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지 않더라도, 01

태섭대만





1.

사랑이 뭔지 라던가 말할리가 없지만







“고생하셨습니다.”

“어어. 들어가.”

“네. 연락 드릴게요.”


 대만은 달재를 태운 택시가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길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정리했다. 어쩐지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다. 이 느낌이, 물끄러미 서서 손바닥을 쳐다보도록 만들었다. 그나마 덜 취한 달재와 술에 취한 녀석들을 먼저 보내느라 힘을 좀 쓴 모양이었다. 손바닥 전체가 빨갰다. 조금 부었나. 주먹을 쥐자마자 뭉툭함이 느껴졌다. 이 느낌은, 바지 주머니 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도록 만들었다. 이 핸드폰을 죽어라 노려본다. 만지거나,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검은 상태 그대로다. 

 하지만, 안다. 저 안에 무엇이 있는지. 검다는 표현은 부족하다. 무지막지하게 시커매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모를 놈이 있다.

 집에 들어온 대만은 그대로 욕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뿌연 거울을 손바닥으로 대충 닦은 뒤, 양치를 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아무 표정이 없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무래도, 너무 오랜만에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심장이 이렇게 뛸 수가 없었다.

 소파에 널브러져 눈을 감았다가 벌떡 일어났다. 테이블 위에 있는 핸드폰은 여전히 검은색이었다. 정자세로 핸드폰을 보는 얼굴은 말갛다가, 하얬다가, 붉어졌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쉽게 구겨진다. 반듯한 자세가 한 순간에 무너진다. 바닥을 딛고 있는 정갈한 발이, 불규칙적으로 움직인다. 핸드폰을 쳐다보고, 노려보고, 한숨을 쉬었다가, 천장을 쳐다본다. 이런 행동이 아주 익숙하다. 문제는, 꽤 오래 전의 일이라 잊혀져야 하는 것이지, 익숙하면 안 되는 것에 있었다.

 살다살다 집 호구조사는 처음 당해봤다. 1분 늦게 말해서 차인 꼴을 보여주었던 그 사람도 다른 건 질릴만큼 물어보았으나, 이런 건 안 물어봤다. 동거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조차도. 같이 살고 싶다는 의미에 침대 역시 그랬을 그 사람에게는 집에 방이 몇 칸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리라.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중요하다. 대만 역시 중요했다. 그 누군가가 후배지만, 그 안에는 전 애인 타이틀을 달고 있는 송태섭이었기 때문에. 


-통화 괜찮아요? 속은 어때요?


 태섭의 목소리는 태연했다. 스피커폰으로 바꿔 놓은 대만은 팔짱을 꼈다. 


-달재한테 오늘 모임 소식 들었어요. 선배는 술 많이 안 마셨다고 해서 전화했고요.

“용건이 뭐야?”


 말을 뱉고도 아차했다. 너무 퉁명스럽게 나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이게 뭐 중요한가 싶었다.


-달재한테 가족 이야기 들었죠. 그렇다고 알고 있는데.

“그럼 뭐. 왜.”

-선배 집에 빈 방, 있죠.

“없어.”


 달재가 눈치를 봤던 이유를 짐작만 했는데, 확실해졌다. 


-방 세 칸 이잖아요.

“어.”

-전셋집이지만 꽤 괜찮은 것 같다고 자랑했었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방이 없다고요?

“내가 다 써.”


 이 미친 전 애인 새끼가 뻔뻔하게 구는데 저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

“뭐. 왜. 뭐.”

-몸이 세 개는 돼요?

“그 날 기분에 따라서 방 바꿔가면서 자는데 왜.

-…….

“더 할 말 있냐?”


 제가 생각해도 뻔뻔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대만은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태섭은 말이 없었다.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말이 되지 않아도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면, 한국에 있는 동안 지내도 되냐는 말은 절대로 하지 못할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팔짱을 낀 팔에 힘을 주었다. 헤어질 때, 선후배 사이로 지내자고 제 입으로 분명히 말했다. 이 사안에 대해 선배로서 배려를 할 수 있겠지만, 그랬기에 이건 다른 문제였다. 

 헤어지자는 말을 했을 때 참았던 울음은 차마 떨쳐내지 못하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아직, 남아있었다. 


“없으면 끊어. 피곤해.”


