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너를 데려오는 방법 01

태섭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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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 후 선배는 진학 상담 때 안 감독님에게 추천 받았던 대학으로 입학을 할 예정이다. 1년간은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다고 말하는 선배의 얼굴이 절망감에 가득 차있었다. 

 들어봐, 송태섭. 

 마치 가기 싫은 합숙에라도 끌려가는 사람처럼 말하던 선배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통금시간도 있고, 전화를 걸 수 있는 시간도 있다, 농구 강호라는 말만 들었지 공부도 빡세게 해야 하는 학교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등등. 헛웃음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나는 선배에게서 진학할 대학을 들었을 때 맨 처음으로 한 것이 그 대학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리가 얼마나 되는 지를. 얼마나 만날 수 있는지를. 그래도 조잘거리는 선배를 보니 좀, 귀엽기는 했다. 선배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 꽤 많아졌다. 아마, 인정하려 하지 않을 테지만.


 웃음이 나오냐. 웃음이 나와? 

 그럼 울어줘요? 아니면, 선배의 무궁한 대학 생활을 위해 기도라도 해줘요?

 너 진짜 너무하다. 차갑다, 차가워.


 너무하는 건 정대만, 바로 넌데요.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나야말로 들어봐요, 선배 하며 주절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지금 선배를 못 본다는 것때문에 미칠 것 같다고요. 다른 것보다는 선배를 자주 못 본다는 것에 대한 절망이랄까, 불안이랄까, 이런 것들이 가득해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이렇게 오래 떨어지는 것이었다. 사귀기 전에는 농구부였으니 매일 농구장에서 봤고, 사귄 후에는, 사귀고 있으니까 더 자주 봤다. 정말, 시도때도 없이 봤다. 이 시간을 의식하는 것처럼.


 나는 불만에 찬 선배의 얼굴을 보며 손에 묻은 모래를 털어낸 뒤에 손등으로 선배의 얼굴을 만졌다. 선배는 여전히 나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나원. 도대체, 누가 누굴 위로해야 하는 거냐고. 


 선배는 잘 할 수 있어요. 막상 하면 잘 하잖아.

 …….

 쫄지 마요. 선배가 누구야. 불꽃남자 아니냐고.


 마지막말에 선배가 피식 웃었다. 드디어 웃었다. 나는 바보같이, 저 얼굴에 쉽게 만족하고야 만다. 


 너무 힘들면 농구 하면서 풀어요. 그렇다고 무릎 너무 많이 쓰지 말고요.

 ……. 

 나한테 전화해서 털어내던가. 전화하기 힘들면,

 최대한, 오려고 노력할게.


 …정대만이 반칙을 하네.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매주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네.

 전화도 자주 할게.

 네.

 …나랑 했던 농구. 잊지 말고. 

 


 마지막말에 할 말이 없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단어를 고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잊을 수가 있어. 선배 때문에 농구가 좋아졌다가 싫어졌고, 그랬다가 다시 좋아졌다. 나에게 있어 농구는 곧, 선배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차마 이 말을 할 수가 없어 괜히 주먹을 쥐었다. 나는 여전히 비겁하고, 도망을 친다.


 할 말을 다 전한 것 같은 얼굴을 보며 나는 많고 많은 말을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지 고를 수 없는 문장들이 내 안에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만 한다.


 잊지마.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거.

 안 잊어, 멍청아. 너야말로 잊지마.


 선배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입술이 가까워진다. 시선을 들어 선배를 바라본다. 입술이 닿기 전, 주문과도 같은 말을 내뱉는다. 이 말이, 선배의 몸 안으로 들어가 각인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선배 마음 나한테 넘겼다는 거, 잊지마요.


 안 잊는다고 말하려는 입술을 삼킨다. 이 순간만큼은 선배가 내게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자주 입을 맞춰 익숙해진 호흡과 내 팔을 잡는 손이 미치도록 좋아서, 어느새 다른 건 모두 잊어버리고야 만다.


 곧, 졸업식이라는 것을.


