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섭. 우리 술 마시자.
어제 들은 말이다. 자기 전, 늘 하는 전화 통화로. 그런데도 선명하다. 대만의 자취방이 있는 그곳으로 가는 지하철 소리보다.
문에 비스듬하게 기대선 태섭은 금세 사라지는 풍경을 쳐다본다. 어둡지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익숙한 길이다. 대만이 20살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 큰 도시로 가고 난 뒤 가끔 가던 곳은, 사귄 이후에는 자주 드나드는 곳으로 바뀌었다. 대만이 원해서 혹은, 태섭이 원해서. 그럴 때마다 태섭은 풍경을 보았다. 평소에는 눈길만 줄 뿐, 자세히 보지 않는다. 대만에게 갈 때만 이런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만 생각할 뿐, 다른 걸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제. 대만이 뜬금없이 술 마시자는 이야기를 했을 때, 태섭은 눈만 깜빡였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대만과 술을 마신 적이 있는 줄 알았다. 스무 살이 된 지 얼마 안 됐으니 그럴 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갑자기요? 이 질문에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는 대답이 나왔을 때 저절로 눈이 동그래졌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럴 만했다. 대만이 처음 술을 마셨을 때. 잔뜩 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해서는, 야아 송태섭, 너 이 자식, 너 언제 형이랑 술 마셔 볼래. 엉? 이랬다, 정대만이. 사람 속 터지는 것도 모르고.
태섭은 바지춤에 자꾸만 손을 문지른다. 축축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을 수가 없어서, 온몸에 잔뜩 힘을 준다. 어떤 기대가 자꾸 그렇게 하도록 만든다.
대만이 보자고 한 곳은 자취방에서 떨어져 있는 도심에 있는 술집이다. 다른 곳도 많은데 왜 여기서 보냐고 묻는 말에, 너 취해서 집에 못 들어가면 어떡하냐는, 다소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 날 집에 보낼 생각이에요? 내일은 일요일인데? 생각만 했을 뿐, 말로 하지는 못했다. 제 술버릇이 어떤지를 모르는 탓이었다. 많이 마시지는 않을 거지만, 모르는 일이었다. 술이라는 걸 처음 마셔서 그랬다. 예상을 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알지 못하는 영역과도 비슷했다.
“여기!”
문을 열자마자 메케한 냄새가 나서 손사래를 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만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워낙 큰 소리로 불러서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나 싶었는데, 웬걸. 바로 코 앞에 있었다. 가게가 워낙 작았던 탓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지는 않았어요?”
“왜?”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 큰 소리로 불러서요.”
“반가워서 그랬거든? 이 자식이.”
대만이 웃고 있다. 앞머리를 내리고 있어서 그런가. 조금 순하게 보인다. 태섭은 볼을 긁적이며 소매를 걷는 대만의 앞에 마주 앉는다. 가게만 작은 게 아니라, 자리도 좁다. 그런 데다 가게가 지나치게 밝아서, 앉았더니 대만의 얼굴이 바로 가까이, 환하게 보인다. 때문에, 자세히 쳐다보지 못한다. 뭐냐? 내외해? 대만이 손가락으로 이마를 밀며 묻는다. 태섭은 그 이마를 문지르며 대만을 쳐다본다. 대만은 여전히, 웃고 있다.
“기분 좋아요?”
“어.”
“왜요?”
“드디어 송태섭 술버릇을 확인할 수 있잖아.”
이 얼굴을 어쩐지, 빤히 쳐다보지 못한다. 그래서, 물만 마신다. 꼴깍거리며 넘어가는 소리가 귀에 선명하다. 다 합쳐도 3테이블, 바 테이블 의자 4개.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로 가게 안이 시끌벅적 한데도. 이런 건 늘 언제나 자세하게 들린다. 쓸데없이.
“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요?”
“이미 알고 있잖아.”
“집에 바로 가는 거요?”
“어.”
“그렇게 되기까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잖아요.”
태섭이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말한다. 아까 전보다는 조금 진정이 돼서,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만족스러워서 그런지 웃음이 나왔다. 팔짱을 낀 대만이 입꼬리를 올린다. 가소롭다는 얼굴이다.
“그럼 너도, 내숭 떨지 말고 마셔.”
“안 그럴 거거든요.”
“웃기지 마. 절대로 안 취해야지 염불 외면서 온 거 다 알아.”
