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둥
4월 초에 있었던 개섭개만 카페 말랑이로 쓴 글입니다. 대만이를 사랑한 개섭이 초코가 하루만 주인인 태섭이가 되어 대만이와 함께 하고 싶다는 내용이어요. 진짜 요상한 이야기이니 보실 분들만 보셔요……
“밥 좀 먹자, 초코야.”
…….
“어디 아파? 병원 갈까?”
……도리도리.
“근데 왜 이렇게 안 먹어. 누나 걱정 돼.”
초코는 애착 방석 위에 누워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있습니다. 아라 누나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좋아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어요. 그 외의 시간에는 두 앞발 사이에 올린 얼굴을 몸 안으로 숨기고 있어요. 이런 지가 사흘째입니다. 누나와 엄마가 걱정할 만하죠. 이런 마음을 초코는 모르지 않습니다. 똑똑한 강아지여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랑에 일찍 눈을 떴어요. 그 상대가 사람이라는 걸 알면, 누나와 엄마가 얼마나 놀랄까요. 초코는 가족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 소리를 내고 싶은 것도 참습니다. 대신, 이렇게 누워만 있습니다. 삼킨 마음이 많아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초코는 갈색 푸들입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며 농구를 하고 있던 형이 NBA 리그에 진출해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 누나가 형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며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데리고 왔습니다.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집으로 들어온 거지요. 송 씨 성을 가지고 있는 가족과 지내고 있어서 송초코라는 이름을 새긴 목걸이를 휘날리며 누나와 엄마를 지킵니다. 비록 조그마했지만, 다른 강아지들에게 기죽지 않았어요. 누나와 엄마가 용감한 강아지로 초코를 키웠기 때문이었어요. 초코는 어디서든 고개를 들고 다녔고, 기죽지 않았어요. 우리 초코가 이 세상에서 제일 멋져! 누나가 칭찬을 해줄 때면 초코는 기분이 좋았어요. 정말 그렇게 된 것 같았거든요. 형이 돌아오면 당당하게 소리를 낼 수 있었어요. 우리 가족은 나 송초코가 잘 지키고 있었어. 어때? 대단하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누나가 진짜 형이랑 닮았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형은 눈썹을 올렸습니다. 초코는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제자리를 빙빙 돌았어요.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초코는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미국에 있던 형이 잠시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어요. 낯선 냄새가 나서 짖으려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네가 송초코냐? 말 많이 들었다. 나는 정대만. 형아야.’
새하얀 반팔티. 까만 바지. 밖이 많이 덥다며 손등으로 이마에 있는 땀을 닦으면서도 환하게 웃던 하얀 얼굴. 초코는 그 사람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낯가리나? 왜 이렇게 가만히 있지?’
초코를 들어 올린 형이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다 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입을 맞추었어요.
‘나 있는데 초코한테 먼저 인사해요?’
초코는 처음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어요. 이런 건, 뽀뽀. 누나와 엄마랑 자주 하긴 하지만, 누나가 자주 보던 드라마를 떠올려 보면, 인간은 아무에게나 뽀뽀를 하지 않아요. 서로 좋아해야만 하는 거였어요.
‘앞으로 잘 지내보자, 초코야.’
침울한 초코를 모르는 그 사람이 코를 비볐어요. 초코는 눈을 깜빡였어요. 형 냄새가 났어요. 처음으로 형 냄새가 싫었어요. 그래도 꾹 참았어요. 피부가 부드러웠어요. 느낌이 좋았어요. 꾹 참고 그 사람이 떨어졌을 때, 형의 손을 깨물었어요. 형이 화를 냈어요. 그런 건 알바가 아니었어요. 깨물자마자 크게 웃는 그 사람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그 사람은 형이 있어야지만 찾아왔어요. 초코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 사람을 보려면 형이 집에 와야만 했어요. 그래서 강아지신에게 기도를 했어요.
형이 빨리 집에 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 사람이 초코를 만나러 와주기를 간절히 빕니다.
이런 게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건, 머지않아 깨달았어요. 형이 미국으로 돌아가고 그 사람을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단식 투쟁을 했어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어요. 그저 바라는 건, 그 사람.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형과 그랬듯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 누나와 엄마가 난리가 났어요. 제발 한 입만 먹으라며 애원을 했습니다. 하지만 초코는 먹지 않았어요. 도저히 넘어가지 않았어요. 눈가 주변에 있는 털이 마를 날이 없었어요. 그저 빌고 빌었어요.
그 사람이 보고 싶어요.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강아지신이 기도를 들어주었는지, 며칠 뒤 그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은 누나와 이야기를 하며 초코를 다리 사이에 뉘었어요. 낑소리를 내는 초코를 쓰다듬고, 뽀뽀도 해주었어요. 초코는 그때 처음으로, 강아지신의 존재를 믿게 되었어요. 간절하면 이루어지는구나. 앞으로 열심히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났어요. 형은 1년에 한 번 집으로 돌아왔고, 그때마다 그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초코는 너무 떨렸고, 기뻤어요. 문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자다가도 일어나 문 앞을 서성이며 기다렸어요. 그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꼭 알려주고 싶었어요. 보고 싶을 때마다 울었다고, 그 울음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요. 그러면 다정한 그 사람은 초코의 마음을 알아줄 것 같아요. 벨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방에 있던 형이 총알처럼 튀어나오는 바람에 선수를 빼앗겼지만, 그 뒤에는 초코의 시간이니 괜찮았어요.
‘초코야, 형아 왔다.’
초코가 폴짝 뛰어 두 발로 서면, 그 사람은 초코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안아 시선을 마주치곤 했어요. 초코는 그 순간이 매우 행복했어요.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게 좋았어요.