 이런 건 태섭이 절대로 알면 안 되었다. 어떻게 선후배로 지내자고 했는데.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세게 주먹을 쥐었는데. 그때의 제 손이 선명했다. 손톱으로 짓누른 손바닥이 한참동안 아팠다. 공을 그렇게 쥐어도 아프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손이었다.


-솔직하게 말할게요. 선배한테만 하는 말이에요.


 태섭의 목소리는 덤덤했고, 대만의 얼굴은 그러지 못했다. 말 잘 안 하는 성격 어디 가지 않았다는 태섭이 뱉은 ‘솔직하게’ 라는 말이 눈 한 번 깜빡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오래 있을 것 같다고 한 거, 재활 때문이에요. 최근 처치를 받아도 불안정해서요.

“…어.”

-선배도 알죠. 뭐든 미국이 더 좋다는 거. 감독님이 굳이 왜 한국에서 재활하냐고 묻더라고요.


 차분하게 말을 잇는 태섭의 말을 듣는 내내, 대만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마음이 편안하면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요. 미국에서 오래 지냈어도, 알죠. 향수병 뭐, 그런 거. 몸이 내 마음 같지 않으니까 더 돌아가고 싶더라고.

“…….”

-선배는 그런 쪽으로는 잘 알테니, 도움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예전에 그랬잖아요. ‘날 활용해’ 라고.

“…….”

-자세한 건 만나면 말하려고 했는데, 선배가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죠. 알겠어요.


 대만은 태섭의 말을 듣는 내내, 오래 전에 겪은 제 무릎 부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태섭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잘 몰라도, 어떤 마음인지는 알 것 같아 뻔뻔하게 굴었던 게 미안해졌을 찰나, 태섭이 뱉은 활용이라는 말이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머리를 부여잡게 만들었다. 

 이 미친새끼. 어떻게 그 말을 할 수 있어.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을 때는 한 번도 그런 적 없으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꽉 잡은 대만은, 네모난 화면 속 [송태섭] 이름을 빤히 쳐다보았다. 머릿속에서 후배로서의 송태섭과, 전 애인으로서의 송태섭이 시소를 타듯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했다. 무엇에 서운한 건지를 끊임없이 생각했고, 이 생각은, 예전의 정대만이 송태섭에게 무슨 말을 한 건지 똑똑히 되새기도록 만들었다. 그럼에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게 무엇 때문인지를 정의하기 위해서 천천히 눈을 떴다.


“최근에, 안 자는 방 하나 있어.”


 그 정의가 진실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진실 같은 거, 태섭에게는 감춰둔지 오래였다.


“비워둘게.”


 한참동안 조용하던 태섭이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요. 대만은 긴 숨을 내쉬었다. 이 한 마디가 뭐라고 온 몸에 진이 다 빠진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스피커 너머로 와우-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티브이 소리예요. 티브이. 시트콤. 답지 않게 당황한 태섭이 재빠르게 말했다. 대만은 아무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워두겠다고 한 방을 빤히 쳐다보다 몸을 일으킨 뒤, 걸음을 옮겼다.


-안 자는 방 기분은, 어떤 건데요?


 태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물음에, 대만은 방문을 열었다. 커튼을 쳐놓지 않은 창문으로 불빛인지, 달빛인지, 어떤 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이 가리키는 곳에는 태섭과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있었다. 유일하게 태섭과 함께 한 사진이 있는 방 안에서, 그 시절의 우리를 빤히 쳐다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동굴.”


 진실이 있는 곳이라는 걸 알 턱이 없는 태섭은 웅웅거리는 목소리를 내며 물었다. 


-그런 기분이…, 뭔데요?


 대만은 바람빠진 소리를 내며 말했다. 어른답게 굴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기분.









[전화 받아.]

[비행기에서 내렸잖아. 얼른 받으라고.]

[이게 다 뭐냐?]

[사진]

[사진]

[너 뭐 이사 오냐? 아예 들어와? 어?]


 대만은 끊임없이 들어오는 짐은 쳐다보지도 않고 분노의 문자를 보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항으로 갈까라고 물었을 때 안 와도 괜찮다는 말은 가볍게 무시했다. 그랬다면 이 광경을 혼자 보지는 않았을 것이고, 바로 따져 물을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도 어떤 혼란을 느꼈다. 뭐에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이사 오냐고, 아예 들어오냐는 것도 화가 나서 물었던 건데, 그런 것치고 평온하다. 아직 연락이 없는 태섭 때문에 성질이 이만큼 나는데, 함께 찍은 사진이 사라진 휑한 서랍장 위에 있는 박스가 혹시나 떨어질까 싶어서 안으로 밀어넣었다.


