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계절을 잘못 선택해서 온 것 같다고. 이곳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의 겨울에 생각합니다. 이곳은 겨울이 그렇게 춥지 않습니다. 그곳의 봄 날씨 같아요. 내가 태어난 곳 같기도 합니다.
아침입니다. 침대에 누워 하얀 천장을 쳐다보며, 잠을 깨기 위해 눈을 깜빡입니다. 잘, 잤을까요.
가끔, 그곳으로 돌아가면 눈이 내리는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춥냐고 묻던 당신이 떠오릅니다. 아닌 척하려고 해도 추운 건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어깨를 떨 때마다 그걸 귀신같이 알아챘었죠. 미야기 료타, 약점 발견. 이 말을 하며 웃던 얼굴도 생각납니다. 시끄럽다고 할 때마다 어깨를 부딪히며 많이 춥냐? 내일은 더 춥다는데? 어깨 움츠리면 안그래도 작은데 더 작아 보인다 며, 결국에는 멱살을 붙잡힐 말이나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당신은 내 얼굴을 빤히 보며 웃었습니다.
…아침부터,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죠. 있어도 뭐, 어떻게든 하겠죠. 미츠이 히사시는, 그런 사람이니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킵니다. 이제, 침대에서 자는 것도 꽤 익숙해졌습니다. 바닥에서 자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요. 같이 지내고 있는 룸메이트는 오늘도 없습니다. 공부에 목숨을 건 녀석이라, 방학에도 새벽부터 도서관으로 달려가거든요. 덕분에 기숙사를 혼자 쓰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합니다. 수염이 그렇게 많이 나는 건 아니라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면도기를 제자리에 두고, 다시 세수를 했습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립니다. 왼쪽에는 익숙한 말이 적힌 헤어왁스가, 오른쪽에는 영어로 적힌 헤어왁스가 있습니다. 그걸, 오랫동안 쳐다봅니다.
프로틴 음료를 꺼내 마시고 양치를 합니다.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조깅을 합니다. 오늘도 날씨가 좋습니다. 그곳에서의 날씨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늘 좋습니다. 그래서 단조롭고, 변하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행이죠. 날씨라도 변덕스럽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아무 생각없이 지내는데 가끔, 당신이 이곳에 있다면 어떻게 지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당신이니, 지루하다고 할 것 같아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럴 것 같습니다. 지루하다고 느끼면 저 사람들처럼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이나 하며 잠을 잘 것 같아요. 당신은 왜 저런 게 잘 어울릴까요?
이곳 사람들은 어찌나 부지런한지, 아침부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묻습니다. 이것도 이제 꽤, 익숙해졌습니다. 아직 서툴긴 하지만, 영어 실력이 조금 늘었거든요. 이런 나를 당신이 본다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볼 것 같습니다. 미야기, 우리 낙제 군단 아니었냐? 이런 말이나 하며, 어떻게 공부를 한 거냐고 물어볼 것 같습니다. 이 생각을 하니 조금 어이가 없네요. 대학 생활은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는, 학사 경고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소리를 하며 웃었는데. 정신 차렸겠죠? 벌써 1년 전의 일이니까요.
집으로 와 샤워를 했습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자연스럽게 헤어왁스를 쳐다봅니다. 그걸, 오랫동안 쳐다보다 늘 쓰는 오른쪽 헤어왁스로 머리를 정리했습니다. 다시 제자리에 놓으며, 왼쪽에 있는 헤어왁스의 위치를 다시 맞추었습니다. 조금, 삐뚤어진 것 같아서요. 그걸, 오랫동안 쳐다봅니다.
어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사온 샌드위치를 꺼냈습니다. 그것들을 가져와 침대 프레임에 기대 앉아 먹었습니다. 오늘은 방학 기간 동안에 주어진 과제를 마무리 해야 해서 도서관에 갈 거예요. 다음주면 개강이거든요. 그전부터 조금씩 하고 있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아 해야 할 목표치를 못했더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레포트를 쓰고, 영어 공부도 하다, 저녁 때 쯤에는 농구부 사람들과 운동을 할 겁니다. 이렇게 하루 일과를 생각했을 때, 양쪽 턱이 뻐근한 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평소에 이를 꽉 깨문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받았나. 잘 모르겠어요. 처음 왔을 때보다는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타지 생활이니 어쩔 수 없겠죠. 세게 씹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볼마사지를 했습니다.