‘초코, 잘 지냈어?’
다정한 목소리도 좋았어요. 코 끝을 비비는 것도 좋았어요. 너무 좋아서 심장이 뛰었어요. 산책하러 나가자고 할 때보다 더 뛰었어요. 심장이 뛰는 것만큼 혀로 그 사람의 얼굴을 핥았어요. 그 사람은 간지럽다면서도, 초코를 놓지 않았어요. 초코는 너무 행복했어요. 형이 못마땅한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형, 나도 있는데.’
초코는 분주해졌어요. 형이 퉁명스럽게 말하면, 그 사람은 형의 것이 되었어요. 그럴 수는 없었어요. 그 사람을 빼앗기기 싫었어요. 초코는 허공에 붕 떠있는 다리를 휘저었어요.
‘왜 그래, 초코야? 내려줄까?’
그거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어요. 필사적으로 다리를 버둥거렸어요.
‘알았어, 초코야. 잠깐만.’
그 사람은 조심스럽게 초코를 내려주었어요. 그거 아니라는 말은 그 사람에게 통하지 않았어요. 초코가 할 수 있는 건, 낑소리를 내는 것뿐이었어요.
‘왜 그래, 초코야?’
그 사람이 바닥에 앉았어요. 앉자마자, 그 사람의 다리 위에 올라가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어요. 그러기가 무섭게 형이 목덜미를 잡아 올렸어요.
‘얘가 예전에는 안 이러더니 자꾸 이러네. 초코. 안 돼.’
형이 단호하게 말했어요. 그래도 초코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이럴 때면 형이 싫었어요. 형 싫어. 나가. 여긴 내 구역이란 말이야.
‘초코한테 질투하는 버릇 아직 못 고쳤냐?’
그 사람이 말했어요. 그러고는 형을 안아주었어요. 목덜미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조금 풀린 게 느껴졌어요. 형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아요. 하지만 초코는 침울해졌어요.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은 형이, 그 사람의 허리를 안으며 몸을 붙여요. 초코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보고 있어요.
‘해도 나한테 먼저 하고 하란 말이에요.’
형이 투덜거려요. 그 사람은 초코에게 그랬듯이, 형의 얼굴을 만져요.
‘빨리.’
초코는 그 사람을 안으면서 고개를 드는 형을 쳐다봐요. 몇 번이고 입을 맞추다 혀를 엮는 두 사람을, 말없이 쳐다봐요. 그 사람은 형이 얼굴을 만지고, 목을 만지고, 등을 감싸고 허리를 안으면서도 형이 하는 대로 하고 있어요. 그 사람은 행복해 보여요. 형과 함께 있을 때면 늘 그래요. 초코는 침울한 얼굴을 하고 바닥에 엎드려요. 소리를 낼 힘이 사라졌어요.
초코도 형처럼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초코도 형처럼 그 사람을 좋아해 보고 싶어.
초코는 저 자신을 탓해요. 형을 좋아하지만, 그 사람과 있는 형은 좋아할 수가 없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래요. 생각하고 또 생각해요. 가족을 미워하면 안 돼. 초코를 거둬준 사람들이야. 좋은 사람이야. 착한 사람이야.
하지만, 하지만.
“초코야. 형 보고 싶어?”
천천히 일어난 초코가 테이블로 걸어가요. 앞발로 테이블을 짚고 서요. 그 위에, 사진이 있어요. 모든 사진에는 다 초코가 있어요. 그중에서 초코가 가지고 싶은 건, 형, 그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이에요. 유심히 보던 누나가 그 액자를 초코에게 줘요. 초코는 누나의 발에 머리를 비비고, 액자를 입에 물어요. 커서 잘 되지 않아요.
“저기 가져다 놔?”
……끄덕.
“알았어. 초코 이리 와.”
누나가 초코의 애착 방석 위에 액자를 둬요. 초코는 그 위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아요. 형 얼굴을 몸으로 다 가렸어요. 누나가 웃어요.
“대만이 형 보고 싶어?”
……낑.
“오라고 할까? 아. 오빠 전지훈련 간다고 그랬지. 언제 온다고 그랬더라.”
…….
“형이 중요한 거 하고 있는데, 끝나면 오라고 그럴게. 우리 초코가 형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꼭 알려줄게.”
초코는 누나의 손을 핥아요.
“그렇게 좋아?”
누나가 물어요. 초코는 말없이 누나를 핥아요. 그렇게 좋아요. 너무 좋아요. 초코는 말하고, 또 말해요. 그런데 마음 한편이 이상해요. 누나가 연락하면 그 사람을 볼 수 있는데. 형이 없으면 그 사람은 초코 건데. 왜 이렇게 허전한 걸까요.
마음이 계속 이상한 초코는 몸을 일으켜 사진 속 형과 그 사람을 물끄러미 봐요. 두 사람 사이에 초코가 있습니다. 초코의 뺨에 볼을 갖다 대고 환하게 웃고 있어요. 그런데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닿아 있습니다. 머리, 어깨, 팔, 몸. 모두 엉켜 있어요. 떨어질 수 없다는 것처럼요.
초코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좋아하는 건 이런 걸까? 같이 있어도 외로운 기분이 들 수도 있는 거야?
