그래서 대답을 포기했다. 송태섭은 거짓말을 안 한다고 했다. 저 역시 그랬으나, 솔직하게 말하기는 싫었다. 안 괜찮다고 말했다가 튀어 나올 말들이 끔찍했다. 뭐가 좋은데? 내가 뭘 했다고 그냥 좋은데? 너 진짜 무슨 생각이야? 이게 진짜 수작이 아니야? 이 말을 생각 하는 것도 끔찍했다. 수작이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정대만은 송태섭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그런데도 네가 나를 여전히 좋…….


“그렇게 보여요?”


생각 역시 끔찍해서 중간에 끊었다. 더 이상 태섭에게 끔찍하고 싶지 않았다. 염치라는 것을 찾아야 할 때였다.


“어.”


점잖게 앉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섭이 묘한 표정을 짓더니 머리를 헝클인다. 입술을 달싹이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나오는 거라곤 한숨. 짧고 긴 것들이 시간처럼 쏟아졌다.


“선배 앞에 있으면 바보가 되는 것 같아요.”

“갑자기 뭐라는 거야?”

“맞아요. 안 괜찮아요. 그런데,”


안 괜찮다는 말을 듣자마자 두 눈이 동그래진 대만은 제가 했던 생각은 모두 잊은 사람처럼 재빨리 태섭의 맞은편에 앉았다.


“왜? 무슨 일 있냐? 미국에서 연락 왔어? 왜 빨리 안 오냐고 뭐라고 해?”

“그런 거 아니에요.”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태섭의 얼굴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걸 보면서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뭘?”

“너무 자연스럽게 말하잖아요. 여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눈썹과 입꼬리, 입술이 끊임없이 움직여도 그대로인 건, 대만을 보고 있는 눈동자 하나다. 태섭은 대만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눈이, 점점 구겨지는 미간과 달싹이는 입술을 보았다. 간간이 시선을 마주치는 대만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느라 자세를 조금 고치고 있다는 걸 모르는 듯했고,


“그야… 당연하잖아. 미국 비시즌이 우리 비시즌이랑 같냐.”


아주 조금씩 거리를 좁혀도, 모르는 듯했다.


“다르죠.”

“점점 더 바빠진다고 너도 말한 적 있고.”

“그랬죠.”

“연락이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왜 말 안 했어요?”


대만의 미간이 구겨졌다. 태섭의 말은 낯선 동시에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이 말이 언젠가, 목구멍에 진득하게 붙은 채로 매달려 있던 말이라는 걸 깨닫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송태섭에게 어떤 걸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송태섭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

대답을 또 포기했다. 왜 자꾸 대답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말할 이유가 눈 앞에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 듯이 제 얼굴을 관찰하듯 쳐다보는 태섭이 가까이에 있었다. 물러서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도 조금 놀라서 급하게 들이마신 숨소리가 났다. 태섭은 그걸 듣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여전히 제 얼굴을 빤히 보는 시선과 달아오른 뺨을 문질러도, 눈을 깜빡여도 미동 하나 없는 것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또 말해도 돼요?”


그렇게 보고 있었으면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 역시.


“뭐든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나 수다쟁이 아니거든?”

“그러기에는 내가 한 마디 할 때 세 마디는 하던 선배를 알고 있는데….”


이게 건방지게. 순간 발끈한 대만이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았다. 거짓말은 아니어서 할 말이 없었다.


“나만? 너는?”

“나도 그럴게요.”


대만이 영 못미덥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빤히 보여서, 어깨를 으쓱이며 한 번 더 말했다. 진짜요.


“…너 송태섭 맞냐?”


태섭이 웃었다. 팔짱을 끼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태섭은 웃음이 잦아들때 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금의 나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네요. 대만은 혀를 찼다. 언제부터 말을 잘 들었다고, 진지하기 짝이 없는 혼잣말이었다.


“그래라. 어? 솔직히, 뭐든 해준다고 한 건 나지만, 너 진짜 쓸데없는 거 다 해달라고 하거든? 알지?”