“마지막 박스 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기사들과 인사를 나눈 대만은 조용해진 집 한가운데에서 한동안 서있었다. 사방이 조용해지자마자 안도의 한숨이 나옴과 동시에, 잊고 있던 제 상태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태섭이 오기 전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뻑뻑해진 눈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저 자신이 이렇게 예민하게 굴 줄은 몰랐으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자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는 묘한 합리화는, 어느새 한 가득 쌓인 박스가 역시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오래 있나. 정말, 비시즌내내 있는 건가. 그러면 쭉… 같이 있나.

태섭에게는 비워둔다고 했지만, 원래 손님방으로 써서 손님용 이불과 서랍장만 있던 방이었다. 이런 공간이 태섭의 물건으로 가득하다. 그럴리가 없는데도 태섭이 자주 뿌리는 향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럴리가 없으면서도 자꾸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래봤자 종이 박스의 냄새와 제 집 향밖에 나지 않는데도.

 어쩐지 속이 터진다. 가볍게 올 거라고 생각했다. 곧 죽어도 폐를 끼치기 싫어하니까. 이렇게 무겁게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그런 건, 태섭의 성격상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 확신이 뒤집혔다. 이런 건, 어떤 것이 변했다는 걸까.

 붕붕. 머리카락이 휘날리도록 고개를 젓는다. 생각하지 말자. 그러려니 하자.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태섭은 여전히 연락이 없다. 대만은 한숨을 내쉰 뒤 입술을 깨물고, 참을 인자를 되뇌었다. 이런 건 아주 옛날, 고등학생 때나 하던 거였다. 정확히는, 정해져 있었다. 깐족거리며 속 터지게 하거나, 의외로 입이 짧다고, 그래서 힘으로는 나한테 안 된다던 송태섭을 볼 때. 이것 말고도 훨씬 많았다. 이제는 오래 되어 세세한 건 기억도 잘 안 났다. 하지만 확실한 건,


“왜 이렇게 연락이 늦어?”

-입국심사가 좀 늦었어요. 알아본 팬도 있었고. 기다렸어요?

“기다리긴 개풀! 인마. 공항에,”

-네.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발목도 안 좋은 새끼가 천천히, 빨리 왔어야지! 그때와는 다르게, 모든 할 말을 다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숨긴말을 저 안으로 감추며, 뒷머리를 매만졌다. 태섭은 조용했다. 분명, 어떤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쩐지 입술을 다물게 되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태섭은 어쩐지 화가 났다. 기다려주지 않은 게 떠올라서였다.


“…어디야?”

-택시 탔어요.


 할 말을 잃은 대만은 벅벅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매만졌다. 잘 가고 있어요. 이 소리를 했을 때는,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19살 이후로는 양심에 찔리는 짓을 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양심이 난도질을 당하는 것 같았다. 

 푹푹 패이는 아픔을 느끼며 그러려니 하는 건 정말이지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었다.


“실례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들어오는 태섭을 빤히 쳐다만 볼 만큼.


“…들어가요?”

“어. 어. 들어와.”


 쾅. 문이 닫힌다. 대만은 마른침을 삼켰다. 

 문소리가 이렇게 컸었나. 티브이라도 틀어놓고 있을 걸 그랬나. 아니면 음악이라도. 동영상이라도 아니, 뭐라도.

 태섭이 신발을 벗고 들어온다. 그 발을 빤히 쳐다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맨다리다. 대만의 미간이 살짝 구겨진다. 미국이 뭐든 좋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곳에서 뭐든 했으니 이정도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제 얼굴을 빤히 보는 태섭과 눈을 마주쳤다. 태섭은 무표정이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제 얼굴을 본다. 이렇게 보는 게 얼마만인지를 세어본다. 그렇게 세어보다, 제 앞으로 뻗은 손을 발견한다. 


“오랜만이에요.”


 그 손을, 붙잡았다. 손가락 마디 사이의 느낌이 어떤 지를 알면서, 건조한 악수를 나누었다.