이 사진을 찍고 난 뒤, 틈 없이 붙은 두 사람이 산책을 시켜 주었습니다. 초코는 형과 대화를 나누는 그 사람의 옆에 있었어요. 그러면서 많은 것을 보았어요. 마주 잡은 손도 보았고, 볼을 꼬집는 것도 보았어요. 웃는 것도 보았고,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몰래 뽀뽀하는 것도 보았어요. 그 사람은 형이 그럴 때마다 넌 진짜 못하는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웃었어요. 그 얼굴이 얼마나 예뻤는지요. 좋으면 좋다고 하지? 툴툴거리면서도 형이 얼마나 행복한 표정으로 그 사람을 보았는지, 초코는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엄마. 초코 좀 봐. 액자 위에 얼굴을 묻고 있어. 저러고 자려는 건가?”
“기도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조용히 있자.”
초코는 열심히 액자를 핥습니다. 형 한 번, 그 사람 한 번. 핥고, 또 핥습니다. 그러다 형을 오래오래 핥습니다. 아무 맛도 없고 향도 나지 않지만, 열심히 핥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누나가 보던 드라마에서, 열심히 기도하면 누군가는 들어주었고 결국, 소원을 이루었어요. 초코 역시, 그런 걸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보다 더 열심히 기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터무니없지만, 간절합니다. 간절해서, 바라고 싶습니다. 바라야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습니다.
강아지신이시여. 소원을 들어주세요.
나 송초코는 정대만이라는 인간을 좋아합니다.
너무너무 좋아해요.
왜 같은 종족을 좋아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정대만이 강아지였다면, 강아지인 정대만을 좋아했을 것입니다.
정대만이 사람일 뿐입니다. 다른 건 없습니다. 그저 정대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좋아하는 사료를 더 먹고 싶어서 누나와 엄마에게 바라던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딱 하루만 형이 되고 싶어요.
정대만이 강아지가 되는 건 안 돼요.
정대만은 오로지, 정대만이어야만 합니다.
내가, 그 사람의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사람의 소중한 사람은 우리 형입니다.
하루만 형이 되어서,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손을 잡고 싶어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안아보고 싶어요.
좋아한다고, 그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해보고 싶어요.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초코야. 초코, 자?”
……그간 너의 소원을 들어왔다. 그저 오래오래 인간 곁에 머무르고 싶다고만 할 뿐, 그 어떤 강아지도 너 같은 소원을 말한 적은 없었지.
하지만 저는 간절합니다.
주인으로 살고 싶지는 않으냐?
형은 그 사람의 소중한 사람이고, 저에게도 그렇습니다. 형은 형이고, 저는 저예요.
……네 말대로, 딱 하루만. 너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해주마. 단, 그 사람은 너와 함께한 하루를 기억할 수 없을 게다. 너만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인간 세계를 간섭하면 안 되는 법. 그래도 좋으냐?
괜찮습니다. 제가 기억합니다.
“잠들었나 봐.”
“그동안 잘 못 자더니. 다행이다.”
그 기억으로 영원히 행복할 수 있어요.
영원의 하루
“……섭.”
“…….”
“태섭아.”
초코는 눈을 번쩍 떴어요.
“언제 귀국했어? 왜 말을 안 하고 왔, 아니, 왜 여기 있어?”
그 사람이에요.
“들어가서 있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
“뭘 이렇게 새삼스럽게 빤히 쳐다보고 있냐, 사람 민망하게.”
“…….”
“무슨 말이라도 좀 해보지?”
그 사람이, 초코 앞에 있어요. 초코는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요. 늘 그랬듯이 다리를 짚고 서려는데, 앞발 아니, 손이, 그 사람의 어깨에 있어요.
“……?”
“너 좀 이상하다? 왜 이래?”
“……나,”
“그래, 너. 송태섭 너. 지금 엄청 이상한 너.”
“…….”
“어디 아파? 그래서 왔어?”
“………형.”
“어. 나 여기 있어.”
초코는 천천히 손을 들어요. 그 손을, 잡아줘요. 따뜻해요. 온기를 느끼자마자 꽉 잡았어요. 그 손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닿을 수 있는 곳이 많아졌어요. 그 사람이 들어 올리지 않아도, 목덜미에서 나는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아주 쉽게, 시선을 마주칠 수 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그 사람의 손길이에요.
“너 무슨 일 있냐?”
“…보고… 싶었어요, 형…….”
“어, 나도. 근데 우선 너, 으억,”
초코는 형이 그랬듯, 그 사람의 허리를 꽉 안아요. 이렇게 한 품에 다 안기는구나. 이렇게… 포근하고, 따뜻하구나. 초코는 그 사람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세게 안습니다.
“잠깐, 잠깐만, 좀 살살.”
그 사람이 앓는 소리를 내요. 이런 소리를 처음 들어봤어요. 깜짝 놀라서 잠시 몸을 떨어뜨렸어요. 어우, 힘이 무슨. 그 사람이 중얼거리며 얼굴을 구겨요. 초코는 깜짝 놀랍니다. 인간이 이런 표정을 짓는다는 건, 기분이 안 좋다는 거예요. 그럴 수는 없어요. 그래서 열심히 생각해요. 형이 무슨 말을 하면 좋아했는지.
“형을 만나기 위해서 왔어요.”
“연락도 없이 갑자기?”
“보고 싶었어요.”
“어, 나도…. 어어, 잠깐만.”
초코는 그 사람을 안습니다. 아까 전보다는 힘이 덜 들어갔어요. 그 사람을 껴안고, 다시 품에 얼굴을 묻습니다. 그 사람의 향기가 몸 안 가득 들어와요. 신기한 일입니다. 원래 강아지는 인간보다 후각이 좋습니다. 그런데, 인간으로 있는 지금이 훨씬 더 냄새를 잘 맡을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 하나하나, 세포 구석구석까지 그 사람의 향기가 새겨지는 것 같아요.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에요. 내 앞에 있는데. 이렇게, 안고 있는데.
“들어가자.”
“조금만 이러고 있을게요.”