태섭은 반박하지 못한다. 자신만만한 얼굴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건 아마도, 저를 잘 안다는 듯이 구는 대만이 싫지 않아서다. 사귀고 난 뒤부터 줄곧 이런 태도인 대만이 어이가 없다. 그런데, 싫지 않다. 이 싫지 않음이 자꾸 입술을 축이게 만든다.
“우선, 소주.”
“원래 맥주 마시잖아요.”
“너랑은 소주부터 마실 거야.”
“설마 작정하고 나왔어요?”
“맥주에는 예절 같은 거 없어. 그냥 마시면 되는걸.”
자연스럽게 손을 든 대만이 익숙하게 주문한다. 소주 한 병이랑, 어묵탕 괜찮냐? 어묵탕이랑, 밥 안 먹고 왔지. 오므라이스 하나랑, 감자샐러드 하나 주세요.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매일 술 마시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생각이나 하는 건, 대만이 계속, 웃고 있어서다. 돌돌 만 소매를 더 걷어 올리고, 물을 마시면서 다른 곳을 보는 눈이 이리저리 굴러가는 것만 보게 된다. 진짜 사람 많다. 그치. 태섭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그래봤자 내 눈에는 형밖에 안 보여요. 다른 사람들 알 게 뭐야.
“첫 잔은 원샷이 예절이다.”
“…형 예절이 아니고요?”
“어허. 우리 아버지한테 배운 거거든?”
“그럼, 배울게요.”
대만이 노려본다. 잔을 부딪친 순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펴진 얼굴이 되지만.
“고개 돌리고 마셔야 하는 거죠?”
“이래 봬도 내가 연장자니까 원래는 그런데, 그냥 마셔.”
“술 예절 가르쳐 주겠다는 사람 맞아요?”
“어.”
“순 엉터리.”
“그렇게 생각하던가.”
펴지다 못해 다시 웃는 얼굴을 보며 태섭이 묻는다.
“기분 좋아요?”
“어.”
“…나랑 술 마시는 게?”
“어. 그러니까 얼른 마셔.”
대만이 고개를 젖히며 술을 마신다. 태섭은 움직이는 목울대와, 살짝 감기는 눈을 본다. 다 마신 잔을 내려놓으며 손등으로 입술을 닦는 대만을 보면서, 살짝 고개를 돌린다. 안 그래도 된다니까. 테이블에 한쪽 팔을 올린 대만이 안주로 나온 완두콩을 씹으며 말한다. 태섭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두 번째부터는 고개 안 돌릴게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은 대만이 손을 뻗는다.
“할 거면 제대로 해.”
“…손 들어요?”
“어. 잔이랑 입술 가리고. 어. 그렇게. 원샷.”
호흡을 가다듬은 태섭이 잔을 입술에 갖다 댄다. 액체가 입술에 닿았다. 입술을 조금 열고, 마신다. 저절로 얼굴이 구겨진다. 대만은 웃음을 참는 얼굴이다. 멈추지 말고. 계속 마셔 쭉. 태섭은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소주를 마신다. 꿀떡거리며 마실 때마다, 식도가 타들어 갈 것 같다. 어쩌지 못해서 차라리 빨리 마신다. 더 이상 마실 술이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잔을 놓았다. 그러자마자 입안에 무언가가 들어온다.
“얼른 먹어.”
한 손으로 입을 가린 태섭이 즐거운 듯이 웃는 대만을 보며 입안에 든 콩을 씹는다. 질겅질겅 씹는 느낌만 날 뿐, 무슨 맛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맛없어요.”
“맛있어질 거야.”
“거짓말하지 마요.”
“나랑 마시면 그렇게 될걸?”
빈 잔에 술을 채우며 대만이 말한다. 태섭은 그 말에 반박하지 못한다. 그래도 억울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그러지 못하는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늘어난다. 정대만이어서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날 때마다, 아이러니하게도 송태섭은 행복해진다. 이걸, 태섭은 알고 있다.
두 번째 술을 마신다. 역시 맛없지만, 한 번 마셔봤다고 조금씩 익숙해진다. 태섭은 제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대만을 빤히 쳐다본다. 어느새 두 팔을 테이블에 올린 대만은 상체를 조금 내밀고 있다. 태섭 역시 테이블에 팔을 올리고, 그 팔에 제 무게를 조금씩 지탱한다. 그 무게가 조금씩, 앞으로 기운다. 점점 대만이, 가까워진다. 옅게 웃는 대만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찰나의 깜빡임에 사라지는 대만이 아까워서 눈을 부릅뜬다. 너 지금 얼굴 되게 웃겨. 대만이 손으로 이마를 민다. 그 손을, 잡는다.
