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그님이 보고 있어! a

태섭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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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판을 누르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등록 버튼을 누른 뒤, 굽은 어깨와 목을 편다. 오른팔 두 번, 왼팔 두 번, 목을 위 아래로 까딱인 뒤, <열훈열밥 : 열심히 훈련하고 열심히 밥 먹으러 가자 #5> 영상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슛 연습을 하고 있던 정대만 선수가 카메라 기척을 느끼고 손을 흔든다. 이 장면을 무한 반복하며 정대만에게 손을 흔든다. 입을 틀어 막았지만 빈틈으로 울먹이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진서가 부상을 당했잖아요. 재활에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훈련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 물론 태경이도 실력 있는 포인트 가드죠. 그래도 작년까지는 진서 위주로 경기를 했잖아요.”



 어어엉… 너무 잘생겼어…….

 퍼그. 그녀의 인터넷 닉네임이다. 안개의 영어 단어인 포그를 쓰려다 오타가 나서 퍼그가 되었다. 아무도 저를 알아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쓰고 싶었단다. 하나씩 따지면 그럴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퍼그님 역시 마찬가지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번듯한 직장이 있고 인간관계가 원만하니 아예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감이 좋고, 농구를 좋아할 뿐이다. 아주, 아니, 아아아아아아주 많이. 

 퍼그님이 응원하는 팀은 서울 선로커즈. 성적이 좋은 팀이다. 작년에는 우승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정대만. 선로커즈의 슈팅 가드이자 캡틴이다. 이 선수로 말할 것 같으면, 농구계의 아이돌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해 대학에서도 이름을 알렸고, 프로로 데뷔 한 뒤에는 스포츠 뉴스로 중계가 되면서 “저 사람 누구야?” 로 시작해서 지금은, “아, 그 정대만.” 한다. 농구는 몰라도 정대만은 아는 것이다. 농구 선수 최초로 글로벌 회사인 A의 의류 화보도 찍었으니 모를 수가 없다. 그때 정말 난리 났었다. 전세계적인 축구 선수도 아니고 국내에서만 활동하는 농구 선수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던 사람들은 정대만의 피지컬과 예의바름, 시종일관 호쾌하게 촬영에 임하는 태도에 입을 다물었다. 그 전설의 브로마이드가 퍼그님 방의 벽 한 편을 크게 차지하고 있다. 정대만의 트레이드 마크인 눈꼬리를 찡긋거리며 웃는 얼굴을 보면서 오늘도 힘을 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빌며 출근을 한다. 잘 되면 정대만 때문이고, 못 되면 회사 팀장 때문이지만, 어쨌든.

 원하는 만큼 영상을 본 퍼그님은 의자에 몸을 기댄다. 더 이상 새로운 컨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농구는 다 좋은데, 비시즌에 즐길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요즘에는 나아졌다. 영상 플랫폼 수요가 증가하고 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자체 컨텐츠를 제작하는 구단이 많아져서다. 특히 서울 선로커즈 같은 경우에는, 선수 개개인의 인기도 많아서 컨텐츠 제작이 활발한 편이다. 그럼에도 매일 올라오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걸 알지만, 비시즌에도 선수들(정확히는 정대만)을 보고 싶어서, 목마른 하이에나처럼 영상을 찾아 다닌다. 봤던 걸 또 본다. 남들은 농구 비시즌일 때 야구가 시즌이라 야구를 보러 다닌다는데. 오로지 농구, 오로지 선로커즈, 오로지, 정대만인 퍼그님에게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영상을 보려는데, 정대만 개인 카페인 <불꽃> 게시판에 새 글이 올라왔다는 알림 소리가 들렸다. 퍼그님은 늘 접속 되어 있는 카페 탭을 눌렀다.


 초대박 송태섭 국내 들어올지도 모르겠어요


 퍼그님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방금 전 게시물인데도 조회수가 많았다.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렸다. 글을 누르기 전에 NBA 팬들이 모여있는 카페에 접속했다. 거기는 더 난리였다.