“전지훈련 끝나고 올라온 거라 땀냄새 날 건데.”
“그래도 좋아요.”
“내가 안 좋아.”
“좋아요.”
“네 맘 충분히 알았으니까,”
“좋아해요.”
“…오냐.”
“…….”
“송태섭 오늘 진짜 이상하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깨를 꽉 안아줍니다. 초코는 그 사람의 다정한 등을 꽉 껴안습니다. 한 품에 다 들어오는 그 사람을 힘주어 안아요.
“형이 그렇게 좋냐?”
초코는 아까 그 사람이 그랬듯, 얼굴을 구깁니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닌데, 자연스럽게 구기게 돼요. 기분이 안 좋은 게 아닌데. 그냥 조금, 울고 싶을 뿐인데. 이 생각이 들자마자 고개를 저어요. 형은 울보가 아니니까 울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나올 것 같아요. 울 수는 없어서 침만 꼴딱꼴딱 삼킵니다. 그래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씩씩한 생각을 하기로 합니다.
초코는 형보다 더 늠름해. 초코는 형보다 더 남자다워. 초코는 형보다 더 의젓해.
────
씻고 나올 테니 잠깐 기다리라며 화장실로 들어가는 그 사람을 보던 초코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요. 물끄러미 손을 쳐다봅니다. 두 발로 걷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인 것 같아요. 훨씬 더 높은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형보다 더 크니까, 더 높은 세상을 볼 수 있겠죠? 그래서 형은 늘 고개를 들고 다녔던 걸까요? 형은 초코를 볼 때를 제외하고는,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습니다.
초코는 그 사람의 냄새로 가득한 집을 관찰합니다. 두 발로 걷지 않고 손과 발을 이용해서 걸을 뻔해서 잠시 놀랐다가, 지금은 내가 형이다, 내가 송태섭이다, 중얼거립니다. 이 생각을 하니 고개를 숙이지 않게 돼요. 우리 집에도 있는 가구들이 많습니다. 소파, 테이블, 티브이, 책장, 액자. 사진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가족사진이 있어요. 아빠와 엄마를 많이 닮았어요. 가족사진 옆에는 그 사람과 형의 사진이 있습니다. 초코는 그걸 한참 동안 쳐다봅니다. 초코가 알지 못하는 장소에 두 사람이 있어요. 지금과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지는 않지만, 붙어 있는 건 지금과 똑같아요. 조금, 서툴러 보이기도 해요. 손가락 끝만 걸치고 있습니다. 형은 바보야. 왜 잡지 못했어? 초코였다면, 꽉 잡았을 거야.
“뭐해?”
그 사람이 나왔습니다. 초코는 조금 놀라 어깨를 움츠렸어요. 그 사람은 축축한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면서 초코가 있는 쪽으로 옵니다.
“사진 바뀐 거 없는데.”
“…….”
“누워있지. 안 피곤해?”
초코는 어쩔 줄을 모릅니다. 옆에 있는 그 사람이, 너무 뜨거워요. 훨씬 더 좋은 냄새가 납니다. 머리가 어지러워요.
“안 피곤하면, 이리 와봐. 안아보게.”
그 사람은 수건을 땅에 떨어뜨립니다.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어깨를 감싼 뒤, 품으로 당깁니다. 초코는 어쩔 줄 몰라 눈만 깜빡이다, 머리카락과 목을 어루만지는 그 사람의 손에 침을 꼴깍 삼킵니다.
“집에 들렀다가 온 거지?”
“…네.”
그 사람이 얼굴을 감쌉니다. 초코는 그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말없이 오고가는 시선에서 무언가를 느낍니다. 이럴 때 형은, 그 사람의 목덜미를 잡아 내려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요. 형은 그 오랫동안이라는 시간을 세고 있는 걸까요? 이렇게 떨리는데, 어떻게 입을 맞추는 걸까요? 어떻게 시간을 셀 수 있을까요?
“얼마나 있어?”
초코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대신,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갑니다. 그 사람의 목덜미를 잡고, 부드럽게 내립니다. 그 사람이 웃으며 눈을 감습니다.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입을 맞춥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은 감촉. 느낌. 혀로 입술을 빨아 당기고, 혀로 입술 사이를 갈라 넣었을 때 느껴지는 부드러움. 혀와 혀가 얽히며 내는 소리. 자연스럽게 붙는 몸. 틈 없이 닿은 몸이 하나가 될 때까지 만지고, 또 만집니다. 따뜻해서 느낌이 좋아요. 부드러운 몸을 손가락 하나하나로 꾹 누르고, 간질여 봅니다. 그러는 동안, 입술이 떨어졌다 닿기를 반복합니다. 엉킨 타액을 삼키고, 속삭이는 소리를 귀에 담습니다. 아랫배가 뜨거워지는 것 같아요. 초코는 그 느낌에 눈을 살짝 뜹니다. 그 사람은 눈을 감고 있어요. 완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눈을 감아야 하는데,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습니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과, 조금 움직이는 눈을 가득 담습니다.
“오래오래.”
“얼마나 오래?”
“몰라요.”
“모른다고?”
초코는 대답 없이 다시 입을 맞춥니다. 잠깐만, 진짜 뭔데. 그 사람이 얼굴을 붙잡습니다. 차마, 오늘만 있다가 갈 거라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또 눈물이 날 것 같아요. 그러면 아니라고 하면 되는데, 거짓말은 하기 싫습니다. 그래서 생각하다가 말한 게, 오래오래, 라는 말입니다. 멀리 있어도, 형 옆에 가까이 있을 거예요. 오래오래 그럴게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걸 아쉬워하는 그 사람에게, 형은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거짓말은 아닙니다.
