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지 않더라도, 03

태섭대만



3.

MY MOOD IS YOU






 두 사람은 대만이 먼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 태섭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빠른 것 같았다. 손바닥 전체가 따뜻했다. 이 온기는, 대만의 집에 도착한 뒤에 나누었던 악수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오랜만이라는 인사 뒤에 숨겼던 보고 싶었다는 말도. 하지 못한 말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더 오랜 시간 뒤에 만났을 때도 하지 못한 말이었다. 고작 몇 시간 가지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사실이긴 했다. 오히려 더 보고 싶었다. 옛날에도 그랬다. 데이트 하는 날, 얼른 보고 싶어서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는 시간은 저 멀리서 느긋하게 걸어 오는 대만을 보면 늘 뒷걸음질을 치며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도록 만들었다. ‘왜 자꾸 쳐다봐? 하고 싶은 거 있냐?’ 대만이 물을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하루 종일 보고 싶었던 셈이 되어 버려 무겁게 느껴지는 마음을 가볍게 하고 싶어서.

 

“일단 들어와.” 


 대만이 한 걸음 물러섰다. 태섭은 보고 싶었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 조심스럽게 대만의 손목을 놓은 뒤, 대만이 내어준 만큼 들어왔다. 아쉬운 온기가 묻어 있는 손으로 택배 박스를 잡고 들어 올렸다. 예상하지 못한 무게에 휘청거릴 뻔했으나, 가까스로 무게 중심을 잡았다. 같이 들어줘? 대만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무거워 보이는데. 다시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쪽팔리고 싶지 않았다.

 

“오늘 안으로 다 할 수 있는 거 맞냐?”

“네.”

“안 될 것 같은데.”

“그럼 내일까지 하죠 뭐.”

“아니? 절대 오늘 안으로 다 끝내.”


 태섭이 웃었다. 12시 전까지 다 한다는 말이라고.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덧붙이는 말이 퉁명스러웠다. 왜 내가 더 절실한 것처럼 말하냐고. 심지어는 박스 테이프를 뜯은 칼로 삿대질을 했다. 어허. 조심.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저 손으로 난도질을 당하고 싶었다. 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고 구차한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그 안에 있는 걸 직접 확인해줬으면 싶었다. 이런 건 붙잡고 매달리는 게 아니라 도망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재빠르게 고개를 붕붕 저으며, 비행기 안에서 수도 없이 했던 다짐을 떠올렸다. 

 멋있어 보이는 가오를 포기하지 말자. 도망은 정대만이 헤어지자고 했던 그 날 한 번이면 족하다.


“조심하지 말라고?” 


대만이 낮은 목소리로 물으며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네. 뭐든지요.”

“아까는 조심하라더니?”

“선배가 위험해봤자 얼마나 그럴까 싶어서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만이 죽일 듯이 노려본다. 태섭은 전혀 무섭지 않은 대만을 쳐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대만은 순간적으로 손을 줄 뻔했다가 고개를 저으며 칼을 내밀었다. 고맙다고 말한 태섭은 아까 전의 대만과는 다르게 거침없이 내용물을 뜯었다. 아무래도 나는 조심해야 될 것 같지…? 대만은 북북 소리를 들으며 상자 안에 있는 내용물을 힐끔거렸다.

 

“안에 든 게 왜 이렇게 많아…?”

“이왕 쓰는 거 잘 써보려고 제대로 된 걸 샀죠.”

“살림이라도 차리냐?”

“그럴까요?”


 지금 이 순간은 조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태섭을 노려보던 대만이 찰싹 소리가 나도록 어깨를 때렸다.


“아야. 아파요.”

“아프라고 때린 거거든?”

“진짜 아파요.”

“…아프라고 때렸다고.”

“아프다고요….”

“…….”

“아프,”

“뭐 이런 걸로 엄살이야, 옛날에는 더 세게 때렸어도 말 안 했으면서.”

“그때는 당연히 선배랑 내가,”

“이제부터조용히조립해아무말도하지마12시전에다끝낼거야.”


 대만은 정색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옛날 일을 들먹이는 저 입을 할 수만 있다면 꿰매고 싶었으나, 그러는 대신 제 입을 꿰맸다. 먼저 그 말을 꺼낸 건 제 입이었다는 걸 깨달은 뒤에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했다.

