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대만.... 714.... 주의
- 농구 안함
- 22x26
1.
송태섭은 정대만의 집에서 애기로 불린다.
대만은 모친이 태섭을 애기라고 칭할 때마다 어깨를 떨었다. 알고 지낸 시간이 있어서 그러려니 하려고 했지만 커갈 수록 귀여움은 저 멀리 던져버린 채로 성장하는 태섭의 얼굴을 볼 때마다, 저 얼굴을 보고도 애기 소리를 할 수 있는 거냐고 묻기 일쑤였다. 대만이 그럴 때마다 모친은 아들을 노려봤다. 얘. 태섭이가 얼마나 귀엽니? 싹싹하지, 듬직하지, 예의 바르지. 말수는 좀, 적어졌다만. 표현도 좀 줄고. 그건 뭐 너랑 똑같으니까 상관 없는 것 같아. 고구마 스틱을 오독오독 먹고 있던 대만은 기가 차서 입에 물고 있는 스틱을 퉤 하고 버렸다. 이쯤되면 대만은 친아들이 저인지 태섭인지 분간이 안갔다. 모친의 말에 따르면 내 아들은 싹싹하지 않고 듬직하지 않으며 예의 바르지 않다. 어이가 없었다. 저 세 가지 덕목은 모친이 어릴 때부터 강조한 거였다. 거의 몸에 베여 있다고 과언이 아닌데 뭐가 어쩌고 어째요? 그러다 코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저 웃음에 모친이 왜 그렇게 웃냐고 물었다. 대만은 허벅지 사이에 끼워둔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며 다시 고구마 스틱을 먹었다. 튀어 나오려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먹었는데, 저를 빤히 보는 모친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말수랑 표현 안 줄었어요.
그래? 너한테는 여전히 표현 잘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이걸 안다면 모친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왜냐면.
2.
저요. 형 좋아해요.
…이게 입대 전에 할 말이냐?
그래서 했는데요.
이 말을 했던 태섭이 선명했다. 1년 6개월 전. 송태섭, 20살. 척 봐도 며칠 동안 밤을 샜다는 것이 역력한 얼굴로. 남아 있던 젖살이 쏙 빠져서 날카로운 턱선을 가진 얼굴로. 내가 네 볼살을 얼마나 귀여워 했는데 돌려내. 한참동안 말이 없다 한다는 소리가 저거냐고 묻는 듯이 치솟는 태섭의 왼쪽 눈썹을 애써 모르는 척 했던 어느 여름날. 대만이 24살이 된 지 7개월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3.
송태섭은 정대만의 회사에서 걔로 불린다.
대만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정해져 있는 하루 속에서 똑같이 지낸다. 절대 회사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녀보니 괜히 질색을 했나 싶을 정도로 잘 지냈다. 대학 생활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건데 입사 하기 전에는 어찌나 생각이 많았는지. 반복 작업을 하다 회의를 하고, 대리와 팀장, 부장에게 불려가 한 소리를 듣고. 예, 예, 하다가 오늘 저녁에 삼겹살에 소주 콜? 소리를 들으면 좋습니다, 예, 하는 생활. 이렇게 단조롭게 흘려가던 하루가 태섭 때문에 죄다 망가졌다.
저 왔습니다아.
외근 나갔던 A가 사무실로 들어오며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엑셀 작업을 하고 있던 대만은 모니터 위로 얼굴을 빼꼼 내밀며 고생했다는 인사를 건넸다. 이곳저곳 둘러보던 A의 고개가 순식간에 대만에게로 돌아갔다. 저 시선 때문에 대만은 미간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할 말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말이 보일 수도 있는 건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밖에 걔 와 있어요 주임님.
이 말을 결국, 들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엄청 멋있게 입고 왔더라구요.
대만은 A의 말과 쿡쿡거리는 웃음 소리를 애써 무시한다.
전역한지 얼마 안 됐다고 그러셨죠.
아직 대학생인 거죠.
학교에서 인기 많겠다.
무슨 과라고 했어요? 몸이 좋은 거보니까 사체과 뭐 이런 거려나?
무시.
무시.
무시.
무시.
복학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회사로 계속 올 거 아니에요.
