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ME. ZERo.

태섭대만

12



 꿈을 꾸었다. 꿈이 아닌 꿈. 우리는 손을 잡고 있었다. 온 사방이 하얗고 밝은 곳에서 당신은 웃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 중얼거리는 입술.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지는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태섭아, 라고 말하는 당신을.

 손을 잡고 걸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는 없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분명했다. 그래서 당신과 있는 거구나. 그래서, 망설임이 없구나. 당신과 함께라면 어떤 길이든 나의 길이 되고 곧, 우리의 길이 되었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당신이 가자고 하는 길이면 어디든, 나는 다 괜찮았다. 

 당신만 있으면, 괜찮았다. 

 길의 끝에 다다랐다. 

 당신은 어딘가를 보고 있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다는 듯이 보고 있다. 웃음이 사라진 얼굴을 본다. 시선을 주지 않는 눈을 본다. 나는 당신의 손을 꽉 잡는다. 당신이 나를 쳐다본다. 그런 당신을 보며 묻는다. 갈까요? 당신은 말이 없다. 당신은 잡은 손에 힘을 준다. 그리고 말한다. 아니.



“…….”



 눈을 떴다. 익숙한 호텔 천장이다. 태섭은 천장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숙취로 머리가 아파서 미간을 찌푸렸다. 에어컨을 켜고 잤는데도 손이 축축했다. 태섭은 꿈속에서 대만의 손을 잡았던 손을 들어 올렸다. 손의 크기, 온도, 감촉, 모든 것들이 선명했다. 정말로 대만의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그 손을 쳐다보다, 어제 마지막으로 봤던 대만의 얼굴을 떠올렸다. 제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얼굴을.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알기도 전에 사라진 얼굴을. 

 태섭은 몸을 일으켰다. 핸드폰으로 밤새 와있는 문자와 메일, SNS를 보았다. 숙취 때문에 죽겠다는 준호의 문자가 와있었다. 태섭은 피식 웃었다. 대부분 치수와 준호의 문자였다. 대만의 문자는 보이지 않았다. 

 태섭은 채팅방의 처음 문자로 돌아가 점 하나만 보낸 대만의 문자를 본 다음,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 14번이 적힌 유니폼 사진. 아무것도 없는 상태 메시지. 한 번도 바꾸지 않았거나 아니면, 바꾼 사진을 지워서 하나밖에 없는 프로필 사진. 태섭은 유니폼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14번 유니폼을 입고, 코트에서 빛나던 대만을 떠올렸다. 그때의 대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뻐근했다.



“…….”



 1:1 채팅 버튼을 눌렀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창을 태섭은 조용히 응시했다. 문자 입력창을 눌렀다. 태섭의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일어났어요? 삭제

 괜찮아요? 삭제

 어제 들어오자마자 자서 잘 들어왔다고 연락 못했어요 삭제

 오랜만에 한국술 마시니까 속이 안 좋은데, 형도 그래요? 삭제

 그래서인가. 꿈을 꿨어요 형이 나오는 꿈 삭제

 형이 나를 보고 웃어줬는데 삭제




“…….” 



 형

 대만이 형

 선배

 보고 싶어요

 기억나요? 내가 처음으로 고백하던 날

 뭘 그렇게 떨고 있냐고 형이 웃었는데. 기억나요?

 나는 몰랐어, 그렇게 떨고 있는지

 형이 나를 안아주기 전까지는

 이런 걸로 쫄기나 하고 말이야 - 이 말하고 형이 웃었잖아

 그 웃음 때문에 진짜 짜증 났어요

 그런데, 좋았어요

 형이 나를 안아줘서

 형도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줘서

 내가 먼저 너를 좋아했다고 말해줘서

 진짜, 그랬어요?

 그때는 부끄러워서 못 물어봤어요

 정말, 나보다 먼저 좋아했어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언제 알았어요?

 형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나는 왜,



“…….”



 …몰랐을까?



 전부다

 삭제.







