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의 프리시즌 경기가 끝난 날, 대만은 태섭이 안경을 쓴 걸 처음으로 보았다. 호놀룰루로 날아가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호텔로 돌아가기 전, 기자와 팬들에게 둘러싸여 이야기를 하는 태섭은 깔끔한 은색테를 두른 안경을 쓰고 있었다. 늘 쓰는 선글라스가 아니어서 놀랐다고 하기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너무 확실해서, 피곤하지 않냐고 묻는 태섭에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전혀요? 평소와는 다른 대답이 재미있다는 듯이 되물었는데, 그러면서 웃기까지 했다. 그 목소리가 피곤하게 들렸다. 그러면 늘 하는 말이 나와야 했다. 얼른 씻고 자라던가, 오늘도 수고했다던가, 경기 좋았다라던가. 정해져 있는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튀어나온 건, 시력 나빠졌냐? 였다. 늘 보는 천장이 아닌 기자와 팬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침대에 완전히 누운 상태가 아닌, 침대 프레임에 등을 기대고 반쯤 앉아서.
-아뇨. 왜요?
"안경 썼길래."
-아아.
태섭의 대답이 무심하게 들렸다. 잠시 멈칫한 대만은 아까 전까지 하던 행동을 계속했다. 핸드폰 화면을 올리고 내리느라 부지런히 움직이는 엄지 손가락이 송태섭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고 말을 걸어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수 없는 안경이에요.
태섭의 말에 입술이 삐죽 나왔다. 시원치 않은 반응을 생각하느라 이러고 있는 걸 알리가 없으니 머릿속 생각에 대한 대답을 해줄리가 없는데.
-어때요?
거짓말처럼 서운한 생각이 사라지고 입술이 쏙 들어갔다. 이걸 묻는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태섭과 만나면서 지금까지, 몸에 걸치는 걸로 이렇다 저렇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비슷한 듯 달라서, 취향이라는 것도 그런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는데.
"어때요 라는 한가한 소리가 나오냐?"
-왜요?
"이런 안경 낀 거 처음 보잖아, 나."
-...그런데요?
대만은 입술을 삐죽였다. 태섭은 마치, 무언가를 알면서 확인하려는 듯이 묻는 것 같았다. 아마도 확실할 거라는 건, 그 동안의 송태섭을 생각하면 맞을 게 뻔했고.
"안경 낀 송태섭 내 취향인 것 같아."
그래서 듣고 싶은 말을 했다. 하고 싶은 말이라는 걸 숨겼는데, 태섭이 웃었다. 피곤함을 덕지덕지 묻힌 웃음이 낮았고, 낮아서 더 잘 들렸다. 더 잘 듣고 싶어서 책상에 있는 이어폰을 챙기고 다시 침대에 앉았다. 그러는 동안 제발 계속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말을 들으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태섭이 취향이었던 적이 거의... 아마도, 아니 조금? 없었으니까.
-팬이 선물로 줬어요.
"그랬냐?"
-네. 선글라스도 잘 어울리니까, 일반 안경도 그럴 것 같았대요.
"그런 건 어떻게 알지?"
-많이 좋아한대요 나를.
"나도 너 좋아하는데?"
-그랬나.
대만은 낮게 웃었다. 하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다음주에 오는 거 확실하지?"
-취소 돼도 가야할 것 같은데.
이번에는 크게 웃었다. 태섭이 어떤 의미로 웃었는지 안다는 것처럼 말했다. 왜요, 진심인데. 대만은 어떤 의미로 말했는지 알아서, 다른 소리를 했다.
"잘 어울려서 그러는 거거든?"
-그게 끝이에요?
"예쁘고."
-끝?
"똑똑해 보이고…."
-하하. 또?
"좋냐?"
-네.
"다음주에 마저 이야기 해줄게."
알아내야 할 건 너의 의무라는 듯이 간결하고, 건조하게 말했다. 그 말에 대한 대답은 네. 아까전 보다 더 간결하고, 건조했다. 뜨거워서 바싹 말라버린 이음새가 끊어지기를 기다린다는 듯이.
