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7

태섭대만






“선배 진짜. 미친 거 맞네.”


 이것 좀 보실래요? 사진 하나 찍어 보냈던 문제의 삐까뻔쩍한 람보르기니에서 송태섭이 내렸다. 완전 너랑 반대인 차를 샀네. 반대? 뭐가 반대. 너보다 차가 더 크잖아. 문자보다는 전화가 편해서 국제전화를 날리며 비웃다가 축하한다고 말했던, 기껏 축하해줬더니 미국에 오면 탈 수 있는 영광을 준다고 뻐기던 그 람보르기니였다. 대만은 볼을 긁적이며 어쩐지 들떠 보이는 태섭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런 대화를 언제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저 날의 대화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남아있던 대화가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을까. 그렇게 해야 한다는 소원처럼 자리잡고 있었던 걸까. 대만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제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송태섭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람보르기니 타러 왔다. 왜.”

“와하하. 진짜 미친 거 맞네.”


 신나게 웃는 태섭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기지개를 켰다. 대충 걸터 앉아있던 캐리어에서 일어났다. 그러자마자 송태섭이 캐리어를 제 손에 쥐었다. 대만은 그런 태섭을 쳐다보았다. 


“미국물이 좋기는 하네. 얼굴이 좋아졌어?” 


대만의 물음에 웃기만 하던 송태섭은 조수석 문을 열었다.


“부상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태섭에게 추궁을 당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시동조차 안 켜겠다고 하는 뉘앙스여서 대만은 한숨을 뱉었다. 


“그거 이주일 전이야.” 


 벨트를 하고 선글라스를 만지작거리는 대만의 손을 보며 태섭이 시동을 켰다. 엔진소리가 어마어마했다. 


“슈퍼카는 원래 이래?”

“이주일 전이라는 대답으로 퉁칠 생각 하지 마요.”

“퉁친 거 맞는데. 네가 알아 들은 거 맞아.”

“안 괜찮다고 들었는데?”

“구라 까네 또.” 


 태섭은 어깨를 으쓱였다. 대만은 곧 심드렁한 표정으로 창 밖 풍경을 쳐다보았다. 애리조나에는 사막이 많다더니, 공항도 사막 한 가운데에다 세운 것 같았다. 이리봐도 저리봐도 모래사장과 모래산 밖에 안 보였다. 아 빨리 대답해요. 태섭이 대답을 독촉했다. 대만은 성가시게, 하며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좀 쉬면 괜찮아져.”


 대만의 대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태섭은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 대만을 노려보았다.


“암만 그래도 새벽에 전화해서 대뜸 미국에 오겠다고 하는 게 어딨어요?”

“여기 있네.”

“내 경기 잘 챙겨 본다더니 아니었나?”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선배가 전화했던 날에 나 경기 뛰었잖아.”

“그런데.”

“피곤해서 넉다운 됐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고 전화를 한 거예요?”

“그런 거 모르겠는데. 어쨌든 받았잖아.”

“진짜 열받게 대답하네.”

“…그런데 왜 웃는데?”

“열받으니까 웃죠.”

“미친놈.”


 대만은 고개를 돌렸다. 태섭의 낮은 웃음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받을 거라고 생각 하고 전화했다는 거 아닌가. 허밍처럼 들리는 말을 들으면서 창 틀에 얼굴을 갖다댔다. 글쎄. 그런 건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대만은 비행기에서 수도 없이 되풀이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송태섭. 처음부터 거슬렸던 새끼. 대만은 살면서 송태섭보다 열받게 하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송태섭은 강렬했고, 또 강렬했다. 죽어라 싸우고, 상처 입히고, 깨부수고, 깨부심을 당하고, 얼굴에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은 얼굴을 보면서도 죄책감 하나도 안 들고, 앞니를 깨먹었어도 이 새끼야 물려내 라는 말을 뱉어보지도 못하게 만든 극악무도한 새끼. 송태섭이 깨부순 건 앞니가 아니라 무뎌진 심장이었나. 그렇게 싸운 뒤에 농구부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으니 꽤 그럴싸한 가정이었다. 남자놈들이 그러하듯 싸우면서 정이 든다지만, 그랬던 것 같지만 그 싸움이라는 건 적어도, 서로를 죽일 듯이 상처를 입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데도 아직까지 이어진 인연. 송태섭이 농구 제대로 해보겠다고 미국으로 갔음에도 끊어지지 않은 연락. 가끔 잘 지내냐고 물어보는 말투에서 느꼈던 애매함. 송태섭과 했던 시덥잖은, 가끔 아니 자주 열을 내며 했던 이야기들. 그게 뭐라고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쌓이고 쌓였던 보통날. 


“며칠 있어요?”

“모레 가.”

“네?”

“그렇게 됐어.”


 태섭은 대만을 대놓고 봤다. 앞 안 보냐. 그 말에 앞을 잠깐 봤다가 다시 대만을 봤다. 힐끗 쳐다본 송태섭의 얼굴에 온갖 표정이 다 있었다. 미친 것처럼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진짜 왜 온 거냐고 물어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대만은 다시 창 밖을 보았다. 말이 안 되는 일정이기는 했다. 바꿔서, 송태섭이 이런 일정으로 들어왔다면 욕을 바가지로 쏟아냈을 것이다. 3일 있자고 돈과 시간을 들여서 오냐, 돈지랄도 정도껏 하라고. 대만은 창에 비친 송태섭의 얼굴을 애써 무시하며 상상한다. 아 그런데 너 좀 웃긴다, 짧게 있을 거면서 굳이 나한테 연락한 거, 내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건가? 상상 속 대만은 하하 웃으면서 팔짱을 낀다. 마주본 송태섭은 이 인간이 미쳤나, 하며 눈썹이나 올리고 있다. 예, 예, 그렇습니다, 예, 예. 상상 속 송태섭이 빈정거린다. 깝죽거리는데도 얄밉지 않은 걸 보니 반가워하는 것 같다. 대만은 시트에 몸을 비스듬하게 뉘였다. 말이 안 되는 상상 같아도, 송태섭이라면, 나라면, 그럴 것 같았다. 그렇다면, 상황이 뒤바뀐 현실의 송태섭과 나는.


“…뭐 그렇게 짧게 있다가 가요?”

“이번주까지 쉬는 걸로 되어 있으니까.”

“그럼 좀 더 빨리 오지 그랬어요.”

“그냥. 그렇게 됐어.”

“그런데 왜 미국까지 왔어요? 가까운 다른 외국도 있는데.”

“그냥. 그렇게 됐어.”

“내가 보고 싶었나?”

“…예, 예, 그렇습니다, 예.”

“근데 왜 빈정거려요, 좋으라고 좋게 이야기 좀 해주지.”


 송태섭이 리뉴얼해준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 제대로 뛰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처럼.





사랑은 나를 파괴하지 못한다

0522. 정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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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7로 저장되어 있던 문서여서 제목 역시 무제 7입니다. 0522 로 되어 있는걸 보니 대만이 생일글로 쓴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다.. 왜 썼는지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나네요.... 사랑은 나를 파괴하지 못한다, 라고 쓴걸 보니 제목도 정했던 것 같은데 왜 안 썼는가?...... (못 쓰겠어서 안 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