 마지막에 마셨던 소주 때문에 숙취가 제대로 생겨 머리가 지끈거렸다. 답답한 공기, 냄새, 흔들리는 지하철 때문에 속이 울렁거려서 마스크를 했다. 제대로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을 만큼 머리가 아팠다. 깡소주를 마셨으니 당연했다. 대만은 제 자신을 탓하며, 회사에 타이레놀이 있었는지를 생각했다. 뻐근한 어깨를 두드리며 지하철에서 내려, 사람들 속에 섞여 계단을 올라가, 



“…….”



 개찰구를 빠져 나간 뒤, 



“…….”



 대만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거의, 습관이다. 태섭의 전광판을 보며 대만은 머리를 매만졌다. 길을 제대로 보지 않고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대만은 전광판을 보며, 어제 했던 말을 생각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옛날의 태섭이 들었다면 발끈했을 것이다. 그 언젠가, 제 귓불을 혀로 핥으며 속삭이던 태섭이 떠올랐다. 형은 모르지, 형이 내 첫사랑이라는 거. 

 엥? 내가 네 첫사랑이라고?

 응.

 거짓말하지 마.

 진짜예요. 왜 못 믿어?

 내가 너 고백 많이 하고 다닌 거 모를 줄 아냐?

 그건. 그건…! 그런 거 아니라고요!

 아니긴 뭐가 아니냐, 흥 깨지 마 지금 좋단 말이야.

 …괴롭힐 거야.

 갑자기 왜?!

 내 마음을 몰라줬으니까.

 사실을 말한 건데 왜?!

 형은 첫사랑이 뭔지도 모르죠?

 처음 하는 사랑이 첫사랑 아니야?

 진짜 모르네.

 대만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날 정말, 죽을 뻔했다. 뭐, 좋아서였지만 어쨌거나. 대만은 긴 숨을 뱉으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태섭을 생각했다. 그날의 태섭을. 허리를 쳐올리면서, 제 발목을 붙잡고 입을 맞추며, 느리게 배를 문지르고, 제 위에서 나른한 눈으로 쳐다보며 했던 말을. 

 형은,

 내가 처음으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야

 이게 첫사랑이야

 잊지 마, 절대로

 내가 형을, 정말 많이, 사랑한다는 걸

 


“…….”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진동을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대만은 전광판을 쳐다보며 핸드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중얼거리며 시선을 떼지 않았다.



-1422번 차주님 맞으시죠?

“네? 아,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여기 Y 자동차 영업소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어제 부품이 입고되어서요. 오늘 수리 들어갈 예정이라 전화드렸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다음주 월요일에 영업소로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넣었다. 전광판을 조금 더 본 뒤, 걸음을 옮겼다. 다시 개찰구에 카드를 태그 했다.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 달력을 확인했다. 다음 주 월요일. 다음주, 월요일.

 7월 31일.

 대만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31 숫자 아래에 있는 작은 점을 보았다. 사흘 뒤. 사람들 뒤에 줄을 서며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머리가 아픈 걸, 잊고 있었다는 것을.





“어제 술 드셨어요?”



 사무실에서 유 코치에게 타이레놀을 받은 대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과 함께 먹은 뒤, 같이 경기장으로 걸어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는 대만을 보며 유 코치는 볼을 긁적였다. 오랜만에 술 드셨네요. 그 말에 대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드세요.”



 유 코치는 개인 가방에서 병을 꺼내 대만에게 내밀었다. 유자차와 꿀물이었다. 잠깐 놀란 얼굴을 한 대만이 고맙다는 말을 했다. 송 선수한테 말씀하시면 돼요. 유 코치의 말에, 대만은 미간을 찌푸렸다. 유 코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제 송 선수랑 같이 드셨어요? 송 선수도 꿀물을 드시길래요.”

“…예.”

“술 드시고 싸우셨어요? 왜 직접 안 주셨지.”

“…….”

“웬만하면 화해하세요. 요즘 저희 분위기 좋잖아요.”

“…….”

“송 선수, 코트에 먼저 가셨어요. 몸 좀 풀겠다고.”