 레이커스 감독 송태섭 집에서 안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요 

구단 건물 앞에 기자 쫙 깔렸음 뭔가 퍼지긴 했나봐요 이게 무슨 일ㅋㅋㅋㅋ 

송태섭이 이루고 싶은 거 많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게 미국에서가 아니라 한국에서였나 와 얼얼하다 

근데 솔까말 미국 연봉 받다가 한국오면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을까요 

송태섭이 돈 때문에 미국에 있었던 거 아니잖아요 

일단 공식입장 기다려 보자구요 여기서 궁예짓해봤자 소용없음


 퍼그님은 글과 댓글을 정독했다. 하나하나 뚫어져라 쳐다보며 글자를 머릿속에 넣었다. 실시간으로 글이 쏟아졌다. 한국팬들도 이런데 미국팬들은 어떨지 감도 안 잡혔다. 외국 사이트에 접속하니 OMG가 넘쳐났다. 페이지 전체 번역으로 바꾸었다. 네가 있을 곳은 여기라는 둥, 우리는 너를 보낼 수 없다는 둥, 네가 가면 나는 시들어버릴 거라는 둥, 애인도 이렇게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정도로 애절하고 절박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럴 수 있었다. 송태섭이니까. 퍼그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송태섭.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미국으로 진출한 국내 농구 선수 중에 가장 성공한 사람이다. 미국 내의 인지도가 장난 아니다. 미국인들에게 농구는 미식 축구 만큼이나 인기가 있으니 당연하다. 비시즌에도 비공식 경기가 많고, 도시를 돌아다니며 경기를 하고 팬들과 소통한다. 1년 내내 바쁜 사람이 NBA 선수다. 유명할 수록 더 그럴 수밖에 없는데, 송태섭이 그랬다. 그래서 국내 비시즌일 때는 송태섭을 팠다. 이것 좀 봐달라고 하는 영상과 사진이 많았기에, 배부른 덕질을 할 수 있었다. 

 컨텐츠가 처음부터 많았던 건 아니었다. 송태섭은 NBA에 진출했을 때, 조롱을 많이 받았다. 저렇게 키가 작은데 어떻게 버틸 수 있겠냐며, NBA가 장난인 줄 아냐고 비아냥거렸다. 송태섭이 말이 없는 것을 두고 동양인 특유의 부끄러움과 자신을 낮추는 방식 중의 하나라며 깔보았고,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며 음침하다고 했다. 이런 것들은 송태섭이 실력 하나로 증명하며 팀의 승리를 이끄는 주역이 되자마자 여유와 섹시함으로 바뀌었다. 코요테라는 별명도 생겼다. 작고 날렵하고, 환경 적응에 빠르며, 어떤 변화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능을 가졌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래서일까.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송태섭을 이상형으로 꼽는 셀럽들이 많아졌다. 성별 같은 건 상관 없었다. 송태섭이 입는 것, 먹는 것, 하는 것 모두 화제가 되었다. 따라하려는 사람으로 넘쳐났다. 장신의 남자 모델만 쓰기로 유명한 명품 T의 의류 화보 모델이 되었을 때는, 송태섭의 파급력이 이정도라는 도장을 찍는 일이 되었다. 

 그런 송태섭을 판다는 건, 퍼그님의 자부심을 채우는 것이기도 했다. 너네가 그렇게 좋아해도 송태섭은 우리나라 사람이거든? 다시는 우리나라 무시하지 마라. 마치 내가 성공한 것 같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송태섭이 멋진 건 사실이었으나 냉정하게 따져 봤을 때, 해외에서 성공한 농구 선수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았다. 퍼그님에게는 오로지 선로커즈, 오로지 정대만이었다. 송태섭을 파다가도 정대만에게로 돌아가는 건 그 이유였다. 연애로 따진다면 정대만은 안정형이고, 송태섭은 자극형일까. 혼자 한 생각임에도 얼굴이 빨개졌다. 퍼그님은 뜨거운 두 볼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 주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뇌내망상이 가동되어 멈출 줄을 몰라서, 억지로 고개를 저었다. 생각을 멈추기 위해 다른 생각을 했다.

