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입술을 맞추었을 때 송태섭은, 반응을 살피는 사람처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두 번째로 입술을 맞추었을 때 송태섭은, 정대만의 왼쪽 뺨에 손을 올렸다.
세 번째로 입술을 맞추었을 때 송태섭은, 정대만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쪽, 쪽, 쪽
간지러운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고, 정대만은 생각했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굳게 다물린 송태섭의 입술은 입맞춤을 할 때에만 살짝 벌어졌다. 정대만은 저를 쳐다보는 송태섭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입술을 열어달라고 허락이라도 받으려는 사람 마냥 이어지는 짧은 버드키스. 하여간 섬세하다니까.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걸 절대로 하지 못하는 착한 송태섭. 정대만은 송태섭의 멱살을 잡았다. 송태섭이 한순간에 더 가까워졌다. 놀란 눈이 잔뜩 흔들리고 있었다. 정대만의 시선이 송태섭의 입술에 와닿았다. 그 시선을 깨달은 송태섭이 두 손으로 정대만의 얼굴을 붙잡고, 깊게 입을 맞추었다.
송태섭의 혀가 정대만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왔다. 혀를 옭아매고, 입천장을 훑었다. 어떻게든 더 닿고 싶어. 어떻게든 당신의 심장에 나를 새겨 넣고 싶어. 송태섭의 혀가 폭력적으로 움직였다. 정대만은 한 손으로 송태섭의 등을 만졌다. 그 순간, 송태섭이 움직임을 멈췄다. 쵹, 하고 입술이 떨어졌다. 정대만의 얼굴이 약간 빨갰다. 돌아버릴 것 같은데 진짜. 송태섭은 그대로 정대만의 위에 누웠다. 윽. 송태섭의 무게 때문에 정대만이 약하게 앓는 소리를 냈다.
상기된 숨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정대만보다 먼저 숨이 정리된 송태섭이 고개를 틀어 정대만의 귀와 관자놀이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정대만이 한 쪽 눈을 찡그렸다.
간지러워, 하지 마.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은데.
송태섭의 조심스러운 손길을 느끼며 정대만은 눈을 감았다. 송태섭이 멋대로 제 얼굴을 만지는 걸 놔두다가, 불쑥 웃음이 터져나왔다. 송태섭이 정대만과 시선을 마주했다. 왜 웃어요. 정대만은 송태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지금 날 어떻게 만지는지 아냐.
…야한 말 하지 말아요, 빡세게 참고 있는 중이니까.
너 정말 나 좋아하는 구나.
……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느낌이야.
정대만의 말에 잠깐 놀란 송태섭이 곧 코웃음을 쳤다. 멍청한 건 내가 아니라 선배에요. 송태섭이 정대만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선배가 나한테 귀한 사람이라는 거, 그걸 이제 알았어요?
……
좋아해.
……
좋아해요. 머리가 터질 것 같아, 형 때문에.
……
미칠 것 같아요. 나도 내 마음이 얼마나 큰지 모르겠어.
……
그러니까, 말해줘요. 딱 한 마디면 돼. 그거면 되니까 제발,
선배, 나 좀 좋아해줘요
04
14.
하필이면 코트에서 키스를 했네.
새벽 6시. 농구공을 챙겨 코트로 온 정대만이 낭패라는 듯 얼굴을 구겼다. 문 앞에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우뚝 서있던 정대만이 으악!!! 소리를 질렀다. 미친. 어쩌자고 입을. 입술을. 어제는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정대만은 이제야 낯 뜨거워했다.
집에 어떻게 갔더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만 잡고 갔다. 집 앞에 다다라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송태섭의 얼굴이 어땠더라. 무표정이긴 했는데, 쓸쓸해 보이지는 않았지. 짧게 웃은 송태섭이 들어가요, 라고 내뱉는 담백한 말에 오히려 놀랐던 건 정대만이었다. 그렇게 사랑고백을 해대더니, 코트를 나오자마자 과묵한 송태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뭐, 영 참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평소보다 제 손을 더 세게 잡았으니까.
긴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코트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를 비우는 데에는 농구만 한 것이 없었다. 코트에서 아무리 그랬다지만 어쨌든, 땀을 흘리면 좀 나아질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드리블을 하려는 순간, 대만아? 하며 저를 부르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권준호?”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냐?”
“그러는 너는 웬일이냐?”
“아, 나. 아침마다 운동해.”
“에에?”
“감을 잃고 싶지 않아서.”
에에- 정대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준호가 부드럽게 웃으며 공을 달라고 손짓했다. 정대만이 웃으며 권준호에게 공을 건넸다.
“오랜만이네, 너랑 이러는 거.”
“가볍게 몸 좀 풀어볼까?”
퉁, 퉁. 코트에 소리가 울려퍼졌다. 공소리과 숨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매일 농구를 했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건지 은퇴를 했는지 좀 됐는데도 권준호의 움직임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공을 튕기고, 빼앗고, 뚫어내고, 슛을 쏘고. 한참을 그랬을까. 결국에는 둘 다 지쳐 코트에 드러누웠다. 가볍기는 개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악 소리를 냈다.