합리화를 한 초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축축한 입술을 엄지 손가락으로 쓸어봅니다. 입술이 조금 부은 것 같아요. 통통한 입술을 꾹 눌렀다가, 다시 입을 맞춥니다.
형은 나쁜 사람입니다. 이 좋은 걸 형만 하고 있었어요. 강아지 혀로 할짝이고, 강아지 코를 부딪히는 건 이런 느낌이 안 납니다. 조금 억울해진 초코가 입술을 깨뭅니다.
“아야!”
그 사람이 단 번에 튀어 오릅니다.
“아퍼, 진짜….”
강아지 초코에게 하듯, 입술을 갖다 대고 고개를 젓습니다. 초코는 시무룩해집니다. 너무 귀여워요. 또 억울해집니다. 이 좋은 걸 형만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입술을 쭉 내밉니다. 형이 밉다고 말하는 건데. 그걸 모르는 그 사람은 입술을 꾹 누르고는, 웃습니다.
“귀엽네, 송태섭.”
초코는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입은 맞춰도 될 것 같아요.
“오늘 뭐 하고 싶은 거 있냐?”
“없어요.”
“없어?”
“형하고 같이 있는 것밖에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초코는 그 사람의 얼굴을 만집니다. 조심조심. 먼지가 앉았다가 떨어질 것 같은 손길이에요. 그 사람은 계속 초코를 보고 있습니다. 초코는 그 시선을 알면서,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저 이렇게, 형을 만집니다.
“만지고 싶어요.”
“지금도 만지고 있잖아.”
“보고 싶어요.”
“너 오늘 진짜 좀 이상하다.”
“같이 있는 시간이 소중해서요.”
“진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그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젓는 초코를 안아줍니다. 초코는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이렇게 안겨 있으니, 눈을 감고 있어도 그 사람이 보이는 것 같아요. 같이 있는 건 정말 좋은 거구나. 보이지 않는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요. 내 마음도 전해질까요? 형과 그 사람은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을까요?
그 사람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초코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생각합니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그 사람의 손길을 느끼면서, 편하게 자세를 잡습니다. 손길에서도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초코를 보자마자 입꼬리를 올리는 입술을 보고 있으면 역시, 그런 것 같아요. 초코의 마음도 그 사람에게 닿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초코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계속계속, 말해주고 싶어요.
“좋아해요, 형.”
“너 오늘 진짜 새삼스럽다.”
“좋아하니까.”
“알았어. 알았으니까 잠 좀 자.”
“싫어요.”
“그럼 놀아줘?”
“네.”
“뭐 하고 놀까. 아, 맞다. 체육공원 새로 조성했거든. 산책하러 갈까?”
“?!”
“푸하하! 하하하하, 아, 진짜 웃겨. 너 방금 초코 같았어. 눈 동그랗게 뜬 게 완전 초코였어.”
“…….”
“알았어. 아니야, 너 초코 아니야. 아니, 아라가 너 닮은 것 같다는 이유로 데리고 온 게 초코잖아. 알았어. 알았다고. 간지러워. 진짜 간지럽다고…….”
그 사람의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는 초코는 혀를 내어 목덜미를 핥고, 입술을 갖다 댑니다. 가끔 집에 아무도 없을 때 형이 하던 겁니다. 형이 그럴 때마다 간지럽다고 하면서도 좋아했어요. 형이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 것처럼 꽉 안다가도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틈을 벌리고, 다시 입을 부딪쳤어요. 그때의 형은 웃음을 참는 것처럼 입꼬리를 내리기 바빴어요. 그러면서도 키스를 하기에 바빴습니다. 형이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키스가 너무 좋습니다. 계속 이러고만 싶어요. 그래도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행복해요?”
“갑자기 뭐냐?”
“나랑 있어서 행복해요?”
“…어.”
“진짜요…?”
“어. 너무너무. 너는?”
티셔츠 안에 넣은 손을 움직입니다. 살짝 빨개진 그 사람의 볼을 만지고, 조심스럽게 입술을 갖다 댑니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온 세상을 가진 것만 같습니다. 형이 타고 다니는 비행기가 없어도 미국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도 행복해요. 형보다 더.”
초코의 속삭임에, 그 사람이 옅게 웃습니다. 초코는 다시 키스합니다. 행복이라는 건, 키스인 것 같아요. 이 키스에, 온 세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신기한 것 같아요.
“무슨 생각해?”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 사람은 하나인데, 어째서 온 세상인 것처럼 느껴질까요? 형에게도 그 사람은 온 세상인 걸까요?
초코야. 방금 형을 보고 왔는데 또 보고 싶어.
그래서 형이 이런 말을 한 걸까요?
────
시간이 너무 잘 갑니다. 벌써 어두워졌습니다. 초코는 가는 시간을 붙잡고만 싶습니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팔베개를 하고 그 사람의 머리카락을 만집니다. 시간이 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협탁 위에 있는 시계를 치워버렸어요. 그걸 보고 그 사람이 웃었습니다.
“되게 오랜만이네, 시계 치우는 거.”
그 사람의 말에 초코는 이리저리 눈을 굴립니다. 형은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인 것 같아요.
초코는 그 사람의 숨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생각합니다. 배달 음식을 시키고, 음식이 오는 동안 키스를 하면서 어떻게 지냈냐고 안부를 물었어요. 이번 전지훈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습관처럼 무릎을 만졌어요. 자연스럽게 손을 포개고 있어서 같이 움직였어요. 그 손등을 간질이다가 입을 맞추었어요.