 태섭 선수가 들어오면, 대만 선수가 좋아하겠지?

 정대만은 송태섭이 NBA에 진출한 뒤부터 공공연하게, 후배인 송태섭을 늘 응원한다고 말했었다. 이런 것때문에 송태섭이 유명해진 뒤부터는 송태섭에게 해줄 말이 없냐는 질문을 먼저 받았지만, 그러기 전에는 시즌이 끝나면 반드시 수고했다는 말을 했다.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다고 덧붙이면서.

 저장 목록에 있는 4년 전 영상을 클릭한 퍼그님은 머리카락 길이 빼고는 지금과 거의 변한 것이 없는 정대만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팔을 톡톡 쳤다. 



 ‘고등학교 후배셨죠? 송태섭 선수가.’

 ‘네.’

 ‘송태섭 선수가 20살 때 미국 유학을 갔으니 같이 농구한 기간은 짧지 않나요?’

 ‘맞아요. 하지만, 그때 한 농구가 가장 기억에 남아 있어요. 음… 어쨌거나, 못 잊을 선수죠.’



 정대만이 웃는다. 손가락으로 볼을 문지르면서 카메라를 보다가, 인터뷰어와 눈을 마주친다. 퍼그님은 영상 속 정대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쨌거나. 이 말을 복기한다. 고등학생 때의 송태섭과 정대만을 알지 못하지만(그래서 억울하다), 송태섭 역시, 미국에서 했던 인터뷰에서 가장 호흡이 좋았던 선수로 정대만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 말을 했을 때의 송태섭이, 그러니까…… 영상 속 정대만과 비슷했지, 아마.

 퍼그님의 눈이 깜빡인다. 아주 재빠르게, 몇 번이고 깜빡인다. 일시 정지 되어 있는 영상 속의 정대만을 보면서, 송태섭이 하는 영어 인터뷰를 듣는다. 뭐라고 하는지 자막이 없으면 알아들을 수 없지만, 이 말 만은 확실하게 들을 수 있다. 정대만. 유창하게 말하는 영어 발음과 완전히 다른, 순수한 우리나라 언어와 발음. 인터뷰어가 어떻게 말해야 될지를 몰라 몇 번이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정, 대, 만. 또박또박 말한다. 인터뷰어가 말하는 걸 따라 말하고, 가르쳐 준다고 말하고,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몇 번이고 계속 말할 수 있는 것처럼. 

 퍼그님은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송태섭에 관한 소문으로 빼곡한 농구계 소식 게시판의 글 작성 버튼을 누른다. 타닥… 타닥, 천천히 움직이던 소리가 타닥타닥, 빠르게 바뀐다. 백 스페이스를 누르는 소리와 자판을 치는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작성이 끝난 뒤 글을 복사해, 영어로 번역한다. 



 이 글은 정확히 한 달 뒤, 성지글이 된다. 정대만의 생일 한 달 전이었다.








퍼그님이 보고 있어!








 no7_song 님이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안. 멍하게 있던 퍼그님의 눈이 알림에 동그래진다. 송태섭의 라이브 알림이다. 알림창을 누르자마자 계정으로 연결된다. 무표정한 사람 중 퍼그님만이 유일하게 생기가 있다. 

 퍼그님은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카메라가 송태섭의 가슴 언저리 근처에 있어서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지 않는다. 쇄골, 턱, 콧망울, 앞을 보고 있는 눈이 보인다. 이 카메라 구도는 조깅을 하고 있을 때다. 이어폰을 귓구멍에 더 깊게 꽂아넣자마자 가쁜 숨소리가 들렸다. 턱 끝에 땀이 있는 걸로 봤을 때는 시작한지 꽤 됐다는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고는 숨소리가 일정했다. 발이 땅에 닿는 소리도 걷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럴 때마다, 송태섭의 체력에 혀를 내두르고는 했다. 이래서 미국에서 살아 남은 게 틀림 없어 보였다.