“너 때문에, 너무 과하게, 움직였다, 와.”
“수업 시간에, 졸아도, 후, 뭐라 하지마라. 아 힘들어.”
거친 숨소리가 잦아 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이 터졌다. 안경을 벗어 옆에 둔 권준호가 정대만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뭐, 그냥.”
“그럼 됐다. 무슨 일 있으면 부담없이 말해줘.”
고맙다고는 했지만, 절대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정대만은 손등으로 땀을 닦으며 생각했다. 송태섭에 관한 걸 너한테 어떻게 말하냐…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고, 그 한숨을 들은 권준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농구부는 어때?”
“뭐 어떻긴. 들어서 알고 있지 않냐? 채치수보다 더 한 주장이 나타났다고.”
“하하. 태섭이가 그렇지. 워낙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녀석이니까.”
“그렇지.”
“그게 녀석의 장점이자 단점인데 말이야.”
“…그렇지?”
정대만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네가 있어 부담감이 덜 할 거야.”
“…어, 그러더라.”
“어? 태섭이가 직접 그런 이야기를 했어?”
“어어, 뭐…”
“너희 둘 이상하게 잘 붙어다닌다 했더니, 역시 태섭이가 노력을 많이 한 게 맞았구나.”
“어?”
권준호가 두 손을 뒤로 짚으며 몸을 살짝 기울였다.
“네가 농구부에 없을 때 말이야. 하하, 미안, 그때 이야기를 꺼내서.”
“…됐어.”
“나는 태섭이를 1학년 때부터 봐왔잖냐. 그때 송태섭은 뭐랄까, 꽤 많이 불안했어.”
“…….”
“그래서 너랑 그렇게 치고박고… 미안.”
“미안하다고 그만해, 민망하니까.”
“그런데 태섭이가 조금씩 변한 게, 네가 다시 복귀한 뒤부터였는데. 혹시 느꼈냐?”
“그랬…나?”
권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태섭이가 그랬어. 정대만 선배 진짜 신기하다고. 내가 원하는 자리, 어떤 순간이든, 딱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그 순간들이 쌓이니까 너무 짜릿했대. 나와 같은 시선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는 거야.
“그런데 그건 농구할 때 뿐이고 평소에는 어찌나 멍청한지, 라며 욕을 하는데.”
“미친… 너한테 그런 소리를 했다고?”
“하하. 나는 좀 안심이었어. 너도 마음을 열고 있다는 거였으니까. 네가 멍청한지는 친하지 않으면 모르, 미안.”
15.
정대만은 그날 하루 종일 진학 상담을 하고 돌아가던 길에 서있던 송태섭을 생각했다. 그때의 송태섭의 얼굴. 어쩌면, 불안했던 걸까. 송태섭도 나의 진학을 신경쓰고 있었던 걸까. 안 감독님이 함께 있었냐고 굳이 물은 건… 혹시, …어쩌면,
나를 잃을 까봐 무서웠던 걸까?
16.
“혹시 무릎, 아팠던 건 아니죠?”
“어?”
“연습 때 조심하는 것 같아서요.”
“아냐, 그런 거.”
“그럼 됐어요.”
정대만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누가 봐도 연습에 집중하지 않았고 그걸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왜인지 알겠으니까 다른 걸 물은 거겠지. 정대만은 제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강백호 보러 같이 가지 않을래요? 재활 상태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
“선배?”
“어, 그래. 가자.”
송태섭이 가방을 메고, 손을 뻗는다. 정대만은 그 손을 자연스럽게 잡는다. 정대만은 물끄러미 송태섭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나? 도리어 어색해하는 건 저뿐인 것만 같다. 의식하자마자 입술이 뜨거워지는 것만 같다. 생각이 걷잡을 수없이 커진다. 송태섭의 손, 시선, 입술. 귀한 걸 만지는 듯하면서 거침 없던 키스. 으… 고개를 푹 숙이며 앓는 소리를 내자마자 송태섭이 바로 정대만을 살폈다.
“왜 그래요? 손에 땀이 나는데?”
“어… 아니야…”
“아닌 게 아닌데? 왜 그래요, 얼굴 좀,”
정대만이 반사적으로 송태섭의 손을 쳐냈다. 깜짝 놀란 건 정대만이었다. 순간적이었다. 송태섭은 그런 저를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해요.
“가요.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했어요. 간다고 연락해놔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송태섭이 먼저 몸을 돌렸다. 정대만은 그런 송태섭을 쳐다보기만 했다. 점점 멀어지는 송태섭을 쳐다보며 정대만은 주먹을 쥐었다. 따라오지 않는 저를 확인하려 돌아보지 않는 송태섭의 등이, 제 손을 다시 잡지 않는 송태섭의 손이 이렇게, 열받을 수가 없었다. 분명 송태섭을 이렇게 만든 건 나인데. 머릿속이 터질 것 같다는 건 이런 걸까. 정대만은 성큼성큼 걸어 송태섭의 어깨를 낚아챘다.