“쓸데없는 걸 말한 적 없는데요.”

“…….”

“아니었어요? 뭐가 아닌데요?”

“…….”

“뭐든 말해달라고 했는데. 싫어요?”


대만은 태섭을 무시무시하게 노려보았다. 할 수 있는 한 제대로. 너무 제대로여서, 꿈에도 나올 수 있도록. 매일 오는 시간을 말해줬으면 하는 게 쓸데없는 말이 아니면 뭐냐는 말은 죽어도 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했다.


“그러는 너는! 뭐가 안 괜찮은데! 뭐가 안 괜찮아서 이 새벽에 이러고 있는데!”

“음…….”

“뭐냐? 말 못하겠냐? 방금 전에 그러겠다고 한 송태섭 어디로 사라졌어?”


한 쪽 입꼬리를 삐죽 올린 대만이 비웃으며 말했다. 태섭은 아무 말없이 빤히 쳐다만 보았다.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는 얼굴이어서 비웃은 게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태섭이 나즈막하게 말했다.


“아까 내 말을 끊은 건 선밴데.”

“…그랬냐?”

“네. 근데 괜찮아요.”

“왜?”

“괜찮아졌다는 말을 하려고 그랬거든요.”

“그랬,”

“안 괜찮다는 걸 선배가 알아주자마자요.”

“……냐. 어…….”


그러고서 웃는다. 빙긋. 정말 괜찮다는 듯이. 쳐다보는 눈이 웃음과 닮았다. 손가락 끝이 간지럽다고 느낄 만큼.


“안 괜찮아서 위로 받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해줄 거예요? 들어보고 괜찮으면, 안 괜찮을 때마다 선배한테 말할게요.”


뭐 이런 미친 소리를 하지? 어이가 없어서 정색을 하긴 했지만, 기쁜 말이었다. 말을 안 했으니 당연히 모를 텐데, 뭐라도 아는 것처럼 하고 싶었던 것을 해줄 때마다 뭐든 해주겠다고 한 사람이 송태섭이었던가 라는 바보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말을 예전에 들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도 그런 걸보니, 몇 번이고 대가리를 박아도 할 말이 없었다.

정신 차려, 정대만. 지금 네 눈 앞에 있는 송태섭이랑은 이미 예전에 헤어졌어. 하루에 몇 번씩 생각하는데도 늘 까먹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인다. 자세를 고쳐앉는다. 두 손을 비비고, 깍지를 끼고, 양반다리를 하고, 헛기침을 하고, 허리를 편다. 태섭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이러는 게 마치, 제가 이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보여서.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런 것처럼 보여서 꾹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정대만은 실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니까. 이번에도 쉽게 기대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괜찮아.”


마주 앉은 거리보다 더 가까이 뻗은 손이,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와도.


“다 지나가.”


쓰다듬고, 쓱쓱,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느리게 눈을 깜빡여도.


“영원한 거 없어. 괜찮아.”


대만은 태섭에게 하는 건지, 제 자신에게 하는 건지 모를 말을 하면서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눈을 감는 찰나에만 사라질 뿐, 태섭은 여전히 제 앞에 있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제 손을 타면서.

우습다. 어쩐지 위로 받는 기분이다. 이런 걸 아주 오래 전부터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 묵혀 놓은 말을 한다는 건, 목캔디를 먹은 느낌이구나. 그때는 송태섭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이제는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고. 그래서 자꾸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정말일지도 모른다. 송태섭이 옅게 웃는다. 영 틀린 말은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위로도 할 줄 아네요.”


이렇게 지내는 것 역시, 틀린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안 괜찮은 네가 약해 빠진 거라고 할 것 같은데.”

“이게 진짜 날 뭘로 보고.”


내 마음이 어떻든 간에. 말하지 못한 마음이 무엇이든 간에.


“요즘 애들은 부둥부둥 해줘야 해. 다 세상 탓, 남 탓이라고 해줘야 해.”


그렇다면, 우리가 헤어질 일은 더 이상 없을 테지.


