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경질적으로 차 키를 던진 대만은 미간을 구기며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에어컨을 켜고, 파워 냉방 버튼을 눌렀다.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 앞에 서서 허리에 두 손을 올렸다. 생각을 안 하고 싶어도 어이가 없어서 자꾸 생각이 났고, 입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나랑 같이 휴가 보내지 않을래요? 않을래요오오오오오?
이 말을 할 때의 송태섭은 옅게 웃고 있었는데, 차에 타고 난 뒤에도 그랬다. 비스듬하던 선글라스는 모르는 사이에 태섭의 눈을 바르게 가리고 있었지만, 자세는 그러지 못했다. 문에 삐딱하게 기대고, 팔짱을 끼고, 어떻게 생각해요? 물으면서 다리를 최대한 쭉 뻗었다. 짙은 색의 긴 청바지에 조리를 신고 있어 보이는 거라고는 태섭의 발가락 밖에 없었다.
휴가가 고민이냐? 장난하냐?
한심하다는 말투로 말했지만 대만은 사실, 운전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태섭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송태섭이 알았으면 분명이 이렇게 물었을 거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건 아니죠.
근데 휴가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와?
휴가차 왔으니까.
친구가 없냐?
아무래도.
뭐 이렇게 솔직해?
아무래도 그런 스타일이니까요.
지랄을 한다. 이번에 왜 길게 있어? 에이전시에서 그걸 허락해?
그건 형이 나랑 휴가를 같이 보낸다고 하면 말해줄게요.
뭐라는 거야, 진짜?
그게 고민이니까요.
잠시 후, 시속 100km 신호 위반 과속 단속 구간입니다. 내비게이션 안내음이 이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액셀에서 천천히 발을 떼며 규정 속도를 지키는 와중에, 그래서 어떻게 할 거예요. 성질머리를 부리고 있는 것이 확실한 태섭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만 역시 성질이 나서 태섭을 노려보았다.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네.
왜?
내가 고민이 있으니까요.
네 고민이 있는 거랑 휴가를 같이 보내는 게 무슨, 야 너 설마 이거 협박이냐?
네.
헛웃음을 뱉은 대만은 단속 구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액셀을 밟았다. 세게 밟는 만큼, 엔진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 소리에, 태섭의 웃음소리가 함께 섞여 들어왔다.
너, 왜 가면 갈 수록 뻔뻔해져?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며 감시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야죠. 예전에 형한테 말했을 때보다 더 많아진 것 같다니까요?
…….
그래도 싸가지없다는 소리는 안 들어요. 예의가 넘친다는 소리는 듣는데,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하고.
…….
뻔뻔한 게 예의바를 수 있다는 걸 미국에서 처음 알았다니까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만해라….
왜요? 이제는 안 미안해요?
네가 지금 하는 게 조롱이라는 거다, 이 새끼야.
눈을 감고 찬 바람을 쐬고 있던 대만은 천천히 눈을 떴다. 저 말을 하면서 뻗은 주먹을, 태섭은 가볍게 한 손으로 잡았다. 한 대 때리고 싶어서 뻗은 건데 그런 거 따위는 모르겠다는 듯이, 부드럽게. 제 주먹이 모두 들어가는 손바닥은 굳은살 때문에 단단했다. 거칠고 투박한 손이 제 손등을 다 덮었을 때는, 진짜 궁금해서 물은 거예요. 낮은 목소리는 태연했으나, 형이 답지 않게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조심스러웠다. 여기서 대만은 또 어이가 없어져 버렸는데, 답지 않게? 않게에에????? 결국, 말꼬리를 물고 늘어져 버렸다.
야. 나 부탁 잘 들어줘.
그래요?
선배들은 물론이고 후배들 부탁도 잘 들어주거든?
아무래도 옛날부터 그런 면이 있었죠, 답지 않게.
칭찬이야, 욕이야?
내가 헷갈리게 말해요? 아닐 텐데.
슬슬 짜증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핸들을 꽉 잡은 건 그래서였다.