 대만은 손에 쥔 유자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감기에 걸릴 때마다 태섭이 마시라며 주던 것이었다. 내 사랑이랑 유자차 먹고 얼른 나아요. 볼에 입을 맞추던 태섭이 떠올랐다. 



“코치님.”

“네.”

“조금 뒤에 오시겠습니까?”

“네?”

“화해하라면서요.”



 싸운 건 아니지만.

 대만의 말에 유 코치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 10분 뒤에 올 겁니다! 유 코치가 시계를 확인하며 주먹을 쥔 채로 파이팅, 하고 외쳤다. 대만은 그런 유 코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대만은 심호흡을 했다. 코트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농구공이 튕기는 소리가 커졌다. 심장이 조금씩 뛰었다. 경기장 문을 열었을 때, 품이 넓은 나시와 반바지를 입고 농구를 하는 태섭이 보였다. 대만은 그런 태섭을 그 자리에서 지켜보았다. 꿀물을 마셨다는 건, 어제 마신 술로 속이 안 좋다는 걸 텐데도 군더더기 없이 움직였다. 림에서 눈을 떼지 않는 태섭을 보면서 대만은 병뚜껑을 열었다. 탁, 소리가 나자마자 태섭이 공을 잡고 그 자리에 멈추었다. 태섭의 눈이 조금 커졌다. 대만은 태섭이 보라는 듯이 꿀물을 먼저 마신 뒤, 유자차를 마셨다. 숨을 고르고 있던 태섭은 그런 대만을 보면서 손등으로 땀을 닦았다. 고개를 젖히며 마시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는 대만 때문에 심장이 뛰었다. 거친 숨이 진정되지 않았다. 태섭은 빈 병을 바닥에 세운 뒤, 단추를 풀고 소매를 걷으며 걸어오는 대만을 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오던 대만은 어느 정도 걸은 뒤,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자세를 잡았다. 태섭은 입술을 말아 물었다. 대만을 똑바로 쳐다보며, 손에 쥔 공을 던졌다. 공을 받은 대만이 드리블을 시작했다. 퉁, 퉁, 공소리보다 조금 더 빨리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공을 튕기며 걸어오는 대만을, 태섭은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천천히 움직이던 대만이 빨라지기 시작했을 때, 



“…….”

“…….”



 대만은 온몸으로 부딪혀오는 태섭 때문에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손에서 놓친 공이 코트 바닥을 굴렀다. 퉁, 퉁, 퉁…. 대만은 제 허리를 꽉 껴안는 태섭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제 옷깃을 세게 부여잡는 태섭의 손이, 제 품으로 파고드는 태섭의 얼굴이, 깊숙이 들어오는 태섭의 체향이, 점점 더 달라붙는 태섭의 몸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대로 있어줘요. 잠깐만 이러고 있어요. 조금만, 이러고 있어요. 조금만. 

 옷깃을 붙잡는 태섭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대만은 주먹을 쥐었다. 태섭의 무엇 하나라도 잡지 않기 위해서 주먹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대만은 눈을 감았다. 차라리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테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될테니. 그렇다면 이렇게 쭉 같이,



“그만해.”



 태섭의 손이 천천히, 등을 만지며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씩, 조금씩. 제대로 느끼지 않는다면 모를 정도로. 다시 한번 더 말했다. 그만하라는 말을, 태섭은 듣지 않았다. 태섭의 손가락 끝이 목에 닿은 순간 결국, 대만은 태섭의 어깨를 잡았다. 눈이 마주쳤다.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있는 힘껏, 태섭을 밀어냈다. 태섭은 그 힘에 밀려났다. 제 몸을 안고 있던 힘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대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섰다. 주먹을 쥐고 걸어가는 대만의 뒷모습을 보면서 태섭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 마음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



 대만은 미간을 찌푸렸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까 전, 태섭이 그랬듯이. 울컥하고 차오른 감정에 대만은 눈을 질끈 감았다. 손가락 끝에 피가 통하지 않도록 문고리를 세게 잡은 손을, 떨리고 있는 손을 다른 손으로 붙잡았다. 