“그런 걸 좋아해요?”

“백발백중.”


태섭이 눈썹을 삐죽 올린다. 저럴 일인가 싶어서 빤히 쳐다보았다.

 

“뭐. 왜뭐.”

“내가 요즘 애들이 아닌가 봐요.”

“왜?”

“안 지나가는 게 있으면 어떡하냐고 묻고 싶어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태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모르지?”

“내가 잘 아는 거예요?”

“어.”

“뭔데요?”

“뭘 물어. 옛날부터 네가 뻔질나게 잘하는 건데.”


태섭의 입술이 조금씩 삐죽이기 시작한다. 그 입술을 보고서야, 대만도 웃었다.


“너무 잘 알아서 가끔 까먹나봐?”


삐죽인 입술이 이내 호선을 그린다. 맞는 말이었다. 가끔은, 너무 당연한 것들을 잊곤 했다.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거나, 이런 것도.


“그럴게요. 생각보다 느린 것 같지만.”

“네가 느리게 하는 것도 있냐? 아. 있었다.”

“뭔데요?”

“방 정리.”


태섭이 웃었다. 진짠데. 답답해 죽을 뻔했잖아. 대만이 여상한 말투로 말했다.


“안 답답하게 할게요.”

“음?”

“그러니까 선배도 애쓰지 마요. 그게 뭐든지 간에.”

“…음?”


대만이 미간을 구긴다. 저 미간을 꾹 누르고 싶은 걸 참기 위해 이번에는 손을 숨겼다. 한참동안 얼굴을 구기던 대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너도 그러지 마.

태섭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웃기만 했다. 똑같은 테이크 아웃잔을 들고 다른 곳을 쳐다보던 대만의 빨간 귀 끝을 생각하면서. 그걸 보면서 만졌던 제 귀는 마음의 온도와 똑같았을 거다. 대만이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았다면 알아차렸을 지도 모르지.


“내가 오래 산 건 아닌데, 너보다는 1년 더 살았잖아. 그래서 깨달은 게 있다.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아.”


역시 그때 말할 걸 그랬나.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고.


“말 안 하냐? 갑자기 왜 꿀먹은 벙어리가 됐어?”


이 생각만 했을 뿐인데 마음이 터질 것 같다. 18살, 제 마음을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고백했을 때처럼.


“그럴게요.”

“어.”


대답을 듣고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건지, 제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젓는 대만이 우스울 정도로 사랑스러워서,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그래서 웃었다. 왜 웃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서 짜증을 내는 대만에게 어깨를 맞을 때까지. 괜히 아픈 척을 하며 머리를 들이밀고, 안 괜찮다고 말해서 쓰다듬을 받을 때까지. 어쩐지, 오래전에 이렇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떤 것이 변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적어도 두 사람에게는 그리 오랜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빨래 바구니에 쌓이는 옷들은 여전히 뒤집어져 있다. 티셔츠, 바지, 상관 없이 모두 다. 외출 후 태섭은 무슨 일이 없으면 곧장 샤워를 하러 들어간다. 벗은 옷을 바구니에 넣으려다 위에 있는 대만의 속옷을 본다. 그것을 보면서 옷을 벗는다. 굳이 대만의 속옷 위에 옷을 두지 않는다. 제 속옷은 여전히 감추지 않는다. 훈련을 끝내고 돌아온 대만이 땀에 젖은 옷을 바구니에 아무렇지도 않게 넣는다. 하는 생각이라고는, 이거 살 때 손 안 떨렸나? 정도.  

 빨래를 널 때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티브이를 같이 보고 있었다면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뭘 먹을 지를 묻는다. 각자 속옷을 순서대로 너는 동안에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간간이 서로를 힐끔거리며 이어나간다.