 손을 먼저 놓은 건 태섭이었다. 태섭은 그 손을 조용히 뒤로 숨겼다. 어깨에 걸친 가방을 어디에 두면 될지를 물었다. 대만이 손으로 가리킨 방은 현관과 가까운 곳이었다. 괜히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며 방의 위치를 파악했다. 괜히 기분이 꽁깃해졌다. 일부러 침실과 먼 방을 준 건 아니겠지?


“뭐. 불만 있어?”


 그 얼굴을 기어이 발견한 대만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태섭은 대만이 시비를 걸 수 없도록 재빠르게 입술을 쳐다본 뒤, 아무것도 못 봤다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좁아요.”

“네 짐이 많은 거거든?”

“내가 선배네 집에서 지내는 거, 싫었던 거 아니죠?”

“네 짐이 많은 거라니까?”


 대만이 정색을 했다. 태섭은 벽에 비스듬하게 기대고 팔짱을 낀 대만을 힐끔 거렸다. 대만은 헛기침을 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짐이 왜 이렇게 많아? 이사오는 거냐고. 아예 오는 거냐고. 어엉?


“대충 입고 살 수는 없어요.”

“어련하시려고.”


 태섭은 비웃는 대만을 보며 웃음을 삼켰다. 뭔 옷을 그렇게 사냐느니, 입고 다니냐느니, 잔소리를 하던 어느 날의 대만이 떠올랐다.


“세 달 정도 있을 거예요.”

“…비시즌 내내?”

“네.”

“왜 말 안 했냐?”

“선배가 안 물어봤으니까?”

“…….”

“그냥…. 생각을 좀 하느라고요. 말할 타이밍을 놓쳤어요.”

“무슨 생각.”


 대만이 곧 후회하는 표정을 지었다. 태섭은 그걸 알면서 모르는 척을 했다. [시간 돼요? 나 좀 만나요.] 문자를 보낸 이유. ‘진지한 연애는 도움이 안 된다.’ 출국할 때까지 잭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다짐한 시간을 떠올렸다. 


“일단 씻어. 씻고 좀 쉬어.”


 태섭은 그 시간의 끝에 걸려 있는 23살의 대만을 뒤돌아 세우고 싶었다. 헤어질 때에도 사랑했고, 헤어진 뒤에도 사랑했으며 지금도 사랑하고 있어서, 두 번 차인다고 해도 건방을 떨어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변화가 필요했다. 진지한 연애가 도움이 안 된다고 설파한 잭은 ‘넌 사실 형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가벼운 사람이야. 모르지?’ 라며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했다. 한껏 눈썹을 올린 태섭이 알아듣게 말하라고 했을 때에야 부연설명을 덧붙였는데, ‘가볍다고 해서 진지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생각을 덜 한다는 뜻이야. 무슨 뜻인지 알아?’ 그런가. 그럴지도 몰랐다. 지난 시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한 고백을 생각하면, 영 틀린 말은 아니지 싶었다. 그럼에도 정말 오랜만에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긴장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끈질긴 사랑의 끝을 붙잡고 매달리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놈이 대만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도무지 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질질 끌려가도 좋았으나, 구질구질하기는 싫었다.


“저녁. 같이 먹을까요? 맛있는 거 해줄게요.”

“…어?”


 대만이 잘못 들은 것마냥 되물었다. 태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멋있어 보이고 싶었다. 이런 가오는 포기하기 싫었다. 





 송태섭, 여전하지……않은데?

 대만은 부엌에서 움직이는 태섭을 보면서, 언젠가 태섭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요리를 시작했는데요. 덤덤하게 말했지만, 알 수 있었다. 기를 쓰고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빨개진 귀 끝이 그 증거였다. 그 말을 하면서 앞에 놓인 맥주를 홀짝이던 태섭은 눈치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미국은 인스턴트가 너무 많고, 움직여서 칼로리를 태우는 건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질려서요. 그 말에 뭐라고 덧붙였던가. 그럴 수도 있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었던가. 어떤 요리를 하냐고, 뭘 제일 잘하냐고, 어디까지 할 수 있냐고. 묻고 싶은 질문을 어디엔가 처박아둔뒤 성의없이 고개만 끄덕였었던가. 

 

“너…, 미국에서 이런 걸 자주 해 먹어?”

“자주는 아니고요. 모처럼 귀국했으니까 먹고 싶어서요.”