 대만은 태섭에게 묻고 싶었다. 무엇을 아냐고. 네가, 뭘 아냐고. 사랑을 돌려달라는 네 말에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어디까지 아냐고. 그러면 너는 나를 왜 결국, 놓았냐고. 

 태섭은 고개를 돌린 대만과 눈이 마주쳤다. 대만이 웃고 있었다. 그 웃음 때문에, 태섭은 미간을 찌푸렸다. 대만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 다행이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선을 넘지 않아 줘서.”



 문이 열리고, 닫혔다. 태섭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연습과 훈련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태섭과 대만을 보는 유 코치는 안심했다. 선수 한 명 한 명, 부족한 점을 이야기하며 더 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 코치는 태섭이 좀 더 오랫동안 이곳에 있어줬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대만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아시안게임 감독 자리에 오른 뒤,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던 그때와 비교를 하면, 좋은 조력자와 함께여서 그런지 좀 더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태섭 역시, 체구나 키가 저보다 월등한 사람들 틈에서 전쟁 같은 농구를 하는 모습을 볼 때와는 다르게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유 코치는 몰랐다. 

 아무 일도 없는 척을 하는 것은 쉽다는 걸.

 태섭을 보내고, 대만에게서 멀어지고, 한 거라고는 그거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는 것.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밥을 먹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혼자 있을 때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해야 하는 것에 비하면 저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와 다르게 서로의 옆에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시간이란 그런 거였다. 괴로운 시간을 버텼다는 건, 어떤 순간과 감정에 태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비록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훈련이 끝났다. 벤치를 정리하고 휴대폰을 본 대만은 미간을 찌푸렸다. 협회장의 전화가 와있었다. 한숨을 내쉬는 대만을 태섭은 힐끔 쳐다보았다.



“예. 이제 막 끝났습니다. 예. …예? 예,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고개를 드는 대만이 볼세라 태섭은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다 닦은 땀을 한 번 더 닦는 척을 하며 가방을 정리했다. 대만의 기척이 느껴졌다. 태섭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만을 쳐다보았다.



“협회장님 호출.”

“지금이요?”

“어. 괜찮냐?”



 태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만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유 코치에게 먼저 가보겠다고 말했다. 잘 다녀오십시오! 유 코치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협회장실에 도착한 태섭과 대만을 협회장은 밝은 얼굴로 맞이했다. 이야기가 길어질 건지, 테이블에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대만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태섭은 그런 대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아닙니다.”

“차 한 잔 하세요. 좋은 겁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협회장의 얼굴은 여전히 밝았다. 그런 협회장을 보는 대만은 불안했다. 대만은 평온을 가장하며 소매를 매만졌다.



“내가 요즘 우리 정 감독님과 송 선수 때문에 기분이 좋습니다. 좋은 이야기만 들리고 있어서요.”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잘 되어 가고 있는 거죠?”

“예. 선수들 컨디션 관리도 잘 되고 있고, 훈련에도 잘 따라와 주고 있습니다.”

“정 감독.”

“예.”

“송 선수가 있는 동안, 선수들 기량 발휘 좀 시켜봐도 좋겠지요?”

“예?”

“송 선수, 언제까지 있을 수 있습니까?”



 대만의 평온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조율 중입니다.”

“다음 달까지 있을 수 있습니까?”

“회장님, 송태섭 선수는,”

“다음 달 평가전까지. 가능합니까?”

“…평가전이요?”

“네. 일본과 평가전 일정을 잡았어요.”



 어디 보자. 협회장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동안, 대만은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 다다음달 이군요. 어떻습니까, 조율 가능하겠습니까?”

“안 됩니다.”

“나는 송 선수한테 물었어요.”

“송태섭 선수가 한국에 있을 동안 책임자는 접니다. 저한테 먼저 알리셨어야죠.”

“정 감독.”

“선수들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제가 봐도 실력이 늘어나는 게 보입니다. 그게 송태섭 선수 영향이 없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송태섭 선수는 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송태섭 선수가 출국한 후에도 선수들이 컨디션 유지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 짤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네.”