 살림이라니. 이런 말을 왜 아무렇지도 않게 해?

 설명서를 펼친 태섭이 조용히 글자를 훑어본다. 대만은 그런 태섭을 힐끔거리며 태섭이 나열하는 조립품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나중에는 같이 설명서를 보며 먼저 해야 할 것을 배치했다. 전체를 파악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대만이 잘했다. 태섭은 그런 대만을 알고 있어서, 이걸 하고 저걸 하고 갯수를 세며 중얼거리는 대만을 보며 고개만 끄덕였다. 분명 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를 거다. 그렇다는 건, 대만을 빤히 볼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이었다. 이런 걸 놓칠 리가 없고 그럴 수도 없는 태섭은 숨을 죽인 뒤 조용히 대만을 쳐다보았다. 집중하고 있는 눈과 조잘거리는 입술 그리고, 제가 새겨 놓은 흉터까지, 할 수 있는 한 느리고 자세하게 눈에 담았다. 옅은 흉터가 남아 있는 턱에 드문드문 수염이 나있었다. 그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제 턱을 매만졌다. 손가락 끝에 까슬한 수염이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저절로 침을 삼켰다. 

 이걸, 옛날에도 보고, 


“네 앞에 있는 거 이리 줘 봐. 아무리 봐도 이때 써야 해.”

“…….”

“얼른 달라, …고.”


 만진 적이 있다.


“미안.”


 눈이 마주쳤다. 손, 역시. 태섭의 손과 닿자마자 화들짝 놀란 대만이 사과를 했다. 잠시 멍하게 있던 태섭이 고개를 저었다. 


“이거 어디 둬요?” 


 눈을 깜빡이는 대만과 고작 손 닿은 걸로 어색하게 구는 대만이 서운한 제 마음을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여기.”


 대만은 제 앞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인 태섭이 조심스럽게 조립품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설명서로 시선 고정. 그런 태섭을 보는 내내 눈동자를 움직였다. 너무 조용해서, 굴려가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조립품을 나열하니 어느새 11시였다. 문제는, 설명서를 자세히 보니 천장 고정형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조용히 조립을 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대만은 이런 걸 알고 주문했을 태섭을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천장 소음이 있을 수도 있어서 못한다니. 대한민국 아파트 구조 정말 형편 없네요.”


 어깨를 으쓱이며 뻔뻔하게 하는 말에 결국 울컥했다. 


“대한민국 사람이 부동산에 얼마나 예민한지 네가 아냐?” 


 태섭은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어서 고개만 갸웃거렸다. 대만의 입술이 댓발 튀어나왔다. 전셋집이잖아요. 더 튀어나왔다. 살림을 차릴 수도 있을 집이어서 큰 행거 샀어요. 진짜예요. 대만이 고개를 홱 돌렸다. 결국 대만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빌었다. 대만이 그만 하라며 성질을 낼 때까지 손바닥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못한 거였다. 

 두 사람은 다리를 쭉 뻗을 수도 없는 태섭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만은 넓고 깨끗한 거실을 놔두고 쭈그려앉아 이야기를 하는 게 조금 어이가 없었으나, 어른답게 굴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방의 기분 때문인지 어쩐지 마음이 편해져서 나가서 이야기 하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태섭 역시 그렇게 보였다. 그런 태섭을 빤히 쳐다보지 못하면서 눈에 담기 위해 계속 힐끔거렸다. 조금 뜨겁고 간지러운 듯한 볼을 문지르면서.


“술 다 깬 것 같아요.”


 곧, 정색하며 노려봤지만.


“두 잔 마셨다며.”

“네.”

“네 주량 그 정도 아니잖아.”

“기억하네요?”

“그걸 어떻게 몰, …왜 웃어?”

“그냥요.”


 대만은 묘하게 두근거림과 동시에 꽁깃해지는 마음을 펴기 위해 두 팔로 다리를 끌어안았다. 왼쪽 무릎에 턱이 닿자마자 태섭의 발목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아무리 심각한 거 아니여도 재활치료 중이잖아. 자제해.”

“네.”

“네 관리 제대로 하라고 잔소리 하는 거야.”