“이제 한 바퀴 더 뛰고 갈 거예요. 아침? 음… 나중에 말해줄게요. 하하, 맛있었겠네. 그리워요, 미국식 햄버거.”



 송태섭이 한국으로 들어온지 2주 째. 송태섭은 SNS를 통해서 팬들과 꾸준히 소통을 하고 있다. 아쉬워하는 미국팬들을 위함이었으나, 한국어와 영어를 번갈아가며 했다. 그 첫 라이브를 퍼그님도 봤다. 오로지 정대만이었으나, 송태섭 역시 응원해왔으니 당연했다. 

 송태섭이 첫 라이브를 했을 때. 시간은 밤이었고, 운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침대에 누워 있던 퍼그님은 송태섭이 선수(not 스포츠선수 yes 끼 부리는 사람)인 줄 알았다. 스캔들이 터졌어도 아무 일 없었으며, 소문에서 깔끔하게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나 들었다. 이제 내가 있어야 할 곳을 명확히 말하면서도 미국에 있는 시간과 추억을 언급하며 정말 행복하게 지냈다는 말을 애틋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미국팬이었으면 그냥 돌아오라는 말을 했을 것 같은데, 미국 사람들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은 하는 모양이었다. 너의 행복을 응원할게, 가끔 미국에 놀러와라, 너의 승리를 응원할게. 송태섭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송태섭을 보는 내내 퍼그님은 의아했다. 송태섭은 무언가를 내려놓고 온 사람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편안해보였다. 감히 판단하건대, 그렇게 보였다. 지금도 그렇고.

 미국에 있을 때는 에어전시가 직접 계정을 관리했기 때문에 영어가 많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온전히 송태섭의 것이 된 계정에는 한국어와 영어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이것 때문에 한국팬들이 ㅠㅠ 표시로 도배를 했다. 생일에나 올라오던 한국어를 이제는 자주 볼 수 있어서 좋다는 댓글에 송태섭이 하트를 누르면서 국내 복귀에 직접 정점을 찍었다. 그럼에도 채팅창은 평화로웠다. 한국인들의 출근을 응원한다는 영어가 줄줄이 올라왔다. 퍼그님은 라이브에 하트를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뭐할 거냐고요? 개인 훈련 하려고요. 구단 가서. 혼자는 아니고.”



 조용히 듣고 있던 퍼그님의 귀가 ‘혼자는 아니고’ 에 쫑긋 반응했다. 송태섭은 혀로 입술을 축인 뒤 카메라를 쳐다봤다. 퍼그님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대만 선수와 같이 하나요?



“그것도 할 거라고 하던데…. 오늘은 아닌데. 뭐죠, 그게. 영상 찍는 거. 어? 너무 빨라서 안 보여요. 맞아요. 자컨. 저 궁금한 거 있어요. 한국은 왜 이렇게 말을 줄여요?”



 송태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는 얼굴에는 어느새 땀이 다 말라있었다. 방금 땀을 흘린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뽀송한 볼을 긁적이던 송태섭은 알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고백도 줄여서 해요? 나 당신을 사랑해요는 나당사 라고 하나?”



 아, 미친. 퍼그님은 왼쪽 가슴 언저리에 손을 올렸다. 나당사 라니. 이게 무슨 말이야.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나ㅋㅋㅋㅋ당ㅋㅋㅋㅋㅋㅋ사ㅋㅋㅋㅋㅋㅋㅋ, 태섭 선수 그런 말은 없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고백은 그렇게 안 하죠!!!! ㅋㅋㅋㅋㅋ 글자를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속도로 올라가는 창을 보는 내내, 퍼그님의 얼굴은 웃음을 참느라 근육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어떻게 이런 말을 쓸 수가 있어? 퍼그님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퍼그님 혼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당신이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태섭 선수가 당신이라고 하니까 녹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퍼그님은 입술을 말아물며 채팅 입력창을 눌렀다. 핸드폰을 잡고 있는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양쪽 엄지 손가락이 무언가를 재빠르게 쳤다. 자판을 누르면서 다음 정거장을 확인했다. 다음 역에서 내려야만 했다. 타이밍이 좋았다.