이 말에는 발끈했다. 본분이 학생인데 당연히 학교에 가야죠. 대만의 말에 직원들이 꺄르르 웃었다.
걔가 주임님 어머니 친구의 아들이라고 하셨죠.
…네. 학생 때부터 알고 지냈어요.
그래서 아직 친해요? 아직도 매일매일 놀아요? 아니, 매일 회사 앞에 오니까.
너무 귀엽다, 걔. 애인은 있어요?
그리고 꺄르르. 대만은 긴 숨을 들이마셨다. 모니터 안에 있는 글자와 숫자들이 하나도 안 보였다. 사무실 사람들의 도파민이 된 송태섭이 괘씸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책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익숙하게 잠금을 해제하고, 메신저로 들어가서, 상단에 있는 태섭의 대화창을 눌렀다.
[오늘은 정시 퇴근해요?]
[조금 늦으면 헬스장에 다녀오게요]
[거기 알아요? O 헬스장. 형 회사 근처에 있는데, 친하게 지냈던 선배가 트레이너로 있다고 그래서요]
[보면 연락 줘요]
마음 같아서는 그냥 거기 가서 선배와 밥을 먹고 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이런 말이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건 대만이 가장 잘 알았다. 태섭은 말을 잘 듣는 것 같으면서도 듣지 않았다. 어릴 때는 제 말이라면 껌뻑 넘어 갔었는데. 대만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때가 좋았다. 그때의 태섭은 귀엽기라도 했다. 지금은. 태섭이 전역한 후 지금까지, 제 말대로 흘려간 하루가 거의 없었다. 다 태섭이 원하는대로 했다. 그걸 거절 하면 되는데 못한 나도 뭐… 할 말은 없지만. 아니 그런데, 어떻게 거절을 하냐고. 입대 하기 전보다 더 쌔카맣게 타서는 머리카락도 덜 자랐고, 고생 엄청 했다는 훈장처럼 흉터도 많아졌는데. 형제가 없어서 태섭을 거의 남동생 대하듯 했지만 속내는 그게 아니었던 대만은, 전역 즈음 봤던 태섭을 보면서 깊은 한숨을 뱉었던 날을 생각했다. 꼴받는대로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명확했다. 너무 명확해서, 태섭이 하자는 대로 하고 있는 중이다, 아주 그냥.
어깨를 부르르 떨며 답장을 하려고 키패드에 손을 올린 찰나, 태섭에게서 메시지가 몇 개 더 들어왔다. 이 메시지가 기가 찼다.
[형 회사 동료분이랑 마주쳤어요]
[매일 보니까 이제 반갑대요 인사하고 지내자고 하는데]
[그래도 돼요?]
대만은 눈동자를 치켜 올려 A를 쳐다보았다. 생글생글 웃으며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A를 아주 빤히,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거의 노려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눈이 좀 아프네, 생각만 하다가 한참동안 깜빡이지 않아 시릴 때쯤 되어서야 시선을 거둘 수 있었다.
손등으로 시린 눈을 비비다 의자에 몸을 기댔다. 태섭의 메시지 내용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매일 보니까, 반갑다고, 인사하고, 지내자고. 모친의 말도 둥둥 떠다녔다. 말수도 줄고 표현도 줄고. 도대체 뭐가 줄었다는 건지. 사사건건 표현하고 말을 하는데 뭐가 줄었어, 뭐가. 대만은 속이 답답했다. 세상이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으뜸은 송태섭이었다. 도대체 얘랑 왜이러고 있냐.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돼요? 이 말이 떠보는 것임을 대만은 모르지 않았다. 태섭이 모르고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답답했다. 태섭은 천성적으로 예민하고 섬세하다. 이 성정 때문에 당황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좋아한다는 말에 대한 대답을 그 날 했다. 입대를 앞두고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너 좋아해. 동생으로서. 태섭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덤덤한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그 얼굴에 당황했으나 부러 아닌 척을 했다. 군대를 가지 않는 신의 아들로 지낸 대학 4년이 대만을 그렇게 만들었다. 솔직하되, 적당히. 말을하되, 적당히. 즐기되, 적당히. 적당히. 적당히. 그래도 태섭의 얼굴과 눈빛은 오랫동안 생각났다. 악수를 청한 손을 잡았을 때. 그래도 휴가 나오면 나랑 만나줘요. 형으로서. 그 말을 했을 때. 그리고, 지금.