“알아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걱정은 무슨.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는 건데 고맙다는 말이 나오냐 너는?”


 태섭이 대답 대신 빙긋 웃었다. 대만은 저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리 사이로 입술을 숨겼다. 자꾸 기분이 나빴다. 하고 싶은 말이 점점 불어나 목구멍을 답답하게 만들었으나, 다리를 꽉 안으며 참았다. 이 방에 어떨 때 들어오는 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그런데,


“아쉽겠네?”

“뭐가요?”


 어른답게 굴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당사자가 앞에 있어서 그런지 쉽지 않았고, 말을 내뱉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이야기 잘 통하는 달재랑 같이 있었으면 더 편했을 거잖아.”


 태섭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걸 보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확실히 여유로워지고 말로 하는 표현이 늘어나긴 했으나, 그럼에도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걸로 느껴졌다. 재활 이야기나, 다쳤을 당시 이야기나, 그 뒤의 일 같은 것들. 그래서 괜히 화가 났던 건지도 모른다. 선배지만 헤어진 전 애인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너랑 편하게 속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뻔뻔하게 이런 생각이나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랬을지도 모르죠. 동갑인 데다가, 친구니까.”


 그러니까, 서운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걸 알면서도, 그게 잘 안 된다.


“내 말 기억하죠. 거짓말 안 한다고.”

“…그건 갑자기 왜 말하는데.”

“달재가 혼자 있었어도 선배한테 먼저 연락했을 거예요.”

“거짓말 하지 마.”

“그런 거, 안 해요. 할 수 있어도, 선배한테는 안 할 거예요.”


 …기대 같은 거 역시, 하면 안 되는데.


“다짐하고 왔어요. 그러겠다고 왔다고요.”

“…….”

“왜 대답이 없어요? 거짓말 같아요?”


 올곧은 시선. 대만은 그 눈을 바라본다. 이 눈을, 기억한다. ‘좋아해요.’ 이 말을 처음 하던 18살의 송태섭은 지금처럼 정대만을 빤히 쳐다보았다. 흔들림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듯이. 앞으로 쭉, 그럴 거라는 듯이.

 19살의 정대만 역시 그랬다. ‘좋아해. 송태섭.’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좋아하겠다고. 무언가를 쉽게 좋아하는 법이 없고 그런 만큼 그걸 싫어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어진다고. 

 좋아한다는 건, 오랫동안 볼 수밖에 없는 일. 그런 만큼 송태섭을 오래 보았다. 그래서 안다. 지금 송태섭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니.”

“…….”

“앞으로,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 말해.”


 그러니, 기대는 욕심이라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다.


“나한테 먼저 연락했을 거라는 말이 고마워서, 너 있는 동안에는 뭐든 해 준다. 활용 당해줄게.”


 그럼에도 기뻤다. ‘같이 해요.’ 이런 말을 처음 들어서. 


“센터에 데려다 달라거나, 차를 빌려 달라거나, 어디 가고 싶다거나, 하고 싶은 게 있다거나. 말하면 들어줄게.”

“뭐든지, 다요?”


 엉망진창인 곳이어도, 있고 싶었어.

 

“어.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면.”


 그러니 해야 하는 건, 너에게서 요구 사항을 듣는 것.


“진짜죠.”


 그걸 내가 해주는 것.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


“어.”


 선배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


“거짓말 아니죠.”

“어.”

“선배가 말한 거예요.”

“그렇다니까. 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


 대만은 입을 꾹 다문다. 왜 말을 하다 말아요? 태섭이 물었다. 조금, 조급한 목소리였다. 대만은 고개를 저었다. 태섭에 비하면 여유로웠다. 그렇게 해야만, 마음을 숨길 수 있었다. 문득 태섭의 여유로움 역시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건, 빠르게 고개를 젓도록 만들었다.

 기대 같은 건, 바라는 게 있을 때 하는 것. 이건, 송태섭과 사귈 때의 정대만이 숱하게 했고 동시에, ‘우리, 헤어지자.’ 정대만의 입으로 이 말을 하게끔 만든 것이었다. 








“잠이 덜 깼어요?”

“내가 말했지. 토요일은 아침 운동 쉰다고.”

“나는 하고 싶은데.”

“…….”

“집에 갈까요?”