 








일상에 너를 데려오는 방법











 3학년의 졸업식 날. 예상대로인지 아닌 건지, 강백호는 많이 울었다. 아닌 척 하면서 농구부 후배들 중에서 선배들을 가장 믿고 의지 했으니 울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대성통곡을 하며 울 줄은 몰랐다. 시끄럽다고 핀잔은 주었지만 나 역시 눈물을 참고 있었다. 강백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돼서 더 이상 토를 달지는 못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있는 대만 선배를 본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단 번에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건 나의 특권이다. 다 들지도 못할 만큼 꽃다발을 받은 채로 웃고 있는 선배는 그 누구보다 환하게 빛났다. 저런 사교성을 숨기고 잘도 깡패짓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어이 없기는 했다. 분명히 같이 졸업을 하는데 왜들 선배를 붙잡고 울고 있는 건지. 농구부끼리 모여 뒤풀이를 하기로 했다고 알려줘야 하는데, 어느 틈에 가야 하는 건지 감도 안 잡힌다. 나는 어색해서 머리를 매만졌다. 치수 선배에게 붙어 울고 있는 강백호와, 그런 강백호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는 서태웅과, 이런 세 사람을 웃으며 쳐다보고 있는 준호 선배,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선배만 쳐다보고 있는 나. 마치 나만 홀로 떠 있는 섬처럼 느껴졌다. 선배에게 전하지 못한 꽃다발이 점점 시들어가는 것만 같았고 그건 마치, 내 마음 같았다. 



“송태섭!”



 그때, 선배가 나를 불렀다. 손을 흔들며 웃고 있는 선배에게 나 역시 손을 흔들었다. 선배가 한 팔로 꽃다발을 껴안고 다른 사람들의 머리, 어깨를 툭툭 치며 인사를 한다. 괜히 심술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선배 인기 많네요.”

“이제 알았냐.”



 의기양양한 표정은 뭐지? 질투 하라고 하는 건가?

 이런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내 손에 있는 꽃다발을 가리키며 선배가 물었다.



“이거, 나 주려고 산 거냐?”

“받을 수 있겠어요?”

“어어, 잠깐만.”



 도대체 누구에게 이렇게 많은 꽃다발을 받은 거야. 선배 옆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선배는 이렇게도 안았다가 저렇게도 안았다가, 혼자 고군분투를 했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잠깐만, 하고는 연세가 있어보이는 분들에게 가서 꽃다발을 건넨다. 부모님인가. 이렇게 보니 아버지 얼굴을 빼다박았다. 선배는 뭐라 말하더니 가뿐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로 다시 왔다.



“이제 줘.”



 내게 손을 내미는 선배의 손. 나는 그 손을 보다 꽃다발을 내민다. 받았으면 좋겠는데,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못난 생각을 숨기고 침을 한 번 삼켰다. 며칠 전부터 수도 없이 연습한 말을 할 차례다. 이 말이 뭐라고 연습을 하게 되나. 선배를 좋아한다고 깨달았을 때,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선배의 얼굴이 미묘했다. 괜한 생각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후, 하고 짧은 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졸업 축하해요.”



 잘했어, 송태섭. 







 

 변하는 건 없었다. 등교를 하고, 눈에 안 들어오는 책을 펼쳐 공부를 하고-생각해보니, 3학년이 졸업을 했으니 이제는 내가 3학년이었다-, 점심을 먹고, 또 공부를 하고, 수업이 모두 끝나면 농구부 주장이 되어 농구를 하고, 집에 가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는 딱히 흠잡을 것은 없었다. 아, 흠이 있기는 했다. 강백호와 서태웅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이것들은 2학년이 되었어도 똑같았다. 분명히 의지가 되는데 너무 시끄러워. 치수 선배가 이런 생각이었을까. 3학년이 되어서는 종종 치수 선배가 생각이 났다. 


 그래도, 변한 건 있었다.


 농구부 연습이 끝난 뒤 모두가 돌아간 코트에서, 선배가 튕기던 농구공의 소리. 코트를 나서 집으로 갈 때 맞잡았던 손.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온도. 집으로 가는 모래 사장의 발자국. 바다를 쳐다보던 옆모습. 모두, 선배에 관한 것들. 


 선배 생각이 너무 많아서 집중이 되지 않을 때는 농구를 열심히 했다. 선배와 연습했던 것들을 좀 더 보완한다는 핑계를 대가며. 몸이 부셔져라 농구를 하고, 그러면서 땀을 흘리는 동안에는 선배 생각이 잠깐 안 났다. 지쳐 나가떨어져 코트에 누워 있으면 다시 생각이 났지만. 그리고, 공부도 했다. 아무래도 3학년이니까. 졸업은 해야 했다. 바닥을 쳤던 성적을 끌어 올리려면 도대체, 얼마나 공부를 해야 하는 거야. 선배는 대학 공부가 장난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지금이 더 문제였다. 이러다가 또 선배 생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에라 모르겠다 심정이 되었다.


 선배를 생각하지 않는 방법은 정말로, 잘 모르겠다.


 집으로 들어와 대충 저녁을 먹고 씻으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요즘에는 전화가 울리면 반사적으로 쳐다보게 된다. 아라가 전화를 받았다. 네. 네. 네? 아, 누구라구요? 정…대만이요?



“선배!”

-깜짝이야.