양치를 하고 가방과 농구공을 챙겨 도서관으로 갑니다. 늘 그랬듯, 구석에 자리를 잡고 필요한 책을 가져온 뒤 레포트지, 사전, 랩탑을 꺼냅니다. 10시 30분. 점심 시간 전까지 바짝 하고, 점심을 먹고, 지루하면 근처에 있는 코트에서 농구를 할 거예요. 지금도 지루하긴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으니 해야죠. 이런 말을 하면 당신은 오, 미야기, 제법인데? 하며 웃겠죠.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서 긴 숨을 내쉬게 됩니다. 기껏 세팅해놓은 머리카락을 헤집다 결국에는 책상에 완전히 엎드렸습니다. 오늘은 과제를 다 해야 하는데. 그래야 수정을 하고, 첨삭을 할 텐데.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을 때는 농구를 하는 게 좋은데. 그러면 오늘 할 분량의 공부를 다 할 수 있을까요. 다 하지 못해도 이런 집중력으로는 과제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농구공을 챙겨 나와 코트로 갑니다.
사실 요즘, 내 하루는 늘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당신이 아니라 나일지도 몰라요. 심란한 마음으로 코트에 가면 농구부 녀석들이 있습니다. 저녁에나 만나자던 녀석들이 이미 있는 걸 보니 웃음이 나옵니다. 헤이, 료! 녀석들과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듭니다. 역시 공부가 안 되지? 장난스럽게 묻는 녀석과 어깨를 부딪히며 인사를 합니다. 아직 햇빛에 적응되지 않아 눈이 부십니다.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녀석들을 쳐다봅니다. 시선을 돌리며 한 명씩, 똑바로, 쳐다봅니다. 코트에 있는 사람들을 다 보았을 때, 손을 내립니다.
다시 돌아올테니 부러 연락 안 한다. 이렇게 말하며 선물을 내밀던 당신이 떠오릅니다. 그럼 이건 뭐냐고 물으니, 이걸로 연락 퉁치는 거라는 어이없는 말을 하다, 잘 다녀오라는 부적 같은 거라고 말하며 머쓱한 얼굴로 딴 곳을 쳐다보던 당신이 생각납니다. 그때 당신은 내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죠. 그래서 나는, 당신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습니다. 고마웠어요. 당신이 날 쳐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여전히, 당신의 얼굴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당신도 계속, 농구를 하고 있을까요. 나처럼, 답답한 기분이 들면. 무언가를 기억하고 싶으면.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으면. 당신도 나처럼 농구를, 할까요.
오늘도 과제와 공부는 틀렸습니다. 하다보니 판이 커져서 농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같이 놀며 이야기를 했어요. 덕분에 영어 대화는 좀 늘어난 것 같습니다. 맛있는 감자튀김을 파는 펍도 알게 됐고요. 이거면 된거라고 생각해도, 기숙사에서 가지고 왔던 가방 그대로를 가지고 다시 돌아가는 건 썩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시끌법적하게 있다가 다시 혼자가 되어 돌아가는 길이 조용해서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하죠. 그곳에서는 조용한 게 좋았는데 여기서는, 시끄러운 게 좋습니다.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룸메이트는 아직 안 왔습니다. 녀석이라도 있었으면 지금의 기분이 좀 나아졌을까요. 조용한 방을 둘러보다 가방을 내려놓았습니다. 긴 숨을 내쉬고, 마른세수를 했습니다. 은근히 신경을 곤두세워서인지 피곤한 기분이 듭니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싶어요. 그럴 수 없으니 뜨거운 물 아래에서 오랫동안 서있어야겠습니다. 점퍼를 벗고,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짧은 숨을 내쉬고,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티를 벗으려고 팔을 듭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시선이… 돌아갑니다.
……
……
화장실에서 나와 책상에 앉았습니다. 스탠드를 켜고, 책상 서랍 맨 아래칸을 열어 쌓아놓은 것들을 뒤져, 서랍 바닥에 있는 편지를 꺼냅니다. 편지는 무거운 것들 아래에 있었던 탓에 아직 빳빳합니다. 그 편지를 조심스럽게 쳐다봅니다. 내 이름을 보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이름을 봅니다. 미츠이 히사시. 당신답지 않은 정갈한 필체로 쓰여진 이름을, 한참동안 쳐다봅니다. 이름이 당신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당신인 것은 아닌데 그것을 빤히, 쳐다봅니다. 그러다 내 이름을 봅니다. 미야기 료타. 입술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 들어 혀로 입술을 축였습니다. 당신의 필체로 쓴 내 이름은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어째서일까요. 나는 간지러운 사람이 아닌데. 낯간지럽지도 않고. 그런데 내 이름이 그렇게 느껴집니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이 이름이 다른 사람 같아서, 이 이름에 익숙해지는데에 오랫동안 시간을 들였습니다.
편지를 봤을 때는 더 그랬어요. 내 이름을 한 번 더 쓴 윗단락의 글씨체는, 봉투에 있는 필체와는 좀 달라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편지지에는 내가 아는 당신의 필체가 있습니다. 마음이 조금 편해진 탓인지, 방금 전까지 뻐근했던 턱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호흡을 고르고, 편지를 읽었습니다. 이미 수없이 읽어서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지만요. 당신답게 길게 쓴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오랫동안 읽을 수 있는 편지라는 걸 당신은 알까요.