 진이 빠진 상태로 나온 대만은 어느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태섭을 쳐다보다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고개를 젖혔다. 손이 바들바들 떨릴 때까지 주먹을 쥐었다. 아오, 진짜.


“가자. 가자고. 가자. 그래. 가자.”


 대만은 기합인지 주문인지를 모를 것을 되뇌이며 태섭을 노려보았다. 딱 다섯 바퀴만 걷고 와요. 제 옆에서 말하는 태섭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도저히 욕을 할 수가 없었다. 누가 그랬다. 웃는 얼굴에는 침 못 뱉는 거라고. 그래서 그랬다. 다른 뜻은 없었다. 기분 좋은 듯이 웃고 있는 얼굴에서 시선을 못 떼는 것 역시. 이런 것에 집중하느라 가끔 먼저 앞서가거나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 태섭이 몰래 사진을 찍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뭐든 말해. 이 말을 들은 태섭은 대만을 야무지게 활용했다. 마법의 주문은 아닐 텐데 그랬다. 어찌나 말하는 게 많은지, 대만은 순간 램프의 요정이라도 된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뭘 말하기 전에 반드시 선배라고 불러서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선배 소리만 들으면 왜 부르냐는 퉁명스러운 대답부터 나왔다. 그러면 태섭은 꼭 이렇게 물었다. 싫은 거 아니죠? 대만은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고맙다고 말한 뒤 웃으며 제 옆에 서는 태섭과 똑같이 웃는 것도. 

 태섭이 말하는 건 대부분 사소한 거였다. 음식을 하고 있으면 뭘 갖다 달라던가, 찾아 달라던가, 티브이 채널을 돌려 달라거나, 빨래 같이 개키자던가. 여태 한 번도 이런 사소한 말을 들은 적이 없어서인지 이런 게 상당히 낯간지럽게 느껴졌으나, 시간이라는 건 참 신기해서, 이제는 태섭이 집에 있는 게 어색하지 않듯이 이것 역시 적응이 되었다. 

 이 적응은 뿌듯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송태섭이 원하는 걸 해준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아주 오래 전,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안달난 적이 있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의 태섭은 입 꾹 다물고 혼자 알아서 하려고만 했었다. 고집불통. 심술쟁이. 인생에 원웨이밖에 없는 놈. 이런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일어나서 태섭을 보고, 인사를 하고, 어떤 얼굴인지 살핀다. 웃으면 같이 웃고, 무표정일 때는 같이 무표정하다.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이나 든다.

 이렇게 지내는 거… 괜찮지 않나? 송태섭도 편안해 보이는 것 같고.

 이런 생각이 들면, 가슴 한 구석이 아팠다. 태섭에게 하지 못한 말이 기를 쓰고 나오려고 했다. 나는 네가……. 네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너 다 잊은 거야? 어째서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수 있어? 

 그래봤자 하루도 못 가는 게 대부분이었으나,


“몇 시에 집에 오는지, 매일 연락해 줘요.”


 이 말은 저 생각을 죄다 구겨 더 이상 나올 수 없도록 만들었다.


“뭐?”

“말한 대로예요.” 


 재활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하는 말이 저거여서, 대만은 잠시 태섭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태섭은 평온해보여서, 저 말이 완벽하게 인지가 안되는 제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매일?”

“네.”


 이건 좀 확실히,


“……비슷할 텐데?”

“그래도요.”


 이상하지 않나…?


“얼른 가요.”

“…어.”

“태워다줘서 고마워요.”

“어…. 그래.”


 차 문을 닫은 태섭은 손까지 흔들었다. 저도 모르게 손을 흔든 대만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핸들을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헷갈려 눈만 깜빡이다 기어를 바꾸고, 액셀을 밟았다. 운전을 하는 내내 핸들을 손가락으로 쳤다. 톡톡 한 번에, 송태섭. 톡톡 두 번에, 무슨 생각이지? 톡톡 세 번에, 내가 지 애인이야 뭐야? 톡톡 네 번에, 고개 푹 숙임.


“너 아침부터 되게 힘들어 보인다?”


 팀 동료 진이 물었다. 대만은 스트레칭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냐.”

“아니면 다행이고.”

“힘든 거 없어.”

“그러면 다행이고.”