“너무 줄이니까…. 우리 말인데도 못 알아 듣겠잖아요. 어.”



 송태섭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퍼그님은 그런 송태섭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무언가를 찾는 것 같기도 했고, 무언가… 경계하는 것 같기도 했다.



“형!”



 퍼그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왜 벌써 왔어요. 나 아직 다 안 끝났어요.”

“8시 30분 쯤에 끝날 것 같다고 했잖아, 네가.”

“그랬지. 그랬는데, 인사 할래요?”



 정대만이었다. 퍼그님은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송태섭의 카메라가 천천히 돌아가더니, 조그맣던 목소리가 커지고, 작게 보였던 몸이 뚜렷하게 보였다. 까만 반바지, 흰 양말, 검은 운동화, A사의 하얀 반팔 티셔츠, 넓은 어깨. 라이브 방송 하고 있었냐? 낮고 편안한 정대만의…… 목소리.



“안녕하세요. 정대만 입니다.”



 퍼그님은 진심으로 울고 싶었다. 정대만의 옆에 있는 송태섭은 웃고 있는데, 옆에 있지 않아서 그런 건지, 울고만 싶었다. 한 손으로 입을 틀어 막은 퍼그님은 손이 두 개인 것이 원망스러웠다. 손이 세 개 였다면,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잡고 있고, 나머지 두 손은 이어폰을 꾹 누르고 있었을 거다.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다음 역 선릉, 선릉 역입니다. 이딴 소리도 들을 수 없도록. 그저, 송태섭과 정대만이 있는 저 곳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여긴 어쩐 일이시죠?”



 송태섭의 질문에 정대만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송태섭은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젓는 정대만을 보다가, 화면을 보다가 했다. 척 봐도 신난 게 보여서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아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글이 올라갔다. 그런 것따위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퍼그님은 선릉역에 도착해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지하철에서 내렸다.



“자컨 보니까 이런 식으로 하던데 왜요.”

“네가 매니저는 아니잖아.”

“연습 해야죠. 이제 나도 이런 거 할 건데.”

“막상 하면 잘 할 놈이 뻔한 소리는. 그리고. 연습할 거면 내가 물어야지 네가 왜 물어?”

“하여간. 어쩐 일이시죠?”



 퍼그님은 화면만 보면서 걸었다. 어떻게 걷고 있는 지도, 어디로 가야 하는 지도 모르겠고 그냥, 걸었다. 다들 빠른 걸음으로 갈 때 퍼그님 혼자 어그적거리며 걸었다. 말 한 마디에 툭, 하고 걸었다. 모두 퍼그님을 지나갔다. 내린 사람이 모두 빠져나간 플랫폼에 유일하게 퍼그님만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퍼그님은 그런 줄을 몰랐다. 이렇게 멍청하게 걷고 있는 걸 몰랐다. 화면 속 송태섭과 정대만은 어떤 세계에 떨어진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유일하게 둘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같이 아침 먹고 훈련하러 구단에 가기로 했거든요. 8시 30분쯤 끝날 것 같으니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었어요. 잘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간 칼 같이 지키는 애가 안 오더라구요. 그래서 찾으러 왔어요.”

“내가 어딨는지 어떻게 알고 와요?”

“네 루트야 뻔하잖아. 걷다 보면 만나겠지 싶었어.”



 퍼그님의 걸음이 멈추었다. 덤덤한 정대만과 그러지 못한 송태섭이 자꾸 퍼그님의 눈에 들어왔다. 그런 송태섭의 귓가로 가까이 간 정대만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손으로 가렸다. 송태섭은 눈을 깜빡인 걸 잊은 사람처럼 보였다. 가만히 어딘가를 보는 송태섭은 완전히 굳은 사람처럼 보였다. 퍼그님은 그런 송태섭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딱, 하고 손가락이라도 튕겨주고 싶었으나, 그래도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다. 송태섭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건 딱 하나.



“형이 배고프대요.”

“아침 먹을 시간 지났어요. 배고파요.”