 진수성찬이 펼쳐진 식탁을 내려다보다, 앉으라는 태섭을 쳐다본다. 이런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대만은 제 집이 아닌 줄 알았다. 이건, 장을 보러 갔을 때부터 그랬다. 장거리 비행 때문에 피곤하지 않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태섭은 냉장고 문을 열며 근처에 가까운 마트가 있냐고, 장 보러 가야겠다는 말을 서스럼없이 했다.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말에는 괜찮으면 운전 좀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초행이라 아는 사람과 같이 가고 싶다는 거였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말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고, 그 말에 돌아온 건, 장바구니 어디 있어요? 였다. 그러고 마트로 가는 차 안에서 이런 말을 했다. 자동차 보험이 어떻게 되어 있어요? 다른 사람이 운전해도 괜찮아요? 

 이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서, 카트를 끄는 태섭의 옆에서 이런 말만 했다. 나 이거 먹고 싶어.


“선배가 이 브랜드 소세지를 좋아하는지는 몰랐네. 나중에 보내줄게요. 미국이 훨씬 저렴해요. 배송비 포함해도 그럴 것 같아요.”

“어…. 고맙다.”

“그래도 가공식품 많이 먹지 말고요.”

“1절만 해. 엉?”


 제 쪽은 보지도 않는 태섭을 보며 투덜거린 대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맞은편에 앉아 빠진 건 없는지를 훑어 보는 태섭을 쳐다보았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안 먹고 뭐하냐고 물었다. 그 말에 숟가락을 들었다. 매일 드는 숟가락인데 어쩐지 무겁게 느껴졌다. 그 무게는 제 얼굴을 빤히 보는 태섭의 시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복장 역시 그랬다. 태섭은 여전히 앞치마 차림이었다. 저 역시 입는 앞치마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태섭은 그렇지 않았다. 은근 깔끔하니까 앞치마를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모습을 많이 상상했더니, 이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분명 처음 보는 모습인데도.


“어때요?”


 대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어. 담백한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태섭은 그 말에 다양한 조미료를 첨가했다. 빨개졌다가, 혀로 입술을 축였다가, 눈치를 봤다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가, 쉴 새 없이 얼굴이 바뀌었다. 이런 모습은 대만을 조금 이상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선후배사이여도 사귀었고, 무엇보다 나는, 헤어지자고 한 사람인데. 지금의 태섭은 사귈 때보다 더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좋아하는 반찬을 가까이에 밀어주고, 모자라지는 않냐고 묻기까지 했다.


“많이 먹어요. 조금 마른 것 같아요. 아무리 비시즌이어도, 그러면 안 되잖아요.”


 이거, 그런 건가. 별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더 다정할 수 있다는 거. 

 어디선가 본 이야기를 떠올린 대만은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밥을 먹었다. 태섭이 오기 전 다짐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다짐이 무색하게 이런 감정을 느낀다. 다짐에 공을 들이지 않은 게 아닌데도.

 오랜만에 만났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같이 살게 된 사람을 앞에 두고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건, 태섭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먹는 속도가 느려지는 대만을 보면서 별 말을 하지 않았다. 하고 싶고, 묻고 싶은 말이 목구멍에 차올랐으나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젓가락이 자주 가는 반찬을 대만에게 밀어주는 것뿐이었다. 그것들을 먹는 대만을 보면서, 밥그릇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나올세라, 입 안에 든 밥을 꼭꼭 씹어 먹었다. 


“재활은, 매일 가?”


 그러기가 무섭게 대만이 말을 꺼냈다. 대만은 무표정했지만, 그런만큼 진지했다. 태섭은 고개를 저으며 그릇을 내려놓았다.


“일주일에 두 번, 많게는 세 번이요.”

“그렇게만 가도 괜찮아?”

“네. 해보고, 조절할게요.”


 대만은 입을 꾹 다무는 태섭을 보며, 밥을 먹었다.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태섭 역시 잘 알테니, 더 이상 말하는 건 잔소리일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표정 좀 풀죠.”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문제 없어요. 진짜예요.”


 태섭이 손을 테이블 아래로 감추었다. 하마터면, 대만의 얼굴을 붙잡을 뻔했다. 허벅지에 둔 손을 꼼지락거리는 내내, 실소가 나올 것 같은 걸 참았다. 지금의 대만이, 헤어지자는 말을 할 때의 표정을 짓고 있어서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제 자신이 우스웠으나, 정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의 얼굴을,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뒤돌아 세우고 싶은 모습이 눈 앞에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까, 선배랑 있고 싶어요.”

“…….”

