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를 모른다

태섭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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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문소리가 들렸다. 벨을 누르지 않아서 집을 잘못 찾아왔거니 했다. 티브이의 볼륨을 줄이고, 소파에 늘어져 있던 몸을 바르게 앉으면서 대만은 무릎을 껴안았다. 두 번 울린 문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볼륨을 올리려고 리모콘을 든 순간, 똑똑, 소리가 들렸다. 대만은 티브이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현관문으로 가는 동안 다시 똑똑, 소리가 들렸다. 네. 대만은 구겨진 티셔츠의 끝을 잡았다. 누구세요. 물음에 답이 없었다. 대만은 문고리를 잡았다가 놓았다. 센서등의 불이 꺼졌다가 켜졌다. 맨발로 현관 앞에 선 제 발을 쳐다보다 잠금 장치를 걸고 문을 열었다. 으, 추워. 차가운 공기와 함께 빗소리가 들렸다. 축축한 공기. 비냄새. 그리고.

 꽃다발을 들고 있는 송태섭.





우리는 우리를 모른다





 태섭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문을 닫고, 잠금 장치를 풀었다. 문틈 사이로 보이던 태섭이 오롯이 보였을 때, 대만은 할 말을 잃었다. 꽃다발을 들고 있는 태섭의 얼굴이 지나치게 담백했다. 잘 있었냐고 묻지 않는 눈과 입술을 보았다. 꽃의 의미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가장 예쁜 꽃으로 골라 사온 것 같은 꽃다발을 보았다. 커다란 꽃다발 때문에 보이지 않던 캐리어가 보인 건, 뒤늦게 잘 있었냐고 묻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대만은 손으로 입과 턱을 만졌다. 커다란 오리털 점퍼 속에 파묻혀 있는 태섭의 얼굴이 유난히 작아보였다. 맨발이어서 발가락 끝이 차갑고 시리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움직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좀 받아줘요. 꽃다발을 내미는 태섭의 손가락 끝이 빨개져있었다. 대만은 그 손가락을 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한 손에 캐리어를 끌고, 또 다른 손에 꽃다발과 우산을 들고 있었을 손. 잡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손의 느낌. 꽃다발을 받아 들면서 손가락 끝과 닿았을 때, 대만은 그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언제라도 품에 안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가볍게 움직이는 태섭의 몸을 끌어 안으면서 대만은, 가로등 아래로 쏟아지는 비를 보았다. 

 보고 싶었어요.

 나도. 

 빗소리에 섞여 들어있는 태섭의 목소리가 유난히 작게 들렸다. 꼭,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다가 비로소 뱉어냈을 때 나오는 한숨처럼.

 태섭은 캐리어를 현관에 두고, 점퍼를 벗었다. 점퍼에 묻어 있는 물을 손으로 털어냈다. 대만은 그 손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빨간 손가락 끝을. 대만은 방으로 들어가 옷걸이를 가지고 나왔다. 태섭의 점퍼를 걸고, 현관 옆에 설치해둔 옷걸이에 걸었다. 들어오라는 말대신, 태섭의 손가락을 잡았다. 차가워서 꽉 쥐게 되었다. 그 손을 태섭은 꽉 마주잡았다. 

 온기가 전해질 때쯤, 태섭의 손에 따뜻한 녹차가 담긴 컵이 쥐어졌다. 미안. 이런 거밖에 없어. 뒷머리를 매만지며 말하는 대만을 보며 태섭은 웃었다. 녹차를 한 모금 마셨을 때, 대만이 앞에 앉았다. 소파에서 일어서려는 태섭을 말린 건 대만이었다. 앉아있어. 태섭은 미간을 찌푸렸다. 

 선배가 바닥에 앉는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이래야 잘 보여, 네 얼굴.

 대만의 말에 태섭은 할 말을 잃었다. 얼었던 손 끝이 녹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찌릿한 느낌이 났다. 오랫동안 추운 곳에 있었다가 따뜻한 곳에 들어와서 그런가 싶었다. 이런 거라면 익숙했다. 온도나 기분의 차이 같은 건, 한계로 올라갔다가 한계도 모르고 떨어지는 극과 극 같은 거다. 이런 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닌데도 오히려, 잔뜩 굽어드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만나고 왔어?

 도착하자마자 선배한테 바로 온 거예요.

 언제까지 있으려고.

 아직 모르겠어요.

 그래. 편하게 지내다가 가.

 태섭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옅게 웃는 대만의 얼굴이 조금, 변했나 싶었다.

 못 보던 사이에 어른이 된 것 같네.

 누가. 내가?

 응.

 참나.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는 얼굴은 예전부터 봐오던 얼굴이었다. 태섭은 길게 숨을 내쉬며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손에 쥐고 있던 컵을 내려놓고, 대만의 앞에 앉아, 무릎을 안고 있는 대만의 손 위에 손을 올렸다. 대만의 손은 따뜻했지만, 아까처럼 뜨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잔뜩 얼어있던 손이 녹아 원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온 손 끝을 보면서 태섭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대만의 손등 위에 이마를 올리고 눈을 감았다. 익숙하지만 낯선 대만의 체향을 맡았다. 

 피곤해?

 조금요.

 재워줘?

 응.

 있어야 할 곳이라는 건 뭘까. 돌아온다는 것은 뭘까. 침대 위에서 대만의 품에 안긴 태섭은 눈을 깜빡였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 제 등을 토닥이는 손의 둥둥거림. 목울대가 움직이는 소리. 조금만 더 자세하게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는 심장 소리.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태섭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 대만을 생각했다. 미국에서 실패를 해도 괜찮아요? 언젠가, 물었던 질문을 생각했다. 네가 말하는 실패가 어떤 건지 잘 모르겠으니까, 나중에 실패하면 꼭 말해주라. 그렇게 말하면서, 당장 급한 영어 잘할 걱정이나 하라며 호탕하게 웃는 대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잘할 수 있지? 라고 물었던 대만을 생각했다.

 당연하지. 나 송태섭이에요.

 어. 그리고 난 정대만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농구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떨어져 있어도 잘할 수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있을까, 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되물어보는 질문이었음을. 뜸한 연락, 바쁜 일정, 어떤 핑계로 빨리 끊는 전화, 보내지 못하는 편지.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선명한, 막막함 속에서 옅어지는 사랑 같은 것. 

 비 오는데, 무릎 안 아파요?

 응.

 진짜야?

 응.

 네가 있어서 그런가.

 낮아진 목소리, 목울대를 울리고 나오는 낮은 웃음 소리. 태섭은 그 웃음 소리를 들으며 대만의 품으로 조금 더 파고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를 몰랐던 시간 속에서도 놓지 않은, 끊어지지 않은 어떤, 사랑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