대만 씨.
팀장이 대만을 불렀다. 옙. 핸드폰을 뒤집어 놓고 일어선 대만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사원증을 셔츠 주머니 안에 넣은 뒤 팀장에게 털레털레 걸어갔다.
오늘 보고서 내용 좋네요.
마우스를 몇 번 톡톡, 자판을 몇 번 툭툭한 팀장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대만을 쳐다보았다. 팀장의 얼굴에 드물게 웃음꽃이 피었다. 대만은 뒷짐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저 말을 한다는 건 곧, 삼겹살에 소주 콜? 소리를 듣게 된다는 거였다. 전에는 당신 때문에 일이 끝나도 사생활이 없어진 사람들이 보이지 않냐는 소리를 할 수 없어서 숨을 꾹 참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달랐다. 대만에게는 태섭이 있었다. 전역을 한 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은 인간 하나를 민간인으로 성공적으로 복귀 시켜야 한다는 중대한 사안이 있음을 말해서 회식에서 제외 시켜준 업적을 가지고 있는. 입꼬리를 누르느라 근육이 아팠다. 준비된 대답과 변명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얼굴이 저절로 펴졌다. 어깨와 가슴을 편 대만이 팀장의 입에서 나올 말에 대답을 준비하고 있을 찰나, 팀장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걔. 있죠.
예?
걔요. 우리 팀에서 지금 핫한 걔.
팀장의 입에서 걔 소리가 나오자마자 직원들이 난리가 났다. 대만의 미간이 단번에 찌푸려졌다.
A씨 아까 걔 밖에 있다고 그랬죠.
네, 팀장님!
대만 씨, 아직 걔 민간인 복귀 프로젝트 하고 있어요?
…예…….
오늘 회식에 걔도 같이 합시다.
꺄아아아아아아
걔한테 연락 한 번 해보세요. 사회 생활을 경험시켜 주자구요.
저기, 제 의견 아니, 걔 의견은요…?
팀장님, 최고!
최고는 개뿔. 완전 최악이었다. 대만은 저 빼고 축제 분위기가 된 사무실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4.
안녕.
대만이 중학교 2학년 때. 농구 코트에서 혼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에 제일 재미있는 거여서 매일매일 했다. 같이 할 때도 있었고 혼자할 때도 있었다. 그날은 혼자였다. 혼자 드리블을 하고, 슛연습을 했다. 그때쯤 3점슛 실력이 절정이었다. 림으로 들어가는 공을 보고, 소리를 듣고, 퉁, 퉁, 소리를 내다가 저에게 오는 공을 손에 쥐는 게 가장 좋을 때였다.
그러고 있을 때 누군가의 인사 소리를 들었다. 중후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대만은 두 손으로 공을 쥐고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웬 중년 여성이 서있었다. 그리고, 어떤 꼬마도.
갑자기 인사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무슨 일 있으세요?
지나가는 길인데, 우리 애가 형이 멋져 보였나봐요. 안 가려고 해서 들어와 봤어요.
아….
방해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꼬마는 엄마의 옷자락을 꼭 쥐고 있었다. 대만의 입꼬리가 환하게 올라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을 쳐다보다 걸어 오는 소리에 눈을 도르륵 굴리는데, 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홱 돌리는 얼굴이 정말 귀여웠다.
안녕.
…….
이름이 뭐야? 나는 정대만.
…섭.
응?
…태섭이요. 송태섭.
