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네가 말한다.
삿포로에 갈까요?
대답을 바라고 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저 말을 할 때 너는 나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 곳을 바라보면서 말한 너는 눈도 깜빡이지 않는다. 네가 그러는 동안 나는, 너를 쳐다본다. 아주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 곳을 바라보는 너는 편안한 풍경인 것 같았고 동시에, 금방이라도 스쳐 지나갈 바깥 풍경인 것 같았다. 그래서 대답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
무엇인지 모를 이유로 대답하는 나는 그제서야 움직이는 네 눈을 보고서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카락을 헤집는다. 왜냐고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그저, 글쎄. 그렇잖냐, 네가 나한테 어딜 같이 가자고 한 적이 있어야 말이지. 두 번 물어도 같은 대답을 했을 거라는 어렴풋한 생각이 곧 사라진 건, 등을 돌린 너 때문이다. 나를 보지도 않는 너는 새빨개진 귀 끝을 연신 문지른다. 그러고 한참동안 있던 너는, 아까와 똑같은 곳을 보고 있을까.
눈이 엄청 많이 내린대요.
모래밭 안으로 푹푹 들어가는 신발코를 쳐다보며 말하는 너는 몇 번이고 목울대를 움직인다. 나는 너의 옆에 서서 천천히 걸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11월에도 눈이 오는 곳이래, 거긴. 너는 짧게 웃는다.
왜 웃어?
너는 고개를 젓는다.
그냥요.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이유가 있어 보인다.
뭔데, 빨리 말해.
네가 나를 쳐다본다. 잠깐 마주쳤다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시선을 쫓는다. 몸을 앞으로 빼 쳐다보는 나를 보는 너는 단번에 왼쪽 눈썹을 올린다. 그리고 또 먼 곳을 쳐다본다. 달아나기를 반복하는 시선을 보며 대답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네가 본 어딘가에 답이 있다. 그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너의 시선이 닿은 그 어딘가에 언제 갈 수 있는지 물어보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결국에는 갈 것이다. 그것 역시, 어렴풋이 느낀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그 언제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하는 건지는 몰라도. 그 모르는 시간에, 네가 저 먼 곳으로 가게 될지 몰랐어도.
Keith Jarrett - I Loves You Porgy 를 듣다.
2.
저, 미국으로 가게 됐어요.
그날, 삿포로에서는 첫 눈이 왔다. 너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집을 나서기 전, 어머니가 틀어놓은 티브이 뉴스에서 들은 일기예보를 떠올렸다. 일본 전역의 날씨를 전하는 기상 캐스터는 훗카이도에 첫 눈이 예보되어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조금 웃었다. 일상을 이야기하는 듯한 목소리가 바뀐 것도, 훗카이도 라는 말을 꺼낸 순간 부터였다. 그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조금 더 올라가는 입꼬리. 부드러워지는 눈썹. 더욱 더 또렷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동자. 당신 역시, 누군가가 저 곳에 가자고 했을까. 그럼 나도, 네가 말한 그 순간에 저런 얼굴로 웃었을까. 그렇다면 너도 나처럼, 기분 좋아보이네 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 나를 빤히 보는 너를 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을 본다. 이미 바닥인 얼굴을 봤기 때문에 모든 걸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너는 도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저런 생각은, 저 말을 들은 순간 아침에 들은 일기예보나 떠올리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은 그저, 삿포로에 첫 눈이 온대. 궁금한 것은 그저, 이 말을 했을 때의 너. 아무것도 들어주지 않는 너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던 너는 그제야 미동한다. 굳게 다물린 입술이 천천히 끄덕이는 고개와 달라서, 너의 어깨를 잡을 수밖에 없다. 내 손에 잡히고도 남는 어깨는 조금 차갑다. 내 손이 차가운 건지도 모른다. 내 손가락인데도, 쉽게 움직일 수가 없다. 그래도 두드리는 건 할 수 있어서, 그건 한다. 잡지 않더라도 닿아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괜찮을 수 있는 걸까, 안심할 수 있는 걸까. 이런 거나 생각하면서.
너는 눈을 깜빡인다. 몇 번이고. 느리게. 나는 그 눈을 본다. 사라지고 싶지 않아. 네 눈이 깜빡이는 찰나에 한 생각은 너에게 닿지 못한다. 네가 나를 보지 않을 때 할 수 없는 말이 늘어난다. 생각이 많아진다. 네가 나를 보면서도 할 수 없는 말이 생긴다. 생각이 늘어난다.
네가 미국으로 가는 날에 삿포로에서는, 폭설이 내렸다. 다행이지, 여긴 도쿄라서 비행기 연착이 될 일이 없으니. 너를 배웅하면서, 하지 못할 말을 생각한다. 가족과 함께 있는 너를 본다. 네 어머니의 어깨를 두드리고, 네 동생의 어깨를 살짝 안았다가 놓는 너의 팔을 본다. 무심해 보이지만 속을 챙기고 있는 눈동자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해야 할 말은 하는 입술도. 너의 피어싱. 머리카락. 점퍼. 청바지. 운동화. 그리고. 나를 보는 너.