“없어야 되는데, 진짜.”


 진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팀의 에이스 정대만으로 말할 것 같으면, 경기를 치룰 때와 팀의 승리나 패배를 제외하면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편이었다. 표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나, 웬만하면 그랬다. 몇 년 동안 봐온 바에 의하면 그랬다. 


[오늘 조금 늦게 끝날 것 같아요. 선배 훈련 끝나는 시간이랑 비슷할 것 같은데.]

[나 데리러 와 줘요.]


 그랬는데.


“대만아…. 힘들어?”


 대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안 힘들어. 속으로 백 번을 중얼거리며 타다다닥 문자를 썼다. 송태섭너지금나랑뭐하자는거지?꼭수작거는새끼처럼보이거든?나바보아니야.너진짜미쳤냐?미친거냐고?뭐하자는건데? 여기까지 썼다가, 한 글자씩 천천히 지우면서 고개를 푹 숙인 뒤, 한숨을 뱉었다. 


“왜. 네 전 애인한테 연락 왔어?”


 한숨만 푹푹 내쉬는 대만을 보다 거의 공포에 질린 진은 새하얀 얼굴로 물었다. 정대만의 전 애인(진짜 전 애인 not 송태섭)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만을 너무 좋아해서 진을 괴롭혔던 사람이었다. 혹여나 다시 연락이 올 까봐 바들바들 떨고 있을 때 천천히 지우기 버튼을 누르고 있던 대만이 고개를 끄덕-이려다 저었다.


“너 지금 누구 생각하냐? 아니, 말하지 마.”

“아니야?”

“아니야 이 미친. 절대 아니야.”

“진짜…?” 

“아니라고.”

“진짜지…?” 

“진짜라니까? 한 마디도 말하지 말, 아악!”

“왜왜!”


[송태섭너지금나랑뭐하자는거지?꼭수작거는새]


 문자를 받은 태섭은 웃음을 참으며 몸을 웅크렸다. 무슨 일 있냐는 트레이너에게 아무 일 없다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 사이, 핸드폰이 몇 번이고 진동했다.


[문자 잘못 갔어.]

[잘못 갔다고.]

[연락해.]

[너한테 한 말 아니야. 그 말 아니야. 아니라고 했어, 내가.]


 태섭은 거의 숨 넘어갈 듯이 배를 잡고 웃었다. 송태섭이라는 이름이 떡하니 있는데 나한테 한 말이 아니라니. 태섭을 보고 있던 트레이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웃으시는 거 처음 봐요. 좋아하는 분에게 연락이라도 받으셨어요? 태섭은 고개도 못 들고 고개만 끄덕였다. 미친듯이 끄덕끄덕. 귀여워서 죽겠다며 끄덕끄덕.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다며 끄덕끄덕. 그렇게 고개만 끄덕이다 대만의 말대로 진짜 수작을 걸어보기로 했다.


[저녁에 밥 해줘요. 형이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그날 저녁, 태섭은 대만에게서 들을 수 있는 욕은 다 들었다. 차에 올라탔을 때부터 장을 보고 집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욕을 들었다. 이렇게 말 많은 대만을 보는 건 대만이 대학생이 된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때보다 훨씬 차분한 얼굴로 운전을 하고, 어른이 된 하얀 손으로 카트를 끌면서 수작이라는 게 그런 뜻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설교했다. 국어 사전을 통째로 외운 듯한 설교를 하다가 뭐 먹고 싶냐고 묻고, 난 이거 먹고 싶다고 말하다가, 할 수 있으면 하랬더니 째려보기만 했다. 그래봤자 하나도 안 무서웠다. 맛있냐? 맛있어? 어때? 괜찮아? 툴툴거려도 잘생기고 귀여운 얼굴이 어떻게 하면 더 잘생겨지고 귀여울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네. 엄청 맛있어요. 내일 또 먹고 싶어요. 내일은 네가 해. 나 요리 하기 싫어.


“태섭아, 이거 맛있다.”

“많이 먹어요.”

“어. 너도 얼른 먹어.”

“네.”