대만이 천천히 앉았다. 태섭과 시선이 얼추 비슷해졌을 때, 농구공을 옆에 두었다. 시선이 비슷해졌는데도 태섭은 대만을 쳐다보지 못했다. 옷자락을 쥐고 있는 손의 힘만 세졌을 뿐이었다. 그 손을 보다 농구공을 조심스럽게 굴려 태섭의 앞에 두었다. 태섭이 눈을 굴려 농구공을 쳐다보았다. 어찌나 빤히 쳐다보는지, 저 시선에 가슴이 부푸는 느낌이었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반짝거리는 태섭의 눈동자가 저에게로 옮겨졌을 때에는 볼록한 볼살을 잡고 싶어서 혼났다. 너도 이거 하고 싶어? 그렇게 물어보는 대신, 대만은 다시 공을 쥐고 일어섰다. 퉁, 퉁, 몇 번 두드리다, 드리블을 하고, 몇 발자국 더 가서 점프를 했다. 호선을 그리는 공이 림으로 들어갔을 때, 다시 태섭을 보았다. 엄마 뒤에 있던 태섭이 어느새 앞으로 나와 있었다. 통, 통, 공이 튕기는 소리가 났다. 대만은 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태섭을 보다, 공을 쥐었다. 태섭의 시선은 여전히 얼굴이었다. 공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아까 전에는 시선을 둘 곳이 없어서 공만 보고 있었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저 시선에 어쩐지 마음이 간지러웠다. 그 어떤 의도도 없는 순수한 눈빛에는 힘이 있었다. 그저 느끼는 감정만 가득 차있는 눈동자를 무시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말했다. 형이랑 같이 농구 할래? 너도 반짝이게 될 거야.
그랬는데 주임님 어머니랑 걔 아니 네 어머니랑 어쩌다 연락이 끊긴 동창이었다 이거지?
네.
그 말은 지금 이 자리에서 유효하다. 아주아주, 많이.
대만은 뭐 씹은 얼굴로 맥주를 마신다. 분명히 같이 들어와서 옆자리에 앉았는데, 어느새 구석 자리로 밀려났다. 분위기가 어찌나 화기애애한지 끼어들 자리도 없었다. 정말이지 기가 찼다.
대만은 아직 까슬까슬한 머리를 매만지는 태섭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면서 맥주잔에 소주를 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폭탄주를 만들어서 마시고 있자니 이게 뭐하는 상황인가 싶었다. 그러니까. 팀장님, 최고! 소리를 듣고 송태섭한테 전화를 했고. 네, 형. 조금 반가운 듯한 목소리를 들었으며. 너 그, 선배 헬스장에 가? 라고 물었으며. 형이 빨리 끝나면 안가죠. 라는 대답을 했고. 무슨 일 있어요? 라고 물을 때까지 말을 하지 못했으며. 무슨 일, 있지. 라는 말에 태섭은 야근해도 저녁은 먹을 거 아니에요, 나랑 같이 먹으면 안 돼요? 라고 조심스럽게 물었으며. 저 대답에 괜히 마음이 그래서 작작 좀 찾아오지 그랬냐 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가. …불편해요? 여기에 마음이 조금 약해져서 사무실을 빠져나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했더니. 저야 당연히 오케이죠. 조금 들뜬 목소리 때문에 마음이 더 약해져서 너 취조 당할 수 있다니까? 했고. …저는 좋아요. 형이랑 같이 있으면 괜찮아요. 여기에 케이오. 완패. 이게 어디가 표현이 줄어든 거며 말이 없어진 거냐며.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혼잣말을 허공에 쏘아냈다.
술이 좀 약해요?
어……. 잘 모르겠어요.
주임님이랑 술은 안 먹었어요?
네. 형이 술은 잘 안 사주셨어요.
휴가 나와서도요?
네.
와… 주임님 너무한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구요…….
무슨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고 술을 먹여요. 대만은 할 수 없는 말을 감춘다. 대신, 목이 타서 술을 마셨다. 벌컥벌컥. 오랜만에 소맥 마셨더니 잘 넘어간다. 꿀떡꿀떡. 잊고 있었던 이 술의 장점을 깨달은 느낌이다. 목넘김이 좋다. 달다. 원샷. 캬. 잔을 놓자마자 태섭이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 조금 올라간 왼쪽 눈썹.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저걸 쳐다본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시다, 저건. 근데 뭐 어쩌라고. 저 눈썹을 보면서 맥주를 따르고 소주를 조금 넣었다.