도착한 음식을 식탁에 세팅하고, 형이 좋아하는 음식을 근처에 두었어요. 초코는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사람이 먹는 것만 보았어요. 가끔 누나가 우리 초코 먹는 거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했는데, 그 기분이 뭔지 알 것 같았어요.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입과 볼록 튀어나온 볼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간지러워서, 벌떡 일어나서 그 볼에 입을 맞춰버렸어요. 그 사람이 눈썹을 조금 찡그렸어요. 이건 형이 잘하는 건데. 초코는 엄지손가락으로 눈썹을 반질반질 문지릅니다. 사랑을 하면 닮는 거라고, 누나가 보는 드라마에서 그랬어요.
나란히 서서 양치를 했어요. 조금 서툴렀어요. 강아지신이 형이 말하고 행동하는 건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양치는 잘 안됐어요. 형이 양치는 잘 못 하나 봐요. 그 사람이 거울로 보다가 웃기 시작했어요. 초코는 그걸 빤히 지켜만 봤어요.
“너 자꾸 수작질 하려고 타이밍 재지 마라.”
그 사람이 정색하며 말했어요. 초코는 눈썹을 올렸어요. 형은 진짜 이상한 사람이에요.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어서 양치를 제대로 못 한 거야? 이런 와중에도 입을 맞출 생각을 한다니? 하지만 이해할 수 있었어요. 매시간, 순간마다 입을 맞추고 싶어요. 옆에 있고 싶어요. 떨어지기 싫어요. 같이 있고만 싶어요. 이런 마음은 떨어져 있다가 만나서 더욱더 애틋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그만큼 좋아서 그런 걸까요? 도무지 모르겠어서 양치를 끝낸 다음,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추었어요. 그 사람은 입을 맞추는 내내 집중하지 못했어요.
“집중 좀 하죠?”
조금 성질이 나서 말했어요. 그 사람이 웃음을 참는 듯 입술을 말아 물더니,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넣어 꽉 안은 채로 입을 맞췄어요. 한참 동안 화장실에서 나가지 못했어요. 그 사람이 속삭이면서 한 말 때문이었어요.
“태섭아, 너무 좋다.”
너무 좋다는 건, 행복하다는 말.
그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해줬어요. 이 행복을 멈추는 방법을 초코는 알지 못했어요. 더더욱 행복해지고만 싶습니다.
“왜?”
“네?”
“갑자기 왜 안절부절못해?”
초코는 시선을 피합니다. 입술을 달싹입니다. 그 사람은 그런 초코를 가만히 쳐다봅니다. 초코는 그 시선을 잠시 마주쳤다가, 다시 피합니다. 이러는 동안에도 그 사람은 조용해요. 아무래도, 초코가 말할 때까지 기다릴 작정인 것 같아요. 초코는 몇 번이고 숨을 고르다,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그 사람의 손을 잡습니다. 시선을 마주치고, 빤히 쳐다보다, 입술을 열어, 하고 싶은 말을 꺼냅니다.
“산책… 가고 싶어요.”
눈을 몇 번 깜빡인 그 사람이 싱겁다는 듯이 웃습니다. 그 말을 뭐 그렇게 어렵게 하냐며 머리카락을 헤집습니다. 초코는 한 쪽 눈을 찡그린 채로, 화장실에서 나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쳐다봅니다. 망설임 없이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그 사람을 보다가, 재빠르게 뛰어나가 꽉 껴안습니다. 하고 싶다고 하는 걸 해주는 건 이런 기분이군요. 사랑받는 기분입니다. 이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형도, 누나도, 엄마도, 그 사람도, 사료를 더 달라는 것 빼고는 원하는 건 다 해줍니다. 하지만 지금 그 사람에게는 오로지 초코만 있어요. 얼른 가자며 내미는 손을 잡고 집을 나섭니다. 형 없이 단둘이서 산책을 해보고 싶었다는 말은 꾹 숨깁니다. 이런 건 아무것도 모를 형에게 혀를 내밀고 싶습니다.
두 사람은 발걸음을 맞춥니다. 잡은 손을 꽉 쥐고, 앞뒤로 흔들며 걷습니다. 여름이라 짙게 나는 풀 냄새와 아직 남아 있는 후끈한 공기의 냄새가 초코의 코를 자극합니다. 그럼에도 가장 많이 나는 건, 그 사람의 향기입니다. 초코는 손등에 입을 맞추려다, 맞은편에 오는 사람 때문에 다른 곳을 쳐다봅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손등에 입을 맞춥니다. 공을 만지는 손이라 손가락 끝은 거칠지만, 손등은 부드럽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부드러운 건, 그 사람의 웃는 얼굴입니다. 초코는 그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꼬리가 있었다면, 팔랑팔랑했을 거예요. 너무 좋아서 터질 것 같은 마음을 꼬리로 표현했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너무 좋아요.”
“너 오늘 진짜 딴 사람 같네.”
“별로예요?”
“아니. 그냥…. 평소랑은 다르니까, 자꾸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지는 것 빼고는 괜찮아.”
초코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가, 여전히 보폭을 맞추는 그 사람의 발을 쳐다봅니다. 강아지일 때는 이 발을 맞추기가 어려웠는데, 사람은 참 쉽습니다. 그래서 모든 게 쉬운데, 이 말을 하는 건 조금 어렵습니다. 형도, 하기 어려운 말이 있을까요.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한 것도 없는데, 뭐.”
“무슨 일 있으면 꼭 말할게요.”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래야지.”
“형도 그래야 해요.”
“어.”
“…내가 늘 옆에 있으니까, 나 잊지 말고요.”
“당연한 소리를 진지하게 하고 그러냐?”
