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은 될 수 없어 5

태섭대만



5.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대만은 닥치는 대로 태섭에게 질문했다. 어쩐지 기뻐서 즐겁게 받아주던 태섭이 나중에는 형, 미국에서 이런 걸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사생활 침해라고 해요. 신나서 질문하던 대만이 일자 눈썹을 날카롭게 만들며 반박했다. 이런 걸 한국에서는 뭐라고 하는 줄 아냐? 호구조사라고 해. 친한 사이에서만 할 수 있는. 너에 대해 모든 걸 알아야겠을 때 하는 거라고, 이게. 태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대만이 그렇게 말하면 기꺼이 당해줘야했다. 다른 사람한테도 이래요?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질문을 내뱉지 않기 위해서 주먹을 꽉 쥔 채 속으로 참자고 중얼거릴지라도.

아라가 그랬어, 에어비앤비의 비밀번호는 머무르는 사람이 정할 수 없다고. > 정상 루트로 계약을 한 집이 아니어서 그래요.

그럼 비정상 루트로 계약을 했다는 말이야? (이 질문에 태섭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 > 원래는 에이전시에서 계약 하겠다는 걸 내가 했어요. 발목 잡히는 것 같았거든요. 이걸 타협하느라 정말 진을 뺐는데…. …이런 걸 굳이 말해야 해요? (대만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옆으로 슬쩍 물려나 팔짱을 꼈다) 내가 에이전시에서 했던 소리 너한테 안 하려면 네가 솔직하게 말해야 하지 않겠냐?

>……그 과정에서 집 주인과 연락을 했어요. 사정이 있으니 비밀번호는 내가 정할 수 있게 해달라. (두 사람은 위스키 잔을 부딪쳤다) 미국에서 쳐들어올 것 같았냐? >네.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에요. (원샷) 나같아도 그랬을 것 같은데. >내가 대단하다는 소리가 아니라, 미국 사람들 돈 엄청 좋아해요. (대만이 픽 웃으며 태섭의 잔에 위스키를 채웠다) 그러니까, 아무나 그러지 않잖아 그 돈이라는 게 걸려 있으면. >지금 형이 하는 거, 조롱 맞죠. (태섭이 대만의 잔에 위스키를 채웠다) 야. 나 네 형이야. 내가 왜 그러냐?

태섭의 얼굴이 완전히 구겨졌다. 그래, 그 형이라는 거. 애틋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는 형이라서 죽도록 팼나? 괜한 걸로 시비를 걸고, 성가시게 만들고, 신경 쓰이게 만들고 결국에는, 여기까지 오도록 만들었나? 제주도에 언제 갈 거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으면서 본인이 궁금한 것만 묻는 게 형이 하는 태도가 맞나? 이런 저런 질문을 꾹 삼켰다. 대만이 생각하는 형이라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 같았고 이건, 생각하면 할 수록 기분이 더러웠다. 그럼에도, 삼켰다. 제 멋대로 날뛰며 버럭 튀어나올 것 같은 성질을 차마 부릴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정대만이 너무, 즐거워 보였다. 뭐 때문에 즐거워 하는 건지를 알 수가 없어서 얼굴을 살피게 되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욱 하고 나올 것 같던 성질과 묻고 싶은 질문들이 사라졌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랬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은, 몰래 훔쳐보는 것만큼은 익숙한 눈이 사라지도록 만들었다. 그 눈이 쳐다보는 정대만은 소파에 머리를 완전히 기댄 채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괜한 걸로 시비를 걸고, 성가시게 만들고, 신경 쓰이게 만들고 결국에는, 여기까지 오도록 만들었나? 제주도에 언제 갈 거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으면서 본인이 궁금한 것만 묻는 게 형이 하는 태도가 맞나? 이런 저런 질문을 꾹 삼켰다. 대만이 생각하는 형이라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 같았고 이건, 생각하면 할 수록 기분이 더러웠다. 그럼에도, 삼켰다. 제 멋대로 날뛰며 버럭 튀어나올 것 같은 성질을 차마 부릴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정대만이 너무, 즐거워 보였다. 뭐 때문에 즐거워 하는 건지를 알 수가 없어서 얼굴을 살피게 되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욱 하고 나올 것 같던 성질과 묻고 싶은 질문들이 사라졌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랬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은, 몰래 훔쳐보는 것만큼은 익숙한 눈이 사라지도록 만들었다. 그 눈이 쳐다보는 정대만은 소파에 머리를 완전히 기댄 채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후회라는 거, 말은 해 줄 거야?

길쭉하게 뻗은 대만의 목울대가 연신 움직였다.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으나 말 대신, 호선을 그리던 입꼬리가 일자로 변했다. 불규칙적이던 목울대가 느리게,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이런 움직임이 태섭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고, 네. 서둘러 대답하게 만들었다.

이런 말 한 거, 형이 처음이니까요.

태섭은 미간을 구겼다. 안 해도 되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대만의 입에서 나온 건, 기분 좋다. 태연한 말이었고 이건, 태섭이 몸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태섭이 소파에 올린 팔에 얼굴을 묻었다) 형 취했어요? 지금 술주정 해요? >무슨 소리야, 안 취했어. (태섭이 대만을 빤히 보며 혀로 입술을 축이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러니까 자주 와요. 형 집에서 별로 안 멀잖아요. >그러라고 비밀번호 가르쳐준 거지. 까먹지 말라고 쉬운 걸로 한 거냐? (대만이 고개를 돌려서 눈이 마주쳐버렸다) 뭐…. 형이니까.

대만이 푸스스 웃었다. 꿈에서라도 나오면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하도록 만드는 끝내주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로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형한테 잘해라, 송태섭아. 엉?