사무실의 도파민답게 태섭에 대한 궁금함을 채우려는 직원들의 사심 섞인 질문이 넘쳐났다. 대만은 그걸 보면서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었다. 마시고 먹고 마시고 먹고. 태섭은 조금씩 술을 마셨다. 원래 저렇게 마셨나. 태섭과 술을 마신 기억이 거의 없었다. 태섭이 20살이 되었을 때, 입대 전. 딱 두 번 마셨다. 왜 그랬나를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대학에 술 마실 일이 넘쳐. 굳이 같이 마실 이유가 없다. 이 말에 태섭은 조금 서운한 표정을 비쳤다. 그랬을 뿐 말은 하지 않아서 부러 묻지 않았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물어볼 걸 그랬나 싶었다. 주량이 어떻게 되는지, 취하면 주사가 어떻게 되는지, 이런 걸 하나도 몰랐다. 이 생각이 들자마자 기분이 조금 묘해졌다. 어렸을 때는 송태섭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성인이 된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하나도 모른다고 해도 맞는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왜 그런지는 모를 일이었다.
어쩌다보니 팀장과 술을 마시게 돼서 생각보다 빨리, 많이 마셨다. 소맥으로 반복하다 보니 화장실에 가고 싶어져서 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일어서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태섭과 눈이 마주쳤다. 대만은 이미 풀어 놓은 넥타이를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가만 보니 태섭도 볼이 조금 빨갰다. 저기서 구해줘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턱짓을 했다. 태섭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
어.
괜찮아요? 많이 마시던데.
너는. 괜찮아?
네. 저는 괜찮아요.
대만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부릅. 머리가 핑 돌았다. 그래, 맞다. 소맥이 이랬지. 잊고 있었던 걸 깨달은 건 이 술의 파괴력이었다. 그래. 그랬다. 태섭과 나란히 서서 볼 일을 보고 있는 동안 휘청거리지 않기 위해서 한 손을 벽에 짚었다. 태섭이 그 손을 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태섭이 사실은 볼 일을 보지 않았다는 것도. 그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가, 벽을 봤다가, 천장을 봤다가. 그걸, 볼 일을 보고 있는 동안 했다.
너 주량이 어떻게 돼.
소주 세 병 이상은 마셔요.
그렇게 많이 마셔?
저렇게 마셔도 정신이 있으면 저한테는 많이 마신 게 아니죠.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물기를 터는 동안, 태섭은 벽에 기대어 있었다. 대만은 긴 숨을 뱉으며 뒤돌아섰다.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
뭐가요. 재미있어요, 저는.
아. 너 연상 타입이지.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한 말이 잘못 나갔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태섭의 눈썹은 이미 이마 위로 한껏 치솟은 뒤였다. 대만은 고개를 저으며 두 손을 올렸다. 그런데, 와. 고개를 저었더니 머리가 휙 도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들이 부은 소맥이 문제인 듯 싶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세면대를 짚었더니, 벽에 못을 박은 듯이 붙어 있던 태섭이 튀어 나오는가 싶더니, 손을……
잡으려면 잡고, 말려면 말아라.
잡아도 돼요?
세 발자국의 거리려나. 대만은 눈을 부릅 뜨고 발 밑을 본다. 그리고 송태섭. 어떻게 할 줄 모르던 손이 천천히 내려가더니, 대만의 옷깃을 잡는다. 이 손짓에 웃음이 나왔다. 이건 꼭, 처음 봤을 때 인 것 같다.
왜 웃어요.
그냥.
그냥 아니잖아요.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서 그랬어.
태섭이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이 나는 듯, 나지 않는 듯,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아, 탄식 소리와 옷깃을 잡고 있지 않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잊어요.
왜. 그때 너 귀여웠는데.
잊으라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너 그때 진짜 귀여웠어. 볼만 통통해서는, 쪼그만한 게. 농구공 보면서 눈 반짝 거렸는데,
대만은 말을 다 잇지 못한다. 태섭이 좁힌 거리를 본다. 두 발자국. 이 거리에서 태섭이 하고 싶은 말을 본다. 미간이 찌푸려지는 건 당연하다.
…아니지?
내가 말하지 않았나. 형 눈치 은근히 좋다고.
…….
형이 생각하고 있는 거 맞을걸요.
그러면 물러서.
그 말에 순순히 거리를 물린다. 이런, 미친. 농구공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랬다는 확인 사살을 했다. 저 화살이 새삼 심장을 찌른다. 그래서 굳이 확인을 하려고 했다.
태섭아.
네.
첫 눈에 반한 거 뭐, 그런 거 말하려는 거,
맞죠.