 씻는 그릇은 모두 두 개. 숟가락, 젓가락, 포크 모두. 잘 마른 그릇을 원래 있는 곳에 두는 내내, 태섭이 재생한 음악을 듣는다. 여전히 영어 노래. 가끔, 대만이 틀어 달라고 하는 국내 음악. 태섭은 대만이 추천한 노래를 종종 듣는다. 노래를 다 외웠을 때쯤에는, 대만과 함께 허밍음을 낸다. 음역대가 제각각이다. 노래를 듣는 건지, 허밍음을 듣는 건지 모른다. 가사를 부를 때도 있다. 사랑한다거나, 좋아한다거나, 곁에 있고 싶다거나. 태섭이 이런 가사를 노래할 때마다, 대만은 아주 낮은 허밍음을 낸다. 조용해도 들을 수 있다. 그러다 이별 노래는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그런지 묻지 않는다.

 신발장은 거의 태섭이 독점하다시피 한 공간이다. 상대적으로 신발의 갯수가 적은 대만은 아무런 터치도 하지 않는다. 아주 희한한, 그러나 용납이 되는 방식으로 수납한 신발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매일 바꿔 신는 건 아니지만, 다른 자리로는 절대 수납되지 않아서 어떤 신발을 신고 나갔는지를 금세 알 수 있다. 이제 관심이 너무 많은 건가? 그런 건지도 모른다. 가끔, 아주 가끔 태섭이 넣지 않는 신발을 제자리에 둘 때도 있다. 태섭은 그걸 알 때마다 감격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대만은 어깨를 으쓱인다.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한 적당한 관심이라고 쳐라? 태섭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과한 관심을 달라고 말하고 싶다.

 할 일이 없으면 거의 대부분 같이 티브이를 본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저건 아니지 않냐며 동의를 바라기도 하고, 의견이 안 맞아 언성을 높이…지는 않는다. 어떤 포인트에서 화를 내는지, 마음에 안 들어하는지, 대충 파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누군가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푹 꺼진 소파 자리 두 군데와, 소파 앞 테이블에 있는 컵 두 개, 살짝 열려져 있는 문 두 개를 본다.  

번갈아 가며 입는 앞치마가 이제는 민망하지 않고, 어느 정도 대화가 없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같이 있으면서 알게된 건, 일상이라는 건 자연스러워진다는 것. 서로가 익숙해진다. 그럼에도, 소파에 앉아 있을 때 껴안고 있는 쿠션을 혼자 몰래 껴안아 본다던가, 빨래를 개키느라 집중하는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던가, 잘자라는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문을 빤히 쳐다보다 손을 갖다 댄다. 

대만은 이런 생활에 익숙해진다.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송태섭이 괜찮아진다. 이건, 좋은 거였다. 연애를 할 때엔 그렇지 않았다는 건가 싶어서 울컥할 뻔했지만, 그럴지도 몰랐다. 그때는 모든 관심이 송태섭에게 있었다. 정확하게는, 정대만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는 송태섭. 짜증나고, 답답하고, 서운하게 만드는 송태섭. 그렇다면 허울만 애인이었을 뿐, 제대로 보지 않았던 건지도 몰랐다. 

어떤 밤 이후로 자기 전, 거실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가끔 생겼다. 그럴 때마다 태섭은 제 이야기를 조금씩 하곤 했다. 목소리가 조곤조곤 했다. 얼굴을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들어도 송태섭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낯설기도 했다. 그때와 제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데도. 그래서 빤히 보았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 그럴 때마다, 심장이 뛰고 있는 게 느껴졌다. 마치, 처음으로 좋아한다고 느낀 그 날처럼.

그 심장이 태섭에게 알은체를 했다. 어떤 파동을 받은 건 아니었다. 그러려면, 어떤 사인을 주고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태섭은, 제 얼굴을 빤히 보는 대만을 볼 때마다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이렇게 보는 대만이 처음은 아닌데 두근거려서,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의 대만은 그때와 비슷한듯 달랐다. 얼굴은 하나도 안 변한 주제에 눈빛만 달라졌다. 물끄러미 보다 뭔가에 심술이 난 것처럼 투덜거리며 시선을 돌렸는데, 투덜거리기는 커녕, 더더욱 빤히 쳐다본다. 더 말해 보라는 듯이. 그러면, 어쩔 수 없게 된다. 말할 때마다 대만이 기뻐하는 것 같다. 그러면 더더욱, 어쩔 수 없어진다. 태섭이 빗장을 연 건 23살의 정대만인데, 22살의 송태섭도 같이 나온 것 같다. 그럴지도 몰랐다. 대만을 만난 이후, 단 한 순간도 대만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오래 전에 이렇게 했어야 하는 건, 정말일지도 몰랐다.