도착하면 가족들한테 안부 전하고.
뭐 그런 당연한 말을 하냐는 너를 보면서, 주머니 안에 욱여넣은 편지를 꽉 쥔다. 가족들에게는 했을 말을 나에게는 하지 않는 너를 보면서, 편지를 쥔 손을 꺼내어 흔든다. 이런 건, 알 수 없을 텐데. 아무리 너라도, 알 수 없을 텐데. 어떤 걸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뭔지를 생각하면서, 마지막까지 어떤 말도 하지 않는 너를 본다. 뒷모습을 본다. 잠시 멈춰서는 너 때문에 한 발자국 내딛었다가 없었던 발걸음으로 만드는 보폭 사이로, 어떤 것을 떨어뜨린다. 네가 바라본 그 곳을 거기에서도 볼 작정이냐고. 그럴 작정이면 그곳에, 내가 있어도 되냐고. 나는 사라지는 게 뭔지 알아. 그건, 텅 비는 것이 되어 버리는 거야. 아주, 외롭게 되어 버리는 거야.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늘어난다.
삿포로에 갈까요. 너는 그 말만 했을 뿐인데. 너를 보내고 돌아가는 길. 춥다고 어깨를 움츠리는 녀석들을 본다. 텅 빈 너의 자리를 보면서 어깨를 편다. 그런다고 네가 있게 되는 것이 아닌데도. 알면서도 한다.
눈이 왔으면 좋겠다.
에에, 기적 같은 일을 바라시네요.
언제고 바랄 수 있는 게 그런 일이야. 아주, 다행이지. 네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거든, 그런 건.
Keith Jarrett - Be My Love 를 듣다.
3.
그해 겨울은 처음인 것이 많았다. 누군가를 배웅했고, 다른 시간을 찾아봤다. 자주 다른 곳을 보았고, 가끔 다른 생각을 했으며,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럴 때면, 네가 떠올랐다. 이따금 너는 하늘을 훔쳐보듯이 쳐다보았다. 그러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굴었던 너의 옆모습이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듯해서, 못본 척을 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걸음을 옮기고,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것처럼 눈길조차 주지 않는 너를 보면서 나 역시, 모르는 척을 했다. 숨길 수 없는 걸 몰래 하고 싶다는 건 어떤 거냐? 묻지 않은 질문은 사라지는 건줄 알았는데, 참 이상하지. 너에게 궁금했던 것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아. 하늘을 쳐다본다는 게 생각보다 낯간지러운 일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아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머무는 질문은 주인 없이 숨을 죽이고 있다. 이 질문은 연락없는 너와 닮았다. 그 질문이 나에게 물어본다. 너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지? 그럼 나는 대답한다. 글쎄.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기억하는 것이 일이라면 그렇게 할 거야.
시간이 지나간다. 흘려간다. 스쳐 지나간다. 머무르지 않는다. 습관처럼 챙겨보는 일기예보와 자연스럽게 먼저 보게 되는 훗카이도, 삿포로 글씨. 이런 것이 기억된다. 쌓인다. 머무른다. 네가 삿포로에 가자고 말했던 계절이 지나가도. 그 계절이 아니게 되어도. 조금 빨갛던 너의 귀와 코 끝을 떠올리는 일은 너를 겨울속에서 살도록 만든다. 네가 태어난 여름과는 완전히 정반대인 그 계절이 네가 된다. 하지만, 그 어떤 계절이라도 좋으니, 푸른 잎사귀와 닮은 네가 있는 계절을 보고 싶어.
그날. 학교에서 돌아와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고, 저녁을 먹고, 부모님과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씻고, 방으로 돌아가 혼자 있는, 다를 것 하나 없는 날. 책상에 무언가가 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네모 반듯한 것을 본다. 뭐 하나 묻어있지 않은 하얀, 종이.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눈같네. 질문이 나에게 물을 때마다 하나씩 찾아봤던 눈이 내린 삿포로의 사진이 떠오른다. 나는 짧은 숨을 뱉는다. 네가 너무 사소하다. 사소해서, 늘 내 옆에 있는 것 같아. 짧은 숨을 뱉으며 의자에 수건을 건 다음, 앉는다. 의자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하얀 종이에 적힌 발신인을 보자마자 소리를 못 낼 나를 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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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삿포로에 처음 갔었거든요. 그때 여행을 하면서 하루씩 글을 썼습니다.
그때는 첫눈을 삿포로에서 봤었어요. 그때의 풍경과 느낌, 공기, 조용함. 이런 것들이 생각나요.
심플노트에 있던 걸 옮겼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