 조용히 있던 태섭이 대답했다. 대만은 할 말을 잃고 대답을 한 태섭을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태섭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 내려놓은 뒤, 협회장을 보며 웃는 태섭을 보면서 대만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조율해 보겠습니다.”

“다행입니다.”



 협회장이 크게 웃었다. 태섭은 대만을 쳐다보았다. 어이가 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고 있는 대만을. 눈동자가 흔들리고,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을. 꾹 다문 입술 끝이 흔들리는 것을. 저를 노려보는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던 얼굴로 지내고, 웃던 얼굴이 무너지는 것을. 화가 머리끝까지 났음을 숨기지 않는 것을. 그런 대만을 보는 태섭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협회장의 말대로, 좋은 차인 것 같았다. 맛이 좋았다.





 협회장실에서 나온 태섭은 대만에게 손목을 붙잡혔다. 태섭은 대만의 손에 끌려가며, 대만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도 이렇게 화를 내지 않았던 것 같은데. 태섭은 대만이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했다. 비어있는 회의실에 밀어 넣고,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문을 닫은 뒤 잠그고 제 앞으로 오는 대만을 보면서 태섭은 천천히 팔짱을 꼈다. 그런 제 모습을 대만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것이,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태섭은, 못내 기뻤다. 



“당장 미국으로 가.”

“나 여기서 할 일 있어요.”

“그 할 일 씹, 내가 해.”

“내가 하겠다고 했어요.”

“나 장난 아니야.”

“나도 장난 아니에요.”

“이런 씨발,”



 욕을 뱉으며 뒤돌아선 대만은 허리에 두 손을 올렸다. 고개를 숙이는 대만을 보면서 태섭은, 심장이 쿵쿵거리는 것을 느꼈다.



“시즌 준비 안 해?”

“해요.”

“하는 새끼가 여기서 할 일이 있다고 출국을 안 해?”

“하겠다고 했으니까 하고 가야죠.”

“그러니까 그걸 네가 왜!”

“내가 하겠다고 했으니까.”

“그걸 네가 왜 하냐고 이 새끼야!”

“형.”

“네가 여기서 그걸, 왜 하냐고. 여기서 왜!”

“정대만.”

“당장 가서 안 되겠다고,”

“내가 어디까지 올라가야 직성이 풀려.”



 화가 나 얼굴이 빨개진 대만의 앞에 한 발자국 걸어간 태섭이 물었다.



“내가. 어디까지 성공을 해야 만족해. 응?”

“…시끄러워.”

“내가 보낸 계약서 안 버렸을 거고. 그러면 알고 있지? 내년에 재계약 있는 거.”

“…….”

“재계약까지 성공하면 만족할래?”

“시끄럽다고 했어.”

“그러면 만족하고 돌아오라고 할 거야?”

“송태섭.”

“그러면 씨발 그때는 내가 매달려도 받아줘요?”



 고개를 추겨 올리고, 대만을 내려다보면서, 긴 숨을 쉰 태섭은, 떨리는 오른손을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러면, 사랑한다고 말해줄 거야?”

“…….”

“사랑하잖아. 나 사랑하잖아요, 형.”

“…….”

“사랑해서 보낸 거, 이해해. 그래. 덕분에 미국에서 성공했어. 내 농구, 형 덕분에 더 넓어졌어. 형이 가라고 해줘서 그렇게 됐어. 그것까지 다 이해했어 그런데, 내가 어디까지 더 이해해야 해.”

“…….”

“어디까지 내가 형 없이 더 가야 돼.”


 태섭이 한 발자국 더, 대만에게 가까워졌다. 입술을 깨물고 떨고 있는 대만을 쳐다보며 태섭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나 그냥 형 옆에 있고 싶어.”


“형 옆에서. 형이랑 같이. 형이랑… 형한테 사랑한다고, 형,”


“사랑해.”


“나 좀, 욕심내줘. 나 좀 욕심내주라. 어?”


“나 좀, 내버려 두지 마라 제발…”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정채봉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