미야기 료타 너는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 내가 편지라는 걸 써 본 유일한 사람이거든. 쓰면서도 이러는 게 맞나 싶은데, 잘 지내냐고 연락을 하는 것보다는 덜 오그라들 것 같아서 쓴다. 너는 모르지? 안그래도 못생긴 얼굴에 요즘 근심이 가득해서 더 못생기고 험악하게 보이는 거 내가 아는 너는 결국에는 해내는 녀석이다. 그러니까 죽상 쓰지 말고 지내 네가 무표정하면 다른 사람들은 싸우자는 걸로 볼 수 있으니까 가서 돌아오면 왜 걱정 했는지도 모를 거다. 너랑 자주 가던 라멘집 내가 자주 출석해서 안 망하도록 할 테니, 돌아오면 라멘먹으러 가자 그리고 선물은… 폼생폼사인 미야기 료타에게 딱 맞는 걸로 샀으니 잘하고 다녀라 합숙 때 네꺼 한 번 썼다고 지랄한 헤어왁스가 이거, 맞지? 아니어도 잘 써라 그리고 |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다시 턱이 뻐근하게 아픕니다. 가슴 언저리가 답답합니다. 편지를 구길세라 손을 내려 바지를 꽉 잡습니다. 목울대가 계속 움직입니다. 자꾸, 어깨를 움츠리게 됩니다. 고개를 숙이고, 다시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바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움츠린 어깨가 조금씩 뻐근해집니다. 목구멍이 뜨겁고, 꽉 찬 느낌에 결국, 파- 하고 숨을 뱉어도,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답답했던 이유가 숨을 참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것처럼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입술을 꽉 깨물고, 책꽂이에 꽂아둔 책 사이, 조그만 상자를 꺼냅니다. 손가락 끝이 차갑습니다. 상자를 편지 옆에 두고, 긴 숨을 내쉬고 다시, 편지를 읽습니다.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거금 들였다. 잃어버리면 죽, 아니, 어쩔 수 없지만. 네 아대가 검은색이잖아. 깔맞춤은 폼생폼사의 기본, 맞지? 미츠이 히사시 추신. 힘들면 남자답게 연락해라 형님이 받아준다 |
편지를 몇 번 더 읽은 뒤 조심스럽게 옆에 두고, 상자를 옮겼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색 조그만 상자. 이 상자 안에는, 피어싱이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하얀색 피어싱이 아닌, 검은색 피어싱. 이걸,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당신은 모르겠죠. 고개를 돌리면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이 피어싱을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다는 걸. 당연히, 해본 적도 없다는 걸. 사실은요. 내가 왜 답답한지, 왜 이렇게 당신에게 혼잣말을 하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어요. 이미 아는데 내가 어떻게, 이걸 할 수 있겠어요. 이미 당신을 좋아해서 내 안에 가득 차있는데, 이걸 고르는 동안 내 생각을 했을 당신까지 더 비집고 들어올 곳이 없습니다. 이미 각인처럼 새겨져 있다고요, 이 바보 같은 선배야.
상자 뚜껑을 닫고, 원래 있던 자리에 되돌려 놓습니다. 편지를 한 번 더 읽고, 접힌 자국대로 접어 다시 서랍 아래에 둡니다. 서랍을 닫고, 상자를 쳐다봅니다. 오랫동안 자주 쳐다봐서 이제는 당신인 것 같은 물건을 쳐다보며, 숨을 고릅니다. 아주, 오랫동안요. 차가워진 손끝을 만지며, 마른침을 삼킵니다. 긴 숨을 여러 번 내쉬고, 책꽂이 왼쪽에 있는 편지지를 꺼냅니다. 이곳에 오자마자 산 거지만, 한 번도 쓴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먼지는 없습니다. 자주, 꺼냈었거든요.
당신에게 편지를 쓸 겁니다. 드디어, 말이에요. 펜을 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의 힘이 너무 세서, 덤벼볼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당신에게, 다 알고 있는 사람도 힘이 세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러니 각오해야 할 거예요. 당신이 말했듯 나는, 결국에는 해내는 사람이니까. 그럼 그때는, 당신이 준 피어싱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때는 아마, 내가 생각하는 당신이 아닌, 나를 생각하는 당신으로 채우고 싶어질 것 같으니까요.
앞으로 남은 1년 동안, 지난 1년 동안 그랬듯 나를 증명하고, 보여주고, 치열하게 살다가, 경계점이 모호해지는 어떤 시간에 당신을 생각하며 잘 지내볼게요. 그리고, 남자답게 연락하겠습니다. 부디, 받아주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이미, 그렇게 말했잖아요. 그렇죠?