이 세상에 당연한 게 있을까요? 없다는 것을 초코는 압니다. 형도, 그 사람도 알 겁니다. 알기에, 초코는 손을 더욱 꽉 잡습니다. 그 사람 역시, 꽉 마주 잡습니다. 이 손안에 있는 건, 두 사람의 마음입니다. 초코는 이 마음을 생각합니다. 간직합니다. 기억합니다. 왜 자꾸 쳐다보느냐고 물어볼 때까지. 물어보고 나서도. 산책을 끝내고, 다시 씻으러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진짜 잠 안 와?”
“네.”
“신기하네. 이쯤 되면 곯아떨어졌다가 일어날 시간인데.”
뜨끔하기도 하고, 조금 슬퍼진 초코가 몸을 일으켰어요. 그리고, 조용히 그 사람을 쳐다보았어요. 그 사람 역시, 초코를 빤히 쳐다보았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런 걸로도 충분했어요. 마주 보는 시선 사이에 있는 것이 보이는 듯했어요.
“형.”
“어.”
“같이 있는 거, 좋은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몸을 일으켰어요. 같이 침대 프레임에 기대어, 이불 끝에 삐죽 튀어나온 발가락을 부딪쳤어요.
“어. 맞아.”
“응.”
“그걸 알아서 좋아.”
무슨 뜻인지 물어보는 듯한 초코를 보면서, 그 사람은 길게 숨을 들이마셨어요.
“매 순간이 소중하잖아, 우리한테는. 그래서 허투루 쓰지 않는 게 좋아.”
“…응.”
“매일 같이 있으면서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
“그런 걸로 따지면 우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거지.”
두 사람은 손을 마주 잡습니다. 자연스럽게, 빈틈없이 잡는 손가락을 빤히 쳐다보다, 가볍게 입을 맞춥니다. 몇 번이고 해도 좋아요. 폭신폭신, 폭닥폭닥. 이런 것들이 어울립니다. 형과 함께 나누는 것들인가 봐요.
초코는 그 사람의 손가락 끝마다 입을 맞추며,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사람의 눈이 느리게 감기기 시작하고 말이 느려질 때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않습니다.
“나 잠 와.”
“응. 자요.”
“넌 안 자?”
“나도 잘게요.”
“어…. 얼른 자. 내일마저 이야기하자.”
“형.”
“어?”
“오늘 나랑 있어서 행복했어요?”
잠시 초코를 바라보던 그 사람이 있는 힘껏 몸을 일으켜 입을 맞춥니다.
“너무너무 행복했어.”
살짝 닿은 입술이 행복한 소리를 내며 떨어집니다.
“내일 초코랑 같이 산책하러 가자. 초코 보고 싶다.”
“…네.”
“그러고 맛있는 것도 먹자. 초코 사료 다 떨어지지 않았냐?”
“아직 충분해요.”
“그래? 내일 가서 얼마나 남았는지 보고 와야겠다.”
그 사람이 웃습니다. 그늘진 얼굴에 빛이 들어오고, 그 사람이 누운 베개가 조용히 꺼지는 것을 바라봅니다.
초코는 그렇게 한참 동안 그 사람을 바라봅니다. 느리지만 천천히, 지금 이 순간을 간직합니다. 기억합니다. 팔랑거리는 속눈썹이 달빛처럼 내려앉고, 살짝 벌리고 있던 입술이 별빛을 머금느라 틈 없이 맞물린 순간과, 고른 숨을 내쉬며 편안하게 자고 있는 그 사람을 영원히 간직합니다. 부드러운 얼굴을 만지고, 왼쪽 턱 끝에 있는 흉터를 어루만지고,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는 그 사람을 사랑으로 영원히 담습니다. 그것들로 가득 찬 마음 중 하나를 떼어내어, 조심스럽게 건넵니다.
“형. 오늘… 많이 행복했어요. 정말 고마워요.”
“형이랑 이렇게 있을 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았어요. 형은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다 기억하니까 괜찮아요.”
“그러니까…, 그래도…, 우리 형 없어도 자주 놀러 오면 안 돼요?”
“늘 형이 보고 싶어요.”
“늘 형을 좋아해요.”
“……난 정말 욕심쟁이인가 봐요.”
“이건 안 잊었으면 좋겠어요…….”
마음에 빈자리가 생겨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기쁠 거예요. 내어주고 있다는 뜻일 거니까요. 그래도 초코는 압니다. 내어주는 것보다, 채워지는 것이 훨씬 더 많을 거라는 것을요.
좋았느냐?
네.
단 하루여도 좋았느냐.
네.
정말 네가 주인이 아니어도 좋으냐.
네.
오늘 하루를 잊지 않는다면,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늘, 오늘일 거예요. 잊을 수 없을 만큼 멋진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초코야, 밥 먹자.”
애착 방석에 누워 있던 초코는 누나의 말에 몸을 일으켜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밥그릇이 있는 소파 옆으로 가요. 아삭아삭 소리가 거실에 울려요.
“아유, 너무 잘 먹네, 우리 초코.”
누나가 대견하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요. 초코는 고개를 들어 누나와 눈을 마주쳐요. 누나가 행복한 것 같아요. 환하게 웃고 있어요. 초코는 더 열심히 밥을 먹어요. 야무지게 물도 마셔요. 더 달라고 조르지 않아요. 우리 초코 너무 의젓하다며 초코를 들어 안아요.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줘요. 초코는 누나 품에 가만히 안겨 있어요. 등을 토닥이는 손이 좋아요.
“조금 있다가 대만이 형아 온대.”
……!
“좋지. 신났네, 우리 초코.”