“다 내놨어요?”

“어.”


현관 근처에 이불을 내놓은 대만은 미간을 구기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 모습을 힐끔 쳐다보던 태섭이 조용히 창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오늘도 엄청 덥겠네.”

“진짜 가방 안 챙겨 가요? 라커룸에 여분 옷 있는 거 맞아요?”

“맞다니까 자꾸. 네가 내 학부모냐? 엄청 체크하네.”


태섭이 눈썹을 올리며 삐딱하게 쳐다봤다. 왜뭐. 뭐. 대만이 노려보다 시계를 쳐다보았다. 덕분에 마음껏 노려보았다. 그런 게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다고요. 

오늘은 재활 훈련이 없는 날이자, 대만의 회식이 있는 날이다. 전날 자기 전, 내일 들어올 시간을 알려준다는 대만의 말에 조금 설렌 마음이 회식이 있어서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는 말로 와장창 무너졌지만, 있는 힘껏 회복했다. 비록 질투가 났지만(많이). 하루 전 날 알려줄 건 또 뭔가 싶어서 빈정 상했지만(많이). 이겨냈다. 27살의 송태섭은 그럴 수 있었다.

그래서 하기로 한 것이 이불빨래였다.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건지는 몰랐지만, 어렴풋이 느껴졌다. 같이 있는 사람이라고 알리고 싶다는 것. 집에 내가 있다는 것. 정말 유치해서 혀를 깨물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27살의 송태섭은 조금 더 컨트롤에 능한 남자였다. (딱히 상관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나 있을 때 같이 하지? 대만이 여상한 표정으로 물었다. 신발을 신은 뒤, 가벼운 두 손으로 옷을 정리하는 대만을 보자마자 눈썹이 올라갈 뻔했지만, 있는 힘껏 아닌 척했다. 컨트롤에 능할지는 몰라도 여전히 살아있는 질투의 화신이 날 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어딘가에 처박아 넣었다. 차 가지고 갈 거니까 걱정은 하지 마요. 일부러 당당하게 말한 말에 돌아온 건, 걱정은 안 돼. 잔인한 말이었다.


“내놓은 게 다니까, 방에 들어가서 확인하지 마라.”

“알았어요.”

“진짜야. 들어갔다간 콱.”

“콱 뭐요. 들어간 걸 어떻게 알 건데요?”

“홈캠 달아놨다.”


순간 얼굴이 확 붉어졌다. 하마터면 물어볼 뻔했다. 그 화면, 어떻게 보는데요. 


“농담이야. 근데 왜 얼굴이 빨개져?”

“조금, 더워서요.”

“에어컨 켜고 있어. 집에 계속 있을 거면 끄지 말고. 껐다 켰다 하는 게 전기세 더 나오니까. 알지?”


태섭은 알겠다고 말하며 대만의 어깨를 떠밀었다. 얼른 가요. 차도 안 가져 가잖아요. 대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발을 신었다.


“다녀올게.”

“네. 회식 끝나면 연락해요.”

“꼭?”

“네.”

“음….”

“술 많이 마시지 말고요.”

“많이 안 마셔. 내가 넌 줄 알아?”