“네가 왜 미안해.”
“…….”
“네가 나쁜짓을 했어? 네가 왜 미안해? 어?”
“그럼 내가 뭐라고 이야기해요.”
제 어깨에 올린 손을 잡은 송태섭이 그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선배가 허락한 것까지만 해요.”
“…….”
“손을 잡는 건, 선배가 허락해 줬으니까 잡는 거에요.”
“…….”
“어제의 키스도, 하. 키스. 선배가 먼저 신호를 줬기 때문에 했어요. 내가 잘못 받아들였으면 피했겠지. 그런데 선배, 안 피했어요. 그래서 했어. 죽을 만큼 행복했어요. 잠도 못 잘만큼. 잠을 안 자는데도 꿈을 꾸는 것 같았어요.”
“…….”
“내 손을 쳐낸 건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과했어요. 선배가 허락한 적 없는데 그런 거니까.”
“송태섭.”
송태섭은 웃었다. 정대만은 그 웃음에 잠깐이지만 숨이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넘어갈 수 있는 선은 선배가 만들어요. 모든 주도권이 선배에게 있어 그런데. 하나도 안 억울해요.”
“…….”
“아무렇지도 않아요. 정말로. 그러니까,”
“…….”
“…계속 상처받은 얼굴을 하면 멋대로 기대하게 돼요. 진지한 거 안 어울린다니까, 선배한테는?”
송태섭의 두 손이 정대만의 손을 잡았다. 정대만은 그 손을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가요, 성격 급한 놈이라 왜 안 오냐고 병실 뒤집고 있을 수도 있어. 송태섭이 픽 웃으며 뒤돌아섰다. 다시 제 손을 잡고 이끄는 송태섭의 뒷모습을 보면서 정대만은 어쩐지 울고 싶어졌다. 정대만은 송태섭의 손을 꽉 잡았다. 그 힘에, 송태섭이 걸음을 멈추었다.
“센 척 하지마, 송태섭.”
“…….”
“너야말로 상처 받았잖아, 지금.”
“…….”
“내 앞에서 센 척 하지마 그거, 진짜 보기 싫으니까.”
송태섭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할 말을 쏟아내려는 것처럼 부푼 정대만을 쳐다보다, 송태섭이 정대만의 앞에 섰다.
“상처받았으면, 위로해 줄 거예요?”
“…….”
“해주지 못할 거면 흔들지 말아요. 내가 그랬죠, 선배 앞에서도 센 척할 수 있다고.”
“…….”
“선배한테 상처받을 때마다 선배 잡고 늘어지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더 이상,”
“안 감독님이 대학을 추천해 주셨어.”
정대만은 숨을 길게 들이마신 뒤 내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농구 강호인 대학이고, 추천서를 써줄 수 있다고 하셨어. 그 대학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라 긍정적이라고 하셨는데. 생각해 보겠다고 했어.”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고요? 왜?”
“생각 정리가 필요했어.”
“왜? 선배는 계속 농구를 할 거잖아. 근데 왜,”
“너 때문이잖아.”
송태섭의 눈이 커졌다. 정대만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 너랑 하는 농구가 재미있어서 구체적인 걸 생각하지 못하겠어.”
“…….”
“주장인 너를 도와주고 같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
“주도권이 나한테 있다고? 너는 안 억울하다고? 나는 억울해. 너 때문에 내가 내 미래를,”
송태섭이 팔을 뻗어 정대만의 몸을 끌어당겼다. 정대만의 허리를 두 팔로 꽉 껴안았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렸다. 제 심장소리도 귓가에 적나라하게 들려서, 송태섭은 잠깐 현기증을 느꼈다.
“다시 말할게, 정대만.”
“…….”
“한 마디만 해줘. 나를 좋아한다고.”
“…….”
“네 미래 어디든 서있어 줄 테니까. 한 마디만 해.”
바람이 불었다. 정대만은 슬쩍 눈을 감았다. 제 몸을 감싸는 따뜻한 체온. 손은 서늘한데 몸은 뜨겁네. 이런 실없는 생각이나 하던 정대만은, 옅게 웃었다. 어제 내린 비로 공기에는 아직 비 특유의 비린 냄새가 있었다. 정대만은 그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키스나 해. 내 마음을 넘겨줄 테니까.”
정대만을 품에서 뗀 송태섭이 기가 막힌 얼굴을 했다. 정대만은 저 얼굴을 잘 알았다. 약간 흥분된, 상기된 얼굴. 그 얼굴에 정대만 역시, 약간 흥분이 되는 듯했다. 저를 빤히 보고 있던 송태섭이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송태섭이 한 손을 뻗어 정대만의 목덜미를 감싸 쥐었다.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정대만은 송태섭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작정을 했구나, 우리 형이.
입술이 닿기도 전에 마음을 넘겨받은 송태섭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