초코는 꼬리를 흔들어요. 그 사람이 무슨 일로 오는 걸까요? 빨리 양치를 시켜줬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을 깨끗한 몸으로 맞이하고 싶어요.
“알았어, 알았어, 양치하자.”
누나는 초코의 말을 기가 막히게 알아들어요. 화장실에 가서 얌전히 양치해요. 오늘따라 너무 잘한다며 누나는 신이 났어요. 초코는 가슴을 활짝 펴요. 송초코는 뭐든 잘하는 강아지라구.
양치를 다 끝낸 뒤, 다시 애착 방석에 앉아요. 눕지는 못해요. 그 사람이 온다는 소리에 누워 있을 수는 없어요. 예뻐 보이고 싶어서 털 단장을 하고, 귀를 바싹 세워요. 그 사람이 오는 소리를 누구보다 빨리 들어야 해요.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요. 초코가 벌떡 일어나 현관문 쪽으로 걸어가요. 늘 그랬듯, 자리를 잡고 앉아요. 그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요.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져요. 떨리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요. 뛰어나가기 7초 전이에요. 벨 소리가 들리고, 누나가 나가요. 문을 열기 전에 물어요.
“대만 오빠?”
초코는 고개를 끄덕여요.
“어, 아라야. 나 왔어.”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요. 누나가 문을 열어요. 그 사람의 발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초코가 뛰어가요.
“초코야, 형아 왔어.”
“어쩐 일이에요, 갑자기?”
“꿈에 초코가 나와서. 보고 싶어서 왔어.”
……!
“초코가 형아 보고 싶다고 했는데. 진짜 그랬어?”
초코는 잠시 놀라요. 강아지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어떤 것이 남은 걸까요?
“초코 보러 자주 올게. 형 없어도 그럴게.”
그 사람은 제 얼굴을 빤히 보는 초코를 보다, 초코의 턱 밑을 긁어줍니다. 다정하고 따뜻한 손이에요. 초코는 그 눈을 빤히 쳐다보다, 혀를 내어 그 사람의 얼굴을 핥아요. 그 사람이 간지럽다며 웃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그 사람의 목 주변에 앞발을 딛고 서서 핥았습니다. 낮은 숨소리가 듣기 좋았어요.
“오빠가 자주 온다니까 기분이 좋나 봐.”
“그런가 봐.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핥네.”
초코는 간지럽다고 하면서도 여기도 핥으라며 다른 뺨을 내주는 그 사람이 너무 좋아요. 그 사람에게 떼어내어 주는 바람에 비어 있던 자리에 사랑을 채워준 그 사람이 너무너무, 좋아요. 초코만 특별하지만 평범한 그 하루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고, 욕심껏 말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사람이 정말 모른대도 괜찮아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오고 간 순간을 초코는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영원히 좋아할 시간 동안, 그 순간을 기억하며 더욱더 오래 쳐다볼 거예요. 늘 다정하게 받아줄 그 사람에게, 초코의 마음을 전해줄 거예요.
초코는 그 사람의 입술과 뺨을 핥으면서, 형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미워했다고 솔직하게 말할 거예요. 초코는 형보다 늠름하고, 의젓하고, 남자 다우니까 그럴 수 있어요. 또, 그 사람과 멋지게 좋아하고 있는 형을 칭찬해 줄 거예요. 그래도 형이 잘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형보다 더 그 사람을 좋아할 거니까요. 초코는 강아지 세계가 그렇듯, 인간 세계에서도 나이 많은 인간을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형보다 더 나이들 테니, 미리 연습할 거예요. 그게 아니더라도 형이 올 때쯤에는, 초코가 형보다 그 사람의 우선순위 자리를 꿰차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형이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때까지 그 사람에게 열심히 표현할 거예요.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기억을 얻었으니까, 그럴 수 있어요. 그 기억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열심히 물을 줄 거예요. 그 기억으로 매일매일 행복한 꿈을 꾸고 싶어요. 새로운 꿈도 가지고 싶습니다. 이것이, 초코의 새로운 소원입니다. 오직 초코만이 할 수 있어요. 그 꿈을 꾸면서 무럭무럭 자라서, 형보다 더 멋지게 그 사람을 좋아할 거예요. 언젠가 형이 초코형님!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소리를 할 때까지요.
-
개섭개만카페 말랑이로 쓴 글입니다. 말랑이에는 후기를 넣지 않아서 업로드 하는 김에 써보기...(..)..
이 소재를 생각한 건 운전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도대체 왜 저 순간에 이런 게 떠올랐는지 모를 일입니다. 하여간, 운전하는 내내 와씨 재밌겠다 이랬는데 쓰고나니... 아 이거 괜찮을까;;;;;;;; 하지만 그 외의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여, 완성한 글입니다.
이 말랑이를 개섭개만 카페가 열리기 전에, 트친분을 만날 약속이 있어서 먼저 드렸었는데요. 다 보시더니, 주의사항이 있어야 된다고, 강아지 순애 주의를 꼭 넣어서 알려 달라고 하시더라구요... 뭐라구욧? 했습니다. 당연히 태대가 순애니까 강아지도 순애지. 왜 당연한 말씀을 하시지...(?)... 이런 마음......
원래는... 개만이를 등장시키려고 했거든요. 여기까지 쓰려고 했는데, 글을 쓰면 가끔(아니 자주...), 아 이건 여기까지만 해도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건드리고 싶지 않게 돼요...(죄송합니다22) 그치만 초코는 개만이가 나타나도 대만이를 좋아하겠죠? 하지만 개만이에게 끌리는 초코는 바람 피운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귀엽겠다(?)
이상하고 요상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형태는 처음으로 써봤지만, 쓰는 내내 동화책을 보는 마음으로 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적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