“왜 귀여운 척 해요?”

“이게 왜 귀여운 척이야?”

“배고프다고 말 하는 게 그런 거지.”

“참나.” 



 송태섭이 웃는다. 살짝 올라가 있는 눈썹이 자연스럽게 내려와 있다. 이런 건, 미국에서 라이브 방송을 할 때도 잘 본 적이 없었다. 

 정대만이 어이 없는 표정을 짓는다. 살짝 찌푸린 미간이 귀엽게 보인다. 이런 건, 구단 자체 컨텐츠 촬영 때 잘 본 적이 없었다.

 퍼그님의 손이 입술을 막는다. 어떤 날카로운 느낌이 퍼그님의 이어폰을 타고 흘려 들어왔다. 뇌와 가까이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어찌나 날카로운지, 심장이 뛰었다. 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플랫폼을 뛰어다닐 수 없으니 심장이라도 대신 뛰어야만 했다.



“나머지 운동은 구단 가서 할게요. 방송 꺼야겠어요. 어…. 아침 뭐 먹을 거냐고요? 올려달라고? 아침 먹는 거? 네. 그럴게요.”

“써니들 오늘도 힘내요. 밥 거르지 말구요.”

“…근데요, 형.”

“어?”

“우리도 섭이 만이 될 수 있어요?”

“뭐라는 거야?”

“아니…. 우리 팀이 선로커즈여서 선을 따서 팬을 써니라고 부른다면서요. 그러니까 우리도………”



 라이브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방송 보셨어요? 저 죽는 줄

 섭이 ㅠㅠㅠ 만이 ㅠㅠㅠㅠㅠ 서비마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구단에 건의하러 가야겠어요 태섭 선수랑 대만 선수랑 같이 있는 자컨 많이 만들어 달라고

 다음 컨텐츠가 태섭 선수 인터뷰 잖아요 그거 대만 선수랑 같이 하면 안 되나요? 캡틴이기도 하고, 선배이기도 하잖아요

 그나저나 태섭 선수한테 선로커즈 벌써 우리 팀 됐나 봐요 소속심 쩐다……

 저 이번 시즌 기대해도 되나요? 태섭 선수랑 대만 선수 케미 미쳤는데요 진짜

 방송이 안 끝나요… 살려주세요……

 근데 마지막에 대만 선수가 뭐라고 한 거예요? 입모양으로 뭐 말한 것 같았는데



 불꽃 카페 게시판을 훑은 퍼그님은 영상 플랫폼 어플을 눌렀다. 벌써 송태섭의 라이브 방송이 올라와 있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몇 번이고 한 뒤, 저장을 했다. 집에 가서 차분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편집을 할 참이었다. 그 전에, 알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방송을 종료하기 위해서 정대만이 손을 뻗었을 때, 송태섭이 하던 말이 끊기는 부분. 대만 선수가 뭐라고 한 부분. 퍼그님은 신중하게 동영상의 재생 막대를 조정했다. 

 ‘섭이 만이 될 수 있어요?’ 퍼그님은 정지 버튼을 눌렀다. 송태섭이 정대만을 쳐다본다. 고개를 정대만이 있는 쪽으로 기울인 송태섭이 자연스럽게 웃고 있다. 땀에 젖은 앞머리 한 가닥이 기울인 쪽으로 자연스럽게 내려와 있다. 다시 재생. 어이 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 정대만의 어깨가 조금, 움직였다가 내려간다. 그 다음, ‘뭐라는 거야?’ 바닥을 쳐다보고 말한 뒤, 고개를 든다. ‘아니…. 우리 팀이……’ 송태섭이 말하는 걸 빤히 보다가, 웃음을 참으려는 듯이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가, 무언가를 말한다. 정지와 재생을 반복한다. 하지만 알 수 없다. 이 짓을 몇 번이고 하다가 [퍼그 씨, 어디 아프세요? 반차 말씀드려야 될까요?] 동료의 문자에 소리를 지르며 계단을 올라갔다.