 태섭은 대만이 부른 제 이름을 되새기고, 대만이 웃으면 같이 웃고, 대만이 말하면 같이 말하느라 제대로 먹지 못했다. 매일매일 그랬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살이 좀 빠졌다. 트레이너가 웨이트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근육이 빠지는 것 빼고는 다른 건 아무것도 빠지면 안 된다며 잔소리를 했다. 태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납득 가능한 말이었다. 그래서 대만에게 연락했다.


[나랑 같이 점심 먹어요.]


“왜? 이제는 매일매일 같이 점심 먹자고 그러지?”

“그래도 돼요?”

“아니? 나 이래뵈도 우리 팀 사람들이랑 잘 지내거든?”

“네에.”

“인기도 많거든? 다들 나랑 밥먹고 싶어 하거든? 왜 나가서 먹냐고 붙잡는 거 뿌리치고 왔거든?”

“네에. 좋으시겠어요.”

“성의 있게 대답해라?”

“먼저 말 꺼낸 건 선배고 잘 대답했는데 왜 정색을 하지?”


 대만이 대놓고 노려보며 입술을 내밀었다. 하여튼 한 마디도 안 지지. 태섭은 구시렁거리는 대만을 힐끔거렸다. 처음 왔을 때보다 살이 조금 오른 얼굴이 보기 좋아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건지, 왜 웃냐고 물었다. 


“그냥요.”

“또 그냥이라고 말하네. 앞으로 그 말 금지야.”

“왜요?”

“궁금하잖아. 근데 너는 말을 안 하고.”

“좋아서라는 말을 듣고 싶나 봐요.”

“…….”

“커피 사주세요.”


 다른 곳을 쳐다보던 대만이 입술을 말아물고 고개를 홱 돌렸다. 대만이 그러는 덕분에 귀 끝이 잘 보였다. 태섭은 그 귀를 빤히 쳐다보며 제 귀를 만지다, 아무 말 없이 앞서가는 대만의 뒷모습을 보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쉽게 기대한다. 이러면 쉽게 실망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정대만은 실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 단골 카페. 라떼 괜찮은데 너는 별로 안 좋아하지.”


 직원과 익숙하게 인사를 나누는 대만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실 거지? 말간 얼굴로 물어보는 대만을 보며 고개를 젓는다. 


“라떼 마실 거야?”

“네.”

“웬일이래.”


 그러면서 덧붙인다. 마셔 봐. 꽤 괜찮아. 태섭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사이도 꽤 괜찮냐는 입 안에 있는 질문을 꿀꺽 삼킨다.

 

“뭐 이런 걸 찍냐.”

“단골 카페에 데리고 와 줬으니까 기념으로 남겨야죠.”

“알긴 아냐?”


 테이크 아웃잔 두 개를 붙이고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SNS에 올린 뒤 커피를 마셨다. 어때? 괜찮냐? 어린 아이처럼 칭찬을 바라는 것 같은 얼굴을 한 대만이 물었다. 태섭은 이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 마신 라떼 중에 제일 맛있어요.” 


 대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연하지. 나 아무 거나 안 먹어. 알지?” 


 이 말에, 태섭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끄덕이는 고개는 덤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이런 걸 다시 바라게 될 줄은 몰랐다. 몰랐어서, 매일매일 안다고 말하고 싶다. 자꾸, 욕심을 부리고 싶다.







 태섭은 조립이 끝난 행거 옆에 이불을 펼친다. 천장을 멀뚱멀뚱 바라보다, 이불을 올렸다가 내리고, 핸드폰을 눌렀다가, 엎드렸다가, 다시 정자세로 눕는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거실로 간다. 대만의 방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제 방을 보면서 자리에 앉는다. 행거 조립을 하지 못하고 거실에서 잔 이후로, 이전에는 몰랐던 모난 마음이 느껴진다. 고작 하룻밤, 어른답게 굴어야 되는 기분인 방에서 안 잤다고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조립을 다 하고 저 방에서 잤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었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다. 정대만을 처음 본 그 날. 고작 그 하루로, 마음의 행방이 줄곧 똑같으므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한다. 그럼에도 자꾸 어른답지 않게 굴고 싶다. 진지하되 가볍게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이 자고 있는 저 방의 문을 열고 싶다. 열고, 다짜고짜 묻고 싶다.