 아라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나온 순간, 수화기를 낚아 챘다. 아라가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잠깐만요. 수화기를 쥐고 아라에게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아라는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아 빨리 가라고. 왜 그러냐고. 송아라… 알겠어, 알겠다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벽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앉았다. 사방이 조용해진 걸 느꼈는지 선배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낮은 웃음이 좋아서 결국 고개를 숙였다.



-잘 지내고 있냐?

“선배는요?”

-나? 죽겠다 죽겠어…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들어봐, 송태섭.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급하게 세운 무릎에 입을 갖다댔다.



-고등학생 때 했던 공부는 아무 것도 아니었어.

“너무 어려워요?”

-어. 숙제도 아무 것도 아니었어. 과제가 무슨, 와.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 진학 안 하는 건데.

“재미있네…”

-재미? 네가 하잖아? 힘들어서 당장 자퇴한다.

“아니, 왜요? 선배도 자퇴는 안 하고 있잖아?”

-그건 나니까 그런 거고.

“뭐래?”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웃음이 나온다. 이런 대화를 얼마만에 하는 건지. 고개를 들었다가는 누구라도 웃는 얼굴을 볼 것 같아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 그리고 너, 좀 유명한 가드 됐더라?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내가 북산 출신이라고 하니까 서태웅도 서태웅인데, 네 이야기를 많이 물어보더라고. 아무래도 산왕을 꺾은 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 같다.

“음, 그건 그럴 만해.”

-뭐라더라. 잘은 기억 안 나는데… 진짜 빠르다고 했나, 판을 읽는 게 심상치 않다고 했나, 패스를 기가 막히게 잘 한다고 했나, 작아서 그런가 제대로 치고 나가면 누구보다 잘 한다고 했던가, 이명헌이랑 정우성을 뚫었을 때 인상적이라고 했는데,

“…선배.”

-어?

“잘 기억 안 나는 거 맞아요?”

-맞는데?



 이 귀여운 사람을 어떡하면 좋냐.



-아무튼, 아! 이런 이야기도 하시더라, 선배들이.

“선배들?”

-…나 1학년이잖아.

“아…”



 어떡하지. 선배가 후배가 됐네. 너무 귀여운데?



-어쨌든. NBA에서 활약하고 있는 동양인 선수가 너랑 좀 비슷한 것 같다고 했어.

“아… 너무 앞서 가셨는데.”

-그 선수도 포인트 가드래. 대학에서는 NBA 경기 보면서 분석해서 좀 신기해.

“그렇구나.”



 조잘거리던 선배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여보세요? 선배? 몇 번 부르자 어, 하고 대답을 한다. 통화 시간이 정해져 있다더니, 혹시나 해서 뒤에 기다리고 있냐니까 그렇다고 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너랑 농구하고 싶다.

“…저도요.”

-주말에 가게 될 것 같아. 그때 같이 하자.

“네.”

-미안. 이제 끊어야겠다.

“응. 들어가요.”

-보고싶다. 끊을게.



 뚜- 뚜- 뚜-

 한참동안 수화기를 제자리에 두지 못했다. 나는 수화기를 쥔 채로 무릎을 끌어안았다. 계속 수화기를 잡고 있으면 다시 선배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심장이 농구를 할 때처럼 뛰었다. 이건, 선배 옆에 있으면 늘 그런 것이었다. 예전에는 전화를 할 틈 없이 만나서 몰랐는데, 전화할 때의 선배 목소리는 평소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목소리에도 형태가 있다면 정대만이라는 글자를 쓸 것 같은. 선배 목소리여서 당연한 건가 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면서 수화기를 제자리에 두었다.



“잠깐 나가요.”

“어디가?”

“뛰러.”

“이 시간에?!”



 가만히 앉아 선배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보다 뛰는 게 오히려 심장에는 좋을 것이다. 집을 나서며 긴 숨을 들이켰다.


 보고싶다.


 꿈처럼 들리는 목소리를 생각하며 어두운 하늘을 쳐다보았다. 가볍게 몸을 풀고,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씩 내딛을 때마다,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는 게 느껴질 때마다, 주먹을 좀 더 꽉 쥐었다. 보고 싶다는 말을 돌려줄 걸 그랬나. 너무 빨리, 끊었나. 이런 상념들이 들 때마다 나는 기어코 다시 선배의 목소리를 데려온다. 선배가 담백하게 내뱉었던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내 마음이 나를 누를 것만 같았다. 어째서 그리움은 커져만 가는 걸까. 


 눈 앞에 마치 선배가 보이는 것 같고, 귓가에 들리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쯤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뭐든 내가 선배보다 더, 절실 하다는 것을. 여전히, 센 척은 잘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