“아무도 안 봐요.”
“그딴 거 신경 안 써.”
테이블에 내린 손을 조심스럽게 잡는다. 손가락이 엮이고, 마디에 겹칠 때, 대만이 눈을 깜빡인다. 그러면, 태섭도 눈을 깜빡인다. 같이 깜빡인다면 서로가 안 보일 테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눈다. 조잘거리는 입술만 봐도 대만이 하는 말을 듣고, 대화할 수 있다.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씩 더 말이 많아지는 대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태섭은 제가 웃고 있다는 걸 모른다. 그런 걸 모를 정도로, 대만에게 집중한다. 좋아하는 눈이 깜빡이는 것. 좋아하는 코끝을 매만지는 것. 좋아하는 입술이 자꾸… 움직이는 것. 손짓과, 웃을 때 들썩이는 어깨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는 머리카락 같은 것.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와 음식 냄새로 가득하지만, 이런 것들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오로지 대만을 본다. 말하다 가도 괜찮냐고 확인할 때마다 정말 취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서 어이가 없어지다가도, 이렇게 말이 많아지는 게 대만의 술버릇이라고 생각하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사실은 있잖아.”
“네.”
“이거, 내 소원이었어.”
“…나랑 술 마시는 거요?”
“어.”
조금씩 빨개지는 대만의 볼이 동그랗게 빛난다. 태섭은 이 볼을 보면서, 손으로 턱을 괸다. 그냥. 처음 술 마셨을 때. 문득 그 자리에 네가 없다는 걸 알게 됐거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송태섭 언제 스무 살 되는 거냐고 생각해 버린 거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잇는 대만은 꿈을 꾸는 것 같은 표정이다.
“그러다가 결심했어. 송태섭이 처음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내가 될 거야.”
“형다운 생각이라서 할 말이 없네요.”
“사겨서 그런 거거든.”
“그런 뜻 아닌, 설마 취했어요?”
“아니?”
대만이 정색한다. 태섭은 미간을 찌푸린다. 정색을 하는 건, 마음에 안 든다는 것. 마음에 안 든다는 건, 삐칠 수도 있다는 것. 삐친다는 건 입술을…
“그냥. 같이 하고 싶어.”
……포개고 싶다는 것.
“스무 살에는, 그런 게 많은 거잖아.”
좋아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
“네.”
“그래도 되냐?”
“당연하죠.”
깍지를 낀 손을 꽉 잡는다. 틈 없이 맞물린 손이 뜨겁다. 그렇게 맞닿은 손에 힘을 준다.
“형이잖아요.”
말없이 태섭을 보고 있는 대만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간다. 볼록 솟은 볼만 봐도, 기분이 좋다는 걸 알 수 있다. 태섭은 이 가게에 있는 불이 전부 다 꺼져도,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어도, 무섭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럴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 앞에 있다. 옆에도 있다. 가끔, 뒤에도 있다. 그렇다는 걸, 맞잡은 손으로 알 수 있다.
“막차 시간 언젠지 아냐?”
말 없는 손이 알려준다.
“몰라요.”
“나도 몰라.”
“뭐든 알려준다면서요?”
“그런 건… 오늘은 몰라.”
“거짓말쟁이.”
“싫냐?”
그 어떤 상황에서도 놓지 않겠다고.
“나 술 더 줘요.”
“오. 달리냐?”
“네. 형 믿고 달릴 테니까, 형도 그렇게 해야 해요. 알겠어요?”
“나는 늘 그렇게 하고 있거든? 너나 잘해, 인마.”
“형한테 예의 차려 준 거거든요?”
“술 마시고도 그럴 수 있는지 지켜본다 내가.”
“그러세요. 그럴 수 있으면요.”
“어쭈…. 받아. 빨리. 안 받아?”
“손잡고 있어서 두 손으로 못 받아요. 이해하죠?”
“앞으로도 쭉 이렇게 해. 알겠냐?”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때가 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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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트윗 쓰고 글로 쪄온 사람… 저…….
상상은 컸는데…… 글로 쓰려니 잘 안 되네요………. 대에충 시끄러운 술집이지만 지들만 있는 태대를 보고 싶었다네요…… 반의 반도 표현 못한 것 같다. 하.
태섭이가 미국 가기 전의 태대를 상상했어요. 이것들아 행복해라…… 너네가 행복해야 내가 살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