…아무튼. 내가 네 부탁 하나 못 들어줄 것 같아?
그럼, 같이 보낼 수 있어요?
대만은 고개를 푹 숙였다. 송태섭 이 여우 같은 새끼…….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분노인지 뭔지가 깔려 있었다. 쟤 미국에서 별명이 코요테 아냐? 코요테는 늑대 아니냐고? 근데 왜 여우같이 굴지? 파워 냉방으로 해 놓았음에도 더운 느낌이 여전해서 아예 에어컨을 껴안았다. 줄어들지 않는 화끈거림은 에어컨 날개 안으로 머리를 집어 넣고 싶도록 만들었다.
…일정은 없는데, 날짜는 봐야 해.
네.
쭉, 같이. 같이 지내자는 건 아니지?
아무래도,
…….
…….
맞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형이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해요.
이 새끼가 진짜 짜증나게.
태섭의 웃음소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더더욱.
*
아라를 만난 건, 반드시 셋이 만나야 한다는 아라의 전언이 있어서였다.
잘 지냈어?
네엥. 오빠도 잘 지냈죠?
어. 얼굴 보는 건 오랜만이다. 그치?
응, 그러니까요.
다리 좀 모으고 앉아, 여자애가 진짜.
오빠가 뭔 상관?
대화를 하면 할 수록 목소리톤이 올라가고 커졌다.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대만은 이 소리 때문에 미간을 구겼다. 태섭과 아라가 힐끔 거리는 게 느껴졌다. 똑같은 얼굴이 두 사람이나 있어서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저었다.
지하철역 바로 근처에 있는 술집에서 보자고 한 건 대만이었다. 기준은 명확했다. 사람이 많을 것. 시끄러울 것. 정신이 없을 것. 원래 후기 같은 걸 잘 보지 않는데 꼼꼼히 보았다. 음식은 맛있는데 시끄럽고 정신 없어서, 중요한 대화를 나누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후기가 대부분이었다. 이 후기를 보고 결정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더더욱 그래서, 구겨진 미간이 펴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많이 시끄러우면 자리 옮길까요?
몸을 앞으로 쭉 뺀 태섭이 물었다. 대만은 놀란 티를 최대한 숨기며 고개를 저었다. 시끄러운 분위기 때문에 이럴 수도 있다는 건 생각도 못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이 고민은 오래 가지 못했다. 태섭과 아라 두 사람 모두, 짜기라도 한 듯이 의자를 당기고, 테이블에 몸을 바싹 붙였다. 대만 역시 그래야만 하는 분위기가 되었는데, 테이블 중앙에 메뉴판을 놓은 아라가 먹고 싶은 음식을 조율하며 하나하나 가리키고 있는 터에 동참할 수밖에 없어서였다.
거의 아라가 먹고 싶은 것들로 주문한 음식과 술이 나왔다. 태섭이 따르는 술을 한 잔씩 받은 뒤, 잔을 부딪쳤다. 건배사는 없었지만, 세 사람 모두 원샷으로 잔을 비웠다. 아라가 태섭을 힐끔 보며 위스키 같은 고오급 술이 아닌데 괜찮냐며 놀렸고, 태섭은 아라의 이마를 손으로 꾹 밀며 미국에서는 소주가 비싸서 안 마시는 것 뿐인 거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만은 팔짱을 낀 채로 두 사람을 지켜보기만 했는데, 이렇게 셋이서 술을 마시는 건 처음이라 그랬다. 아라는 2년 전부터 서울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 인연이 닿아 가끔 만나 같이 밥을 먹곤 했다. 태섭과 닮아서인지 묘한 느낌과 생각 때문에 먼저 연락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라가 말을 하는 건지 태섭이 나도 한국에 들어가면 밥을 사달라고 했다. 저렇게 투닥거리며 말싸움을 해도 연락은 잘 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오빠들을 만나자고 한 이유가 있지.
태섭이 미국에 가면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길 거라고 생각했음에도 여전히 연락을 하고 만나는, 우리처럼.
짜잔.