“선배가 나를 가장 잘 알잖아요. 어떻든 간에.”


 대만이 미간을 구겼다. 저 얼굴이 반갑게 느껴졌다.


“어떻든 간에 라는 말이 나오는 걸보니 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는 안다는 거지?”

 

 대만이 익숙한 얼굴로 노려본다. 고작 몇 초 안 봤다고, 이 얼굴이 그리웠다는 기분이 들었다.


“짓이라고 할 게 있어요?”

“있지, 인마. 네가 이정도로 뻔뻔해진 줄은 꿈에도 몰랐잖냐.”

“그럼 같이 있으면서 꿈에도 볼 만큼 알면 되겠네요.”


 태섭이 깐족거린다. 이런 말을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태섭은 아주 그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이게 말이면 단 줄 아나.”


 대만은 저도 모르게 씰룩거리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기 위해 손으로 입주변을 가렸다. 괜히 턱을 매만지는 척도 했다. 


“야, 송태섭. 너는 진짜 양심이 없어. 어떻게 나랑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을 하냐? 아무리 선후배여도 우리,”

“거짓말 아니니까요.”


 태섭의 말이 단단했다. 순식간에 할 말을 잃은 대만은 말만큼이나 단단한 태섭을 보며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거짓말. 안 해요.”


 여태 단단하게 단련시켰다고 생각한 심장이, 순식간에 말랑해진다. 했던 다짐이 비웃는 게 보인다. 그럼에도 어쩔 수가 없다.


“앞으로 밥은 네가 해. 설거지는 내가 할게.”


  태섭이 조금 놀라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말랑한 심장을 보여준 것도 아닌데 그걸 봤다는 듯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살짝, 아아주 살짝, 입꼬리가 올라갔다.


“빨래는 바구니에 가득 차면 돌려. 물 아껴야 돼.”

“네. 옷 색깔 구분 하면 되는 거죠?”

“어.”

“뭔가, 의외네요.”

“뭐가?”

“그런 거 안 할 것 같은데.”

“어머니가 집안일에 진심이셔서 혼난 게 많아. 예전에 말 한 적 있지 않나?”

“한 적 있어요. 그래도 혼자 살면 안 그럴 줄 알았거든요.”

“이게 진짜 날 뭘로 보고.”

“또 뭐해요?”

“어…….”


 대만은 볼을 긁적인다. 이거, 분위기가 조금…, 


“내 방에 화장실 있거든. 거실에 있는 화장실은 네가 써.”

“고마워요.”

“대신 청소는 내가 할게. 발목 안 좋잖아.”

“괜찮아요. 진짜. 심각한 거 아니에요.”

“…그럼, 같이 해.”

“네. 또?”

“쓰레기 같이 버려.”

“네. 또요?”


 ……이상하지 않나?


“사생활 간섭 금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부드럽게 웃고 있던 태섭의 얼굴이 단 번에 구겨진다. 대만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간섭 안 할게.”

“간섭할 사생활은 있고요?”

“놀리냐……?”

“아. 없고요.”


 태섭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로 밥을 마저 먹었다. 숟가락 가득 올린 밥을 입 안에 밀어넣은 태섭은 한 쪽 볼을 부풀린 채로 우물우물 잘도 씹어 먹었다. 기가 차서 헛웃음을 뱉었더니, 왜여어? 아무것도 모르는 척 되묻기나 했다. 이 목소리가 대책없이 느껴졌다. 이거 역시 조금, 위험하지 않나.


“……점 붙여.”

“네?”

“네 입으로 내뱉는 모든 말에 점 붙이라고.”


 태섭의 미간이 구겨지는가 싶더니, 이내 반듯해진다. 일자였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리운 얼굴이 예측불가능하게 바뀌어갈 때쯤, 태섭이 입 안에 든 음식을 삼켰다. 꾸울꺽. 들릴 리가 없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이 목울대가 크게 한 번 울렸다. 그 울림에 길게, 아……….


“그거야 말로 내가 하고 싶은 건데. 어떻게 알았어요?”


 목울림 소리는, 내가 낸 소리였나. 

 멀뚱멀뚱 눈만 깜빡이는 대만은 테이블 아래로 조용히 손을 내렸다. 대만의 마음 속에서 관망하며 비웃고 있던 다짐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물었다.

 나, 계속 여기 있어도 돼?

 그 질문에, 허벅지에 손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있어야 돼. 그래야 죽일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