 형은 무슨 생각으로 나랑 지내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벌써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은 다 잊은 거예요? 나는… 자꾸 생각나는데. 그렇게 다짐하고 왔어도 자꾸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그러다 보면 후회되고, 그립고, 괴로운데. 형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내가,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요?

 핸드폰이 울린다. 달재의 연락이다. [대만 선배랑 잘 지내나 봐? 그땐 잘 모르겠다더니] SNS에 올린 커피 사진을 보고 연락했단다. 코멘트 없이 사진만 올려서 네가 어떻게 아냐고 물었더니 저기, 대만 선배 구단 근처에만 있는 카페라고. 예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다고. 태섭의 얼굴이 순식간에 무표정해진다. 무슨 이야기를 했어? 그때의 선배도 오늘처럼 웃었어? 왜…? 묻고 싶은 걸 꾹 참고 핸드폰을 뒤집는다.

 그때. 달재랑 만났던 날. 달재가 물었다. ’대만 선배랑 잘 지내?’ 태섭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때는, 대만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는 줄 알았다. 금방 있다가 갈 거 아니니까. 잘 지내야 하니까. 그러다, 헤어지자고 말한 뒤 먼저 선후배로 지내자고 한 게 대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건 죽어도 못할 줄 알았는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어서 놀랐었다. 

 왜 그랬을까. 어째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헤어지고 1년 뒤에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안녕.’ 지금보다 훨씬 더 말간 얼굴로 인사를 하던 정대만이 인사했다. ‘잘 지냈냐?’ 먼저 내민 손 역시 기억한다. 그 손을 제대로 잡는데까지 걸렸던 시간과 잘 지냈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버틴 시간을 기억한다. 이렇게 같이 웃고 떠들 수 있게 된 시간을… 떠올린다. 그때의 시간은 실제로는 없는 시간. 송태섭의 시간만이 존재한다. 그때의 정대만은 없는 사람이다. 모른다. 그저, 태섭의 상상과 힘이 사라진 과거 속에서만 존재한다. 

 혹시, 애를 쓴 걸까.

 지금도, 그러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꺼지고 싶은 느낌이다. 그럴 수 없어서 급하게 숨을 들이마신다. 이제는 정대만의 향기인지, 제 향기인지 모를 냄새를 몸 속 깊숙한 곳까지 들이마신다. 빠르게 뛰던 심장이 조금씩 느려진다. 들끓던 감정이 가라앉으면, 아주 조그마한 섬광 같은 게 스치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 섬광이, 태섭의 눈을 뜨도록 만들었다. 

 어떤 기억의 빗장이, 천천히 열린다.

 헤어지자고 말할 때의 대만을 떠올린다. 생각하기도 싫어서 오랫동안 기억 속 창고에 가둔 채 잘 꺼내지 않았던 유일한 정대만이다. 그때의 정대만을 생각한다. 눈썹과, 눈, 코, 입술, 입꼬리와 목소리 같은 것. 정대만은 송태섭의 시간에 있다. 그때의 정대만은 있는 사람이다. 알 수 있다. 태섭의 현실에 있었으니까, 존재하던 사람이다.


“…아오씨, 깜짝이야. 뭐하냐? 도라도 닦는 거야?”


 잠이라고는 든 적 없는 것처럼 뽀얀 대만이 태섭의 앞에 나타났다. 온통 어두운 와중에 유일하게 빛을 달고 있다.


“뭐하냐니까?”

“…….”

“말…, 걸지 마?”

“…….”

“미안. 이미 봤는데 모르는 척은 못하겠다.”


 대만이 당장이라도 무슨 일 있냐고 물을 듯이 다가온다. 태섭은 그런 대만을 물끄러미 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배.”

“어.”

“괜찮아요?”


 이 말 역시, 어딘가에 버려둔 채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미간을 구기는 대만을 보면서 긴 숨을 뱉은 태섭은,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창고 속에 가둬 놓았던 5년 전의 대만에게 난도질당한 심장에 손을 올렸다. 그 손이 떨렸다. 얼굴을 빤히 보고 있던 대만의 시선이 손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 손을 감추고 싶지 않았다. 보라면 보라지. 한심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하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싹이는 입술이 뱉지 못하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만약에……, 애를 쓰고 있는 게 아니면? 선배도 나처럼 미처 몰랐던 무언가를 바라는 게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