가방을 뒤적이던 아라가 무언가를 꺼냈다. 대만이 턱을 괴며 뭐냐고 물었다.
숙박권이에용.
대만의 눈이 동그래졌다. 태섭은 조용히 숙박권을 쳐다보다, 대만에게 건넸다. 자연스럽게 받아든 대만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숙박권의 내용을 살폈다.
두 사람 휴가 같이 보내기로 했다면서요. 울 회사에서 성과가 가장 좋았던 직원을 뽑아서 준 건데, 내가 뽑혔지.
그럼 아라 네가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특급 호텔 싫어요. 다른 데는 안 가고 호텔 안에만 있어야 할 것 같잖아.
가고 싶은 곳 갔다가 와도 되잖아.
돈 아까워요.
태섭이 손을 내밀었다. 얼굴 알려진 오빠들이 있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했어. 그 손에 숙박권을 쥐어 준 대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매한 얼굴이었다. 태섭은 그런 대만을 힐끔거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 사이, 아라가 화장실에 다녀 오겠다며 일어섰다. 어쩐지 초조한 기분이 든 대만이 아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시선에, 딱. 태섭이 핑거 스냅으로 대만의 시선을 저에게로 돌렸다.
날짜를 정할 수 있네요.
어.
언제가 괜찮아요?
구단 가서 일정 체크 해야 해.
핸드폰에 개인적으로 체크하는 건 없어요?
전지 훈련 갈 수도 있다고 했어.
제주도에?
어.
그 일정이랑 맞추고 싶어요?
그러면 안 돼?
태섭의 눈썹이 올라갔다. 저 눈썹은, 마음에 안 든다는 것. 그런 것이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대만은 술을 채운 잔을 들었다.
심심할 것 같냐?
그런 걸로 이러는 것 같아요?
그럼 뭐가 불만인데. 나 비행기 두 번 타기 싫어.
거리가 먼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도 싫어.
대만은 말을 하면서도 저답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싫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한 적이 있었던가. 단연코 없었다. 이것보다 더 문제는, 왜 싫다고 하는 건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태섭이 말없이 술을 마셨다. 자작하면 연애 못 한다. 태섭의 눈썹이 더 올라갔다.
그러지 못하도록 계속 따라주던가.
대만은 태섭의 시선이 제 얼굴로 고정되는 걸 보면서, 태섭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러기 무섭게 잔을 비웠다. 한 두 잔은 그러려니 하던 대만은 쉬지 않고 잔을 비우는 태섭 때문에 정색을 하며 잔을 빼앗았다. 태섭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잔을 달라는 것이 명백한 제스처였다. 대만은 고개를 저었다. 고개가 한 번 돌아가기가 무섭게 태섭이 손을 더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든 말든, 고개를 저었다. 잔을 숨겼더니, 아라 잔을 내밀었다. 기가 찬 대만이 술병을 숨겼다.
왜 심술이야?
고민이 있어서요.
너 자꾸 저걸로 맘 약하게 만들 거야?
그러면 약해져요?
이 새끼가 진짜. 취했냐?
네.
취했다는 말을 뭐 이렇게 당당하게 해? 자랑이냐?
기가 찬 대만이 헛웃음을 뱉었다. 기가 찬데, 자꾸 웃음이 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다른 곳을 보며 고개를 돌렸더니, 드르륵,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자리에서 일어선 태섭과 눈이 마주쳤다. 느리게 깜빡이는 눈이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지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시선을 돌리지 않은 건 그래서였다.
123456.
어?
에어비앤비 비밀번호예요.
어?
그러니까 데려다 줘요.
이런 소리를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고 말하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 오겠다는 태섭 때문에 타이밍을 놓쳤다. 왜 이렇게 멍하게 있어용? 자리에 앉은 아라가 내 잔 어디 갔냐며 소란스럽게 찾는 동안에도 태섭의 동선을 따라 늘어진 타이밍이 대만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누가 비밀번호를 저렇게 쉬운 걸로 만드냐고 잔소리를 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