대만이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며 한 번 더 인사했다. 진짜 간다. 태섭은 손을 흔들었다. 열었다 닫히는 순간에도 눈이 마주쳐서 계속 손을 흔들었다. 어쩐지 신혼 부부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문이 닫힌 뒤에도 계속 손을 흔들었다. 그 손으로, 빨개진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창문을 닫았는데도. 에어컨 앞에 있어도 열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여름 이불이어도 두 사람 것이어서 그런지 세탁가방이 꽤 큰데도 다 들어가지 않았다. 욱여 넣었던 이불을 꺼내고 대만의 이불을 가방에 넣었다. 좋은 냄새가 났다. 아무도 없는데 주변을 힐끔거리다 조용히 냄새를 맡았다. 방에서 이 냄새가 난다는 거지? 대만의 방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원래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 싶은 법이었고, 태섭 역시 그랬다. 그렇지만 이겨냈다. 있는 힘껏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대만이 싫어할 만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말을 잘 듣는 편은 아니었지만, 듣고 싶기도 했고.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세탁방에 도착했다. 세탁기 안에 이불을 넣고 코스를 선택했다. 세탁 시간을 확인한 뒤,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가지고 온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재생했다. 언젠가 설거지를 하던 대만이 이 노래도 틀어달라고 요청한 음악이었다. 낮은 남자 보컬은 영원한 사랑 같은 걸 말하고 있었다. 웃음이 비식 새어나왔다. 이런 스타일의 노래는 쭉 좋아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대만이 20살 때 함께 레코드점에 가서 들었던 음악은 이렇지 않았다. 영원한 거 없다고 말한 대만의 말이 떠오른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저절로 웃음이 사라졌다. 당연한 말이고, 그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제서야 기분이 이상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동영상으로 농구 경기를 본 다음 늘 그랬듯, 대만의 SNS를 훑었다. 어떤 글을 적어 놓았는지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했으나, 매번 봐도 새로웠다. 매일 보는 얼굴도 새로웠으니, 사진이라고 그러지 못할 건 없었다. 셀카 필승 각도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막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잘생겼고, 예뻐. 심장이 두근거렸다.

한참동안 대만을 보다가 SNS 알림을 훑었다. 최근에 올린 사진에는 아직도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잘 지내고 있는 거냐고 묻는 팬들의 안부가 가장 많았다. 발목은 어떤지, 재활은 잘 하고 있는지, 상냥하고 다정한 댓글이 많았다. 이런데도 SNS에 거의 상주하는 잭에게 연락이 없다. 누구냐고, 형이냐고, 호들갑을 떨어야 정상인데. 그러다 마침 한국에 있다며, 여기에 가보고 싶다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아무런 정보를 올린 게 없는데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가겠다는 거지?

폰 화면이 전화로 바뀌었다. 대만이었다. 조건반사적으로 입꼬리가 그냥 올라갔다. 괜히 턱을 매만지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선배.”

-한국에 있으니까 네 직업이 뭔지 잊은 거냐?

“그럴리가 있어요?”

-어디서 네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잊은 거냐고오….

“무슨 일 있어요? 목소리가 왜 이래?”


이상한 건 목소리 뿐만이 아니었다. 밖에 있는 건지, 주변이 시끄러웠다. 지금 시간이면 훈련을 하고 있어야 했다.


-네가 SNS 올린 카페 사진 때문에, 여기 지금 대박 났다.

“네?”

-사람 엄청 많아.


대만이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제가 갔을 때만 해도 한산했던 카페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 외국 사람이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대만의 볼멘소리를 들었다.


-나는 몰랐잖아, 네가 올린 거. 사장님한테 물어보니까 우리 왔다가서 알음알음 사람이 오더니, 최근에는 조금 더 늘었대.


우리. 미친놈처럼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 나오냐? 조용히 웃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그건 선배가 SNS를 잘 안 해서 그런 거잖아요.”

-시끄러워! SNS는 인생을 망치는 거라고!


대만이 소리를 빽 질렀다. 그래서 내 연애가 정대만 하나로 망하고 있는 건가. 그럼에도 억울하지 않은 유일한 것이리라. 


-너 때문에 커피타임 못하게 생겼어. 쉬는 시간에 재빠르게 사서 들어가는데 그렇게 못할 것 같다고.

“아….”

-아?

“그래서 전화한 거예요? 내 생각 나서?”

-네 생각……이라기 보다는, 얌마. 이렇게 된 원인이 너니까…….