끊어진 이음새 사이로 입술이 붙었다. 진작에 했더라면 끊어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짙고, 질척한 키스였다. 등을 훑는 손이 뜨거워서 몸을 더욱 바싹 붙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태섭은, 감당해야만 한다는 것처럼 더더욱 몸을 바싹 붙였다. 이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아서, 혀를 내어 빠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입 안이 건조하고, 목이 말랐다. 넘어오는 타액을 삼키는 동안, 안경이 얼굴에 부딪혔다. 태섭은 그걸 알면서도 안경을 벗지 않았다. 대만은 눈을 살짝 떠 그런 태섭을 응시했다. 은색테가 숨기고 있는 눈썹과 안경알로 보이는 감은 눈과 속눈썹을 보았다. 맑은 안경알 너머로 어떤 것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듯했다. 눈을 감지 못하는 건 그 이유였다. 이 이유가, 태섭의 눈을 뜨게 만들 줄은 몰랐다.
"...무슨 생각 해요."
입술을 얕게 부딪히며 묻는 태섭은 낮은 목소리를 냈다. 대만은 나른한 숨을 뱉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중 못 했나, 내가?"
"네."
대만은 대답 대신, 태섭의 안경을 만졌다. 태섭의 볼이 동그랗게 올라왔다. 웃음을 참으려는 얼굴인 걸 알아서, 그 볼을 깨물었다.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다시 붙는 태섭의 입술이 촉촉했다.
"그렇게 좋아요?"
"새로운 거지."
"신기하고?"
"어."
"계속 보고 싶고?"
"음.... 어."
태섭은 긴 숨을 뱉은 뒤, 입술을 다물었다. 그 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대만은 허리 위에 있는 태섭의 팔을 붙잡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어서 답지 않게 눈치를 보았는데, 그럼에도 태섭은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허리를 두른 팔에 힘을 푼다거나, 멀어지지는 않아서, 불만이 있다거나, 할 말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걸로 안심했다.
"그래요. 계속 봐요."
"어. 그럴 거야."
"형이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안경 안 벗을게요."
태섭은 담담하게 말했다. 안심하라는 듯이 말하는 목소리는 부드럽기까지 했다. 내심 안경 낀 태섭을 계속 보고 싶었던 대만은 정말, 안심했다. 손목을 잡아 비틀어 벽에 부딪히게 만들고, 턱 끝을 할짝이던 혀가 입술을 타고 올라와 숨까지 짓누르기 전까지.
"잠깐만."
대만은 고개를 비틀었다. 뭐가 문제냐는 듯한 눈을 보고 있는 얼굴에 구김이 가득하다는 걸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는 태섭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불편해."
"뭐가요?"
"안경."
태섭은 구겨진 대만의 미간을 만지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가 문제냐는 듯한 눈은 여전했다.
"자꾸 부딪히잖아. 그래서 불편해."
"응."
"불편하다니까?"
"네."
대답과는 다른 키스가 돌아왔다. 대만은 태섭이 입술을 물자마자 파득 튀어올랐다. 화가 나서 손목을 비틀었다. 그러자마자 태섭이 손목을 놓았다. 이게 뭐하자는 짓인지를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알면서도 하지 않는 건, 태섭에게는 없는 일이었다. 저에 관한 일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순종적이고, 맹목적일 때가 있었고, 그런 때를 생각하면, 지금이다. 언제의 지금이든, 사랑 만큼이나 똑같았다.
대만은 태섭의 눈을 빤히 쳐다본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 눈은 은색테를 두른 안경 속에 안전하게 숨어 있다. 다시 몸을 붙이고, 손목을 잡고, 벽에 가둔 손이 숨기고 있는 것을 보는 것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너 진짜 대책 없다. 알지?"
콧잔등에 걸치고 있는 안경을 벗기자마자 태섭이 웃었다. 그런 게 뭐가 문제냐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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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1월 15일.... 안경 낀 태스비 좋아하는 대마니 보고싶네 트윗을 쓴 적이 있지요.. 이것으로 시작된 생각으로 일터에서 월급 루팡짓을 한 적이 있었고 그게 이 글인데 완성 안한 채로 있다가 오늘 갑자기 번뜩 생각이 나서 월급 루팡짓을 또 해서 완성했다네요^^....
대충 안경 쓴 태섭이땜에 꼴린 정대만인데.. 그러면 좋아해야 되는데 안경에도 질투하는 송태섭이... 이런 거 없어도 좋아해줘. 질투하는 송태섭... 좋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