태섭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형도 잘해줄 테니까. 알겠냐? 거리낌없이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는 대만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태섭의 온 감각이 큰일났다고 외쳐댔다. 두근거려서 심장이 뛴다거나, 귀 끝이 조금 빨개진다거나, 제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는 저 눈이 아주 다정해 보인다거나 하는 것들이 전부 다, 이 감각 아래에 줄을 섰다.

정대만.

어쭈.

미국에서는 나이 상관 없이 이름으로 부르는데 우리도 그렇게 할래?

취했냐? 죽을래?

태섭이 긴 한숨을 뱉었다. 이 소리를 듣자마자 대만이 태섭의 이마를 꾹 밀었다. 진짜 취했냐? 형 앞에서 한숨을 쉬어? 네가 아무리 미국물 먹었어도 너는 내 후배다, 인마. 말은 이렇게 하면서 절대로 세게 밀고 있지 않은 손이 다정하고 따뜻해서 속에서 천불이 났다. 동양인은 원래 예의가 바른 사람들이라는 서양인들의 조롱 아닌 조롱을 단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화가 나는 건 처음이었고, 대만이 경기를 읽는 지성의 반의 반조차 저에게 쓰지 않는 것이 억울했다.

그러니까 정대만이니까, 라는 말을 예의 바르게 형이니까, 라고 한 거 아니냐고요. 지금 그렇게 뻐기는 그 잘난 호칭을 붙여준 거 아니냐고요 이 바보 멍청한 정대만, 이, 형아…….


*


그 형아, 가 태섭에게 연락을 한 건 이틀날 점심이었다.

대만은 일주일 뒤에 제주도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고 태섭은 괜찮다고 말했다. 이왕 가는 거, 가볍게 며칠 더 여행 하는 건 어떠냐고 물었을 때도 태섭은 괜찮다고 말했다. 이 대답이 아까 전의 대답과는 다르게 조금 느리게 나왔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걸 물어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가벼운 여행을 제안하기까지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해서였다. 이것 때문에 다음날 당장 매니저에게 전지 훈련 일정을 묻고 확인까지 받았으나 연락하지 못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태섭의 전화번호를 쉽게 누르지 못했다. 메시지 입력창 위에서 손이 얼마나 공중을 헤매이고 있었는지 역시, 가늠하지도 못했다. 형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 하면서도, 형이라고 모두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 연락을 미뤘다.

그랬기에 태섭의 괜찮다는 대답은 안심이 되어야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괜찮다는 대답이 쉽게 나온 태섭에게 실망했다.

-형?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부르는 목소리도 얄미웠다.

어?

-역시 그런 거죠?

그럼에도 이 말에는 가슴이 철렁했다.

뭐가?

-전지 훈련 일정이랑 겹치는 거냐고 물었어요.

조금.

-그건 뭔데요?

완전히 겹치는 건 아니라는 뜻이야.

-그게 뭔데요?

여행 마지막날 올 거야.

-…나더러 먼저 돌아가라는 거 아니죠?

그래야 하지 않겠냐?

태섭은 말이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이것저것 떠들었다. 이왕 가는 거 그 호텔에서 하루 정도 더 묶는 건 어떻겠냐느니, 그래도 성수기는 아니어서 비행기나 호텔 예약이 쉬울 것 같다느니, 굳이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했다.

렌트가 예상했던 것보다 비쌀 것 같아. 가본 녀석이 그러는데,

-같이 가요.

뭐라고 중얼거리는 건지 모를 때 들린 목소리는 차분했다. 정말, 했던 말을 다 잊을 만큼.

어딜?

-서울이요.

같이 돌아가자고?

-네.

왜?

태섭은 다시 말이 없었다. 코트 가장 구석에서 전화를 하고 있던 대만은 천천히 앉으며 뒷덜미를 매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송태섭이 할 말은 형이니까요 라는, 용납이 되면서 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 말이 아니면 무슨 말이 나올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싶어서요.

온 사방이 조용한 건 핸드폰 너머에 있는 송태섭이었는데 지금은, 시끄럽게 각자 훈련을 하고 있는 이 코트 역시 그렇게 느껴졌다. 그만큼 송태섭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대만은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뭘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그저, 왁스로 늘 깔끔하게 머리를 정리하는 일 같은 건 다 잊은 사람이었다.

너 신경 못 써줘. 어디 같이 가는 것도 안 될 거고.

-그런 걸 바라는 것 같아요?

대만은 대답을 하는 대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코트. 신발 끝. 신고 있는 양말. 트레이닝 옷. 훈련 소리. 오래 봐온 녀석들. 이런 것들이 죄다 낯설게 느껴졌다.

송태섭.

-네.

그 중에서도 가장 낯선 건 송태섭이었다.

네가 말한 그 만약에, 라는 거에.

이런 말을 하는 제 자신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나도, 포함이 되어 있는 거냐?

그렇지 않고서야 심장이 이렇게 뛸 수가 없는 것이었다.

-네.

조금 느렸으나, 태연한 대답이었다. 예의바르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대만은 도무지 무슨 말을 할 수 없어서 오늘 몇 시에 끝나냐는 태섭의 담담한 질문을 들을 때까지, 바닥으로 요란하게 꺾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고개를 똑바로 드는 동안 느껴지는 무게는 제 입보다 가벼웠으나,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었다. 대만은 애매한 게 싫었다. 그래서, 송태섭의 단정함을 부수고 싶었다. 저 혼자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너, 나랑 뭘 해보고 싶냐?

말도 안 된다고 생각 하면서도 어쩐지 낯간지럽지 않은 질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