 퍼그님은 정말, 속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출근이고 뭐고 이걸 판독해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회사로 달려가고 있는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지금이 몇 시인지, 이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정대만이 하려고 했던 말이었다. 분명히 6글자였다. 6글자. 분명히, 송태섭에 관한 말이었을 거다. 확신할 수 있었다.

 간신히 출근 시간에 자리에 앉았다. 동료들이 헉헉거리는 퍼그님에게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다.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은 있었지만, 대의적으로 알릴 건 아니었다. 이런 건,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야 했다. 

 출근을 하자마자 시작된 회의를 끝내고 온 퍼그님은 자리에 앉았다. 기를 다 빼앗긴 느낌이었으나, 지치면 안 됐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인터넷 창을 띄웠다. 창 사이즈를 조절한 뒤, 불꽃 카페에 접속했다. 송태섭의 라이브 방송 때문인지 아침인데도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건, 정대만이 마지막에 뭐라고 했냐고 물어보는 글이었다. 퍼그님은 침착하게 글을 훑었다. 우리한테 한 말이었을 거다, 이제 갈게요 라고 했을 거다, 힘내라고 했을 거다, 좋은 하루 보내라고 했을 거다 등등. 온갖 추측을 보는 퍼그님의 미간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아닌데. 이런 게 아닌데. 그들의 추측대로 말해보았으나, 정대만의 입술 모양이 나오지 않았다. 정대만의 입술을 하도 많이 봤더니, 처음에는 못할 짓인 것 같고 부끄럽더니 그런 마음도 없어졌다. 점점 간절해졌다. 이걸 알아내지 못하면 점심도 못 먹을 것 같다. 절박한 심정으로 영상을 보고, 사람들의 글을 보았다. 

 그렇게 보기를 몇 십 분. 핸드폰이 번쩍였다. SNS 알림을 보자마자, 퍼그님의 눈이 반짝였다.



 jdm14fire님이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퍼그님은 떨리는 손으로 알림을 눌렀다. SNS으로 바로 연결이 되자마자 정대만이 올린 게시물이 나타났다. 


 



 퍼그님은 정말… 할 말을 잃었다.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있는 정대만을 보기 위해서 고개를 숙였다가 팀장에게 지금 자려는 거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런 소리를 들었든 말든, 퍼그님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볼록하게 튀어나와있는 볼이었다. 오믈렛을 자르려고 준비하고 있는 손이었다. 반 정도 깔끔하게 비운 접시까지 사랑스럽게 보였다. 

 미쳤다. 진짜 미쳤다. 

 갑자기 흥분해서 머리가 핑 돌았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셀카를 찍고 있는 송태섭이…. 얼굴 반만 나와서는, 눈썹을 살짝 올리고 있는데, 카메라를 살짝 쳐다보고 있는 눈과 뒤에 있는 정대만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이, 와…….

 미쳤구나, 진짜.

 혼잣말을 중얼거린 퍼그님은 고개를 들었다. 아까 전까지 뚫어져라 봤던 정대만의 입모양이 떠올랐다. 그 영상을 다시 보았다. 입모양을 보느라 얼굴을 잘 못 봤는데, 볼이 조금 올라가 있었다……. 살짝 접힌 눈꼬리와 볼을 한참동안 보다 마지막 사진을 다시 보았다. 느리게 깜빡이는 퍼그님의 눈이 송태섭과 정대만을 차례대로 훑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눈만큼 고개가 움직였다. 두어번 고개를 끄덕인 퍼그님은 조심스럽게 게시물 왼쪽 하단에 있는 하트를 눌렀다. 빨갛게 변한 하트가 송태섭과 정대만 사이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퍼그 씨, 점심 먹으러 가요! 동료가 말했다. 퍼그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과는 다르게 홀가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 비시즌……. 대박 난다. 확신한다. 백프로.

 당 떨어진 것 같아요. 퍼그님의 말에 옆에 있던 동료가 밥 먹고,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퍼그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디저트보다 더 단 게 있는 핸드폰을 꽉 붙잡고, 동료의 팔에 팔짱을 끼며 말했다. 매운 거 먹으러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