네가?
…….
…그래.
태섭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대만은 그걸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물을 좀 마시고 싶다. 이 타이밍에 좀 그렇지만, 술을 좀 깨야 할 것 같다. 태섭이 저런 표정을 짓는 거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려면 반드시 술을 깨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저런 거, 예전에는 안 물었잖아요.
당연하지.
당연한 거예요?
그래. 야. 입대 전에 그런 이야기 하는 건 그렇다 치고, 내가 한 말로 심란하게 만들 일 있냐.
와중에 내 걱정을 했다고요?
당연하지 인마. 너 내 동생이나 다름없어.
태섭의 표정이 완전히 찌푸려진다. 대만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문제되는 거 있냐는 듯이. 가까우니까 확실히 해야 한다. 지금의 대만에게는 이 생각밖에 없었다. 애매하게 구는 거. 이런 건, 우리 사이에는 독이다. 가족이 다 알고 있는 사이는 그랬다. 그것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있다면 더더욱.
지금 심란하게 만드는 건 괜찮고요?
적어도 영창 갈 일은 없잖아.
와, 진짜 형 생각만 하네.
저게 왜 내 생각이냐? 네 생각을 한 건데.
내가 뭐, 탈영이라도 할 줄 알았어요?
음….
태섭이 그럼 뭐냐고, 진짜 미친 거냐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저렇게 봐도, 대만은 할 말이 있었다.
보통은 좋아한다고 말하면… 뭘 기대하는 거잖아. 그런데 넌 그런 게 없었어.
그게 왜요.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아냐?
…….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엉뚱한 짓 할 줄 알았다고.
태섭이 헛웃음을 뱉는다. 딴 곳을 보면서, 한 쪽 입꼬리만 올리고서. 대만은 긴 숨을 뱉으며 제 앞으로 오는 태섭을 쳐다보았다.
진짜 형 생각만 한다고 내가 그랬죠.
…….
형은 예나 지금이나 그래. 정말 형 생각만 해요. 모든 게 형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데 형은 지금도.
태섭의 눈동자에 조금, 물기가 있다. 그렇게 보이는 걸까. 대만은 눈을 크게 뜬 뒤에 가느다랗게 오므린다. 이 시선에서 태섭의 얼굴이 감추어졌다가, 보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아까 전에 본 건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태섭이 울리가. 그럴리가.
그런데 맞아요.
그런 걸 알면서도 목소리에 물기가 있는 것 같다. 대만은 조용히 태섭을 응시한다. 고요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태섭을, 빤히.
뭐가.
형 지분은 적어도 내 세상에서는 크다고요. 열받게.
…….
그러니까 형은. 형 생각 조금만 하면 안 돼요? 내가 이미 많이 하고 있으니까…….
…….
내 생각을 조금만 더. 해주면…… 안 돼요……?
두 분 뭐하십니까? 팀장님이 찾으세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선명한 고백은, 다른 말로 물러선다. 대만은 태섭이 입술을 다무는 것을 본다. 굳게 다물린 입술에 말과 공기가 함께 사라졌다. 빤히 쳐다보는 B를 보면서, 대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섭의 어깨에 팔을 걸고 화장실에서 나온다. 테이블로 가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은 태섭이 처음처럼 제 옆에 앉으며 잔과 수저를 챙기는 걸 보면서, 물을 쭈욱 마셨다. 태섭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형이랑 못다한 이야기 하고 왔냐고 묻는 직원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을 한다. 네.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왔어요.
대만은 다시 물을 마셨다. 그 중요한 이야기를 되새기며 태섭의 잔에 술을 채우고, 제 잔에도 술을 채웠다. 짠. 말과 함께 잔이 닿았을 때, 시선도 함께 닿았다. 저를 빤히 보며 술을 마시는 태섭을 보면서 소주잔을 비웠다. 캬. 젖은 입술을 손등으로 문지르는 걸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을 모르는 척하며 앞에 놓인 바싹 마른 고기를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이미 네 생각을 많이 해서 문제다, 인마.
치워버리고 싶은 시선을 쳐다보며 비어있는 잔에 술을 채웠다. 이것만 마시고 가자. 그렇게 말하는 대만에게 태섭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