“그래서 생각 났다?”

-그렇다……기 보다는, 몰라! 내 커피 어떡할 거야!


태섭은 자꾸 웃음이 나올 것 같은 입술을 말아 물었다. 핸드폰을 테이블에 두고, 고개를 푹 숙였다. 너도 마셔봐서 알지? 되게 맛집이야.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나만 아는 맛집 같은 거랄까. 근데 이제 그런 거 아니라고. 아니게 됐다고. 이어폰으로 들리는 대만의 잔소리가 그렇게 안 들렸다.

세탁이 끝났다는 알림음이 들렸다. 삐-삐-. 그 소리가 끝날 때까지 팔에 얼굴을 묻은 채 가만히 있기만 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는, 얼굴이 뜨거운 게 느껴졌다. 분명히 새빨간 얼굴일 것이다. 이 얼굴을 볼 수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물었다.


“회식 끝나고 데리러 가도 돼요?”


조용히 있던 대만이 되물었다. 왜? 태섭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주먹을 쥐었다. 형의 일상에 있고 싶어서요. 지금 보다 더 많이. 형의 사소한 곳에, 내가 있고 싶어요. 이 말을 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기분 좋아서요. 이 말 한마디 했다고 또 욕을 뒤지게 들었다. 기분이 좋냐…? 나는 기분이 나쁜데, 너는 좋냐…? 그렇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욕 많이 들으면 오래 산다고 그랬다. 정대만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았으므로, 정대만보다 오래 살고 싶지 않았다. 말을 안 한다고 또 욕을 들을 지는 몰랐지만, 하여튼.


“연락할 거죠?”

-네가 하라며.

“데리러 가도 돼죠?”

-…굳이?

“하고 싶은 거면 굳이까지는 아니잖아요.”


대만은 말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끄럽던 핸드폰 너머가 조용해졌다. 온 세상을 막아놓은 것처럼.


-하고 싶으면 해야지.


해가 뜨기 전, 새벽처럼.


-연락할게. 

“네.”

-쉰다고 괜히 돌아다니지 마라. 아끼면 아낄 수록 좋은 게 발목이야.

“명심할게요.”


 태섭은 통화가 끝난 뒤에도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까만 화면이 제 마음 같을 때가 있었다. 그런 적이라고는 전혀 없었다는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온통 어두울 때는 조그마한 빛이라도 눈에 쉽게 띄는 법이었다. 그럴 때는, 그런 것조차 유일한 희망이 되는 법이었다.


[밥은 먹었어?]

[저번에 말했던 거, 생각해 봤어? 바쁘면 천천히 답해도 돼]


태섭의 뒤에 있는 커다란 건조기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다. 이불이 한데 엉킨 채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문을 열고 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태섭은 완전히 건조되어 뽀송한 이불을 하나씩 꺼내어 차곡차곡 개킬 것이다. 이때 만큼은 똑같은 향기가 나는 이 순간이 태섭을 잠시나마 행복하게 만들고, 아주 오래 기억될 것이다. 어떻게 되더라도.


[할게 대신, 비밀로 했으면 좋겠어]

[괜찮아?]


달재에게 보내는 문자를 전송한 뒤 핸드폰을 놓고, 밖을 쳐다보았다. 뜨거운 햇빛이 작열하고 있는 거리를 쳐다보다, 기지개를 켰다. 과거에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장님이 너한테 보여주라고 해서.]

[사진]

[그거 내가 쓴 거 아니다. 아니라고 했어. 오해하지 마라.]


“하하!”


테이블에 엎드린 태섭은 손에 쥔 핸드폰을 꾹 잡고 웃었다. 눈을 감고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할 텐데, 까만 매직으로 써놓은 [고마워요♥] 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힌 테이크 아웃잔이 자꾸 보였다. 하얀손도. 아닌 걸 알면서 대만이 보내는 하트라고 생각하게 되는 제 마음도. 

사진을 저장한 뒤, 언제든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를 눌렀다. 어차피 과거도, 지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